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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발 (막 1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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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발 (막 15:21-32) 
 
 
❚아름다운 발

서양의 대표적인 미인을 꼽으라면 클레오파트라를 꼽는 분이 많지요. 동양의 미인이라면 중국의 양귀비(楊貴妃)를 꼽는 분이 많은데 당나라 현종의 총애 받는 비(妃)였던 양귀비의 초상화나 역사기록에 나온 모습을 추정해 보면 그저 예쁜 여자 중 하나였지 그리 절세미인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그녀의 발의 크기가 10센티미터가 채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양귀비가 발이 작아서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발이 작은 여자가 최고의 미인이라고 인정받아서 ‘전족’(纏足)이라는 풍습이 전해내려 옵니다. 어릴 때부터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을 안으로 바짝 구부린 채 고정시켜 발을 기형적으로 작고 굽게 만들었습니다. 이상적인 크기가 9∼10센티미터로 남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 수 있을 정도라야 했다니 남자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발’을 만들기 위해 중국 여성들은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이런 풍습은 19세기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중국의 나이 든 여인 중에는 전족을 한 여성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그 작은 발로 뛰는 것은 물론이고 걷기조차 불편해 평생 뒤뚱거리며 걸어야 한답니다. 여러분, 과연 이것이 아름다운 발일까요? 그런데 한국에도 현대판 전족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하이힐’입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도 이 하이힐을 신은 분들이 있을 텐데 이 하이힐이라는 것이 뒷굽이 얼마나 높습니까? 

그래서 오래 신다보면 발과 발가락 모양이 기형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워지겠다는 일념으로 이 하이힐을 신다가 병원에 찾아오는 여성들도 많다고 하니 현대판 전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하이힐 신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아름다워지려는 여성들의 노력이 잘못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아름다운 발이 어떤 발이냐는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어떤 발이 아름다운 발이라고요?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사람의 발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뉴스에 인요한 박사라는 미국 사람이 한국 특별귀화자로 선정되어 법무부로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다는 소식이 짤막하게 보도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보셨습니까? 이 소식을 듣고 “요즘 외국 사람이 한국 국적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또 한 명이 한국 국적 받았나보다” 하고 무심코 넘어간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소식입니다. 왜냐 하면 TV에도 가끔 출연하는 ‘파란 눈의 한국인’ 인요한 박사는 연세대학교 가정의학과 주임교수로 한국말을 정말 잘 하는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진짜 한국 사람보다 잘 합니다. 그런데 이 인요한 박사가 바로 117년 전 한국에 와 ‘전라남도 선교의 아버지’로 불렸던 유진 벨 선교사 집안의 4대 손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외증조할아버지인 유진 벨(한국 이름 배유지) 박사는 전남지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기독교 선교는 물론이고 교육과 의료분야에서 우리나라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또 그의 아들인 윌리엄 린튼(한국 이름 인돈)도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거부 등의 항일 운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이고 대전 한남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큰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건국훈장 애조장을 받은 바 있습니다. 또 그의 아들인 휴 린튼(한국 이름 인휴)은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1960년 순천에 결핵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우는 등 결핵퇴치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인요한 박사입니다. 이렇게 한 집안이 4대째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을 자기 조국보다 더 사랑하였기에 그 공로를 인정해 그 4대손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이 집안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낯선 땅 조선에 찾아와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병원과 학교, 고아원을 세우고 이 나라를 제 몸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다가 낯선 땅에서 풍토병으로 자식을 잃고 아내를 잃고, 자기 자신도 생명을 잃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생명을 바친 수많은 선교사들 중 상당수가 서울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선교사 헐버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 그렇습니다. 이 선교사님들은 정말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분들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서 주님을 가장 사랑한 사람들이요 그분의 말씀인 복음을 가장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심한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그토록 사랑하는 복음을 들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머나먼 조선 땅으로 가기로 말입니다. 사랑하는 조국에서 얼마든지 인정받고 출세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인데 정든 가족을 떠나 조선 땅에 건너온 그들의 발, 복음 들고 산을 넘은 그들의 발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이런 진짜 아름다운 발을 가지게 되기 바랍니다. 예뻐지겠다고 꾸미는 발, 명품 구두를 신은 발이 아니라 진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 가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발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을 가지신 분을 소개합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이분의 발이 어떤 발이기에 그토록 아름답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할까요? 이분의 발은 아주 더럽고 때가 낀 발이었습니다. 맨발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발입니다. 얼마나 더렵혀지고 상처 나고 흉터가 많았겠습니까? 게다가 이 더러운 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말씀을 나눈 것처럼 우리 주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려고 맨 먼저 등에 채찍질을 맞아 등이 다 찢기고, 그 다음에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온갖 모욕과 조롱을 다 당한 후에, 이제는 십자가에 그 손과 발이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 드렸지요? 1968년 예루살렘에서 발굴된 ‘예호하난’이라는 20대 남자의 유골에서 못이 박힌 발뒤꿈치 뼈를 발견했는데 바로 이 사람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발에 박힌 못은 우리가 그림이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발등에 박힌 것이 아니라 발뒤꿈치 옆 복사뼈 밑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못이 나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못의 뒤끝이 안쪽으로 구부려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죄수를 매달 때 발등이 아닌 복사뼈에 못을 박은 것은 죄수의 몸을 십자가에 매달 때 몸무게를 지탱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발등에 못을 박는다면 죄수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발등이 찢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손목과 발뒤꿈치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단숨에 고통 없이 죽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손과 발이 찢기는 아픔을 겪으며 아주 오래 오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의 발은 아주 더럽고 상처투성이인데다가 커다란 못까지 발뒤꿈치에 박혀 피를 흘리는 끔찍한 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더럽고 끔찍한 발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해 찔리신 발이기 때문입니다. 그 더러운 발이 바로 우리를 위해 골고다 언덕을 맨발로 걸어가신 발이고, 그 피 묻은 끔찍한 발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더러운 발이, 그 끔찍한 발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발이기 때문입니다.

