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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뒤를 돌아보셨습니까? (창 19: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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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뒤를 돌아보셨습니까? (창 19:23-28)

우리 옛말에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입니다. ‘병가지상사’라는 말은 전장에서 늘상 있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도 있고, 패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승리할 수만은 없습니다. 실수도 마찬가지이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수는 늘상 있는 일입니다. 우리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비극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하면서 무언가를 배웁니다. 실수 없이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서 3천 번의 실패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통해서는 배우는 인생이라 하더라도 치명적인 실수만은 피해야 합니다. 그 치명적인 실수 하나가 모든 것을 앗아가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도 많은 실수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저지른 실수 가운데 하나가 조카 롯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 그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머물고 있던 하란을 떠났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나이는 145세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그 연세 많은 아버지를 하란에 놔둔 채 하란을 떠나야 했습니다. 늙은 아버지를 놓고 떠나야 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무척이나 아팠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브라함이 실수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 바로 하란을 떠날 때 조카 롯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떼어놓았는데 조카 롯은 떼어놓지 못하고 데리고 왔습니다. 
  
그 이후 아브라함은 조카 롯으로 인해서 참 많은 아픔과 힘든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애굽에 내려갔다가 부자가 되어 돌아온 아브라함과 롯은 벧엘 동쪽 - 벧엘과 아이 사이에 거처를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아브라함의 가족과 롯의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은 땅이었습니다. 

좁은 땅에서 함께 살다 보니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목초지를 누가 차지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자주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함께 온 유일한 혈육인 조카 롯과의 관계가 불편해지자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지기로 마음먹습니다. 비록 조카 롯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롯은 물이 많고 비옥한 땅인 요단 동편을 선택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단 동편으로 거처를 옮긴 롯이 소돔성에 들어가 살고 있을 때 그곳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소돔지역의 왕들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섬기며 조공을 바치고 있었는데, 조공을 바친 지 13년 째 되는 해에 소돔지역 왕들이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엘람 왕이 주변 나라들과 연합군을 형성해서 소돔지역을 쳐들어온 것입니다. 당연히 힘이 약했던 소돔 지역은 그돌라오멜 연합군에게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소돔에 살고 있던 롯도 큰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재산을 다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롯과 그의 가족들이 다 연합군에게 사로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조카 롯이 전쟁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 목자들로 구성된 군사 318명을 데리고 가서 롯을 구해옵니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제는 롯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있을 때 또 한 번 아브라함은 롯으로 인해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아브라함이 장막 문 앞에 앉아 있는데 낯선 세 사람이 아브라함을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자, 그들은 아브라함에 축복의 말을 해 줍니다. 1년 후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해 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방문한 그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하나님이셨고, 나머지 두 사람은 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방문을 마치신 후 하나님께서는 소돔으로 길을 떠나셨습니다. 두 천사는 소돔으로 먼저 떠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앞에 머뭇거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야하느냐 하는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기로 마음먹으시고, ‘이제 소돔으로 간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십니다. 소돔 성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기에 그 부르짖음처럼 정말로 소돔의 죄악이 큰 지 알아보려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소돔 성의 죄악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다면 소돔 성을 멸망시키실 것이란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길을 떠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간청하게 됩니다. ‘정말로 소돔 성을 멸망시키실 것이냐’고 말입니다. ‘소돔성에 의인이 있다면 그 의인을 봐서라도 소돔 성을 멸망시키실 계획을 철회하실 의향은 없으시냐’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간청을 올립니다. ‘의인 50명이 있어도 멸망시키실 것이냐’는 간청부터 시작해서 결국에는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어떻게 해서든지 소돔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했던 것은 그의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의 조카 롯이 소돔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악과 환락의 도시에 들어가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조카 롯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롯이 살고 있는 소돔이 멸망당한다면 롯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조카 롯의 생명뿐만 아니라, 롯이 소돔의 멸망으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놓은 모든 것을 잃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소돔의 멸망을 막아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소돔에는 의인이 열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소돔은 멸망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소돔의 멸망 가운데 하나님의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그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아시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그 멸망의 자리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이 멸망당할 소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롯이 의로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그 아픈 마음을 아셨고, 그 아브라함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이어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아브라함 때문에 롯의 가족들이 소돔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소돔이 멸망당하기 전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롯에게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실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돔이 멸망당하던 바로 그날 아침에 천사들이 롯의 가족들을 소돔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시겠다는 데도 롯을 쉽게 소돔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본문 바로 앞인 16절에서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천사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롯은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도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쉽게 소돔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들이 강제로 롯의 가족들을 소돔 성 밖으로 끌어내야 했습니다. 
  
