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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아버지의 옷을 입은 자 (민 20:23-29, 마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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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옷을 입은 자 (민 20:23-29, 마 15:4-6)

토정 이지함(1516-1578)선생은 '토정비결'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조선시대의 선비입니다. 그가 충남 아산(牙山) 현감 시절에 아산 현감관아 앞에 ‘걸인청’을 세웠습니다. 당시의 관리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토정 선생은 이 땅에 가난한 자 없어야 한다고하여 걸인청을 세웠습니다. 아직도 아산에는 그 건물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가 초례(醮禮, 전통혼례)를 치른 다음날 비단도포를 입고 외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올 때는 옷을 입지 않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가족이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그가 홍제원 다리를 지나가다 거지들이 추워 떨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새 비단도포를 벗어서 세 조각으로 나누어 걸인들에게 입혀 주고 왔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자신의 옷을 벗어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자신의 옷을 벗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다 주는 것입니다. 
  
옛날 양반에게 옷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굶더라도 의관(衣冠)은 절대 흩트리지 않는 것이 양반의 예의입니다. 외출 때가 아니라 방안에서도 의관은 잘 정제하고 있는 것이 양반입니다. 그런데 양반이 도포를 잘라서 다 주고 벗은 채로 온다는 것은 양반의 체모를 구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의식주는 생존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 의(衣)가 가장 중요합니다. 옷은 아무렇게나 입지 않고,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옷을 받아 입었다는 것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아무개의 옷을 받아 입었다는 것은 그 분의 뜻을 전수함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 옷을 주더라도 아무 옷이나 주지 않습니다. 누구의 옷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아무의 옷을 받아 입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40에는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합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라고 합니다.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합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많은 것들을 제쳐두고 왜 옷을 예로 들었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옷이 그만큼 중요한 삶의 도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옷을 벗어준다는 것은 더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옷을 벗어 주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선물입니다. 자신의 힘과 혼과 정을 다 준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사례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경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친구 관계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었고 왕위계승자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8:4에는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고 합니다. 극진한 사랑을 겉옷을 벗어주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의 제자 엘리사와 마지막 작별을 합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스승을 따라가면서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요단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전 엘리야는 겉옷을 엘리사에게 주었습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엘리사는 물을 치고 요단을 가르고 요단을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한 후에 호르산에 왔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론은 그 조상에게 돌아가고”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아론, 너는 죽어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 엘르아셀을 데리고 호른 산에 올라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고 하십니다. 아론이 죽을 때가 되자 하나님은 아버지의 옷을 아들에게 물려주어 입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옷을 입은 엘르아살입니다. 아버지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버지의 옷을 입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육적 가정을 계승합니다. 

26절에는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고 합니다. 아론의 옷이란 대제사장의 옷입니다. 옷을 직무를 의미하는데 대제사장의 옷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말합니다. 출애급기 28장에는 대제사장들의 거룩한 봉사를 위하여 반드시 이 복장을 입으라고 합니다. 그 옷을 벗겨 입힌다는 것은 대제사장직을 전수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직무를 전수하는 것은 육적으로 아버지를 계승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업무를 아들에게 전수하기를 원합니다. 육적으로 부모님을 계승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이름이 제일 많이 나오는 책입니다. 약 35,000명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름에는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버지라는 표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목수 일을 순종하여 하였습니다. 십자가상에서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할 만큼 육적 부모의 중요성을 깨우치셨습니다. 디모데는 그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 바울도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가정의 전통을 잘 이어받았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 부모의 이름, 아들의 이름 그리고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적 부모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26:61에는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고 합니다. 제사장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다른 불을 드리다가 큰 두 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행하게도 큰 아들들이 아버지를 계승하지 못하였습니다. 
  
멀리 볼 것 없이 아담의 큰 아들인 가인도 가업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계보를 잇지 못했습니다. 아담의 계보는 셈의 계보로 가문이 계승됩니다. 
  
사사 기드온의 집도 그랬습니다. 첩의 소생인 아비멜렉이 자신의 이복동생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막내 동생 요담이 피신하여 살아남아 백성들에게 나무왕의 비유를 말한 내용이 성경에 있습니다. 아무리 장자이지만 집안을 계승하지 못한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도 그 아들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것을 보시고 그 왕위를 빼앗아 다윗에게 돌리셨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들 가운데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왕이 많습니다. 모든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하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육적으로도 아버지의 가업을 계승하는 것은 그렇게 흔한, 누구나 다 하는 일은 아닙니다. 육적으로 아버지를 계승하는 일은 중요하고,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아버지를 계승하려고 하지만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조선왕조의 임금을 보세요.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를 내려오면서 적장자 계승이 원칙이었지만 그러나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한 왕은 세종 비롯한 아홉 왕밖에 없습니다. 적장자라면 누구나 다 왕위를 바랄 것이고, 부왕도 적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하려고 할 것입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왕이 아들 세자를 죽인 경우도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영조는 자기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두었다가 죽였습니다. 영조는 아들이 아닌 손자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가 정조입니다. 
  