❚내 발은 어떤 발인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 어떤 발인지 소개했습니다.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이 정말 아름다운 발이요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님의 발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발은 어떤 발입니까?

우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발이 있습니다. 우리 발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남들 다 가는 곳이라 해서 아무 데나 가서는 안 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내 발이 가면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죄 짓는 데 빠른 발이 있습니다. 안 됩니다. 시편 1편 말씀처럼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곳, 서지 말아야 할 곳,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는 절대 안 앉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발을 아름답고 성결하게 지키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발로 만드십시오. 내가 무엇을 들고 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또 내 발이 어디를 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깨닫게 되기 바랍니다.

주님의 발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배로운 발임을 제일 잘 알았던 사람이 마리아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와서 아주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발도 아닙니다. 먼지 묻은 그 더러운 발에 비싼 향유를 부은 것도 그렇지만 그 발을 자기 머리털로 닦다니요.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발이 우리를 구원하실 가장 아름답고 보배로운 발임을 미리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예수님의 제자 유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그 아까운 향유를 왜 그 더러운 발에 붓나? 차라리 그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지...” 물론 가난한 사람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의 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그 발에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주님의 발보다 귀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주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손과 발이 너무 귀하게 여겨지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그러면 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어드리는 그런 감격의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발도 씻어드려야 하지만 남의 발도 씻어주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어떤 기독교대학은 신입생들이 입학하면 제일 먼저 총장님과 교수님들, 그리고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발을 남들 앞에 내놓지 못해 쭈뼛거리고 내 더러운 발을 남이 만진다니 부끄러워하던 신입생들은 점차 내 발을 씻겨주는 그 정성과 사랑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족식을 하니 학교 분위기가 안 좋으려야 안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모습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주님을 본받은 것입니다. 본디 손님이 집안에 들어오면 먼지로 더럽혀진 발을 씻는 궂은일은 그 집 종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친히 종의 모습으로 낮아져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바로 섬김의 본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우리’가 이 주님의 섬김의 본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발을 닦아주지 못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발을 무엇보다 먼저 주님 섬기는 데 민첩한 발을 만드십시오. 그리고 남을 잘 돕고 잘 섬기는 발로 만드십시오. 할 수 있다면 남의 발도 씻어줄 수 있는 겸손한 발로 만드십시오. 복음 들고 주님 원하시는 곳으로 나아가는 발로 만드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발이 다 이렇게 주님 섬기고 남 섬기는 발, 복음 들고 가는 발이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 발을 만져주시면서 “얘야, 네 발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발이로구나”하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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