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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엠디의 정신으로 가만이 전도(1) (딤전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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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정신으로 가만이 전도(1) (딤전 2:4-7)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디모데전서 2 : 4 - 7)  

우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층 더 깊고 심오한 신앙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한 때, 유행하였던 참새 시리즈입니다. 허무 개그에 속하는 이야기이지만 적지 않은 의미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참새들이 포수가 쏘는 총에 죽어갔습니다. 참새들은 계속해서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두 방탄조끼를 하나씩 장만하는 것입니다. 방탄조끼를 입은 참새들이 전깃줄 위에 나란히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포수가 총을 탕탕탕 쏘았지만 모두 무사했습니다. 참새들이 신나서 어깨동무를 하고 단체로 노래를 불었습니다.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 야야야~~!”

엄청나게 화가 난 포수가 이번에는 드르르륵하고 총을 쏘았습니다. 그렇지만 방탄조끼 덕분에 모두 무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딱 한 마리의 참새가 총알을 맞고 땅에 떨어졌습니다. 

방탄조끼를 입었는데도 총알을 맞고 땅에 떨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참새는 혼자서 튀느라고 다른 참새들과는 달리 방탄조끼를 열었다 젖혔다 하면서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하다가 총알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뻐도 방탄조끼를 열었다 젖혔다하면 큰일 납니다. 혼자서 튀느라고 함께 가는 법칙을 어기면 큰일 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모두 함께 가야 합니다. 

요즘 우리교회는 MD전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가야 합니다. MD전도 사관학교에 등록하신 분들만이 아니라 전교인들이 한 영혼을 사랑하여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는데 함께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MD를 MB로 잘못 알아듣고 기분 나빠하십니다. MB라고 하더라도 교회에서 그 MB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함께 갑시다. 튀다가 총알 맞을 수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함께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가야할 이유를 알고 함께 갑시다. 그래서 이제 MD 이야기를 교회적으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MD는 전도운동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방법이 아닙니다. 모든 전도 방법이 지향하는 것처럼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I. 하나님의 소원  

교회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즉,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교회인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4절 말씀입니다.
: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첫 번째 소원을 발견합니다. 

1. 구원을 받기를 소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바라신다는 것은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예비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계층은 구원을 받고, 어떤 종족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저절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구원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 얻습니다. 어머니가 온 가족을 위하여 밥을 지었어도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는 사람만이 배가 부른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어머니가 사랑으로 밥을 지었어도 직접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모든 식구를 위해 밥을 짓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하여 생명의 밥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복음이 전하여 지기를 소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또 다른 하나님의 소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4절 말씀입니다.
: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구원을 받는 것과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고, 진리를 아는 것은 곧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2. 진리에 이르기를 소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겔 33:11)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앎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진리의 말씀은 곧 구원의 복음이신 예수님이십니다(엡 1:13). 예수님이 바로 구원하는 진리이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각각 그 자신을 구원하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마땅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도록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소원을 위하여 전도하는 교회로 다시 불일듯 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구원의 진리이십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알아야 할 진리이십니까? 
  

II. 예수님의 중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5절 말씀입니다.
: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여기에 예수님에 대한 아주 중요한 소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仲保者)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보자[mesivth"/메시테스]’라는 말은 ‘한가운데의’라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영어로 조정자, 매개자, 중보자라는 뜻의 단어(mediator)가 되었습니다. 영어 단어를 줄여서 MD라고 합니다. MD가 된다는 말은 중보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적으로 중보자는 ‘화친이나 계약을 맺기 위해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 ‘둘 사이에 평화와 우정을 회복시키거나 협약을 이루도록, 또는 언약을 승인하도록 중재하는 사람’입니다. 

1. 예수님은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이 중보자이시라는 말씀 앞에서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중보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중보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노벨평화상은 평화를 중재한 사람들이 받습니다. 지난해(2011년) 노벨평화상은 라이베리아와 예멘에서 폭력을 종식시키고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받았습니다. 만약 갈등이 없다면 평화상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인간의 본질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는 쉬운 말을 두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어려운 말을 하셨습니다(눅 5:23). 이것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예수님께 있을 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눅 5:24).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죄인에게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중보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중보자의 자격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합니다. 아무나 중보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 쪽으로부터이든 신임을 받지 못하면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한쪽으로부터 조정자로써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면 중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해 당사자인 양쪽 모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사람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시라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단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셨을까요?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6절 말씀입니다.
: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대속물로 내주셨습니다. 여기에서 ‘대속물[ajntivlutron/안틸뤼트론]’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독특한 말입니다. 이것은 노예나 죄수의 ‘몸값’을 나타내는 말과 ‘대신’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대신 몸값을 지불하였다는 것입니다. 죄수가 스스로 자신의 몸값을 지불할 수 없을 때 대신 값을 지불하여 주어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값으로 치르시고 사람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자유하게 하시는 구원을 주십니다.


