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25-37)

첨부 1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25-37)


예전에 ‘911 긴급구조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rescue 911'이라는 외국 다큐멘터리를 번역해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911대원들의 활약상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고로 죽게 된 생명들을 살리기 위하여 911 대원들은 정말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장난처럼 할 수는 당연히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과 삶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어느 날도 그와 같은 장면을 보면서 너무 마음에 감동이 와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기도가 나갔습니다.
‘하나님 저도 저런 것 한 번 해보고 죽게 해 주세요.’

영락교회에 협동목사로 있었을 때 화요일에 성경공부를 했었습니다. 시편 공부를 했었는데 새벽 반과 낮 반이 있었습니다. 낮 반은 참석자가 꽤 되어서 본당에서 강의를 하곤 하였었습니다. 어느 날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권사님 한 분이 제게 와서 시간을 좀 내 줄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식사를 한 번 대접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왜 그러시느냐를 물었더니 제가 당신 딸을 살렸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그 권사님 딸을 살린 것은 고사하고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 권사님 딸을 살렸느냐를 물었습니다. 권사님 딸은 동아콩쿨에서 우승도 한 우리나라의 오페라 주연가수였습니다. 결혼을 하였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미국엘 다녀오겠다고 미국엘 간 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권사님의 딸은 그날로부터 15년 동안을 정말 두문불출을 하였답니다. 사람은 완전히 폐인이 되었습니다. 살았다고 하는 이름만 있을 뿐 모든 면에서 다 죽은 사람이나 진배 없었습니다.

15년 쯤 되었을 때 겨우 딸을 교회에 다시 데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만 어머니와 함께 그냥 왔다 갔다 할 뿐 아무런 변화는 없었습니다. 권사님이 화요 성경공부반에 나오실 때에 딸을 데리고 함께 오시곤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 하나가 굳게 닫혀있던 그 딸의 마음의 문을 뚫고 들어가 가슴에 닿았습니다.

말씀 하나가 마음에 닿자 생명이 역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시로부터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씀이 들리니 살 것 같았습니다. 화요일을 기다리게 되었고 은혜는 혼자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권사님 딸이 15년 동안의 방황과 죽음을 끝내고 정말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서 그 딸은 화요성경공부반의 성가대원이 되었습니다. 지휘자는 그 딸이 누군지를 아니 어느 날 성가 중 독창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날 솔로는 참으로 은혜스러웠습니다. 찬송은 소리로만 은혜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은혜가 있을 때에만 은혜가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의 딸은 소리도 최고였고 은혜도 최고였습니다. 권사님 딸의 사연을 모르는 천 여 명의 교인들이 다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중 제일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 권사님이셨습니다. 권사님은 제가 당신 딸을 살렸다고 하셨지만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살린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말씀을 제가 그에게 전했다는 것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세종호텔에서 그 권사님과 권사님의 딸 그리고 저희 부부가 함께 점심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날 점심을 먹지 못했습니다. 너무 가슴이 벅찼습니다. 실제로 벅찼습니다.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것과 같은 황홀함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느꼈습니다. 너무 들 떠서 정말 점심을 먹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날 저는 지나가는 말로 했던 저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911대원들의 활약을 보고 ‘하나님 저도 저런 거 한 번 해보고 죽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던 것 말입니다. 그날 저는 영적인 911대원이었습니다. 영적인 911대원의 역할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보니 그냥 911 대원이 한 것과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11대원들이 살린 생명은 그냥 생명입니다. 물론 그것도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살려 놓았다고해서 그가 행복한 삶을 사는지 그렇지 못한 삶을 사는지까지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린 그 권사님 딸은 그냥 생명이 살아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생명은 본시 죽지 않았었습니다. 죽지는 않았으나 그는 죽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에 기쁨도 없고, 당연히 행복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으면서 그 죽었던 기쁨과 행복과 은혜가 살아난 것입니다. 상황은 하나도 바뀌어 진 것이 없는데 15년 동안을 두문불출하며 살던 지옥 같던 세상이 그냥 하루 아침에 천국처럼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911대원이 살린 생명은 몇 년 있으면 또 다시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난 그 권사님 딸의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정말 처음 ‘영생’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영생은 단순히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영생이라면 그 영생은 지옥에도 있습니다. 지옥의 가장 큰 고민은 죽지 못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영생의 의미는 죽지 않는다는 것과 함께 그 삶이 기쁨과 감사와 은혜와 행복으로 충만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권사님 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가 전해드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이구나를 느낀 순간 그 영생의 기쁨이 제게로 들어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름에 떠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고 결국 점심도 먹지 못하게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를 물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율법사 정도 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안정 된 삶을 사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그것이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영생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영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오늘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의 율법사의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어야만 합니다. 영생의 기쁨이 없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건 산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구도자와 같은 질문이 우리에게도 늘 있어야만 합니다.

