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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참으로 어려운 조건 (마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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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려운 조건 (마 18:1-10)

오늘 설교 제목을 ‘참으로 어려운 조건’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삶이 뭐 그리 어렵다고!” 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삶의 특징 중 하나를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아무 계산도 없는 순전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말합니다. 이것이 쉽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했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시는 말씀은 어떻습니까? 아니면 죄에 대하여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여 버릴 정도의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무엇 하나 쉽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인도의 날라마람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한 인도 여인이 매번 낡고 지저분한 옷을 입고 왔습니다. 선교사님은 ‘적절하지 않은 예배 자세’라고 생각하여, 몇 번을 망설인 끝에 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 왜 이렇게 남루한 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합니까?” 그러자 그 부인은 ‘이 옷이 자신이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당신은 그렇게 가난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인은 “선교사님,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전에는 돈과 좋은 옷들과 보석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권력자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제 재산을 모두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버리면 빼앗아 간 모든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재산을 다시 찾아서 부유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불신자로 사는 것보다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역시 장담하기 힘들겠지요?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들을 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9:16절 이하에서 ‘부자 청년의 비유’를 하시면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6:24절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자기 생명까지도 버리고 따르라.’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을 어떻게 갖출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 자녀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인 ‘겸손’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겸손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5-6절에서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 149:4절에서는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고 하셨고, 잠언 15:33절에서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하시고, 22:4절에서는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하시며, 

이사야 29:19절에서는 “겸손한 자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쁨이 더한다.”고 하시며, 57: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겸손한 삶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비롯하여 수많은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수많은 복과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복과 은혜가 약속된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이렇게 큰 약속을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씀을 통하여 보면 그 이유는 겸손이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하시며, 

21:5절에서는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고 하십니다. 겸손이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 일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1-17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세족식’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였으며, 이 일은 주로 하인이나 종들이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저녁 식탁에 앉았을 때 아무도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도 서로 자신이 높다고 싸웠던 제자들이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하인처럼 자신을 낮추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연히 일어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다 씻기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2:3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하십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시지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는 일을 또 하나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는 어린아이의 인격을 존중하지도 않았고, 아이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비록 주님의 이름으로 하더라도, 아이를 존중하고 귀하게 영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실족시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하십니다. 실족시킨다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나님에게서 떠나가도록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거만하게 자기를 자랑하고 나타내는 일로 어떤 사람이든지 실족시킨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무서운 죄가 됩니다. 이렇게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높이고 존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사람들은 남을 높이는 일을 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자랑하고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말세의 사람들의 특징을 디모데후서 3:1-5절에서 말씀하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 1:28-32절에서는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고 섬기며 남을 높이는 겸손한 삶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기를 원한다면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마음으로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을 한 번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삶을 말씀하시면서 이것이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본문 8-9절을 봅시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감이 잡힙니까? 이 말씀은 앞에서 말씀하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실족시키는 것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죄에 대한 단호한 결단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는 특별하게 자신의 자랑과 교만으로 말미암는 실족하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30절에서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 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것들을 자랑거리로 삼고 싶다면 아직 온전한 주님의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요한일서 2:16절을 봅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한다면 나를 교만하게 하고, 세상 것들을 자랑하게 하는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필리핀의 마닐라에는 성서대학이 있습니다. 어느 해에 이 대학에 ‘카 통 까우’라는 부자사업가의 아들이 입학했습니다. 그는 기숙사에 들어온 첫 날, 학장을 찾아와서 ‘기숙사의 욕실과 화장실이 불결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학장은 웃으면서 “내가 조치해주겠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학생은 청소하는 사람이 누군지 보려고 나갔는데, 다름 아닌 학장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를 마친 학장은 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자, 화장실과 욕실이 깨끗해졌으니 마음에 드는가?” 그 학생은 너무나 뜻밖의 일에 놀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학장은 학생의 등을 두드리며 “학생, 염려 말게. 우리 학교는 그다지 넉넉한 학교가 못되어서 청소부를 따로 둘 수가 없으니 모두가 스스로 자기 일을 한다네.”

그 학생은 성서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을 마친 뒤, 미국 시카고 자유교회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성서대학의 학장으로부터 받은 교훈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속담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속담에도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깊은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때때로 다가오는 세상의 고통스러움이나 사람들의 무시와 오해와 조롱, 계획이 틀어지고, 성과가 없거나 아니면 뜻하지 않은 성공이나 위대한 일 등.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보는 사람이 주님을 닮은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시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이 되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겸손한 순종을 가르치십니다. 

여러분, 성도님들이여! 우리의 목적지가 하나님의 나라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고 매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겸손을 이룹시다. 어린이주일에 들려주시는 이 말씀을 잊지 맙시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삶이 아무리 어려운 조건일지라도, 내가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겸손한 삶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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