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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 (막 10: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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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 (막 10:23-31)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음을 말한다. 우리가 구원받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예수님은 본문 앞에서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셨다. 어린아이들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내세울만한, 어떤 공로도 없다.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다.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부자청년은 많은 공로를 쌓았다.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들을 지켰지만, 영생을 얻지 못했다. 이처럼 아무 공로 없는 자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생을 얻는다면, 전적으로 은혜다. 

그러나 부자청년은, 자기 힘과 노력으로, 많은 공로를 쌓았지만, 구원받지 못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도 못했으며, 영생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엡2:5下)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처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다(2:9). 따라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전히 섬겨야 한다. 

부자청년은 영생을 얻지 못한 채, 예수님을 떠나 자기 길을 갔다. 오늘 본문은 그 후에,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대화다.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자청년에 대한 일을 해설한 내용이다. 예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1. 구원은 사람에게 나지 않는다(23).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떠나자, 예수님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셨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 특별히 재물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의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따르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어, 예수님의 눈을 피하려고 했기에, 둘러보셨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면서 대단히 충격적인 말씀을 했다. (신28장)을 보면, 재물은 하나님이 주는 복이고 했다. 재물이 많으면 살찌고 값진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 있어, 그만큼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또 부자가 되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여, 많은 공적을 쌓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아주 쉬울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했다.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했으니, 매우 충격적인 가르침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놀랐다.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심히 어렵다면, 재물이 없는 자는,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착각하지 말라. 예수님은 부자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다. 재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모든 사람이 다 어렵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종종,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마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눅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하면서,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셨다. 
낙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짐승이다. 반면에 바늘귀는, 사람들이 접하는 구멍가운데 가장 작다. 낙타는 결코 바늘귀로 나갈 수 없다. 따라서 낙타가 바늘귀로 나간다는 말은, 불가능한 일을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낙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늘귀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부자는 아무리 애써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은, 말할 필요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예수님의 의도는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구원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청년은 어려서부터, 계명들을 모두 지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생을 얻지 못했다. 이렇듯 자신의 행위로는, 자신의 노력으로는,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유대교의 율법주의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말씀했다. 

2.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부자는 물질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부자는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하나님께 값진 제물을 바칠 수 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아주 쉬울 것 같은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말씀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제자들은,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자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가난한 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가난한 자는 제대로 된 제물을, 하나님께 바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을 구제할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놀라면서,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영생을 얻는다.’ ‘죄 사함을 받는다.’ 이러한 말들은 표현만 다를 뿐, 똑같은 뜻이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부자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요지이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지만, 아직 그들이 유대교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제자들은 서로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하자,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다. 구원은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한 분 외에 선한 이가 없다. 사람은 예외 없이, 누구나 다 악하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할 뿐이기에,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이 사실을 (렘13:23) 말씀으로 표현하면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구스인은 흑인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다. 피부 이식이나, 색을 덧칠하기 전에는, 할 수 없다. 
사람은 선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선을 행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 자기 노력으로는, 행위로는 영생을 얻을 수가 없다. 사람이 자력으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이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려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이렇듯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바로 여기에 복음이 있다. 사람으로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수가 없다. 
그러나 (눅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사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다 구원하신다. (요1:11-13)에, 이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자기 땅, 곧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그들은 영접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래서 (요6:44)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예수님에게 올 수가 없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만, 누구든지 예수님께 올 수 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부자청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결국 그는, 영생을 얻지 못했다. 그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실례가 되었다. 구원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는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늘 우리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세리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러면 긍휼에 풍성한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나? 이는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3.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다(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베드로는 여기서 부자청년과 자신들을 대조하고 있다. 부자청년은 그가 가진 재물을 버리지 못했다. 
그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영생을 얻지 못한 채, 자기의 길로 되돌아갔다. 반면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집과 가족을 떠났다. 자신들의 고향과 회당도 떠났다. 또 자신들의 직업에서도 떠났다. 베드로의 말과 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물론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곧 가룟 유다는 예외였다. 그는 돈을 사랑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재물을 따르고 있었다. 단지 겉으로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다. 물론 베드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아는 대로, 진솔하게 예수님에게 여쭈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마19:27)을 보면, 예수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덧붙였다.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 때 베드로가 잘못된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히11:26) 말씀 같이,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긴 것도,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랐다. 따라서 그들도 얼마든지, 상 주심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셨다. (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10:34-35) 말씀 같이, 예수님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 따라서 예수님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 불화가 생길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가족들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얻는 것이 반드시 있다. 예수님은 두 가지 표현으로, 이 사실을 강조하셨다. ① (29上) ‘진실로’이다. ② (30下) ‘못할 자가 없느니라.’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느냐에 대해, 예수님은 그들이 얻게 될 것을, 현세와 내세의 두 시기로 나누어 대답했다. 

현세에서는, 그들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버린 것의, 백배나 받게 될 것이다. 그만큼 풍성하게 받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세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버린 것의 백배나 받는다. 예수님은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씀했나? 한 마디로 그들은,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지체가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오순절을 기해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람은, 3천이나 되었다. 

그 수는 계속해서 불어났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 그러니 육신의 가족보다 훨씬 더 많은, 믿음의 가족을 새롭게 얻었다. 또한 그들은 밭과 집을 팔아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그 결과 (행4:34) 말씀처럼, 그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 가운데는 박해를 받아, 집에서 쫓겨난 사람도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재산을 몰수당한 사람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더 많은 가족을 얻었으며, 서로의 보살핌 속에,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이, 내세에 얻을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30下)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은, 내세에서 영생을 받게 된다. 부자청년은 재물을 버리지 못했다. 사실 그가 가졌다고 해서, 자기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잠시 맡기신 것이었다. 따라서 언젠가는 남김없이 다 반납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재물을 움켜쥐고 있다가, 결국 영생을 얻지 못했다. 반면에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현세에도, 백배나 받았다. 물론 많은 박해를 겸해서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내세에서, 영생을 받았다. 그들은 일시적인 땅의 재물을 버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보화를 얻었다.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는 오늘 본문의 결론이다. 참 중요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여기서 은혜의 본질을,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제자들은 계속해서 “누가 크냐?”면서 서로 다투었다. “누가 첫째냐?”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공로를 내세우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구원이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실하게 밝히셨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무슨 뜻인가? 먼저가 나중 되고, 나중이 먼저 된다면, 결국 모두가 똑같이 은혜로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기 공로를 내세우면서, 누가 크냐 누가 첫째냐 하면서, 다툴 이유가 전연 없다. 하나님의 은 
혜로, 모두 똑같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똑같은 내용의 마태복음을 보면, 본문 바로 뒤에, 하나의 비유가 나온다.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불러서 일을 시켰다. 
  
그리고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여러 시간 일한 사람이나, 온 종일 일한 사람이나, 품삯을 똑같이 주었다. 품꾼들이 부름을 받았다는 자체가, 주인이 베푼 은혜였다. 아울러 적은 시간 일을 한 품꾼이 많은 시간 일을 한 품꾼과, 똑같은 품삯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주인의 은혜가 풍성했다는 말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다. 구원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자기가 크다고, 서로 자기가 첫째라고, 다툴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로, 모두가 똑같이 크고, 모두가 똑같이 첫째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다.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했다고 믿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등은 마지막 날에 쫓겨나고, 세리와 창녀, 스스로 큰 죄인이라고 느끼고, 고백하는 자들이 천국에 간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자. 예수님 안에서 서로 화목하며, 영생이신 예수님을 다함께 끝까지 따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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