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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 여기서 나에게 (눅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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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나에게 (눅 6:1-2)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고 받아들이고, 아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지 않고,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으로 듣고, 다른 사람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기 때문에 은혜도 못 받고, 축복도 못 받고, 믿음도 자라지 않습니다. 평생교회에 다녀도 남의 예수를 믿고 다니지, 나의 구세주를 믿지 않고 다니다가 멸망으로 들어가는 이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은 지금, 여기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문답할 때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며느리와 의논했습니다. 며느리가 말하기를 “어머님, 노인에게 어려운 것을 묻겠습니까? 아마, 제일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이 있나 물어볼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까?’ 하고 묻거든,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요. 하고 대답하시면 됩니다.” 시어머니가 “알았다. 그거야 대답 못하겠느냐?” 하고 드디어 문답하는 자리에 들어가 앉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며느리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한 말이 생각나서 “아, 그야. 우리 며느리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요.” 하더랍니다. 

이와 같이 평생 예수를 믿어도 남의 예수를 믿고, 남의 구세주를 믿다가, 지옥 가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6장 1~2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들을 때나, 성경을 읽을 때에는 “지금, 여기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성경의 언약과 말씀은 지금, 나에게 하신 말씀

이스라엘 백성은 흔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씀을 많이 인용하며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금, 여기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들이대며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을 많이 봅니다. 우리들도 원래는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믿음으로 아브라함(Abraham)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 언약의 말씀을 읽을 때 지금 나에게 하신 말씀을 받고, 그것을 인용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급적 많이 암기해 두면,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때에 말씀으로 응답해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암기 혹은 기억해 둔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기가 곤란해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건성으로 읽지 말고, 설교를 들을 때 흥미위주로 듣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고,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히, 교만한 마음 자세로 비판적으로 말씀을 들으면 결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특히 주의 종들은, 성경을 많이 읽다 암기해 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설교할 때,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불과 같이, 바위를 깨트리는 방망이와 같이 역사하시지, 인터넷(Internet)에 들어가, 남의 멋진 문구나 따다가 미사여구나 쌈빡하게 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제비는 벌레를 잡아서 자기는 먹어보지도 않고 새끼에게 먹이지만, 벌은 꽃에서 꿀을 빨아 삼켜서 먹었다가 도로 뱉어서 먹이므로 몸에 좋은 꿀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 지금 여기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령께 의지해야,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고 감동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실 때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하실 때나,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말씀하실 때 지금, 여기서,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듣지 않고, 내가 잘못 들었겠지 했거나, 주위를 살펴보며 다른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겠지 하고 핑계를 댔으면, 우리 믿음의 조상도 될 수 없고, 복의 근원도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사명을 받을 때, 지금, 나에게 명령하신 것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선민 이스라엘(Israel)을 구원하시는 사명을 맡기려 하실 때, 자기는 못한다고 핑계만 대고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하고 자기는 아니라고 했을 때, 지팡이를 던지라고 해서 뱀이 되게 한 다음, 다시 손으로 잡으려고 할 때 지팡이가 되게 했고, 그래도 못하겠다고 하니까 손을 가슴에 넣었다가 뽑으라고 해서 문둥병이 들게 하고, 다시 넣으라고 해서 넣었다 뽑았더니, 깨끗이 낳은 것도 보여 주었고, 가시나무가 불붙는 가운데 음성을 들려주었는데도, 모세는 자기는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면서, 출애굽기 4장 10절에 보면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하고, 보낼 만 한 자를 보내시라고 할 때에, 누가 입을 지었느냐, 누가 벙어리나, 소경을 지었느냐,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붙여주면 되지 않느냐 하시면서, 강권하여 사명을 맡겼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바라만 보고 죽은 다음 여호수아가 후계자 되었을 때, 모세의 가방이나 들고 다니고 신발이나 들고 다니던 몸종과 같은 자기가 위대한 영도자,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Israel)의 영도자가 되었을 때, 여호수아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떨고 무서워했겠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리니 담대하라 너를 능히 당할자가 없으니라”라고 말씀하시고, “강하고 담대하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하셨고,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고 여러 번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사명을 주시지 않고 이기지 못할 시험도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제가 은퇴하면서, 아들 김정민 목사와 함께 남양주 오남리 땅에서 함께 교회를 세우려고 할 때, 장로님들이 의논하여 김정민 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우고, 저는 동사 목사로 종신토록 함께 말씀을 전하며 목회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들에게 전했더니, “절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계속 이해를 시켰더니, “그렇다면 40일 금식기도 해보고,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하겠다”고 해서, “그러면 40일을 두 번에 나누어서 20일씩 두 번해라” 했는데, 첫 번 금식기도를 할 때, 3일 만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랍니다.

