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어떤 자녀가 되길 원하는가? (삼상 2:22-26)

첨부 1


어떤 자녀가 되길 원하는가? (삼상 2:22-26)

제가 옛날 국민학교 5학년 때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가정 사정으로 결근하셨습니다. 제가 나온 초등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입니다. 이름이 뭔 줄 아시나요? 제월 초등학교라 합니다. 한 학년에 한반만 있는 학교였습니다. 1학년 입학하면 졸업할 때까지 반편성이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학교에 선생님이 결근하시니 어쩝니까? 그때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수업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교장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있을 때에는 우리나라는 세계 선진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가정은 대부분 核가정이 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核가정”이 무엇이냐 질문했지요.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자세히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핵가정에서 생겨날 각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많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30~40년이 지난 오늘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윤리 도덕이 무너지고 수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우리 가정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에 두 가지만 들어봅니다.   

제일 큰 문제는 가족끼리 만나는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온가족이 밥상을 함께 하는 기회가 없습니다. 각자 따로따로 밥을 먹습니다. 여러분은 온 가족이 함께 밥상을 같이 하고 계시나요? 아마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대화도 없고 그러다보니 가족 간에 관계형성이 안됩니다. 

또 한 가지는 자녀를 적게 낳기 때문입니다. 

하나, 또는 둘만 낳아 기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 질서의식이 없습니다. 자식이 하나 내지 둘만 낳다보니 그 자식을 금지옥엽처럼 여깁니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떠받들어져 양육된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자녀를 小皇帝라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들 하나. 저쪽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들 하나, 이 두 자녀가 결혼해서 자녀 하나를 낳습니다. 그러니 양가부모 합해서 6명이 아이 하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심각합니다. 황제처럼 군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녀들이 자라다보니 학교 교육도 문제가 되고 사회에 나와서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희 노회에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한분이 자녀가 넷입니다. 다들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다 잘 자랐습니다. 큰아들은 국회의원비서가 되고 둘째는 공군 장교가 되고 셋째는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서 대학까지 공부하고 코이카 대원으로 선발되어 군복무대신 외국에서 봉사활동하고 있고 막내딸은 대학 4학년입니다. 다들 장학금 받아 공부하고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많이 낳아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성도 여러분! 
자식을 많이 사랑하시지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자식을 사랑하시지요?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잘 길러보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잘 기른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양육해야 할까요? 

성경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길러야 하나님 앞에서 잘했다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자녀 양육의 성경적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살펴보면 그 비책을 발견케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두 가정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가정은 엘리 제사장의 가정이고 한가정은 엘가나라 하는 성도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정이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가정의 자녀들은 완전히 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한 가정은 복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를 살피며 함께 은혜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1.엘리 가정이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하나님이 주신 본문 말씀을 보세요. 엘리 제사장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왜 제사장의 자식인데 그렇게 망한 것일까요? 

몇 가지 문제점을 삼상 2장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1)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삼상2:12절을 보세요.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예전의 개역성경에는 “행실이 나빠”라는 부분을 “불량자”라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제사장의 자식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몰랐다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지식으로는 알았으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짓을 하게 되고 패가망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할까요? 당연히 부모의 책임입니다. 신기하게 성경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머니의 교육이 시원찮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의 책임입니다. 
  

2) 그들은 예배와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17절을 보세요.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엘리 제사장의 자식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드리는 예물을 도적질했습니다. 

본문을 잘 보세요. “이 소년들의 죄”라고 했습니다. 아직 성인이 안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합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목사 자식이 성도들이 드린 헌금을 강탈한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지요?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무시한 것이고 하나님을 상대로 도적질을 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성장해서는 會幕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합니다. 성적으로도 墮落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그들을 그냥 두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 백성이 예배를 무시하고 예배를 방해하는 것은 단순한 죄악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식을 그냥 넘어가질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 자녀 중에 주일에 예배를 안 드리는 자녀들이 있습니까?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속상해 하기만하지 아무런 제재를 안 하고 있다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왜죠? 성도가 예배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백성이 그러면 내버려둡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자녀가 그러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앞에, 그리고 옆 상가 건물 뒤에 평일날 밤만 되면 중고등학생들이 몰려들어 담배피우고 난리를 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나가다 그 속에 여러분 자식이 그러는 것을 보셨다면 그냥 못 본 척하고 넘어갈 것입니까? 그럴 수 없지요. 그런데 남의 자식이 그러면 내버려 둡니다. 그리고 욕하지요. 뉘 집 자식들인지 불쌍하구나…….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이 예배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으면 그냥 두질 않습니다. 결국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한 것입니다. 
  