이 율법사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하신 대답이 바로 우리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했던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삶을 살아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아주 명쾌하십니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잘못하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심각한 오해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구원과 영생은 율법을 행함으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는 로마서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율법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가 말씀하는 율법은 믿음 없는 율법으로는 구원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 없이도 율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데도 예수 믿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직하고 착한 것은 좋으나 그러나 그와 같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바울의 주장인 것입니다.

로마서는 믿음 없는 율법을 이야기하는데 야고보서는 행함 즉 율법 없는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믿음이 없는 율법으로도 영생을 얻을 수 없고. 율법이 없는 믿음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지키고 행하려고 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저는 그 권사님 딸의 사건을 통하여 영생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는 기쁨과 보람과 행복이었습니다. 그날로부터 저는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니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강도만난 사람과 같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위 '팔자'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처럼 당하는 팔자는 믿지 않지만, 제가 스스로 선택하는 '팔자 같은 것'은 있습니다. 그 '팔자 같은 것'은 감히 말씀드리자면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부족하지만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외면하지 않고 살려 보려고 하는 '도전'과 그 도전이 가져다 주는 '부담'입니다.

50이 넘어 개척을 하였고, 그 개척이 세상적으로 볼 때 성공하였습니다. 그냥 인간적으로 편히 속된 말로 팔자 좋은 목회 할 수 있지만 그와 같은 자세와 행동으로는 목회의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목회의 구원과 영생을 위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강도만난 사람들이 찾아졌습니다. 그래서 쪽방탈출, 김밥천국, 이동세차와 같은 사업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발전하여 그것이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사업’이 되었고, 그 열매로 ‘열매나눔 재단’이 세워졌습니다.

열매나눔재단에서 탈북자의 자립을 위한 메자닌 아이팩 공장을 2008년 5월에 세웠습니다. 매달 5천 만원 이상의 적자가 났었습니다. 그때 정말 피가 말랐었습니다. 자다가 잠이 깨고, 잠이 깨면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넌 왜 밤낮 그러냐?> 쉽게 말해 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누구보다도 편히 잘 지낼 수 있는데 가만있질 못하고 밤낮 일을 저지르고 (도전) 그 부담 때문에 이렇게 생고생을 하냐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저 자신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재미있지 않냐?> 도전하고 그 도전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이 바로 제가 선택한 제 팔자입니다. 그 부담스러웠던 열매나눔재단이 이제 5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가 막힌 하나님의 은혜로 열매나눔재단은 이제 제게 전혀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닙니다.

열매나눔재단은 이제 완전히 스스로 자립하는 재단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은 우리 높은 뜻 교회가 일 년에 10억 원씩을 지원해 주었으나 올 5월부터는 그것이 끝납니다. 그런데도 문제없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재단이 되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고, 둘째는 우리 높은 뜻 교회와 교인들의 은혜고, 셋째는 우리 재단의 사무총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은혜입니다.

