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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천국만이 천국일까?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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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만이 천국일까? (마 16:13-20)
   
지금 일산의 랜드마크인 호수공원에서는 세계꽃박람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한때 뉴스위크지에서는 일산을 세계 10대도시 중 하나로까지 선정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정발산 밑에 조성된 개인주택들은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그곳을 배경으로 영화, 드라마, 웨딩촬영들이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세계 어디를 다녀 봐도 일산만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가이사랴 빌립보란 곳에서 이 질문을 하셨을까요? 왜 그곳에서 천국이야기를 하셨으며, 천국열쇠를 주신다고 하셨을까요? 가이샤라는 로마의 황제 카이사(Julius Caesar)가 자기 이름을 붙여 조성한 신도시입니다. 때문에 가이샤랴는 당시 그 어느 도시보다 쾌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지상천국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촌뜨기 제자들, 가난한 어부출신들이 지금 그곳에 왔습니다. 정말 천국같이 멋있게 꾸며져 있는 그곳에서 모두가 넋을 놓고 있었을 때 저들의 귓전을 때리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도시구경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저들은 갑작스런 질문 앞에 횡설수설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고 합디다. 아니야, 엘리야라고 하던데, 아냐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합디다.” 

저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물으셨고,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후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주님은 그 자리에서 천국, 그리고 천국열쇠를 언급하십니다. 지금 저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가이사랴와 비교할 수 없는 천국, 그리고 천국 문을 여는 열쇠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좀 유심히 살펴보면, ‘천국열쇠’를 말씀하실 때 단수가 아니고 복수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왜 ‘열쇠들’이란 복수로 말씀하셨을까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맨다, 푼다.’란 말씀을 반복하신다는 점입니다. 문을 열면서 푼다. 닫으면서 맨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푼다. 맨다.’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서 ‘나사로야 나오너라.’하셨을 때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이 수건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하). 바로 이때 쓰신 단어가 luvw(루오)입니다. ‘천국열쇠’를 언급하시면서 사용하신 단어를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사용하셨습니다. 

나사로, 살아있기는 하지만 꽁꽁 묶여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 차단된 관계를 풀어주라는 말씀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께서 ‘푸는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맡기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맨다. 푼다.’는 말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 관계가 열려 있느냐, 닫혀있느냐가 천국이 열리느냐, 닫히느냐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준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십니다. 하늘 문, 천국 문이 열리게 해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편안하게 주면 하나님께서 행복, 평안을 주십니다. 기도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분명히 나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의롭게 말씀대로 사는데, 살려고 노력하는데 이상하게 잘 풀리지 않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면 ‘관계’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져보십시오(마 5:23-24). 내가 가진 열쇠만으로는 천국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열쇠가 같이 꽂혀야 합니다. 내 곁의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문,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욥 42:10, 롬 12:18). 

열쇠를 복수로 언급하신 것은 또 하나의 열쇠로 열어야 할 천국이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성경은 아내를 ‘진주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잠 31:10). 천국의 열두 문은 진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자녀는 ‘여호와의 주신 기업, 상급이라’고 했습니다(시 127:3). 우리는 천국에서 기업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남편은 그리스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엡 5:22-25). 그런데 천국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아내, 자녀, 남편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가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천국, 우리가 이루어야 할 천국이 아닐까요?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 14:4). 내 곁에 아무도 없으면, 가정도, 아내, 자식, 친척도 아무도 없으면, 더 나아가 친구, 교우도 없으면 겉으로 볼 때 깨끗하겠지만, 이러한 사람을 통해 얻는 것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또 하나의 천국입니다. 창조이후 최초로 만드신 공동체, 축복하신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가정은 편합니다. 집에 있으면 그저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버팀목입니다. 연약함은 도와주고 부족함은 채워주고, 허물은 덮어주고, 좋은 것은 격려해주고, 뛰어난 것은 인정해주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가족의 원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원형에 어느 정도 가깝습니까? 아니면 내가 서있는 이 가정이 마치 나사로의 무덤 같은 모습은 아닙니까? 나의 모습이 꽁꽁 묶여있는 나사로의 같은 모습은 아닙니까? 의욕도 상실하고, 자신감도 사라지고, 꿈도 다 사라진 상태로 기쁨과 만족과 평안이 없는 그런 상태로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뒤틀려있으면 천국이 내 마음에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들으시고,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관계가 뒤틀려있으면 그 가정은 지옥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피스메이커입니까? 트러블메이커입니까? 푸셔야 하되 빨리 푸셔야 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풀지 않으면 자신이 불행해집니다. 그 사람은 절대 천국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누구 좋으라고 내가 먼저 풀어야하냐고 합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해야 합니다. 관계를 푸는 것은 곧 천국을 맛보는 비결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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