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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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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눅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열대 밀림 한복판에 있던 포로수용소에는 늘 짙은 어둠이 가득했습니다. 지독한 무더위와 살인적인 배고픔에 포로들의 얼굴에는 이미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식량이 거의 보급되지 않았던 수용소였기에 쥐를 잡아먹는 것이 큰 횡재로 여겨져 부러움을 살 정도였습니다. 그런 수용소 안에 먹을 것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인으로 가방 깊숙한 곳에 양초를 숨기고서, 가장 위급할 때 중요한 식량이 될 것이라면서 이 사실을 동료들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친구들에게도 꼭 나눠 주리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포로가 서글픈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어느새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었군. 내년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낼 수 있었으면…….” 

그러나 배고픔에 지친 포로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양초를 가지고 있던 미국인 포로가 부시시 일어나 조심스럽게 가방 속에서 양초를 꺼내 들었습니다. 다른 포로들은 그가 혼자서 양초를 꺼내 먹는 줄 알고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초를 꺼내 들고 판자 위에 올려놓더니 숨겨 두었던 성냥으로 불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수용소 안이 환해졌습니다. 포로들은 잠에서 깨어나 하나 둘 촛불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촛불은 포로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어!” 촛불은 활활 타올라 포로들의 마음까지 비추었습니다. “우리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집에서 보내자구.” 누군가 또 이렇게 말하자 포로들은 환하게 웃으며 두 손 모아 기도한 뒤 서로의 소원을 얘기했습니다. 

그날 그렇게 타오르던 촛불을 바라보던 포로들은 아무도 배가 고픈 줄 몰랐습니다. 어둠이 짙어올 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빛에 대한 확신입니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으면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그 동안 주님을 따라다녔던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하고 커다란 실망 가운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에서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엠마오로 향하던 두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과 동행하신 부활의 주님께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시고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리라는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머물지 않고 더 가시려는 예수님께 날이 저물어 가므로 머무르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은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떼어 그들에게 주시매 그들은 그제서야 눈이 밝아져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았습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던 두 제자는 예수님이 사라지시자 그때서야 비로소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자신들의 마음이 뜨거웠던 사실을 기억하였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들은 즉시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사도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먹을 것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자 받으시고는 그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의심 가운데 허덕이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 ‘친히’ 그들 가운데로 들어오시면서 그들에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곳은 놀람과 흥분, 기쁨과 감격의 물결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찾아오신 주님의 인사는 다른 성경에서도 알려 주는 대로 평화의 인사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평화 없는 세상에 평화를 선포하셨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선언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신 인사는 요한복음 20:19, 20에서도 두 번이나 거듭 언급되고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만나신 사람들에게 외치신 인사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단순한 인사의 의미를 넘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져오시는 평화를 전하시는 복의 인사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의 천사들이 이 땅에 선포한 것도 평화였습니다(눅 2:14). 평화(에이레네)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에 함께하는 하늘의 복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두려움과 의혹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로 이어 예수님께서 직접 확인하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부활에 대한 오해와 의심을 종식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배려였습니다. 유령을 보고 있는 것으로 오해한 제자들도 있었지만(37-38절), 예수님은 참으로 육신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신 분이며, 다시 부활하신 분임을 직접 증거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20:25~27에서는 그 손에 못 자국이 있었음이 강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만지게 하시고, 음식을 가져오게 하여 그 앞에서 직접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실재와 부활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할 정도였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의혹의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자자의 글과 시편에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해석하시며 자신의 모든 사역은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증거를 직접 경험하게 하시고, 선지자들의 글과 율법과 시편에서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직접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증명은 단지 그들에게 부활의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한 목적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 그들을 증인으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언제나 그것에 대한 증언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비한 사건이기 때문에 당시에도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 살아 생전에 그분으로부터 직접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들었고,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을 만난 증인들의 증언도 들었지만 그들은 쉽게 그것을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의심의 깊은 안개에 갇혀 있던 제자들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확인시켜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함께 문을 잠그고 모여 있는 자리에 직접 나타나셔서 증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확증해 주셨으며, 여전히 의심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직접 만져 보게 하심으로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 대한 증인으로 파송하십니다. 그들의 가슴에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신 것은 그들이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이 신비한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유대인들의 전통과 관습, 편견과 죄의 습성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역사와 부활의 복음을 교란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일에 증인을 세우고 계십니다. 그들이 나아가 명료하게 증거하고 확실하게 제시하면, 세상은 그들을 통해서 주님을 믿게 되며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난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이 달려와 부활의 사실을 증언하였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것이 워낙 신비한 사건이요, 일상적인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당국자들의 위협 역시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성은 복음을 바로 듣지 못하도록 영적으로 교란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 뉴저지 주 뉴왁 공항의 착륙 유도장비가 며칠 동안 고장이 나서 큰 혼란을 야기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은 비행기들이 활주로 위치를 확인하는 데 긴요한 장비인데, 그것이 고장 난 것입니다. 