3) 부모의 무책임과 불간섭이 망하게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망한 가장 큰 원인은 부모의 무책임입니다. 부모가 그 자녀에게 너무 무책임하게 대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악행을 하고 심지어 회막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했다는 소리를 엘리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치합니까? 본문 23절 이하를 보세요.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책망이 아닙니다. 징계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소문을 두려워합니다. 무책임입니다. 이 무책임이 자식들을 망하는 길로 가게 한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자식이 아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죠? 징계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제사장 체면 손상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있습니까? 혹시 엘리의 자식들처럼 하나님을 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예배를 무시하고 갖은 못된 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못하고 무책임 가운데 방치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자녀가 망하는 길을 가는 것을 방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계시는 절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책임입니다.   

세상 부모가 자식을 사랑치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을 방치합니까? 오늘 본문의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본문을 통해 추축 컨데 엘리 제사장은 적어도 4가지를 착각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1) 하나님이 그렇게 금방 심판하시랴? 
2) 때가 되면 회개하고 돌아오겠지? 
3) 나를 봐서라도 용서해 주시겠지? 
4) 다 큰놈을 어떻게 하랴? 야단을 쳐도 안 들어먹는데 어찌하랴?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이런 분은 안 계십니까? 제발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는다면, 그리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포기하지 않아야합니다.   

우리 교단에 어느 선교사 지망생이 선교훈련을 마치고 심사를 받았습니다. 

부족한 제가 교단 세계선교회에 선교사 파송심사위원입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의 신상 기록부를 보니 부모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할 것이냐 질문을 했습니다. 그 선교사 후보생은 “많이 전해 봤는데 안되니 어쩔 수 없어 기도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보았느냐?” 그랬더니 전화로 여러 번 전도했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책망했습니다.   

만약 부모가 암 병이 들었으면 그냥 “어쩔 수 없습니다. 기도만합니다”라고 할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강제로라도 병원으로 모셔서 진찰을 받고 수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선교사가 될 사람이 어쩔 수 없다고 하냐? 

당장 부모님 집으로 가라. 가서 같이 살면서 주일에 이웃 교회를 모시고 가라. 가서 교회에 등록시키고 교회에 부탁을 해야 한다. 말로만 ‘나가세요, 나가세요.’ 하니 안 가시는 거다. 

정 안 가시겠다면 선교사로 나가는 것 포기하라. 

결국 심사위원회에서 그 부모가 예수님 영접할 때까지 파송을 보류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가신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자식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 자식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에 들어갑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그저 기도만 한다”면 여러분이 구원받은 백성인지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그런데도 먼저 믿고 있는 여러분에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언젠가는 믿겠지 하고 태평하게 계시지는 않습니까? 아닙니다. 무서운 심판이 문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힘써야 합니다. 엘리처럼 방치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자식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신앙을 책임지셔야 합니다. 
교회를 안 나가면 책망하셔야 합니다. 징계하셔야 합니다. 말로만의 징계가 아니라 강력한 징계를 해야 합니다. 
  

2. 한나 가정이 복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엘가나는 ‘한나'라는 여인의 남편입니다. 

그런데 그 가문은 놀랍게 부흥하고 번성합니다. 이유는 부인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훌륭하게 길러냈기 때문입니다. 엘가나의 신앙은 성경이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 한나의 신앙은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자녀를 양육했나요?   

1) 어려서부터 하나님 섬기게 했습니다.

한나는 어찌 보면 지독한 여인입니다. 

