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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엠디의 정신으로 가만이 전도(2) (요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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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정신으로 가만이 전도(2)

-안드레의 모범을 따라-

요한복음 1 : 35 - 42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우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仲保者)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딤전 2:5). ‘중보자[mesith"/메시테스]’라는 말은 ‘한가운데의’라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영어로 조정자, 매개자, 중보자라는 뜻의 단어(mediator)가 되었습니다. 이 영어 단어를 줄여서 MD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된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고 십자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MD사역자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MD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아는 사람으로 아직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입니다.  

이제, MD와 MD 사역에 대한 말씀을 더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I. 실체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예수님께서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하여 나오셨습니다. 요한은 자기에게 나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하였습니다(요1:29).

그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었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거니시는 것이 보고 요한은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6)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제 한 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를 다시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요한과 함께 서 있던 두 제자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기에서 따랐다[akolouqevw/아콜루데오]는 말은 그냥 따라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함께 같은 길에 있다’는 것으로 ‘제자가 되다’는 말입니다. 요한과 함께하였던 요한의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졸지에 제자를 둘씩이나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 말이 무슨 말이기에 제자를 둘씩이나 떠나가게 한 것입니까?

36절 말씀입니다.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세례 요한의 말은 단순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말을 하기에 앞서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얘들아! 저 사람 좀 보아라!’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보라’[i[de/이데]는 말은 ‘놀람을 나타내는 감탄사’입니다. 전날에 이어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거듭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세례 요한을 놀라게 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무엇입니까? 놀라게 하려면 어린 양이 아니라 힘이 세고 이빨이 날카로운 사자이거나 아니면 무서운 늑대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목사안수를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초보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안수를 받고 자못 진지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모두들 그런 대로 목사로 인정해 주는데 집에서 철없는 사모님이 아직 남편을 목사로 대접해주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과 사모님 사이에 약간의 언쟁이 있자 목사님이 자신의 권위를 세워보기 위하여 ‘나는 주님의 사자입니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그 사모는 이렇게 맞받아쳤답니다.

“당신이 주님의 사자면 난 주님의 암사자요!”

이렇게 계속하면 그 분들은 목회를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자’의 사자(使者)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암사자의 사자(獅子)는 맹수의 제왕이라는 사자입니다. 

지금 요한과 그의 제자들 앞에 맹수의 제왕이라는 사자가 나타났다면 깜짝 놀랄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미’ 양도 아니고 ‘어린’ 양이라며 놀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님을 어리고 보잘 것 없는 어린 양으로 비유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은 아닙니까? 도대체 어린 양 이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애굽 땅에 임한 마지막 재앙인 맏이의 죽음이 그냥 넘어갔습니다. 죽음이 넘어갔다고 해서 이를 유월절이라고 부릅니다. 맏이가 죽어야 하는데 어린 양이 대신 죽음으로 그 피를 보고 죽음이 넘어간 것입니다. 그 때 사용된 제물이 바로 어린양입니다. 어린 양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이었습니다(출 12:5) 그 이후로, 어린 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대표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린 양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죽은 제물을 상징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이것을 보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이기에 요한의 제자는 즉각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까? 어린양이라는 한마디가 그렇게 인생을 걸만큼 중요한 말입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할 때, 중요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장 28절 말씀입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어린양입니다. 어린 양이로되 그 날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들에게 의하여 죽임을 당하여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어린 양이 아니었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가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한 제물입니다.


2. 어린 양은 속죄의 제물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딤전 2:6)습니다. 여기에서 ‘대속물[antilutron/안틸뤼트론]’이라는 말은 ‘몸값’이라는 말과 ‘대신’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대신 몸값을 지불하였다’는 뜻입니다. 죄수를 위하여 대신 몸값을 지불하여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노예를 위하여 대신 몸값을 지불하여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값으로 치르고 사람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자유하게 하는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하나님께 바쳐지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제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세상 죄를 위하여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은 세례 요한은 깜짝 놀라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또한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세상에는 진리가 아닌 의리를 붙잡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가 아니라 영생을 좌우하는 진리의 문제라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요한의 두 제자는 요한을 떠남으로 엄청난 만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II. 만남  

요한의 제자였다가 스승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그 사람들에 대하여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38절 말씀입니다.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여기에서, 우리는 스승을 버리고 새로운 스승을 따르는 두 사람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스승인 요한의 말을 듣고서 새로운 스승으로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따라오는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너희는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에서 ‘구하다[zhtevw/제테오]’는 말은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하여 찾는 것을 가리킵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요한에게 받은 물세례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의 가르침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행동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세례 요한이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께로 기꺼이 떠나 보내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랍비는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스승을 부를 때 사용하는 히브리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이 랍비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쓰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생[ didaskalo"/디다스칼로스]’은 일반적으로 교사를 가리키는 말이나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에 관해 가르치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 줄 스승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인생의 깊은 절망을 느끼고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줄 스승을 찾고 있었습니다.

