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정의달] 복 있는 가장, 복된 가정 (시 128:1-6)

첨부 1


복 있는 가장, 복된 가정 (시128:1-6)

국민학교 시절 시골에 살때 성이 난 소가 달구지를 달고 미친 듯 거리를 질주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 시골에는 소가 끄는 달구지(소구루마)가 흔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철 모르던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신나는 구경거리였습니다. 소달구지 주인은 혼비백산이 되어 소를 진정시키려 뒤좇아가고 달구지에 담긴 물건들은 모두 길거리에 떨어져 나뒹굽니다. 성이 난 소가 얼마나 거칠게 뛰는지 달구지가 비포장 도로에서 덜컹덜컹 튀어오르며 먼지를 뽀얗게 일으킵니다. 말이 구경거리지 사실은 대단히 위험한 순간입니다. 미친 소가 힘이 빠져 주저앉아야 겨우 난리가 끝이 나거나 어딘가 들이박고 멈추기도 합니다. 아니면 주인이 가까스로 소를 진정시켜 더 큰 사고를 면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마치 미친 소가 몰고 가는 소달구지처럼 보입니다. 매일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을 들으면서 이런 세상에서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키울 수 있을 지 심히 염려됩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상태로 계속 흘러가도 되는 것일까 두렵기만 합니다.사사시대 이스라엘이 그러하였듯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기 때문에 세상이 갈수록 악을 향해 치닫는 것 아닌가요?내 소가 뛰는 것 아니라고 구경꾼으로 있으려니 어떤 사고가 더 크게 터질까 불안합니다.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세상에 선뜻 나서기가 두렵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믿는 자들이 걱정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읽은 시편 128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보며 정리한 찬송시입니다. 다윗 왕을 비롯하여 성전에서 찬양대로 봉사했던 아삽의 자손들이 지은 찬송시 중에 시편 120-134편은 포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순례하며 불렀던 대표적인 찬송시들입니다.

바벨론에서 고국 땅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열왕기서와 역대기서 등에 기록된 역사를 보며 부모 세대와 조상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는지 옳고 그름을 배웠습니다. 다시는 지난 날 비참했던 멸망의 길을 반복하여 걷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는 가정과 나라와 민족이 되고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이런 각오와 헌신을 고백하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람들이 부른 감사의 찬송들입니다.

시편 128편을 묵상할 때 마음 속에 그림을 그려보면 그 의미가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제를 올렸습니다. 가족을 대표하여 제사 드리러 집을 떠나온 순례객들은 저 멀리 시온산에 자리 잡은 성전이 보일 때 마음이 설렙니다. 긴 여행을 마친 순례객들은 이 찬송을 부르며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갑니다.

