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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얻을 땅의 남은 것 (수 1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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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을 땅의 남은 것 (수 13:1-33)


제가 두어 주일 전에 어떤 가게에 물건을 구경하러 들어갔는데 거기에 일하는 남자 점원이 제게 대뜸 "아버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작년에 제가 백내장 수술을 받을 때에 어느 간호사에게 처음으로 듣고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딸뻘'이 되는 스무 살 전후의 아가씨한테 들은 소리였기 때문에 어떻게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적게 잡아 주어도 30대 후반 내지는 40대 초반 정도까지도 되어 보이는 사람이 그러는 바람에 속으로 '야, 내가 어떻게 너한테 아버님뻘이냐?'하고 분통이 터져 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던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어버이날 축하 겸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에 아직도 그 충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던 제가 그 이야기를 동생 석기성 장로에게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동생이니까 "형님, 아직은 괜찮으니까 그런 철없는 젊은 사람들 소리에 괘념하지 마세요."라는 위로 정도는 해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석 장로가 그 이야기를 듣자 제게 한다는 말이 "형님,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시지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완전히 '깐 데 또 까는' 형국이었습니다.

사실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자기보고 '늙었다'고 하면 기분 나빠 하겠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첫 말씀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라고 시작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대뜸 하신 말씀 역시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물론 그 말씀을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며 오직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실제로 이 당시 여호수아의 나이가 최소 85세, 많으면 100세 가까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니 그가 기분 나빠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제 그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 총정리'를 잘하도록 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젊을 때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용맹과 힘을 떨쳤지만, 그 가나안 정복과 또한 땅 분배까지 다 마친 지금에 와서는 이제 자기 인생의 잔무를 정리해야 할 때가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얻을 땅의 남은 것"에 대하여 여호수아의 인생에 주어진 '마지막 과제'를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어떻게 자기 인생의 유종지미를 거두게 하셨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경향의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어떻게 '축복의 계승'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에게 아직 남아 있는 하나님의 일을 완수해내야 할 사명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본문 1절부터 7절에 "1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2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온 지방과 그술 사람의 전경 3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방 에그론 지경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 곧 가사 사람과 아스돗 사람과 아스글론 사람과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또 남방 아위 사람의 땅과 

4또 가나안 사람의 온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사람의 지경 아벡까지와 5또 그발 사람의 땅과 동편 온 레바논 곧 헤르몬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6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의 산지 모든 거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7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라고 여호수아의 현실을 자각시켜 주신 후에 곧 이어서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생전에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중부 정복부터 시작해서 남부를 정복하고 끝으로 북부까지 정복함으로써 가나안의 중심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점령하지 못한 지역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리켜 '얻을 땅의 남은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2절과 3절에 기록된 것은 가나안의 서남쪽에 위치한 블레셋 땅이었습니다.
4절은 가나안의 서북쪽 지역으로서 두로와 시돈 등이 그 중심이었으며, 5절과 6절에는 나머지 북쪽 지역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시대에 이런 지역들까지는 아직 점령을 완수하지 못한 채 '나이 많아 늙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여호수아에게 무슨 맥 빠진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아직까지는 점령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얻을 땅의 남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니"라고, 그 '남은 땅'에 사는 이방 민족을 완전히 쫓아내고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하여금 그것까지 다 '얻게' 해 주시는 것은 당신께서 반드시 완수하실 일이라고 천명하신 것이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어떤 유능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물러나게 되면 그가 하던 일도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알렉산더가 죽고 나자 마케도니아 군대는 세계 정복의 꿈을 접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떠난 후 프랑스는 더 이상 유럽을 지배하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들어 사용하시던 한 지도자의 인생이 그 전성기를 끝내었다고 해서 원래 계획해 놓으셨던 당신의 일에 차질이 생기게 하실 분이 결코 아니셨습니다.