조사 결과 인근을 달리는 트럭 운전사들이 트럭에 달고 다니는 GPS 교란 장치 탓이었다고 합니다. 운전사들은 회사가 GPS로 자기들 위치를 파악해 딴 짓을 할 수 없도록 감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교란 장치를 사서 감시를 피해 왔는데, 그것 때문에 공항까지 마비된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1973년부터 GPS를 군사 목적으로 개발해 왔는데, 정확한 지점은 찾아 명중시키는 것은 첨단 무기인 미사일에 있어서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합니다. 

인공위성에서 신호를 받아 정확한 지점을 계산하여 명중하도록 미사일에 탑재하여 정확도를 크게 높였다합니다. 이것이 1984년부터는 민간의 선박과 비행기의 항로 계산에도 사용되고 있고, 2000년부터는 차량에서 사용되는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같은 생활 전자기기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대 첨단무기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반면, 이것을 교란하는 무기를 사용하여 무력화시키는 장치가 개발되었습니다. 

이러한 교란 장치는 교묘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2010년 8월과 2011년 3월에 수도권과 서해안 일대에서 GPS 수신 장애가 발생하여 휴대전화가 불통되는 일이 있었다합니다. 밝혀진 바로는 북한 해주와 개성의 군부대에서 강한 GPS 교란 전파를 쏜 것으로 파악했다합니다. 북한은 이러한 교란 장치를 러시아에서 도입해 쓰다가 현재는 자체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교란 장치는 전쟁의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그런 장치가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게 하며, 교회와 영적 사역들을 조롱거리로 삼기도 합니다. 교회와 그 사역을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로 방해 세력은 강하게 등장하기도 합니다. 안티기독교의 세력은 갈수록 교묘하게 영화, 문학, 음악, 방송 프로그램 등을 통해 교란시키는 정책을 펼쳐갑니다. 그럴수록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에는 영적 무장과 준비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이 모인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눅 24: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라는 표현은 제자들의 불신을 안타까워하신 주님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행동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엠마오에서 돌아온 제자들은 아마도 한밤중이 되어서야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밤중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대책을 논의 중인 그들에게, 그들이 경험한 놀라운 사실을 흥분하면서 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주님께서 바로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은 이 땅에 복음을 증언해야 할 증언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찾아오신 주님은 하늘의 평화를 그들에게 선언해 주시고, 손과 발을 직접 만져보게 하십니다. 의심과 불신은 교란 장치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바로 듣지 못하게 만들고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엠마오로 찾아가셨듯이 주님은 의심의 늪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찾아오셨고, 직접적으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못 자국 난 손과 발을 직접 만져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손으로 만지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구약을 통해 보여주신 예언의 말씀을 통해 선명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말씀은 신앙을 견고하게 해주는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에 기록된 사실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심으로, 의심의 안개를 거두어 주십니다.

말씀이 들어오자 그들의 영안이 열리고,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세계는 활짝 펼쳐집니다. 그것은 엠마오 도상에서도 그러했고, 예루살렘의 숨어 있던 방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오늘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말씀이 들어오는 곳에 하늘의 세계는 활짝 펼쳐집니다.