2. 예수님은 대속물이십니다.

예수님이 대속물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갈 1:4). 예수님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막 10:45)고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과 그것을 사는 사이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중개업자는 양쪽으로부터 일정한 복비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반대이셨습니다. 오히려 중개인이 자신의 몸을 값으로 내어 놓으셨습니다. 값을 자불을 할 수 없는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값을 지불하신 것이 예수님의 중보사역입니다.

옛날 그리스에 로그리양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그 나라에서 간음을 범한 사람은 두 눈을 뺀다는 법을 공포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령을 공포한 지 하루 만에 왕의 아들이 간음죄를 지어서 두 눈을 뽑히게 되었습니다. 왕은 나라에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아들의 눈을 뽑도록 하였습니다. 형을 집행하는 관리가 날카로운 칼로 왕자의 한 쪽 눈을 도려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눈도 도려내려고 할 때, 로그리양 왕은 형의 집행을 중지시키고 그 칼로 자신의 눈을 도려내었습니다.

만약 왕자라고 해서 법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정의가 무너지고 나라는 무질서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의를 위한 일이라지만 왕자의 눈을 뽑는 왕은 아들에게는 비정한 아버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공의를 위하여 비록 자기 아들이지만 그 눈을 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눈을 기쁘게 빼 버렸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위하여 반드시 값을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아버지이시기에 대신 값을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값을 지불할 수 없는 인간을 위하여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바쳐진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값으로 주시고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 어떤 다른 중보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단의 주장이자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님이십니다.

대속물이 되어 중보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당당하게 나아가게 된 것을 확신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 모든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영혼의 밥상을 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이 감겨져 있습니다. 귀가 막혀져 있습니다. 먹기만 하면 배부를 터인데,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 터인데, 이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사명이 있습니다.
  

III. 우리의 사명 

교회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야 합니다. 대속물이 되심으로 중보자가 되신 예수님을 전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원을 위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듣고 알고 믿도록 전하여야 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값을 치르셨다는 것을 증언하도록 전파하는 자와 사도 그리고 스승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이 중보자 되심을 믿기에 이것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1. 우리는 전파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전파자[kh'rux/케뤽스]’라는 말은 ‘공적 문서를 배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파자가 전달하는 내용은 자신이 원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를 보내는 분이 보내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MD, 중보자라고 하는 데는 엄청난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님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보자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사이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보내시는 분의 명령을 따라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중매하는 것일 뿐입니다(고후 11:2).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MD가 아닙니다. MD이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람입니다. MD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중매는 거짓말 석 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구 속여서 부풀려 놓아야 중매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중매쟁이가 ‘그 사람 좋기야 참 그 이상 좋은 데가 없지요. 그런데 좀 멀어서 그렇지!’ 하며 중매를 하였습니다. 먼 것 하나 빼놓고는 그렇게 좋은 자리가 없다고 해서 결혼을 하고 보니 눈이 먼 시각장애인이더랍니다. 그래서 ‘어디 이럴 수가 있냐!’하고 따지니까 ‘내가 멀다 소리를 얼마나 많이 했더냐! 먼 거야 상관없다고 하지 안했느냐!’고 하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소개하는 사람은 진실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파하는 사람은 자신이 믿지 않는 내용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MD 사역을 하려는 사람은 진실하여야 합니다.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ajpovstolo"/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라는 뜻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와 같은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의 시대는 신약성경 안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와 같은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세상으로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MD전도는 ‘가만이 전도’입니다. 가만이 전도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이는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는 현장으로 가서 진실하게 보내신 이를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알고 있어도 가서 만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부뚜막의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3. 우리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스승이 되었다는 말은 전파자가 되고 사도가 되었다는 말과 동격의 말입니다. 스승[didavskalo"/디다스칼로스]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전도자가 전도를 받는 사람을 학생으로 삼고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먼저 아는 사람으로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성봉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중매쟁이인데, 신도들을 신랑 예수께 결혼시키면 족한 것을 요사이 못된 중매쟁이들은 중매하러 가서 자기가 대신 데리고 산다. 신부는 원 신랑하고 살지 않고 중매자와 사는 여자처럼 된다. 거짓 스승들은 신자들을 자기 그룹, 자기 당파로 미혹한다.”

예수님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를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자기의 제자로 삼는 사람은 MD사역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중보자가 되어서는 아닙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하게 예수님을 소개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중보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없는 자들을 위하여 값을 지불하시고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먼저 깨달은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히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파자와 사도와 스승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MD이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MD사역자의 사명입니다.  

진실하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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