소돔을 빠져나온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천사들이 살 길을 알려줍니다. 17절입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산으로 도망가라는 천사의 말에 롯은 ‘산에까지 갈 힘이 없다’고, ‘좀 더 가까운 소알이라는 작은 성읍으로 들어가면 안 되겠느냐’고 하소연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라는 허락을 받습니다. 이제 롯과 그의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은 하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천사는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살아남기 위해서 도망을 가되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소알까지만 가면 안 되느냐는 롯의 요구는 들어 주시면서도,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은 철회하지 않으셨을까요? 
  
롯과 그의 가족들은 천사의 지시대로 소알까지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이 소알에 들어가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만 멸망시키신 것이 아니라 그 성읍 주변에 있는 들까지도 다 엎어버리셨습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던 그날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다. 우리는 굵은 장대비가 세차게 몰아치면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는 우박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황과 불이 장대비처럼, 우박처럼 쏟아부어졌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읍뿐만 아니라 온 들에도 마치 화산이 터져 용암이 흘러넘치는 것같이 붉은 유황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온통 시커먼 연기가 자욱합니다. 본문 2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롯의 아내였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본문 26절에서는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다고 말씀하고 있고, 27-28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멀리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 죽고 말았는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던 아브라함은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왜 두 사람이 똑같이 유황과 불의 재난으로 인해 모든 것이 타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고 있는데 한 사람은 죽임을 당하여 소금기둥이 되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바라봄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그곳에 나와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눈을 들어 바라보았던 것은 걱정과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간청을 드렸습니다. 어찌하든지 소돔이 멸망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졸라댔습니다. 자기의 조카 롯을 향한 사랑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29절에서는 그 아브라함 때문에 롯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달랐습니다. 롯의 아내는 왜 뒤를 돌아 멸망당하는 그 소돔과 고모라를 쳐다보았겠습니까? 그동안 소돔에 살면서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 자기의 둘 딸과 정혼한 사위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뒤를 돌아보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불바다가 된 그 멋진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서입니까?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다’라고 말씀할 때 ‘뒤를 돌아보았다’는 말은 성경언어(히브리어)로 ‘나바트’입니다. 이 말은 그냥 구경삼아 쳐다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골똘히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뭔가를 간직한 채 바라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롯의 아내는 마음속에 뭔가를 간직한 채 멸망당하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골똘히 쳐다보았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 때 롯의 아내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롯의 아내는 무엇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서 소돔을 쳐다보았을까요?

앞에서 창세기 13장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서는 과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갈라서면서 아브라함이 롯에게 제안을 합니다. ‘네가 먼저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해라.’ 삼촌이 조카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그러자 롯은 요단 지역을 선택합니다. 그곳을 선택할 때 성경은 이렇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지역을 바라본즉”(창세기 13:10) 

여기에 ‘바라보았다’는 동사가 나오는데, 이 말은 유심히 살펴보았다는 뜻입니다. 자세하게 관찰했다는 뜻입니다. 롯은 그저 한 번 쭉 둘러보고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 지역을 유심히 살펴보고 관찰한 후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요단 지역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롯은 왜 그렇게 세심하게 고려하고 관찰해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기준으로 그 요단 지역을 선택했을까요?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그 지역에 물이 넉넉했다고 말입니다. 물이 넉넉했다는 것은 먹고살기 좋은 곳이란 뜻입니다. 가축을 기르기에 아주 좋은 곳이란 뜻입니다. 롯이 요단 지역을 자세히 살펴본 이유는 ‘살기 좋은 곳인가? 가축을 기르기에 좋은 곳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롯에게는 오직 그것만이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이 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창세기 13: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서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살기 좋은 곳인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곳인가?’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내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곳일까? 하나님을 섬기는 데 어려움이 없을까?’ 이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요단 지역을 선택하여 간 롯은 결국 소돔 성 안에까지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 죄악이 가득 차 있는 동네, 거짓과 불의가 만연되어 있는 동네에 스스럼없이 들어가 살았고, 그들과 동화되어 갔습니다. 롯의 마음에는 죄악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책망하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라 소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 지역을 선택할 때부터 하나님은 선택함에 있어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부자가 되는 것, 오직 잘 살 수 있는 것만이 관심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소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소돔에 들어가서 롯은 자신이 욕망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19:1절에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고대사회에서 성문은 아주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성문은 중요한 재판이 벌어지는 곳이었습니다. 성읍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을 알리는 공공장소이기도 했고, 중요한 사업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 성문은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마을이나 성읍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롯이 그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롯이 소돔 성읍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롯은 소돔 출신이 아닙니다. 그는 떠돌이생활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돔으로 들어온, 소돔 사람들에게는 이방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고대사회에서 그 지역 출신이 아닌 이방인이 그 성읍에 영향력을 끼칠 정도의 자리에 이르렀다는 것은 굉장히 출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롯이 무엇을 통해서 소돔 성에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가 그 지역에서 높은 관직을 가진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넓은 인맥을 쌓아서 그 자리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롯이 성문에 앉을 정도로 성읍에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재물입니다.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부터 롯에게는 상당한 재산이 있었습니다. 가축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축을 기르기에 좋은 곳을 찾아 요단 지역으로 갔습니다. 어쩌면 그는 요단 지역으로 옮긴 후에 더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돔 성에 들어가서도 그는 이방인임에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돈이, 재산이 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돈의 맛을 알았기에, 소돔이 죄악으로 가득 찬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고, 소돔이 멸망당하던 날 아침에도 천사가 성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등을 떠미는데도 쉽게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롯일진대, 롯의 아내라고 다르겠습니까? 롯의 아내만이라도 바른 신앙으로 살려 했다면 롯은 소돔 성내로 들어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도 롯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한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랬기에 롯의 아내는 지금까지 누리고 있었던 재물이 다 불에 타고 있을 때, 그곳에 남겨두고 온 그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롯의 아내의 마음속에는 자기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그 재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롯을 소돔에서 떠밀어내실 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경고나 말씀이 그녀의 마음에 새겨질 공간이 없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과 미련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 19장에만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조차 기록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롯의 아내’로 기록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그녀가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죽어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그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라는 기준 말입니다. 죄를 두려워하고 멀리 하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믿음이 우리를 이끌어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환경과 여건에 동요되거나 그것에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부귀영화를 다 줄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유혹 앞에서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거짓에 휘둘려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의 끈을 붙잡고, 믿음이 기준 되는 삶을 고집스럽게 살아가야 합니다.

