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두 가정 : 나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삼상 2:22-31)

첨부 1


두 가정 : 나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삼상 2:22-31)  

코헨이라 불리우는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소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키고 보호하는 파수꾼으로 이해된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데 제사장의 역할은 ①하나님의 뜻을 묻고 알게 하며 ②성소를 지키고 ③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④제의를 관장하고 ⑤백성을 축복하며 ⑥또 병든 사람이 공동체 속에 살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제사장은 왕과 선지자와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지도자였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 가정이 몰락하는 이야기가 사무엘상서 전반부에 기록되어 있다. 왜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소개해줄까? 사사시대에는 종교계마저도 썩었다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서일까? 이스라엘은 총체적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메시지일까? 나는 관점을 달리하여 신앙 없는 부모가 자녀를 망치고 결국 가정도, 사회도 무너뜨린다는 것으로 보고 싶다. 

제사장 엘리의 가정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고 제사장 엘리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전쟁의 비보를 듣고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가 목이 부러져 죽는다. 그리고 그의 며느리,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도 출산 시 죽는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말하고 죽는다. 며느리로서 내뱉는 이 말은 죄를 피하지 않는 삶에 다가올 가족의 몰락을 슬퍼하는 절규다. 무너지는 이 엘리의 가정을 들여다보자. 

1. 자녀들의 사는 모습

① 악행을 저지르면서 산다. (삼상2:22)

삼상2:22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이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다. 그들의 악행은 모든 백성들의 입으로 전해져 공개되었다. 이런 제사장 자녀의 삶은 악한 누룩과도 같아 여호와의 백성으로도 범죄하게 하는 전염성이 되었다.   

② 예배를 망가뜨리면서 산다. (삼상2:12~17)

삼상2:12~17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하였다. 여호와가 살아계심을 모르는 영적 무지, 여호와가 내 삶을 살펴본다는 것을 모르는 제사장의 아들, 그에게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시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려고 가지고 온 고기를 삶을 때, 그리고 기름을 태워 하나님께 드리려고 할 때 제사장의 사환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 고기를 가져가는데 빨랐고 기름도 억지로 빼앗아갔다. 그것이 망가져버린 제사드리는 모습이었는데 엘리의 두 아들도 그렇게 하였다.

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오늘의 시대도 예배가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지루한 예배, 아이들에게 감동이 없는 예배라고 예배를 외면하고 멸시하도록 하지 말고 예배를 살려내야 하고 예배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모가 예배를 진정으로 대하려 하면, 아니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 앞에 경외하는 모습으로 서면 아이들 앞에도 예배는 망가지지 않는다.
  

2. 아버지의 사는 모습  

① 자식을 우상으로 섬긴다. (삼상2:25)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의 악행을 나무란다. 삼상2:25을 보면 아들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훈육은 형식적이었다. 두 아들들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을 미리 건드리고 가져갈 때 제사장 엘리는 그것을 비통해하지 않았다. 

삼상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아들들이 잘 먹고 배부르는 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 되는 것보다 우선이었다는 말이다. 제사장으로서 아버지의 삶이 잘못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아들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식이 아무리 중요하기로 재물을 함부로 다루도록 하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멸시다. 자식이 우상이 되었기에 하나님이 외면당하고 하나님이 차선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삼상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그래서 환란이 예고되고 단명하는 가문이 예고되고 두 아들이 한낮에 죽을 것이 예고된다. 자식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 자리에 대신 놓으면 안된다.  

② 관습이라는 미명 하에 죄를 막아서지 않았다. (삼상3:13)

삼상3: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고 하였다.

아비가 아들의 죄악을 안다. 또한 자신의 태도가 잘못된 죄악임을 안다. 저주를 자청하는 불경죄의 죄악이다. 예배도 무시하고 제사법도 무시하고 부모도 무시하고 자기 소견대로 사는 아들의 죄악을 알면서도 금하지 아니하는 채찍과 훈육이 없는 부모의 죄악이 문제다.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아들에게 매를 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왜 버려두는가? 그것은 죄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죄가 익숙해지다 보니까 죄의 두려움에 마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죄가 익숙해지고 죄가 반복되어 관습이 되어버리면 그 죄를 막아서지 않는다. 처음 죄를 범할 때는 마음이 고통스럽고 두렵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적으로 통용되는 관습이 되면 무감각해진다. 

삼상2:13을 보라. 제물로 가져온 고기를 제사 드리기 전인 날고기로 가져가는 일이 관습이 되어 있었다.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엘리 제사장의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죄를 죄인 줄 모르는 시대적 관습, 종교적 관행에 마비되어 아들이 저지르는 불경죄를 가로막지 못했다. 부모는 관습이란 미명 하에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주일을 어기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어기고 자기 소견대로 사는 것이 이 세상 풍조라고 방치해서는 안된다. 죄를 막아서지 않은 엘 리가 가족을 무너뜨렸다. 두 아들이 문제아이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막아서는 아버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어머니의 사는 모습  

① 어머니가 실종되어 있다.

아버지는 의의 상징이라면 어미는 사랑의 상징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울타리라면 어미는 따뜻한 침대와 베개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의 삶 속에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사로서 40년의 생애를 마치고 98세로 죽을 때까지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 가정에는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눈물과 다정한 마음, 기도의 가정을 만드는 이다. 어머니는 가정을 용기있게, 사랑스럽게 만드는 뜨거운 심장이다. 어머니의 기압에 따라서 가정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 그 소중한 어머니가 없다. 어머니가 텅빈 가정, 얼마나 삭막하고 허전할까?   

여기 엘리 가정과 대조적으로 ②어머니가 있는 가정이 있다.

다른 각도에서 상상해보자. 동시대에 일어난 가문이었다. 몰락하는 이 가문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일으킬 충실한 제사장 가정에 대한 예언이 삼상2:35에 나와 있다. 그 사람이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위대한 지도자가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로서 여호와와 사람 앞에 은총을 받고 존경을 얻는 자가 된다. 

한 가정이 몰락하고 한 가정이 사사의 가정으로 일어나는 이야기 뒤편에는 한 가지 중요한 열쇠가 있다. 일어나고 잘된 가문의 중심에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이다. 본래 아기를 잉태하지 못하여 슬퍼하던 여인이지만 기도하여 아기를 잉태하고 아들에 대한 서원을 기도한대로 지키고 살아가는 한나라는 어머니가 있다. 남편과 더불어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아들 사무엘에게 입히던 사랑의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이 가정,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의 가눔이 명문 가문이 되었다.  

우리는 두 가문을 바라본다. 무너지는 한 가족의 몰락과 또 한 가족이 충실한 제사장 가문으로 일어나는 것을 본다. 전환기의 시대에 이 두 가정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는 신앙 교육,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존중하는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나의 가정, 가문이 흥할 것인가, 아니면 몰락할 것인가? 그 대답이 여기에 있다.

아버지들이여! 어머니들이여!

기도를 심으라. 예배를 심으라. 훈육을 심으라. 거룩을 심으라. 사랑의 눈물을 심으라. 시대를 가로막는 믿음을 심으라. 올바른 물질을 심으라. 경건을 심으라. 아버지가 실종된 가정, 어머니가 실종된 가정, 자녀마저 실종된다. 그러나 어버지가 아버지되고 어머니가 어머니되면 명문 가정이 된다. 복 받는 사회가 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