1. 그들은 영적인 갈망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이룬 사람들은 눈이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사모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열망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목표한 것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개그맨 김영철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는 개그맨이라는 이름 대신 세 권의 영어책을 낸 저자이자, 번역자라고 불립니다. 서른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한 영어 공부를 통하여 개그와 영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누구보다 영어를 좋아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후에 계속 짬을 내어 달려든 것뿐이다.”고 합니다. 그는 “무엇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는지 돌이켜보면 ‘목마름’인 거 같아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여실히 드러나는 모자람이 저를 자꾸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게 하네요.”라고. 

타는 목마름, 갈증이 그를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갈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시원한 샘물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갈망함이 없이도 샘물을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적인 갈망을 느끼는 사람이 생수의 근원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해답을 손에 들려주어도 왜 그것이 해답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해답을 찾듯이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영적인 해답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 세상은 해답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른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고생이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전혀 해 보지 않았기에 때문에 인생의 해답은 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생의 깊이를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서 묵고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예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곳이 어느 곳인지, 어떤 곳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만났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41절 말씀입니다.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세례 요한의 제자로 있다가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의 이름은 안드레입니다. 그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가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여기에서 메시야는 역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말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은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라는 말이나 그리스도라는 말이나 ‘기름부음을 받다’는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은 기름 부르심을 받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선지자이시자, 제사장이며,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 세 종류의 사람이 바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입니다. 선지자를 세울 때, 제사장으로 구별할 때, 왕으로 옹립할 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선지자이시자, 제사장이자,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삼중직분이라고 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시는 길이요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갈 길을 모르고 헤매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시는 선지자이십니다.

제사장은 사람들이 지은 죄를 사해주시 위하여 제사를 집행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써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단번에 깨끗하게 해결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왕은 자신의 백성을 적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보호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의 이름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인도하고 평안하게 하십니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세상 끝 날까지 보호해주시는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은 그의 방황이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갈망이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랍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2. 그들은 인생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만날 때 삶은 송두리째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운명을 바꾸어 놓는 만남입니다. 

요즘 모 방송의 ‘선녀가 필요해’라는 시트콤에서 망가지는 역을 거리낌 없이 소화하고 있다고 호평을 받고 있는 차인표씨가 있습니다. 그는 연기자로써 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 간증입니다.

2006년 봄이었다. 4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저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 그 당시 저는 갑작스럽게 인도의 캘커타 지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정말로 가기 싫은데 아내가 약속해 놓았기에 억지로 불평과 원망으로 갔가. 그 때, 그 팀을 인도하시던 목사님이 부탁을 해 오셨다. 

“차인표씨 당신이 만나는 아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고,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습니다. 이 아이들을 만나면 꼭 안아주세요. 고생했다고 위로해 주시고, 사랑한다고,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주세요.”

저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버스가 작은 교회 앞에 멈추었다. 교회 앞에 많은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그 앞줄에 7살쯤 되는 아이가 있었다. 제가 한 걸음 한걸음 다가가자 그 아이가 먼저 웃어 주었다. 너무나 빼빼 마르고, 더러운 모습이었다. 마음이 조금씩 위축되어 손을 내밀기가 선뜻 되지 않았는데, 그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저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바로 그 순간 제가 40년 동안 믿어왔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만질 수 없었던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다. 그 아이 손을 잡는 순간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다. 

‘인표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이제 내가 너를 위로해 줄게.’

제가 40년 동안 기다렸던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통해 만나 주셨다. 제가 그 아이에게 해 주기위해 준비했던 말들을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통해 저에게 말씀해 주셨다. 이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살아계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예수님은 우리들이 당신 앞에 나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예수님이 내밀고 계신 손을 잡을 때,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아이를 통해 나를 만나 주신 예수님이 여러분도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신앙의 모범으로 기억하는 차인표씨가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교회를 다녔어도 평범한 보통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남으로 비로소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분명한 해답을 찾았기에 망설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갈망할 때, 문득 다가오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인생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깨닫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자신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MD는 예수님입니다. MD 사역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갈증이 해결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진정 중요한 것은 동기라는 확신이 깊어진다. 우리 애플의 최우선 목표는 세계 최고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다. 가장 큰 기업이 되는 것도, 가장 돈이 많은 기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교회는 불행하게도 스티브 잡스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목적이란 가장 큰 건물을 짓는 것도 아니고, 가장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우리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MD 사역자가 되기 전에 먼저 MD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향하여 사랑의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참 좋으신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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