눅24:45절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고,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해 주시고 펼쳐 주실 때만 우리는 그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의 눈이 밝으면 얼마나 밝고, 사람의 지식이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펼쳐 주실 때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무릎을 꿇게 될 것이며, 성령님의 조명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제 그들을 증인으로 파송하십니다.
그들이 본 것을 어떻게 증언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그들을 통해서 하늘의 생명과 빛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증인들이었으며, 부활의 목격자들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세상으로 달려 나가 목숨을 걸고 그 생명의 진리를 증거 하게 될 것이며, 그들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구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움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버리기에 아깝지 않은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고 세워 주신 것은 그들을 향한 한없는 은혜입니다. 증인들에게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은혜로 부름 받았다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입니다. 주님은 명확하게 그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 은혜를 생각하면 더 멋지게 살고 싶고. 주님께서 믿고 맡겨 주신 사명을 더 멋지게 감당하고 싶고 주님을 생각하면 마음에는 생기가 돌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그들은 온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1973년에 당시 우간다라고 하는 나라에 이디 아민이라고 하는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이 독재자로 인해 온 국민이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던 키파샘판디라고 하는 목사님이 있었는데, 당시는 아민 대통령을 반대하는 무리면 무조건 죽어버리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살단이 부활절 아침에 교회에 막 쳐들어 왔습니다. 목사님을 죽이려고. 그 분에게 총을 들이댔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싱글싱글 웃으시면서 "그러시죠 뭐. 하지만 내가 이제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죽이세요." 마지막이니 그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조용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다른 기도가 없고, 예수님께서 하시던 기도 그대로 했습니다. "여기 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이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아멘"했더니 암살하려던 사람들이 "기도해줘서 고맙습니다." 하고는 그냥 가더랍니다. 그 분 이야기는 이러했다 합니다. 지금 금방 죽는다고 하지만 아무 두려움도 없습니다. 왜요? 부활절 아침이니까요. 지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증거하고 부활 신앙으로 충만해 가지고 있는 시간이라 죽음에 대한 문제가 조금도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제공자 : 천리안 kuevkch 곽선희목사 설교예화 중)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정한 시간에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때의 시간은 제 구시 즉, 오후 3시였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만나게 됩니다. 이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어 와서는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이 못 걷게 된 이는 40년 이상을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서 소외된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못 걷게 된 이는 성전 미문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 유대인들이 늘 그 곳을 지나 다녔기 때문입니다. 미문은 이방인의 뜰을 지나 여인들의 뜰로 들어갈 때 통과하게 되는 문으로 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이 문에 앉아 있는 못 걷게 된 이를 만난 것입니다. 실상 사도들은 그 사람이 구하는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 나은 것을 주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걷지 못하는 이는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많은 이적을 행했으며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 고치는 이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와 표적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적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한 두려움을 주었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경외심을 갖도록 했으며 사도들의 교훈과 사도직을 확증해 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적들로 인해 사도들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더욱 신빙성 있게 되었고 능력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표적 중의 하나를 선별해서 기록했습니다. 못 걷게 된 이가 일어나서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아보고는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랐습니다.

못 걷게 된 이의 일로 놀란 무리들은 모두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 바깥뜰 동편 끝에 있는 행각이었고 이방인들의 뜰 동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부속 건물이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보고 잔뜩 관심을 가지고 그 곳 모여든 군중들이 날 때부터 못 걷게 되었으나 이제 생전 처음으로 건강한 두 다리를 갖게 된 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설교할 자연스런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요한이 그 못 걷게 된 이를 걷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의 능력도, 경건도 아니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를 고친 것은 예수님의 권능의 이름이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적을 보게 된 사건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치료의 능력은 예수께로 말미암았음을 베드로는 힘 있게 증거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서 믿음을 찾으셨고 아무리 미미한 형태라도 믿음이 있으면 고치셨습니다. 이 못 걷게 된 이가 고침을 받은 것도 바로 믿음에 의해서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불과 몇 달 전 예수님은 성의 북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었습니다. 그분의 시체가 십자가에서 내리우고 장사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그분의 종말인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고 로마 관원들에게 넘겨져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이 일의 증인이었던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서 못 걷게 된 이를 고친 사건은 제자들 자신도 놀랐고, 그것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도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처음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경험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놀람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도들 곁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사도들이 증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이한 일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고, 사도들은 그들의 궁금증에 대해 답변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사도들은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 합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경건이나 능력으로 행한 것처럼 보지 말 것을 전제하면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부활에 대해 아주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을 제시합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계획하신 것이며, 땅위의 모든 족속에게 주시는 복임을 강조합니다(26절).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의 완성자이시며, 율법과 예언에서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완성자임이 강조됩니다.

(행 3:14-15)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합니다.
그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죽인 죄인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허락하시는 생명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주”(호아르케고서 테스 조에스)라는 표현을 통해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구원의 원천이 되심을 강조합니다. 살인자는 놓아주고 오히려 생명의 주는 죽였음이 강조되는데, 너희들이(‘휘메이스’) 그리했음을 강조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의로운 자를 살리심으로 모든 죄의 세력에 대해 승리하셨고, 구속역사를 완성하셨다고 선포합니다..

복음의 소식을 듣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19절). 이러한 복음을 전하면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라.”(행3:15) 예수님은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라 하시고 제자들은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이 모든 일의 증인으로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좋은 일꾼들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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