지금도 가끔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고 또 아버지를 너무 의지하려고 할 때는, “담임목사는 김정민 목사이고, 나는 돕는 자(helper)일 뿐이야.”라고 타일러 주곤 합니다. 또 “감당치 못할 사명을 주시는 법이 없고, 이기지 못할 시험도 주시는 법이 없단다.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타일러 둡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나에게 주신 명령과 사명을 잘 읽어야 합니다.

3. 말씀을 들었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소리로 나타내지 않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고,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행함으로 나타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나 영음을 듣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며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시해 버리고 순종을 안 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끊기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이 들려지고 영음이 들리면 어떤 손해가 나고 위험이 닥쳐올지라도 순종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러면 점점 더 하나님의 음성이 밝히 들려집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나라를 크게 부강케 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가 놀라운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여섯 날개 달린 스랍천사들이 둘로는 얼굴을 가리우고 둘로는 발을 가리우고, 둘로는 날며, 창화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영광, 하나님의 임재) 가득했습니다. 

그 때에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하니까, 스랍중의 하나가 재단 숯불을 가져다 입술에 대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했고,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데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에 이사야가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즉각 응답했더니, 하나님께 당대의 위대한 선지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이 들려오고, 사명이 주어질 때, 즉각 응답하고 순종해야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며 큰 축복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4. 자신이 기도하여 응답받아야 합니다

어떤 신자는 10년 20년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치 못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줄 몰라서, 이상한 곳에 가서 이상한 사람에게 안수기도 받고, 예언기도 받으러 몰려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못하다간 귀신에게 속고 마귀의 장난감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다 자기가 기도해서 응답받는 법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반드시 와지끈하며, 천둥?번개 치는 것 같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엄청난 기적을 행하고 나서도,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협박하는 말을 듣고는 450대 1로 바알선지자와 싸우던 용기는 다 어디 가고 도망쳐 숨어 있을 때, 굉장한 폭풍도 지나가고, 지진도 일어나고, 큰불이 지나간 다음에 조용한 가운데, 세미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음성은, 성전이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들려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일이고, 설교 말씀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기도 하고, 기도하다가 영음으로 들리기도 하고, 생각을 통해서 희미하던 마음이 밝아지면서 깨달아지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영음을 들을 줄 몰라서, 예언기도 하는 사람, 봉투 내놓고 안수기도 받는 데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천만 원짜리 안수도 있고, 일억짜리 안수도 있다고 하는데, 99% 잘못된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왜 내 속에 계신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고, 남의 속에 있는 예수님께 물어보려고 합니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 응답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여 응답받는 기초적인 것을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을 의지해서,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기도를 드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하는 것은 예수님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쓰레기 같은 기도라서, 하나님이 갖다 버리고 싶을지라도, 그 안에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
고, 들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②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달라고 구하면 안 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아내가 있는데,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해달라든지, 도박, 투전 자체가 마귀가 좋아하는 일인데, 도박장에 들어가면서 돈 따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든지, 열심히 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복권 당첨되게 해달라든지, 경마해서 돈 따게 해 달라든지 하는 것은, 다 사심과 욕심, 정욕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정욕대로 구해서 돈을 딴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③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21~22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해와 달과 수천억만 개의 별들을 지으신 하나님께,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도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욕심과 정욕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믿고 기도하고, 기도한 다음에는 받은 줄로 믿고 응답받은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시편 65편 2절에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요,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응답)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제대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 원한다면, 제일 먼저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인정해야 되고, 그다음에는 믿고 기도해봐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가령 결혼 대상자를 알아보려면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지, 만나서 이야기를 안 해 보고 어떻게 그 사람을 압니까? 진정한 신학(Theology)을 알려면 무릎 학(Kneeology)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심과 같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오래 할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 목사들이 컴퓨터(Computer)만 톡톡 두들겨서, 쌈빡한 말만 모자이크 해서 설교하고 기도는 하지 않으니 큰일입니다. 기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컴퓨터도 아니고, 박사학위도 아니고 언변도 아닙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했습니다.
(김홍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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