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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물보다 선물을 주신 분이 중요합니다 (요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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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보다 선물을 주신 분이 중요합니다 (요 5:1-9)

요즈음 고용불안으로 생긴 신조어들이 있습니다. ‘이태백’, ‘청백전’,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육이도’ 등과 같은 말입니다. 이태백은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입니다. 청백전은 청년 백수 전성시대라는 말입니다. 삼팔선은 회사에 취직해서 38세를 넘기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사오정은 45세면 정년퇴직한다는 말입니다. 오륙도는 56세 직장 있으면 도둑이라는 말입니다. 육이도는 62세 일하면 오적 중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66세에도 책을 내고 69세에도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강의하러 다니는 분의 강의를 들어 보았습니다. 전신애 전 미국 노동부 차관보입니다. 한국 여성 최초로 미연방 노동부 차관보를 지낸 분입니다. 당시 연봉 2억쯤 받았다고 합니다. 아시안 여성이 차관보가 된 것은 노동부 여성국 81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답니다. 2001부터 2009년까지 8년 동안 장수한 차관보로 1950년 이래 가장 장수한 차관보라고 합니다. 

이분이 66세대 “너는 99%의 가능성이다”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를 나왔는데 아버지가 반대하는 동성동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몰래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모험이었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대가를 치렀답니다. 아버지의 노여움이 외손자의 재롱에 의해 묻혀 버리기까지 장장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답니다. 남편의 권유로 임신 5개월의 몸이지만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육상담과 사회정책을 전공했답니다. 애초 공부에 큰 뜻이 없었지만 남편이 마련해 준 등록금이 아까워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처럼, 두 자식의 양육에 온갖 정성을 들이다가 둘째가 여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입학하자 이중언어교육센터의 공립학교 교사들을 훈련시킬 직원으로 취직이 되었답니다. 그 때 나이 32살이었답니다. 그러나 미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직장이 문을 닫게 되었답니다. 실직한 것입니다. 그 때 좌절하지 않고 아시아 이민자의 권익을 대변할 필요성을 느낀 "아시아계 미국인 동맹" 을 결성하고 1982년 "아시아계 미국인 자문회의"의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답니다. 이를 계기로 1989년 일리노이 주 정부 금융규제부 장관에 임명되고, 1991년부터는 일리노이 주 노동부 장관으로, 2001년 3월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연방 노동부 여성국 담당 차관보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분의 수면 시간은 5시간이었고 부족한 잠은 낮잠으로 보충하면서 남보다 2배 이상의 노력하여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책에서 그분은 말합니다. "우물안에서 본 하늘은 한 평에 불과하다. 거침없이 더 큰 세상으로 뛰쳐나가라." “누구든 꿈의 높이만큼 올라서고, 무엇이든 열정의 크기만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바닥에 처박을 수 있는 사람도, 거기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다...도전하겠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기회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큰 잠재력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그대 머리와 가슴 속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말합니다. “여성은 대한민국의 미래이다.”라고 말합니다. 경영학의 대가 톰 피터스는 "향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중국도 인도도 인터넷도 아닌 여성"이라고 말하며 “준비된 자만이 세계를 품을 수 있다.” "1%의 도전정신과 열정이 100%의 인생을 만들 수 있는 만큼 큰 야망을 품고 도전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큰 꿈을 꾸며 넓은 안목으로 세계를 바라볼 것"을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99%의 가능성은 있다. 나머지 1%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도전정신과 열정, 노력이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여! 고단한 현실로 위축되고 취직난으로 움츠러들기에는 너무 많은 가능성이 그대들을 향해 열려 있다. 세계는 넓고 그대들이 도전할 일들을 무궁무진하다.”라고 말합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너무 침체되어 있습니다. 