이어지는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처럼 당신의 계획이 계속 진행될 것을 두고 "너는 나의 명한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고 여호수아에게 명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 땅"이란 앞서 2절부터 6절까지에 언급된 '아직 점령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땅'을 가리키는데, 그것을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원래 '분배'해 준다는 것은 '이미 완전히 정복하고 소유하게 된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직 채 정복하지도 못한 땅들을 그 '아홉 지파들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라는 실로 이상한 명령을 내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 후대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네가 완수해야 할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물려주는 것이 곧 그들에게는 최고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직 남아 있는 사명'을 물려주는 것 역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기업 분배'였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독신자 부모들만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으며 또한 기독신자 자녀들만이 부모에게 물려받을 수 있는 아주 특수한 '유업'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2장 2절에서 사도 바울도 "네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 사명에 있어서 자기가 못 다한 것을 디모데에게 맡겼을 뿐 아니라 또한 디모데 역시 자신의 남은 사명을 또 다른 충성된 후배들에게 부탁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 그러나 자신의 시대에 다 끝나지는 않은 일을 다음 세대에 계속 '승계'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 기독신자 부모자녀 사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아주 멋진 '유산 상속'인 것입니다.

모름지기 신자 부모는 신자 자녀에게 이처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꼭 유업으로 남겨 주어야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회를 위해 생애 최고의 것까지 다 바쳤으니 이제 너희들은 우리처럼 고생하지 말고 그저 너희들 앞가림만 잘하고 살아라." - 혹시 자기 자녀를 두고 마음속으로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교회 헌금하는 것은 우리가 한 것만으로 충분하니 너희들은 그저 주일헌금 정도만 내어도 괜찮을 거야." - 혹시 자기 자녀에게 실제로 이런 소리 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그 자녀가 미래에 '얻을 땅'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는 부모입니다.

경향의 부모들은 마땅히 자녀에게 '십일조'를 명하고 '감사헌금'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작정해 놓고 미처 다 바치지 못한 헌금을 자식에게 '유산'으로 남겨 줄 줄 아는 부모, 자신이 더 하고 싶어도 힘이 부족해서 마음껏 하지 못했던 헌금을 자식에게 '기업'으로 물려 줄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너는 이 '세계를 받은 교회'에서 기둥 같이 쓰임을 받는 충성된 장로가 되어라," "너는 이 '장자의 기업'을 받은 복스러운 경향교회를 통하여 '성문에서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현숙한 권사가 되어라," "너는 이 '개혁주의 신앙의 전통에 빛나는' 경향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별처럼 빛나는' 목사가 되어라."- 적어도 경향의 부모들의 입에서는 자녀들 앞에서 이런 멋진 명령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넘겨주고 은행 잔고를 남겨주는 것만이 유산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우리 교회의 청년들로 하여금 그들 앞에 창창하게 펼쳐진 인생을 통하여 그들이 직접 점령해 가야 할 '얻을 땅의 남은 것'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기업 상속'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변 이웃 전도, 미개척지 선교, 교육관 헌관, 고려신학교 해외 분교 확장 등등 아직도 점령되지 않은 '남은 땅'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 사명 완수를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이야말로 경향의 부모들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각자 인생의 잔무 정리인 것입니다.
자식에게 하나님의 명하신 일을 위한 사명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곧 축복을 상속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줄을 깨닫고 그들에게 '얻을 땅의 남은 것'을 '분배'해 주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에게 그들이 얻어서 남겨 주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8절 이하 14절에 "8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은 요단 동편에서 그 기업을 모세에게 받았는데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이러하니 9곧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과 디본까지 이르는 메드바 온 평지와 10헤스본에 도읍하였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의 모든 성읍 곧 암몬 자손의 지경까지와 11길르앗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의 지경과 온 헤르몬산과 살르가까지 이른 온 바산 

