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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떻게 가르칠까 (출 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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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르칠까 (출 13:1-10)
  

들어가는 말

어제 2012년 5월 5일은 제90회 어린이날입니다. 
우리의 어린이날은 가장 어두운 시대에, 겨레의 희망을 품고 탄생했습니다. 
어린이날 첫 행사가 열렸던 1923년은 우리나라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온 민족이 짓눌리고 신음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이런 우리 민족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나라의 독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역량으론 독립한다는 것이 요원한 일로 여겨져 선각자들은 앞날의 주인공인 어린이에게 희망을 걸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을 잘 길러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되찾게 하려는 꿈을 꾼 것입니다. 
1923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을 알리는 선전 종이에 적힌 글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 희망의 새 명절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진장섭ㆍ조재호ㆍ윤극영ㆍ손진태ㆍ이헌구ㆍ마해송 씨 등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색동회’가 제정했습니다. 

이들은 우리 동요ㆍ동시ㆍ동화ㆍ동극을 짓고, 이를 부르고 읽고 관람하게 하여, 어린이들에게 우리 얼을 심어 주려는 뜻에서 펼친 어린이 문화 운동에 앞장섰던 분들입니다. 
방정환 선생은 이보다 앞서 3월 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했습니다. 
그때까지 어린이를 얕보는 투의 ‘아이’라는 말 대신 높임의 뜻이 담긴 ‘어린이’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일제의 탄압이 극도에 이르렀던 1937년엔 어린이날이 아예 없어지고 맙니다. 
어린이날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입니다. 

그 해 5월의 첫 일요일인 5일에 기념식을 열고, 이 날을 어린이날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날에 윤석중 선생이 지은 ‘어린이날 노래’도 처음 전국에 울려 퍼졌습니다. 
(어린이날 노래 -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유명한 사사인 삼손, 그의 아버지 마노아는 삼손을 잉태하고부터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삿 13:12)라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오늘 우리 부모들도 자식들을 앞에 놓고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기르는 것이 잘 기르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자녀 교육에 왕도가 있나요?

풀어줘서 자유스럽게 키우면 버릇이 없어지고, 무섭고 엄하게 키우면 적극성이 모자라거나 부모를 속이게 되고, 자녀들의 학습을 간섭하면 성적은 오르는데 자발성이 약화되고, 자녀들의 학습을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맡기게 되면 성적이 떨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녀교육을 가장 잘 시키는 민족을 유태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 교육을 배우려고 합니다. 
유태인 자녀교육, 탈무드, 유태인의 지혜 등 많은 유태인 교육에 대한 책들이 출판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유태인 자녀 교육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유태인 자녀 교육의 핵심중의 하나인 ‘테피린(Tefillin)'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테피린이 주는 깊은 뜻을 발견하여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부터 서둘러 가르쳐야 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자녀들의 인생을 위하여, 자녀들의 내일을 위하여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자녀들의 인생을 위하여 미뤄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르침은 무엇일까? 
유태인들은 중요한 그것, 미뤄서는 안 되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테피린이란 가죽으로 만들어 그 위에 네 개의 성경구절을 적어서 하나는 이마에, 하나는 왼 손목에 매어다는 것을 말합니다. 
출 13: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얼마나 중요하면 이마와 손목에 매어달라고 했겠습니까?
왜 하필 이마와 손목에 매어달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이마는 모든 생각이 나오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마에 테피린을 붙이고 다니라는 것은 모든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라는 의미입니다. 

또 손이란 모든 활동이 나오는 곳입니다. 
손으로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손으로 뿌리기도 하고 거두기도 합니다. 
손으로 만들기도 하고 부수기도 합니다. 
손으로 던지기도 하고 잡기도 합니다. 
손이란 모든 활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네 손에 테피린을 붙여 기호를 삼으라.’는 것은 모든 활동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테피린에 적어놓는 네 개의 성경구절은 무엇입니까? 
출 13:1-10, 출 13:11-16, 신 6:4-9, 신 11:13-21. 
이 네 구절의 뜻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무엇보다도 먼저 따르도록 가르치는 것이 유태인 자녀교육의 핵심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몇 번씩 읽고 생각하면서 이 네 구절을 다음 두 가지 가르침으로 정리했습니다.

