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원에 이르는 길 (롬 10:1-13)

첨부 1


구원에 이르는 길 (롬 10:1-13) 
 
1. 헨리 포드가 설립한 자동차 공장에는 큰 발전기 한 대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발전기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분야의 기술자들이 총동원되어 고장난 발전기를 고쳐보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장난 부분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계가 돌아가지 않음으로써 제품 생산이 모두 올 스톱되자 포드는 발을 동동 구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품의 납품일이 불과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전기가 고장난 지 삼 일째 되는 날, 당시 전기 분야에 있어 최고의 기술자로 알려져 있던 촬리 스타인메츠가 이 공장에 불려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인메츠가 어떻게 그 기계를 고치는지 보기 위해 발전기 주위에 몰려 들었습니다. 스

타인메츠는 발전기 앞에 서더니 준비해온 망치로 몇 군데를 두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사람들에게 발전기를 작동시켜 보라고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발전기는 ‘윙!’하는 소리를 내며 이전과 같이 작동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헨리 포드는 촬리 스타인메츠로부터 수리비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청구 금액이 무려 일 만 불이나 되었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포드는 <촬리 스타인메츠씨, 당신이 잠시 동안 발전기를 두드리며 일한 것에 비해서 요구한 수리비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이유서를 동봉하여 그 청구서를 반송했습니다. 

스타인메츠로부터 다시 답신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요구 금액 명세를 자세히 적었습니다. <발전기를 두드리며 일한 노임 10불, 어디를 두드려야 할지를 알아낸 기술 값 9,990불, 합계 10,000불> 

이에 포드는 꼼짝없이 만 불을 지불했습니다. 인생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삶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를 두드려야 하는 지를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야 할 참된 길은 무엇인지, 인간이 따라야 할 참되고 영원한 진리는 무엇인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 권력, 지식, 명예 등으로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생이 가야할 ‘길’과 살아야 할 ‘진리’, 그리고 얻게 되는 ‘생명’을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를 분명히 증언했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2.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얻기 위해 그 누구도 따르기 어려울 만큼 ‘열심’을 가졌음에도 그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영원한 ‘진리’이며, 인생이 마땅히 살아야 할 ‘진리’이며, 이것을 지킴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열심히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고 힘쓰면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를 두고 오늘 본문 3절에서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義)”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취하신 방법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어린양으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를 세례 요한이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므로 이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희생하시므로 자신의 죄가 사하여졌음을 믿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이를 간단히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을 ‘의인’(옳을 의, 사람 인-義人)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을 ‘의인’(옳을 의, 알 인-義認)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가 없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렇게 의롭다함을 받은 의인이 되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리 유대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율법을 다 지킬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스스로 지켜서 의롭게 되고자 하는 것을 두고 본문에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유대인이든 아니든,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되어 구원받게 됩니다.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인류가 의인이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는 율법으로나 인간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은혜로, 값없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율법을 통해 의롭게 하시지 않으셨는가?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로마서3:20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그 죄를 사하여 의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죄는 율법의 정한 바에 따라 형벌을 받게 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고전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이렇게 율법으로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희생하시므로 인간을 단번에 의롭게 하셨기 때문에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에 대한 율법의 요구는 사망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에 대한 율법의 요구인 죽음을 대신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는 율법의 마침이요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이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는데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사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 하늘에 올라가야 하느냐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 믿기 위해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성경 신명기30장에서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 받는 길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30:8-14)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는 것은 바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요1:14-17)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그래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오늘 본문에서 ‘믿음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믿음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믿어야만 의롭게 되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이해되고 깨달아져야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어야 하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생활하여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씀”으로 부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4. 다음으로,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17-19)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고 고백하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Lordship)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통치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빌립보서2:6-11을 고백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빌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로 높이심으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의 주되심을 시인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 예수 믿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겸손하며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 후서5:14-15입니다.  (고후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신앙의 기초이며 전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 주 예수를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신앙을 아무 두려움 없이 공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이 하나님의 영원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막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눅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9:2-5) 

이 말씀을 하시고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소경이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자 밝은 눈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 저마다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 사람은 “(요9:11)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사람이 눈을 뜨게 된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정한 율법에는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은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셨다고 주저없이 증언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의 부모를 불러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요9:20-21)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당시 누구든지, 어떠한 연유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바리새인들이 결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출교(黜敎)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생매장되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출교는 곧 죽음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 부모가 출교당하게 될까 두려워 자식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바리새인들이 그 사람을 다시 소환해서 이렇게 협박합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이다.” 

소경되었던 사람이 “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네게 한 일이 무엇이냐? 그가 네 눈을 어떻게 뜨게 하였느냐?” 그가 대답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미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그에게 “너는 그 사람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라며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러자 그 소경되었던 사람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들어 주시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시는 줄을, 우리는 압니다. 나면서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하였다는 말은, 창세로부터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출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침없이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하는 그 사람을 어찌할 수 없어 바깥으로 내쫓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들으신 예수께서 그 소경되었던 자를 만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 다시 말해 ‘네가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가 “선생님,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고 하자 예수께서 그에게 “너는 이미 그를 보았느니라.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그는 바로 “주여, 내가 믿습니다.” 고 말하고서, 예수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다고 하는 것은 일상적인 생활에서만이 아니라, 혹 출교당하는 것과 같이 생명의 위협이나 어떠한 생활의 어려움이 따른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말합니다. 또한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은 자기 생애에 있어서 가장 높은 자리를 예수께 드리는 생활이고, 절대 복종과 경건한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오직 유일한 분으로 모시겠다는 뜻입니다. 범사에 하나님 말씀을 시인하시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시인하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생활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님으로 시인하는 신앙생활로 부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