12곧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도읍하였던 바산 왕 옥의 온 나라라 모세가 이 땅의 사람들을 쳐서 쫓아내었어도 13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14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 기업이 됨이 그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음이었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아까 '얻을 땅'을 기업으로 주라는 말씀도 특이한 것이었지만, 이제 이어지는 본문 내용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얻을 땅'의 기업을 아홉과 반 지파, 즉 '아직까지는 아무 땅도 분배받지 못한 지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지시하셨고 그것은 바로 다음의 14장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전에 먼저 '이미 땅을 분배 받은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 분배' 내용부터 이 13장 8절 이하의 본문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문맥상 아무 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내용이며 또한 여호수아서에서만 해도 앞서 12장 1절부터 6절에 이미 언급되었던 사실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비슷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또한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아홉과 반 지파'들이 그 '얻을 땅의 남은 것'을 마저 쟁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세 세대를 통하여 '이미 얻은 땅'을 되새겨 보는 것이 바른 순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선배 세대는 어떻게 해서 그 축복의 땅을 얻게 되었는지 그 노하우를 배우고 익혀야만 후배 세대 역시 똑같은 '축복의 계승'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나타나는 "요단 동편"의 "기업"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본토 정복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모세의 지휘 아래 먼저 정복했던 '요단강 저편'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 지역에 대해서 본문에 많은 거주지들과 성읍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 땅 역시 '주거와 생업'에 좋은 비옥한 곳이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도하하여 여리고를 공격하기 전에 이 '요단 동편의 기업'을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15절 이하 23절은 바로 "모세가 르우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 가족을 따라 주었던" 기업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대체로 요단강 동편 지역의 남반부로서 모압 지경의 땅이었습니다.
24절부터 28절에 기록된 지역은 갓 지파에게 배당된 것으로서 요단강 동편 지역의 북반부이며 암몬 지경에 있던 땅이었습니다.
므낫세 지파는 가장 큰 지파였기 때문에 땅 분배에서도 둘로 나눈 것이며, 그 중의 한쪽 즉 '므낫세 반 지파'가 얻게 된 지역이 바로 29절로 33절에 기록된 대로 옛날 바산 왕 옥의 영토였던 갈릴리 동편의 땅이었습니다.

그런 땅 분배와 더불어 몇 가지 세부 사항이 첨가되었는데, 13절에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고, 즉 모세 지도하에 진행되었던 일이라 해서 모든 것이 다 완벽한 것은 아니었으며 사소한 흠도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가 하면 22절에서는 이스라엘을 미혹했던 우상 선지자 발람을 심판하여 죽인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하여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들었던 죄를 모세가 잊지 않고 엄중히 심판했던 것을 역사에 남겼습니다.
14절과 33절에서는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레위 지파에게는 "화제물이 그 기업"이요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신 지파인 까닭에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며 이것은 모세 시대에서부터 확인된 규례인 동시에 이미 실시된 전통이었던 것임을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는 이처럼 땅 점령과 분배에 있어서 일단 모세 시대의 선례를 먼저 기록했습니다.
비록 부분적으로 옥에 티는 있더라도 신앙 선배의 충성과 업적은 항상 그 후손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현대사회는 '자식'들이 부모의 우상이 되고 '청소년'들의 언행을 인권 존중이라는 미명으로 무단방치해 버리며 '청년'들을 신세대라고 한없이 치켜세워 주고만 있습니다.
소위 '영 파워'(young power)라는 것이 스포츠 세계나 패션을 리드하는 것까지는 이해되지만, 젊은이들이 노인들은 건드릴 줄도 모르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면서 노인들은 도통 이해할 길이 없는 네티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이제는 이 사회의 상식과 윤리와 규범까지 주도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노인들은 '선거에 나오지 마시고 집에서 쉬시라.'는 따위의 괄시를 당하고, 연로하신 부모는 '피차 좋다'고 하면서 그저 양로원 같은 데 혼자 사시게 만드는 소외를 당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그 '신세대'의 자녀들이 정말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부요는 순전히 그들이 지금 그처럼 천대하고 있는 '구세대'의 부모들의 땀과 눈물과 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도 정말 불효한 자식이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잘 알고 있으며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릴 적과 지금의 시대를 비교해 보면 바로 그 '한 세대'의 차이가 정말이지 마치 서로 '다른 나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우리 부모님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자라셨지만, 우리 자식들로 하여금은 너무 잘 먹는 것을 걱정하면서 '다이어트'라는 것까지 하고 '스타벅스'의 커피를 음식 값보다 더 비싸게 사서 마시게 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고무신조차 값비싸서 짚신 한 켤레만 신고 다니셨지만, 지금 여러분의 후손들은 십만 원 대를 호가하는 '나이키 운동화'와 '킬 힐'등 각종 신발들을 그 용도에 따라 갈아 신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국민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문맹의 설움 속에 사셨지만,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뼈 빠지게' 돈을 벌어서 대학공부를 시키고 해외 유학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제 탄압과 6.25 남침을 통과하면서 투옥과 가족생이별을 당하시고 피난민과 상이용사가 되셨지만, 그 대신에 여러분의 손자와 손녀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들을 따서 태극기 게양과 함께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만들고 전 세계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톱클래스 예술가들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자식들 앞에서 부모님들이 좀 자랑해도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훌륭한, 최고로 위대한 부모님들이십니다.
이 대한민국의 국권과 자유를 바로 여러분의 피로써 지켜냈고 외국 원조를 받고 겨우 지탱했던 나라를 이제는 '경제대국 10위 권'을 바라보게 만드는 기적을 바로 여러분의 눈물과 땀으로 성취해 내셨습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 세대는 결코 '386세대'가 아니라 그들로부터 '수구 세대'라고 멸시를 당하고 있는 부모님 여러분이 바로 그 당사자인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여러분이야말로 이 나라 이 민족의 '최고 영웅'들이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사실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학교에서 '반공 교육'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 대신에 전교조 선생들의 일방적인 '반미 교육'만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자기네들만 '청년들을 이해해 주고 존중해 줄 줄 아는 진보적인 정치'를 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선동하는 종북좌파 정치인들의 '세뇌 공작'은 이미 대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 여러분까지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계신다면 도대체 누가 이 아이들을, 이 청소년들을, 이 청년들을 바로 가르치겠습니까?

