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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과 신앙인격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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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과 신앙인격 (엡 4:25-3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장 25∼32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2천년 전의 역사적 인물로만 전하고 기적은 없다고 말을 합니다. 또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음뿐만 아니라 응당한 행위를 해야 한다고 기형적인 복음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은 주님을 피해서 도망치는 일, 주님을 거역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생활을 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자비와 긍휼로 우리를 붙잡아서 우리를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회개시키고 예수를 믿도록 도와주셔서 순수히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것하고 신앙적인 인격의 성장하고는 대단히 틀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공로없이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성장하는 것은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자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부모의 마음에 큰 부담과 걱정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자라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굉장히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보았을 때 한눈에 알아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과 행실이 예수님을 닮을 때 비로소 기뻐하십니다. 

1. 말씀으로 변화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됩니다. 무엇을 보고 예수님을 닮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열두 제자처럼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듣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묵상하므로 마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며 마음이 새롭게 창조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는 말씀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변화가 다가오고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떡을 먹고 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먹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고 기록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입으로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길이 평탄하게 되고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할 뿐 아니라 말씀을 외우는 것이 굉장히 좋습니다. 

앉으나 서나 시간만 있으면 말씀을 외워서 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내가 말씀을 마음에 외우고 입으로 시인하면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보통 말씀과 다른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에 반드시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로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안하고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선한 일을 행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때 말씀이 들어와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힘을 주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근육을 튼튼히 하고 심폐기능을 강화하는 운동으로 몸을 연단해서 저항력을 길러야 되는 것처럼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신앙의 근력이 생겨서 힘이 생기고 저항력이 생겨 능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장 23절은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세상 씨앗은 땅에 심으면 사라지지만 말씀은 마음속에 들어오면 언제나 살아있고 운동력 있어 하나님의 능력을 주는 원동력으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2. 분명한 결심과 목표

인격적인 신앙인이 되겠다는 결심과 목표가 뚜렷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냥 예수만 믿고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도 변화되어야 하겠다. 신앙적으로 인격을 얻어야 되겠다’라는 결심과 목표가 확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는 품성을 그대로 태어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 느린 사람, 또 마음이 좁은 사람, 넓은 사람 등 태어날 때부터 그런 품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만 신앙의 인격이 자라고 그리스도를 닮아 변화받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인격을 얻는 것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태어날 때 받은 품성은 부모로부터 유전을 받아 태어나지만 신앙적인 인격적 품성은 노력하고 애써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난 이후에 인격적 성장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세속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주인을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이 세상으로 가득 차 있다가 세상을 쫓아내고 새로운 주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으므로 잘 섬기고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 앞에 엎드려서 신발을 벗어 놓고 종으로서의 헌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주인을 한쪽 구석에 모셔 놓고 여전히 세상 것들이 가득 차 있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고 세상의 쾌락에 젖어서 산다면 이러한 사람은 형식적으로만 신앙을 얻었지 성장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로 10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옛날에는 마귀에 속한 어둠이더니 이제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열매가 맺어지는데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이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진실해지면 빛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6장 24절에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기록합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상충됩니다. 그럴 때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됩니다. 자기를 못박고 이 세상을 부인하고 그리고 주님을 따라가면 한편으로는 조금 섭섭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섭섭하더라도 나를 부인해야 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온당한 일이지만 노력과 절제를 해야 되고 인내와 투쟁을 해야 됩니다.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면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의 도우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됩니다. 보통 때 자기가 잘 나갈 때는 잊어버립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를 건너갈 때 좋았습니다. 푸른 하늘, 조용한 물결, 순풍이 다가오니 기분이 좋고해서 예수님이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혼자 내버려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대화해 주는 사람이 없어 배 구석에서 손베개를 하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물이 넘치고 넘쳐서 배에 물이 스며들어와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니까 제자들은 결국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고통에서 건져줄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님!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사오니 우리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주님께서 일어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니 즉시로 조용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이 순탄하고 좋을 때는 마음과 눈이 세상에 있고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고통이 있어야 주님을 찾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들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예수님을 찾지 않는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면 주님밖에는 기댈 곳이 없으니까 그제야 주님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로 10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기록합니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이 강하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나를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하다는 것은 내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고난을 지날 때 약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가 약해져 흔들릴 때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 대신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기도해 주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못하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우리를 위해 기도까지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자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와서 계시므로 성령과 인격적인 교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에 성령님은 돕기 위해 와 계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면 우리 손해입니다. 성령과 교통하면 예수님의 은혜를 퍼부어 주시고 그 교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체험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교통 안하면 예수님의 은혜도 사랑도 체험하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과의 교통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의 감정도 달라지고 소원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감정과 소원과 생활이 달라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4. 세상 언어와 천국 언어

우리는 세상의 언어와 천국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언어는 마음의 표현의 도구입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말을 통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 언어는 세속의 길, 천국 언어는 천국문화 등 가슴에 품고 있던 것을 밖으로 내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4절에서는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과 성품은 동반자입니다. 흉악한 말을 하고 악한 말을 하고 상처 입히는 말을 하면 그 사람도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고운 말, 아름다운 말, 사랑의 말, 깨끗한 말, 신령한 말을 하면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되고 자기 친구도 환경도 변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잠언 16장 24절에는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은 자기, 우리를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로 32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의 말을 통해서 이렇게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악한 말을 하고 남을 모욕하는 말을 하면 마음도 그렇게 변화되고 이웃 사람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모든 악의와 함께 비방하는 말과 악독과 분냄과 떠는 것을 버리고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말을 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것을 받아서 우리도 그렇게 변화시키고 이웃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말이 우리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좋다고 말하면 나도 좋아지고 이웃도 좋아집니다. 스스로 나쁘다고 말하면 나도 나빠지고 이웃도 나빠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못살겠다고 하면 나도 못살고 이웃도 못살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밉다고 하면 나도 미워지고 이웃도 미워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약하다고 말하면 나도 약해지고 이웃도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고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은 우리의 인생에 굉장한 변화의 힘과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은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 우리 뇌가 다르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미국 심리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감사의 과학적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하고 말하면 뇌의 왼쪽에 있는 부분이 활성화되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컴퓨터의 ‘재설정(reset)’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에몬스 박사는 12세에서 80세까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감사 일기를 매일 또는 매주 적도록 했고, 다른 그룹은 그냥 아무 것이나 적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 후에 조사를 해보니까 감사 일기를 쓴 사람 중 4분의 3은 행복해지고 수면이나 일, 운동 등에 더 좋은 성과를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면 그만한 변화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과 성품은 동반자입니다. 평소에 고운 말, 아름다운 말, 사랑의 말, 깨끗한 말, 감사의 말 등을 하면 얼굴도 달라지고 표정도 달라지고 환경도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우리 인격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결과는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천국에 가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 동안은 주님 축복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지만 이것은 영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삶이 끝나고 천국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를 본받는 인격자가 되면 그 인격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는 오직 이 땅에 살아 있을 동안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금세와 내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면 변화받고 온전한 신앙적 인격자로 자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를 믿고 이 땅에서 은총을 받을 뿐 아니라 변화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예수를 닮은 신앙의 인격자가 되기를 목표로 하고 노력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지만 구원은 값없이 받으나 인격적인 변화는 노력으로 받는 것입니다. 노력은 우리가 힘쓰고 애써야 되고 우리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도와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성령을 의지하고 노력하고 애쓰므로 인격적인 변화를 받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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