1. 먼저 출 13:1-10, 출 13:11-16을 봅시다. 

두 구절이 다루는 것은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왜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까? 
유월절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능하신 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마치 노래의 후렴처럼 반복되어 있습니다.

8절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 
9절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4절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 새”
16절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뼈 속 깊이 인정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믿음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 중요한 진리입니다. 
출애굽은 전적으로 누구의 힘으로 된 것입니까? 
누가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리고, 애굽의 장자를 죽였습니까? 
누가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은 건너게 하시고, 애굽은 물로 덮었습니까? 
누가 바위를 깨뜨려 이스라엘에게 시원한 생수를 먹였습니까? 
누가 하늘에서 눈송이처럼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을 배부르게 했습니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지요! 
이 하나님의 능력을 대통령 백(back)보다 더 크게 믿고 든든히 살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기도할지언정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주저앉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미국으로 이민 가는 친한 친구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주면서 이 선물은 꼭 그곳에 가서 풀어보라고 당부했습니다.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겠어요? 
미국에 가서 짐을 풀어 정리 한 다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그 친구의 선물을 풀었습니다. 

그 선물은 오뚝이였습니다. 
이쪽으로 굴려도 굴러가다가는 오뚝 서고, 저쪽으로 굴려도 굴러가다가는 오뚝 서고, 바로 놓아도 오뚝 서고, 눕혀 놓아도 오뚝 서고, 손바닥 위에서도 오뚝 서고, 땅바닥에서도 오뚝 서고……. 
그 이민 온 친구가 그 선물을 준 친구의 뜻을 알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할 텐데 낙심하지 말고 오뚝 서라 오뚝이처럼 오뚝 서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뚝이 하나 가졌다고 무너져 내리는 좌절과 절망을 이기고 오뚝 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지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광야에 길을 내신 하나님! 반석을 깨뜨리신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하나님!’ 하고 부르짖어야지 오뚝이처럼 일어서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믿음, 이런 삶의 태도, 이런 정신력은 국어로도 수학으로도 영어로도 미분적분으로도 컴퓨터로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신앙교육으로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도록 가르치는 교육방법을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녀를 앞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역사를 고백하십시오! 
식사할 때나, 식사 후 차 한 잔 마실 때나,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갈 때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아이들이 듣도록 자꾸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더니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시험을 잘 봤구나.’ 
‘이번 감사헌금은 무엇 때문에 드리는 것이란다.’ 
부모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대하고 믿는 고백을 자녀들이 듣도록 늘 하십시오. 
이것이 어린 자녀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믿도록 하는 데에 크게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테피린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고백하는 우리의 간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신 6:4-9와 신 11:13-21을 봅시다. 

이 두 구절이 다루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11:1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사람에게는 두 가지 사랑의 대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 어거스틴의 가르침입니다. 

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②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면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이 관계를 바울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롬 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막연합니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을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지난번 준 선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때의 여행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래 계획이 어떤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②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뜻을 따르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③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 
‘이렇게 봉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 
‘억울한 일이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사랑해요.’를 예배 때마다 외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도 없다면 거짓말쟁이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6:6-7절에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자녀교육의 관건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말씀과 친숙해지게 할 수 있을까?’입니다.

이스라엘 부모님처럼 테피린을 만들어 미간에 붙이고 손목에 붙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 권면합니다.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이 가정예배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게 되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TV광고에 어떤 사장님이 나오셔서 “남자에게 좋은데 참 좋은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영적으로, 가정적으로, 자녀들의 앞날에 축복받는 일로 참 좋은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자녀들이 어릴 때 가정예배를 드리시면 더 좋습니다.
매일 드리기 어려우시면 일주일에 한 번만 드려도 좋습니다.
가족회의를 열어 요일과 시간을 정하셔서 드리십시오.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은 드리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찬송 한 장 부르고, 말씀 한 장 돌려가며 읽고, 대표로 한 분이 기도하고, 주님 가르치신 기도로 끝나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테피린은 ‘가정예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오늘의 테피린을 부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 가정예배), 

① 하나님의 능력을 믿도록 하고, 
②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여 믿음의 명문가문을 견고하게 이뤄가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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