서울 양화진에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선교사들의 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충복’(Dedicated servant of Jesus Christ)이라는 묘비명을 가진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미국 출신의 사무엘 무어(S. F. Moore, 한국명 모삼율)목사님입니다. 
  
그는 1892년 32세에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들어와서, 1893년 새문안교회 다음으로 두 번째 장로교회인 곤당골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예수학당을 열어 교육에 힘썼습니다. 그 예수학당의 학생 가운데 ‘봉출’라고 불리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은 백정 박씨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던, 아니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백정은 이름조차 갖지 못했고, 겨우 성씨만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출로부터 아버지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무어 선교사님은 의사였던 에비슨(Oliver R. Avison) 선교사를 데리고 가서 그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사람으로 당시 고종황제의 주치의였습니다. 황제의 주치의가 백정을 치료해 준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여러 번의 왕진치료를 받고 나은 백정 박씨가 곤당골교회에 나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무어 선교사님은 그에게 박성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세례까지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박성춘으로 인해 곤당골교회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당시 20여명이던 양반 교인들이 백정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백정을 내보내지 않으면 교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교회출석을 거부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럼에도 무어 선교사님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박성춘 씨를 내보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어 선교사님의 확고한 생각에 흔들림이 없자 얼마 후 양반 교인들이 협상을 해왔습니다. 예배당 앞쪽에 양반자리를 마련하고, 백정들은 뒤에 앉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교회에 나오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어 선교사님은 그런 요청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1895년 양반들은 곤당골교회를 떠나 양반들을 위한 홍문섯골교회를 세워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입장이 난처해진 박성춘 씨는 교회의 빈자리를 자신이 채워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자신과 같은 백정들을 전도하기 시작했고, 많은 백정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양반교회였던 곤당골교회는 백정교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에 홍문섯골교회를 세워나갔던 양반교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곤당골교회로 돌아와서 두 교회가 합쳐져 승동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1년 장로를 선출하는데 백정인 박성춘 씨가 우리나라 최초로 백정출신의 장로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 박성춘 장로가 한 큰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어 선교사님 등이 추진하고 있던 백정 해방운동에 동참하여 조정에 장문의 탄원서를 올리게 되었고, 마침내 그 요구가 관철되어 백정 해방을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봉출은 세브란스를 졸업하고 ‘박서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가 되었습니다.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던 백정들을 위해 사역하였던 무어 선교사님은 1906년 장티푸스에 걸려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지 14년만입니다. 그러나 그가 상황에 타협하지 않고 믿음의 기준을 분명하게 지킨 결과 우리나라에서 백정들까지도 법적으로 차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무어 선교사님이 양반 교인들의 협박에 흔들렸다면, 당시 일반적인 사회적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그저 그 상황에 적당하게 타협하고 넘어갔다면 우리 사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없었고, 복음의 역사가 오늘처럼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의 고집, 뒤를 돌아보지 않는 신앙의 고집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창조해갑니다. 여러분! 우리의 뒤에 무엇이 있든지, 그것을 마음에서 털어내지 못해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저지르지 마십시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재물과 명예와 욕망 때문에 앞을 바라보고 가야할 우리가 뒤를 돌아봄으로 제2의 롯의 아내가 되지 마십시다. 불에 타 사라버져릴 세상적인 것에 마음 빼앗겨 뒤를 볼아보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면 우리에게 어떤 비극이 초래될 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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