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향력이 큰 사람 (행 7:54-60)

첨부 1


영향력이 큰 사람 (행 7:54-60)

(행 7: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한 마을의 과부와 6명의 자식들이 모두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그러자 그 마을 목사 부인이 아침 식사중에 자신이 가서 그 가족들을 돌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인 목사를 비롯하여 가족 모두가 '위험하다'며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결심을 꺾지 않았습니다.  "나는 시편 기자가 한 말씀을 믿고 있어요. 이 말씀은 나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내가 없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들을 돌보아 주실 거예요."
  
그녀는 전염병에 걸린 가족들에게로 가서 4주 동안이나 그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마침내 그 가족들의 병이 완쾌되자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모님은 가족들의 염려와는 달리 전염병에도 걸리지 않았고,  가족들도 모두 무사했습니다.
  
이 일은 있은 후 마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믿겠다고 하며 교회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변하지 않던 교인들의 믿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의 설교보다도 오히려 사모님의 행동이 그 마을 사람들의 신앙심을 깊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던 것입니다.
  
지도력은 영향력입니다.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모두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지도자는 없습니다. 탁월하고 건강한 지도력은 선한 영향력을 끼쳐 거룩한 역사, 밝고 깨끗한 역사를 남기게 됩니다.  비뚤어진 지도력은 악한 영향력을 끼쳐 더럽고 욕스럽고 어두운 역사를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지도자라고 해서 반드시 크고 좋은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서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삽니다. 그러므로 좋은 영향을, 가능한 크게 끼치며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제사장 아나니아가 벨릭스총독앞에서 고소하며  '우리가 본 바로는 이 자는 염병 같은 자요,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 사람에게 소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도당의 괴수입니다.(행 24:5)'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가 사는 도시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그가 살았던 도시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현대에까지 바울의 영향력은 강력하게 힘을 발휘할 정도로 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바울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일까요?  스데반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스데반은 아주 짧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입니다.  스데반은 집사 안수를 받고서 일년도 사역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스데반은 사도들도 하지 못한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완악하여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큰 해를 입힌 사울이라는 청년을 회심시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게 쓰임받게 한 인물이 바로 스데반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죽고난 후에도 그의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앗습니다.  스데반이 전한 복음은 바울로 하여금 결국 예수님께로 돌이키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바울처럼 스데반처럼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강력하게 끼치며 사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처럼 원수도 변화시키는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영향력이 큰 사람은 하늘을 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55)
  
스데반은 일반 사람과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고 잇는데 스데반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앗습니다.  영안이 열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기에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도 위를 바라보며 살았기에  3층 천국까지 보았고 경험했습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안에 의해 세상만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세상을 따라갑니다.  영안이 닫혀 있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일어서셨는지, 앉으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육에 속한 삶을 살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무지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육안에만 의지하여 살지 않고 또 다른 눈 즉 영적 안목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며 하늘을 바라보며 살면 하늘 문이 열리는 것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한 큰 상을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잇느냐?가 결정됩니다. 아래만 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며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영향력이 큰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60)
  
사단에게 사로잡혀 잇는 사람은 미움과 원망으로 충만합니다.  살기가 등등합니다.  본문에서 사울과 따르는 사람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일심으로 달려들어 스데반을 성밖에 내치고 젊은이 늙은이 할것 없이 돌을 들어 쳤습니다.  죽이기로 결심하고 사람을 돌로 쳐서 목숨을 끊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죽어 가면서까지 원망하지 않습니다. 복수심으로 불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죄값을 찾지 말아달라고 죽어가면서까지 돌을 던진 사람들을 예수님께 부탁하고 잇습니다.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고 죽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감정의 상처가 많습니다.  그래서 보복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가 조금만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싸우려고 덤벼듭니다.  용서할줄을 모릅니다. 사소한 실수까지도 보복하려고 합니다.  미움과 원망, 증오등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마귀 사단에게 끌려 다닙니다.   사단은 미움과 원망, 복수의 감정을 이용하여 배후에서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관계를 깨뜨리고 서로 상처를 주게 만들고 심지어 폭행하고 살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세상은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실상은 심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가장 심각한 것이 인간관계의 갈등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줄 아십니까?  마귀 사단에게 속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서로 감정을 품습니다.  오해하고 미워하며 저주하고 눈을 흘깁니다.  그러나 스데반처럼 성령충만해지면 다 이해가 됩니다.  용서가 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하나님이 풍성하게 주시니까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도 '쯔쯔 은혜를 모르니 저렇지, 저러다 멸망당하면 얼마나 비참할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워하고 보복한다고 감정이 풀릴 것 같습니까? 용서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야 평안해지고 행복해집니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밝고 환하게 만드는 일에 쓰임받게 됩니다. 


3.  영향력이 큰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59)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스데반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를 합니다.  조용한 공간도 아닙니다.  기도할 분위기도 아닙니다.  몸은 돌에 맞아 으스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 마귀처럼 일그러진 사람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스데반은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무엇을 간구합니까?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고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대제사장도 사울도 선동된 사람들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 한번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주를 위한 열심이었다면 먼저 기도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들은 자기의 편협한 선입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없애려고만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기도했다면 하나님게서 깨우쳐 주셨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갑게 여기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기도해야 할 때임을 잘 압니다.  기도하라는 주님의 명령도 들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주어지고 문제가 해결됨을 알면서도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한 영향을 별로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열심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약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먼저 주님께 부르짖고 주님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쉽습니다.  기도하니까 천사처럼 변합니다. 기도하니까 용서도 절로 됩니다.  기도하니까 영안이 열려서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며 삽니다.  기도하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살게 됩니다.  스데반은 강력한 능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55절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니까 강력한 영향력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성령충만하니까 죽어가면서까지 그의 원수까지도 변화시켰습니다.  성령충만하니까 죽음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충만하니까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원수를 미워하며 일그러지지 않고 오히려 천사처럼 얼굴이 빛났습니다. 스데반의 영향력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여 돌보다 단단한 사울의 마음을 녹여버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성령 충만하여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사시기 바랍니다.  

작은 시골 천주교회의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돕고 있던 한 소년이 실수를 하여 제단의 성찬으로 사용할 포도주 그릇을 떨어 뜨였답니다. 신부는 즉시 소년의 뺨을 치며 소리를 질렀답니다. "어서 물러가고 다시는 제단 앞에 오지마" 이 소년은 장성하여 무신론자가 되고 공산주의 지도자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다른 큰 도시의 천주교회당에서 미사를 돕던 한 소년이 역시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답니다. 신부는 곧 이해와 동정이 어린 사랑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여 주었답니다. "응 네가 앞으로 좋은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은 자라나서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쉰이 되었답니다. 
  
여러분 모두 어두운 세상에 빛의 영향을 줄 수 있기 바랍니다.  부패한 세상에 소금의 영향을 끼치기 바랍니다.  문제 많은 세상에 불행한 세상에 행복을 확산시키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능력이 아닌 성령 충만하여 위로부터 부어진 강력한 능력을 큰 영향을 끼치며 살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