결혼을 했으나 오랫동안 자녀가 안생기자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 기도도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의 태를 열어 잉태케 해주셨습니다. 그 응답으로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사무엘이라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 구했다”는 뜻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녀는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독하게 지켰습니다. 금지옥엽 같은 아들이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의 전에 바쳤습니다. 서원기도를 지킨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잘되고 크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물결이 그 심령 속에 채워지기 전에 말씀으로 채워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는 하나님의 앞에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뭘 안다고 어려서부터 난리냐고요? 어린아이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습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기에 시대가 안 좋고 스승도 안 좋으나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됩니다. 어머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을 살펴보세요. 역대상하를 보면 왕의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 아들 왕의 행적이 좌우됩니다. 아비지가 누구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믿음이 있는 아들은 아버지가 비록 우상을 섬기는 악을 행한 왕이라도 그 아들은 선한 왕이 됩니다. 그러나 父王이 아무리 선행을 행한 왕이라도 어머니가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라면 아들도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어떤 길로 가고 있습니까? 
  

2) 모델 교육을 잘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신앙교육은 모델입니다. 부모의 신앙은 그대로 자식에게 전수되게 되어있습니다. 어머니가 믿는 대로 자식이 믿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선생님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부모가 하는 행동대로 따라갑니다. 부모가 주일을 성수하면 자식도 성수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개떡같이 신앙생활하면 자식은 보나마나 입니다.   

한나는 자기 아들 사무엘에게 믿음의 모델 교육을 했습니다. 

人情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젖을 떼자마자 떼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殘忍합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의 신앙은 아들에게 전수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성전에 바치고 매년 때마다 그를 찾아가 제사장으로 섬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 아들 사무엘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결국 그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후에 아들 셋, 딸 둘을 더 낳는 복을 누립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 자식이 여러분만큼만 섬겨도 됩니까? 
여러분 자식이 여러분의 신앙을 본받아도 됩니까? 

여러분은 자녀에게 무의식중의 영적 스승입니다. 말하는 것, 기도하는 것, 헌금 드리는 것, 예배하는 것, 모두가 그렇습니다.   

어떤 신앙잡지에서 "믿는 부모의 3대 바보짓"이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첫째, 자녀들 앞에서 목회자를 욕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목회자를 욕하고 흉을 본다면 그 자녀는 목회자에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영혼은 병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녀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고 참된 신앙생활을 저해하는 흉기인 것입니다.

둘째, 자녀들 앞에서 선생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선생님을 욕하고 흉을 본다면 그 자녀는 배우기를 거절하고, 반항하며, 말썽을 피우고, 문제아가 될 것입니다.

셋째, 자녀들 앞에서 부모님(시부모, 처부모)을 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녀가 부모를 공경할까요? 효도할까요? 우리는 너무 쉽게 자녀들 앞에서 목회자 흉을 보거나 선생님 흉을, 그리고 부모님 흉을 봅니다. 이것은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모습은 이것과 상관없나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식 앞에서 여러분의 신앙은 인정을 받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자식들이 여러분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책임입니다. 
  

3)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합니다. 

26절을 보세요.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영적으로 흥하는 가문, 흥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 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고 유산이고 복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자식교육?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자식을 귀하게 여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나마나 성공입니다. 더욱이 사람들도 그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더 이상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신앙의 인격이 올바로 서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사무엘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 앞에서 영적인 사람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자녀가 사무엘 같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말씀을 맺습니다.

마무리 좋은 교육을 시켰어도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면 뭐합니까? 부귀영화 얻었으면 뭐합니까? 하나님을 모르면 지옥에 들어가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녀들의 신앙과 여러분 스스로의 신앙을 늘 점검해야 합니다. 

“자식은 내가 심은 대로 거두는 열매다” 내가 보여준 대로, 내가 말한 대로 보고 배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물의 祈禱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중보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냥 기도가 아닌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한나가 아들을 성전에 바치고 어찌 편하게 살았겠습니까? 밤낮으로 눈물의 기도로 아들을 위하여 기도했을 것입니다. 

바보 같은 남편들이 아내가 새벽 기도하는 것 싫어합니다. 새벽에 누굴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남편위해, 자식위해 기도하는데 왜 막습니까?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자식을 살리는 것은 보약이 아니라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