우리 경향의 학생들과 청년들은 다시 한 번 똑똑히 들으세요.
여러분의 부모님 세대, 지금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시고 걸음걸이조차 힘겨워 하고 계시는 이 부모님 세대는 우리 한민족 5천 년의 역사상 명실 공히 '가장 훌륭한, 최고로 위대한 세대'입니다.
5천 년 동안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렸던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 독립국'으로 세우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이 민족을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면서도 복지 타령을 할 정도로 부강한 나라로 만든 주역이 바로 지금, 오늘날의 청년들이 거리에서 함부로 반말을 해대고 폭행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신 것을 여러분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처럼 국난을 극복하고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룬 우리 부모님들께 국가에서 아예 '단체 무공훈장'을 부여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 어른들께서 저와 여러분 같은 자손들을 위해서 바치신 희생과 남겨 놓으신 축복의 유산은 그 어떤 훈장이나 표창이나 칭찬이나 감사인사로도 갚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고맙고도 훌륭한 선조들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그 분들에게 '수구 꼴통'이라는 욕을 함부로 퍼붓는 자식들이 되면 정말이지 이 나라의 장래는 깜깜합니다.
여러분 청년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명색이 기독신자라고 하면서도 목사가 '반공 설교'를 할 때에 자기가 지지하는 종북좌파 정치가를 비난한다고 화를 벌컥 내면서 예배 시간 도중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 버릴 정도로 '마귀에게 철저하게 세뇌' 당한 사람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축복을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자손이 되어야 그 축복을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과연 어떻게 해서 '요단 동편'의 축복을 얻어 우리 자식들에게 남겨 주셨는지를 꼭 되새겨 봄으로써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얻을 땅의 남은 축복'까지 더 풍성히 누리는 경향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도 남아 있는 사명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부모와 그것을 받아 완수해 내는 자녀 사이에는 진정 '축복의 계승'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피땀으로 이룩해서 남겨 주신 축복을 감사할 줄 알고 그들이 어떻게 그 축복을 얻었는지를 배우고 따르는 후손에게는 당연히 부모 세대보다 더 잘 되는 축복이 따라올 것입니다.
반면에 부모를 멸시하며 그들의 공적을 망각하고 부모의 희생과 열심은 본받지 않고 그 부모가 물려 준 것을 '복지'라는 공짜 떡으로 까먹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자녀에게는 오로지 순식간에 알거지가 될 날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이에서는 '얻을 땅의 남은 것'을 계속 상속시켜 주고 승계 받는 일이 반드시 이어져야 합니다.
부모는 자신의 인생에서 아직도 '남은 것'을 찾아 끝까지 충성하면서 자녀에게도 신앙생활과 교회중심의 삶을 통하여 미래에 하나님께서 더 크게 주실 축복을 바라보며 나아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는 그런 부모를 진정 자랑스럽게 여기고 극진히 존경하여 받들면서 '우리 부모님들은 어떻게 이런 복을 받으셨는가?'를 깊이 깨닫고 그 진실한 신앙과 충성의 자세를 그대로 계승해야 합니다.
그런 '축복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가정은 그 '얻을 땅의 남은 것'을 이미 '분배받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경향의 모든 부모들이 이처럼 신앙생활의 사명을 유산으로 남겨 주고 그 자녀들은 그 분들의 신앙생활의 축복을 전통으로 받아 계속 후대에 전해 줌으로써 그렇게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약속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대대로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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