누워있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일어난 사건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어난 사건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석하고 그것을 그것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일어난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석이고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응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누워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누워있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1.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누워있는 수밖에 없는 방법을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그는 건강을 잃어 누워 있었습니다. 자비의 연못에 자비를 누리지 못하고 병자로 누워있었습니다.(6)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7).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38년입니다. 질병이란 인간을 참으로 비참하게 만듭니다. 행복하게 잘 살던 가정에 질병이 찾아오면 그 자신 뿐 아니라 그 가정이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한 두 해도 아니고 38년이란 세월을 질병 가운데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질병에는 감염성 질환(감염체가 몸 속에 들어와 생긴 질병-바이러스, 박테리라, 곰팡이, 기생충), 기능 장애성 질환(신체내 기관이 분비물을 너무 많이 또는 너무 적게 분비하여 일어남, 당뇨병, 고혈압), 퇴화성 질환(신체 기능의 퇴화로 일어나는 관절염, 치매 등)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 인생을 살면서 언젠가 찾아 옵니다. 그 질병이 어떤 것이든 질병에 걸리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소외자가 되었습니다. 그를 돌보아 줄 만한 친구도,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없었습니다. 본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기뻐했을 것이고 그의 친척들은 그를 환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이 들자 모두 떠났을 것입니다. 38년 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병들어 누워 있으면 아마 다 그 주변을 떠나버린 것 같습니다. 버림받는 사람입니다. 부모도 지긋지긋했을 것입니다. 그 38년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습니까? 이제 그는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를 돌보는 이 없는 외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철저히 소외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의 경쟁에서 실패자요 낙오자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불구자였습니다.(12,13) 예수님을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가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고자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는 그 방법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수많은 환자들이 그 방법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는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무려 38년 동안 계속 반복하여 사용해 보았지만 경쟁에서 철저히 실패한 것입니다. 실패하는 방법을 쓰면 계속 반복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인가 안 되면 되는 방법을 강구해 보아야 합니다. 선물을 못 받으면 선물을 주시는 분을 만나면 됩니다. 값진 선물을 받고 싶으면 갚진 선물을 주시는 분을 만나면 됩니다. 꼭 베데스다 연못에만 들어가야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꼭 공부만 잘 해야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 못하면 다를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유머 있지 않습니까? 똑똑한 여자 예쁜 여자 못 당하고, 예쁜 여자 시집 잘 간 여자 못 당하고, 시집 잘 간 여자 자식 잘 둔 여자 못당한다고 하지 않아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나지 못하는 베데스다만 고집하지 말아요. 그것은 하나의 선물에 불과합니다. 선물을 주시는 주인인 예수님 만나면 질병의 문제도, 소외의 문제도, 영적인 문제도 해결받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예수님은 소외되고 실패한 자, 버림받은 자, 아무도 환영해 주시 않는 자에게 선물을 주시기 위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모두 다 그를 버렸습니다. 부모마저 버렸습니다. 모두 다 포기했습니다. 부모 형제마저 포기했습니다. 그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무거운 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그를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찾았습니다. 모두 다 그이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기억해 주었습니다. 모두가 다 그의 아픔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38년의 질병과 고통을 소상히 알고 계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우리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 큰 무리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를 보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그 병이 오랜 줄 아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양을 아노라"(요10:14)