1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사람이 이 복을 받습니다.여호와를 경외한다 함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공경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입니다.주일 아침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은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얼굴 대하는 것으로 만족하신 분이 아니라 하루 온 종일, 일주일 내내, 일년 전체와 우리 인생 여정 전체를 함께 하고 싶어 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 가정을 책임진 남편들과 아버지들에게 약속하신 복이 오늘 말씀에 있습니다. 가장의 신앙이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남편과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가 아니고, 자녀교육과 가정 살림이 어찌 돌아가는지 무관심하여 밖으로만 나돌고 어쩌다 얼굴 보이는 손님도 아닙니다.특히 그리스도인 가장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걸으며 가족들을 그 길로 인도하는 책임을 맡은 제사장들이기도 합니다.믿음의 가장들이여, 말씀 위에 든든히 서서 가족들이 주의 은혜와 위로 가운데 살도록 책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화요일 성경공부반에서 선지서를 공부하는 중인데 범죄한 이스라엘의 두 가지 대표적인 죄가 나옵니다. 첫째는 우상숭배, 둘째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이 기준에 따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대로 복을 주시기도 하고 징계도 하십니다.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면 주셨던 복을 거두십니다.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때를 잊고 약한 자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학대하면 따끔한 벌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대답합시다. 선택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어느 쪽을 택하고 있습니까? 내 이익과 편안함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거나 하나님을 다음 순위로 넘기지는 않습니까?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시면 다음부터는 잘 하겠다고 흥정합니다.금년은 어쩔 수 없으니 한 해만 봐주시면 다음 해부터 제대로 순종하겠다고 변명합니다.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눈 딱감고 저지르겠습니다 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닙니다. 우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고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길을 따르는 가장들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첫째는, 그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복입니다. 남자들이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합니까? 현대 가정들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지만 고대 히브리 사회의 가정 경제는 남자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남자들이 밭에 나가 땀흘려 일하여 얻는 열매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여살립니다. 땅은 정직하다고 했습니다. 가뭄과 홍수같은 자연재해와 병충해가 없으면 농부가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두고 일년 농사가 잘 되면 가족들은 편안하게 일년을 지냅니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이 복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누리는 복입니다. 하늘의 우로를 철 따라 내리게 하시고 재해로부터 막아주시며 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하시는 손길이 있을 때 비로소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심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도박이나 투기사업으로 큰 수확을 기대하는 허황된 마음이 아니라 땀흘려 손으로 수고한 댓가를 먹는 정직한 노동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실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가족을 위해 일터에서 힘써 수고하는 교우 여러분 모두 이런 정직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의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 자녀는 어린 감람나무로 비유하였습니다. 포도와 올리브는 밀, 보리같은 곡식과 함께 팔레스틴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들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동반자입니다. 포도송이가 풍성하게 달린 포도나무처럼 바라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기쁨을 주는 아내는 하나님이 남편들에게 주신 복입니다. 한 공간에 살며 쳐다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역겨우며 원수처럼 등지고 사는 부부관계라면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믿음의 아내들이여, 잘 익은 포도송이 같이 달고 싱그러운 삶의 즐거움을 여러분의 남편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 오늘도 땀흘려 수고하는 남편들이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집 안에 있는 아내로부터 이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바랍니다. 남편들이여, 여러분이 이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며 그 말씀이 가르치는 길을 힘써 걸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께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의 가정을 맡기셨으니 나 혼자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왕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 가정의 주인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립시다. 아내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으며 행복한 가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복을 풍성히 누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즐겁게 음식을 먹는 것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현대 가정들은 너무 바쁘게 사느라 이런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뿔뿔이 흩어져 바쁘게 살다보니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을 기회가 없습니다. 아빠와 아이들이 대화할 기회가 없어 모처럼 한 자리에 앉으면 낯선 손님처럼 어색합니다. 한국에서 너무 바쁜 생활을 하다 영국에 안식년으로 혹은 학업과 직장을 따라 오신 가정들은 이 기회를 충분히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처럼 밥상에 둘러 앉은 자녀들을 바라보며 가장으로서 마음껏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가족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먹을 때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는 마음으로 자녀들과 즐거운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밥상에 둘러 앉아 즐겁게 먹고 마시는 우리 자녀들은 마치 묵은 올리브 나무 주위에 막 돋아나 자라고 있는 새싹과 같습니다. 사시사철 푸른 나무 올리브 새 싹은 희망입니다. 묵은 올리브 나무는 갈수록 소출이 줄지만 새로 나온 줄기는 내일을 위한 희망입니다. 아직은 열매가 없지만 때가 되면 장성한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다는 희망으로 자녀들이 자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모든 부모들의 행복입니다.여러분 가정에 희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귀한 선물들이 곧고 바르게 자라도록 많이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을 이끄는 가장들이여, 무엇이 복이고 복이 아닌지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알고 따릅시다.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사는 법을 가르쳐줍시다.유대인의 교육 방식은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물고기를 주면 한 끼 식사가 되지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면 일평생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당장 발 앞에 떨어진 자녀들의 학업과 성적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더 멀리 보이는 영원한 삶에 대한 목표 또한 소중함을 알게 하십시다.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전달하기 원하는 부모라면 먼저 부모가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앞에 놓였다는 진리를 분명히 믿는 부모라면 하나님 두려워하는 삶을 자녀들에게 꼭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4절에서 시인은 다시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이런 복이 있습니다.성전에 올라온 남자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자신들이 걸어 온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결단을 합니다. 축제가 마치는 날 제사장은 사람들을 각 가정으로 돌려보내며 또 축복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을지어다’ 하나님의 복은 이제 각 가정의 가장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들이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달렸습니다. 순례객들은 이 축복을 마음에 품고 가정과 일터로 내려갔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 부분 5절과 6절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런 복을 시온에서 주셨습니다.시온은 성전이 자리 잡고 있는 다윗성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읍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성전을 세우게 하셨고 그 성전에서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거기서 복을 약속하시고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였던 예루살렘이 우상숭배로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를 받을 때 예루살렘은 더 이상 평화의 성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을 떠나셨을 때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예루살렘은 파괴되었고 성전은 무너졌습니다.이스라엘은 이방 민족들 가운데 하나와 같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성전이라는 장소에서 하나님을 뵈었고 복을 받았다면, 신약의 성도들은 성전의 주인이며 그 몸이 곧 성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민족과 혈통을 초월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예배하는 자들을 만나주십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하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였다면, 신약의 성도들과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합니다.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새로운 이스라엘이며,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새로운 의미의 이방인입니다.가정의 신앙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이여, 여러분의 신앙이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을 향해 바로 걷고 있습니까?여러분의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고백하는 거룩한 교회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들이 모이는 성전 제사는 필연적으로 예루살렘의 복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성전 제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드려지고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선포된 시온의 복은 각 가정으로 풍성하게 흘러갔습니다. 매년 성전을 방문할 때마다 평화로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시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복을 의식하며 삶의 현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이루어 가는 힘을 얻었습니다.가정도 행복하고 산업에도 복이 넘쳤습니다.성전은 이렇게 신앙 공동체 이스라엘의 중심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 무엇입니까?여러분의 가정을 평안하게 이끄는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복의 근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중심에 계시고 예배하러 모이는 이 시간이 삶에 위로와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축복하며 찬양하는 이 자리가 여러분 삶의 중심이 되기 바랍니다. 주일예배 뿐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과 삶의 자리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예배가 되기 바랍니다. 

내가 사는 날 동안 예루살렘의 평화와 번영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자식의 자식을 보는 복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전쟁과 재난이 끝없이 발생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복중의 복이었습니다. 그냥 오래 살며 손자 손녀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의 신앙이 대를 이어 자손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보는 복입니다.바벨론의 포로라는 쓰라린 경험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평화와 안정된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으니 자손대대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이 몸담고 예배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하고 날마다 부흥하는 복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머무는 기간 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또 다른 가정들과 우리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복과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시편 128편에서 노래하는 복은 가정의 복에서 시작하여 더 큰 공동체인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복으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그 복이 있고 없고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길로 걷는 사람들의 삶에 달렸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가정들이 사회과 국가를 위해 책임져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미친 듯 달려가는 세상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청와대와 국회와 학교와 기업에 기독교인의 숫자가 부족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험악하고 미쳐 날뛰듯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바로 산다면 내 가정 뿐 아니라 교회와 국가를 평강으로 이끌게 됩니다. 가정을 이끄는 가장 여러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거리에서 내가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따라갑시다.그리하여 시편 128편이 약속하는 이 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