스스로 5년 만에 자립하여 유명해지고 커진 재단 일만 하면 또 팔자가 좋아질 수 있습니다. 부담도 이제는 없고 보람과 자랑만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 팔자는 그렇게 좋지를 못합니다. 여전히 또 힘들고 부담스럽고 가끔씩 피가 마릅니다.

그것은 작년에 또 다시 본능적으로 손을 댄 열매나눔 인터내셔널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나눔 인터내셔널이 손댄 아프리카 말라위 구물리라 사역 때문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수 백만 불의 자금을 투입하여 구물리라라는 마을 사람들을 자립시켜 주는 프로잭트입니다. 

그런데 이 구물리라 사역이 완전히 돈 잡아먹는 하마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구물리라 사역은 그 예상을 훨씬 벗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가난해도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가난할 수가 있을까요? 얼마 전에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젊은 청년 사원이 말라리아로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집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페이스 북에 올렸습니다. 제가 그 글을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파서 페이스 북에서 모금을 하였습니다. 7,500만 원 정도가 모여져서 그 돈으로 모기장을 사서 나누어 드렸습니다. 한 가정에 두 개씩.. 그런데 그 모기장을 치기 위하여 최소한 못 네개는 있어야 하는데 구물리라에는 못도 없고 그것을 박을 망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재단 직원들이 며칠에 걸쳐서 시내에 나가 못과 망치를 사서 일군들을 고용해 일일히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모기장을 달아 주었습니다.

퇴비로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고 퇴비를 만들기 위하여 풀을 베어 오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한 웅큼 정도의 풀을 들고 왔습니다. 낫이 없어서 손으로 뜯어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농사 짓는 사람들의 집에 낫 한 자루가 없습니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 탄 것 같습니다. 떼 밀려 탔으면 누구 원망이라도 할 수 있는데 제가 스스로 선택하여 올라탄 것이기 때문에 원망도 할 수 없습니다.

5 억 원 정도의 돈이 초기에 급히 필요하다는 보고를 이번 주에 사무총장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또 가슴이 답답합니다. 박스 공장을 시작하며 받았던 스트레스가 또 다시 작동합니다. 제가 저 자신에게 또 묻습니다. <넌 왜 밤낮 그러냐?> 제가 저 자신에게 또 대답합니다. <그래도 재밌잖냐? !!!>

그냥 예수님 비유의 제사장처럼, 레위 사람처럼 못 본 척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의 삶에 영생의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처럼 손을 댑니다. 부담은 되지만 그 부담 때문에 무너지거나 감당치 못했던 일은 없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였던 메자닌 아이팩 공장도 살아났습니다, 박스 공장은 올해 아마 열심히 하면 50억 원 정도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메자닌 에코원 공장도 정말 다 망하는 줄 알고 피께나 말렸던 공장인데 작년에 30억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올해는 더 많은 발전과 성장이 기대되는 아주 좋은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탈북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하여 만들었던 정말 무모한 도전과 같았던 블리스 앤 블래스 커피숍도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저는 지금은 답답하고 막막하지만 열매나눔 인터내셔널도 그리고 아프리카 말라위 구물리라 사역도 반드시 이와 같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힘들어도 저는 이 일 포기 못 합니다. 절대로 그냥 지나가지 못합니다. 영락교회 권사님 딸 사건 이후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누구보다도 잘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묻는 율법사에게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영생을 얻으려면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작게나마 체험하였기 때문에 저는 절대로 제사장처럼, 레위인 처럼 그냥 지나가지 못합니다.아니 안합니다.

저는 제 설교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함께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무총장으로부터 급히 5억 원 정도의 자금을 준비해야만 한다는 보고를 들으면서 이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이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한 후 저는 또 기도를 많이 할겁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오늘 저의 이 설교 때문에 걸려드는 선한사마리아 인들이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렵니다.

이 설교의 말씀 때문에 지금 현재 실제로 강도만나 죽어가고 있는 것과 같은 말라위 구물리라 마을의 사람들과 저들을 위한 우리 열매나눔 인터내셔널의 사역이 살아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