먼저 그리스도께서 그를 보시고 그에게 이르셨다. 그가 주님을 찾기 전 먼저 주님이 그를 찾으셨다.
10명의 한센 씨 병 환자를 예수님을 고쳐 주실 때 그들을 먼저 예수님 보고 계셨습니다(눅17:11-19) 모두 다 외면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1-16)을 고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비통하겠습니까? 남편을 먼저 보내고 외아들 하나 의지하고 사는데 그 아들이 죽어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해 주십니다.

야이로의 딸(막5:22-24)을 고치실 때도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 가십니다.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해 주십니다.

나의 질병, 나의 고통, 나의 아픔, 나의 실패, 나의 사정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자식도 아내도, 남편도 친구도 다 나를 떠나 버린다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계속된 실패로 좌절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방법대로 안되면 우리 주님 만나면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2.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누워있을(실패) 수밖에 없는 생각을 일어설(성공) 수밖에 없는 생각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대부분 누워 있는 사람을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38년 동안 실패한 이 병자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의 말을 통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동하면 그 중에 누군가 한 명이 뛰어 들어가면 한 사람만 치료되는 신비한 연못입니다. 환자들마다 물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걸어 다닐 수 없는 사람이라 누군가 넣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 물에 자신을 넣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소외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를 돌보아 줄 만한 친구도,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없다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환자의 생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8년입니다. 노하우가 생겼을 듯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한 치의 진전이 없습니다. 누가 데려다 넣어줄 것을 생각하지 말고 넣어줄 사람이 없으면 혼자 평소에 조금씩 끝으로 뒹굴든지 기어가던지 끝에 대기하고 있다가 물이 동하면 풍덩 들어가야겠다고 생각을 고치면 됩니다. 아니면 아애 발을 담그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도울 사람이 없으면 내 스스로 어떻게든 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을 고치면 방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에게 찾아가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에게 났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일수 있습니다. 낳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다 알고 있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던졌겠습니까?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그의 마음을 교정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생각을 교정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자포자기하고 절망한 그의 생각을 교정해주기 위해서입니다.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그의 생각을 교정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람을 보십시오. 이 말을 듣고 바로 낫기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낳지 못하는 이유만 줄줄이 대고 있습니다. 안 되는 이유만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역장을 맡으면 목자를 맡으면 안되는 이유만 말합니다. 교사를 맡고, 전도를 맡고, 식당 봉사를 맡으면 안되는 이유만 말합니다. 비판만 합니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공부 못하는 이유, 가난한 이유, 실패한 이유, 사업에 안 되는 이유만 줄줄이 댑니다. 자기 탓이 아니라 자기 생각의 잘못이 아니라 남의 탓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경기, 작업환경, 인재 부족, 자본 부족 등 외부적 안 되는 외부적 환경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 누가 모릅니까? 우리에게 인생의 선물을 주시기 원하는 주님은 그것을 말하기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인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서 저를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자비의 집에서 자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길 원하는 것입니다.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귀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식전환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일어설 수 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안되면 안되게 하는 생각이 마음 깊숙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경쟁력이 없어도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존 맥스웰이 쓴 "실패를 딛고 전진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경영학 교수인 개리 해멀과 프라할라드가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한 내용이 나옵니다. 중앙에 긴 막대기가 세워져 있는 방에 원숭이 네 마리를 넣어 두었습니다. 그 막대의 꼭대기에는 바나나가 매달려 있었는데, 배가 고픈 한 원숭이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막대기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아채려는 순간, 찬물을 억수같이 퍼부었습니다. 그 원숭이는 질겁하여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막대기에서 내려왔고 더 이상 먹으려는 시도를 포기합니다. 모든 원숭이가 비슷한 시도를 했으나 찬물을 뒤집어쓰고는 결국 모두 포기했습니다. 새 원숭이로 교체하였습니다. 그것을 목격하지 않은 새 원숭이가 올라가려고 하자 다른 원숭이가 잡아 끌어냅니다. 네 마리 다 교체했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유도 모르고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올라가면 찬물을 억수로 맞는다는 것입니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실패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실패의 고속도로에서 못 빠져 나옵니다. 이것을 "정적 평가의 오류"라고 말합니다. 물고기를 유리벽이 있는 어항에 넣어 놓습니다. 가다가 유리벽 때문에 갈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유리벽을 제거해도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의 현장에서 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하며 남 탓하고 환경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좋은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의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용할 때 보십시오. 사람낚는 어부로 의식을 전화하여 사용하십니다. 바울을 사용할 때 이방인과 임금들을 위한 하나님의 그릇으로 의식을 전환하여 사용합니다. 실패한 모세 사용할 때 모세의 의식전환하여 사용하십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성공의 대로가 보이는 것입니다.

「실패에서 성공으로」라는 책을 쓴 프랭크 베트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구선수였는데 부상으로 야구선수 생활을 접어야 만했습니다. 살기 위해 보험 세일즈맨이 되었습니다. 29세 때 세일즈맨으로서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국 피델리티 상호 생명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20년 동안 전국 5위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실패에서 성공으로 전환한 동기를 그의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보험을 팔려고 노력했지만 성과 없이 여러 날을 구인광고에 응모하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회사에서 그만 두려고 짐을 정리했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사장과 세일즈맨들의 회의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답니다. 영업사원들에게 탤보트 사장은 "영업이라는 일은 결국 한 가지, 오직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밖에 나가서 하루에 네댓 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영업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마치 태양이 갑자기 구름을 비집고 나와 쨍하고 비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답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이봐, 프랭크, 너는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잖아. 너도 매일 밖으로 나가서 네다섯 사람한테 자신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어.' 자신에게 말한 것입니다.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성공할 수밖에 없는 생각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후 그는 하루에 적어도 네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2개월 동안의 모든 방문 결과를 완벽하게 기록해 두었답니다. 그 결과 그의 영업은 70%가 첫 번째 면담에서, 23%는 두 번째 면담에서, 그리고 7%는 세 번째 면담에서 성사된 것을 알았고 자신의 시간 50%가 그 7% 때문에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발견을 토대로 그는 첫 번째 면담과 두 번째 면담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고, 성공적인 세일즈맨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도의 벵골 호랑이도 사냥에 성공하는 확률은 대략 스무 번 중 한 번이라고 합니다. 자기 의심, 자기 비하할 시간이 있으면 사명감을 붙들어야 합니다. 인간의 뇌 세포는 140억 개 정도 있지만 보통 이 중의 2∼5%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만약 1%이라도 충분히 뇌 세포를 사용한다면 그 효과는 대단히 크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습니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선물을 주시기 위해 우리의 상태를 알고 찾아오십니다. 예수님 물어 보십니다. 진정 낫기를 원하느냐? 전도에서, 성격을 고치는데서, 습관을 고치는데서, 일에 성공에서, 공부에서, 직장에서 진정 낫기를 원합니까? 진정 부자되기 원하십니까? 진정 질병에서 치유되기 원하십니까? 진정 마을 교회가, 구역이 내가 맡은 부서가 부흥되기를 원하십니까? 누워있는 생각에서 일어서는 생각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3.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누워있을(실패) 수밖에 없는 행동을 일어설(성공) 수밖에 없는 행동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실패할 때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누워있는 것은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38년 동안 그가 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베데스다 연못 가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동할 때를 기다렸다 기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으로 어떻게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겠습니까? 38년 동안 연못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미리 기어가서 대기했다가 들어갈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계획 없는 막연한 삶을 산 것입니다. 철저한 실행력이 없는 것입니다. 피흘리는 실행력이 없는 것입니다. 38년 동안 실패한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이 환자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실패한 이유만 말하지 말고 내 말 듣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성에 순종하는 행동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관습만 따르는 행동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행동으로 전환해 보라는 것입니다. 낳기 위해 물이 동할 때 그 때야 기어가는 행동에서 지금 당장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환자에게 이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한 번도 일어나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한 번도 걷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38년 동안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합니다. 일어나는 것도 불가능한데 들으라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걸어 가라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말씀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단 한마디 말씀으로 그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전능성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원수도 용서하라는 말씀 붙들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양대 지각하고, 교사 지각하는 것 말씀 붙들고 실행해 보십시오. 주일학교가 일어납니다. 찬양대가 일어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성격 안 고쳐질 것 같지만 순종해 보십시오. 고쳐집니다. 질병 낳지 않을 것 같지만 순종해 보십시오. 공부 못할 것 같지만 순종해 보십시오. 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한 가지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순종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행동으로 바꾸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9절을 보십시오.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성공의 비법”이라는 책을 쓴 위르겐 횔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나서 이를 72시간 내에 실행하지 않았을 경우 이 생각이나 계획이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나중에라도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겨우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각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들으면 즉각적으로 행동을 전환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능성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패트릭 헨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양쪽안구가 없었습니다. 척추가 휘어 앉아있을 수 있기 위해 쇠를 박아넣는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로 인해 무릎 밑으로 몸을 굽힐 수도 없습니다. 키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휠체어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삶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의사들조차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알지 못했을 정도였지만, 9개월 때 아버지가 우연히 그를 피아노 앞에 앉히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바뀝니다. 아버지가 건반을 누르면 완벽하게 같은 음을 찾아냈고, 오랫동안 연주해온 사람처럼 피아노 건반을 부드럽게 눌렀던 것입니다. 모든 것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후 그는 지금까지 피아노와 함께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점자를 익혀 대학에 진학했고, 마칭밴드에서 사람들과 함께 트럼펫 연주를 했으며, 대학 풋볼경기 중 가장 규모가 큰 오렌지볼(Orange bowl)에서 연주한 것을 계기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고, 스포츠 선수가 아닌 사람으로는 최초로 2006년 ‘디즈니 세계 스포츠 정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물론 여전히 걸을 수 없고, 눈 대신 폴리에틸렌 재질의 구슬이 내 눈자리에 들어있지만,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눈으로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진짜 중요한 것을 봅니다. 삶은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는데, 삶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그렇게 믿는다면 모든 일은 좋아질 것입니다. 나를 보세요. 내가 그 완벽한 예라구요!”

그는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게 앞을 볼 수 없다는 `선물`을 주신 이유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또 내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신 이유는 내 능력을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게 사랑 많은 가족을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며 축복을 나누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당신이 가진 고유한 재능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마련해놓으신 그 계획을 말이다.˝(304-305)

주님 말씀 따르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주님 말씀대로 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씀따라 가면 가나안에 이르게 됩니다. 말씀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자비의 집에서 누워 있습니까?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까?
우리는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말씀 붙들고 거침없이 더 큰 세상으로 뛰쳐나가야 합니다. 지금 누워 있으며 선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가 아닙니다.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됩니다. 예수님께 일어서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들고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일어설 수 밖에 없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일어설 수 밖에 없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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