이름난 정치, 경제계의 인물 가운데도 장자가 아버지의 업을 육적으로 계승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인 재벌총수도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장자라 잇지 못하고 지금 장자와 현 재벌총수가 부끄러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육적으로 계승하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헝거리 부다페스트에 성 스테파누스 성당이란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의 단 중앙에는 스테파누스 왕의 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없고 사람의 상이 있는 사람 중심의 교회입니다. 스테파누스 왕은 자신의 아들이 죽자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계승하지 않으려고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이런 포악한 왕이지만 교황에게 돈을 주고 성자 칭호를 샀습니다. 자신이 폐위된 다음에 기독교가 몰락할까봐 그렇게 하여 교회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상을 세웠답니다. 아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계승하고자 하는 열망은 모든 아버지에게 다 있습니다. 못된 왕이지만 기독교의 몰락은 원치 않았다니 기특합니다. 
  
옷은 우리의 성품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그분의 옷처럼 솔기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통옷으로 이어 붙인 데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통일과 연합하여 나누인 데가 없이 온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천국에서 지상까지 통으로 짠 솔기가 없는 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이어받은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의 옷을 온전히 이어받기를 원하십니다. 아버지를 이어받아 이 땅에 오셔서 솔기 없는 삶을 사신 주님처럼 육적으로 우리 부모님을 잘 계승하고 이어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육적으로 잘 계승하여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영적 사명을 계승합니다. 

28절에는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라고 합니다. 출애굽할 때 아론의 나이가 83세였습니다. 그가 죽을 때 123세였습니다. 출애굽 40년 5월1일에 아론이 세상을 떠났습니다(출 33:38).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40년 동안 아론은 대제사장 역할을 하였는데 이제 사명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할 때 80세였고, 세상을 떠날 때 120세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생활의 지도자로 사명을 마치고 죽은 다음 여호수아에게 임무를 인계한 것처럼 아론도 40년 동안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이제 아들에게 그 임무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대제사장 아론은 그 임무를 마치고 죽었지만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중보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아론의 일시적인 대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대조가 됩니다.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그 아들 엘르아셀이 계승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대제사장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하게 계승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에봇에 대한 말씀이 아주 엄격하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이 옷을 지어 대제사장 아론에게 입혔습니다. 에봇은 화려한 예복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우림과 둠밈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정확한 뜻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빛’과 ‘완전’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합니다. 대제사장직은 빛이며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직은 이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직을 계승하는 것도 아주 고귀한 일입니다. 
  
엘르아셀의 두 형인 나답과 아비후는 대제사장직을 계승해야 하지만 죽었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이 불이 아닌 다른 불을 제단에 드리다가 죽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온전한 영이 아닌 잡된 영으로 예배한 것입니다. 두 형이 죽고 동생인 엘르아셀이 아버지의 영적 사명을 계승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영적 사명을 계승하는 것은 영광이며 보람입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계승하는 것은 바른 일이며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잘 계승하여 아버지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더 좋은 일꾼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아버지의 믿음을 잘 못 계승한 사람도 있고, 심지어 배반하고 믿음을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적 가업을 이어받은 것은 크나큰 영광이고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버지를 계승하여 저의 형제 가운데 제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삼형제 가운데 제 아우가 늦게 목사가 되어 이제 세 아들 중에 두 아들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형님은 교회 일이 최우선인 정말 좋은 장로님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목사의 직은 제가 이어받았습니다. 

제가 목사로 안수 받을 때 저의 선친께서 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 때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유품 몇 가지를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책이나 다른 유품들은 다 대구제일교회와 영남신학대학교에 다 기증했는데 이 것만은 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생 쓰신 설교노트와 가방 하나와  잠옷 하나입니다. 아버지 양복은 제 몸에 맞지 않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잠옷을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도 그 잠옷을 가지고 있는데 입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새롭습니다. 아버지의 영적 사명을 계승하는 것은 아버지에게나 나에게나 좋은 일이고 영광된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3:5에는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합니다. 흰옷은 누구의 옷입니까? 예수님의 옷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흰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흰 옷을 입은 천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의 옷을 입고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과거의 후손은 바로 우리입니다. 또한 우리는 미래의 부모입니다. 전대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일을 이어받은 후계자이며, 후원자입니다. 우리가 씨 뿌리지 않는 숲에서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전대를 계승하고, 후대에게 계승해주는 그 존재의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계승을 잘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사야 22:21에는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옷을 입고 부모의 육적 영적 가업을 계승하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자녀들은 참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국수집을 몇 대가 계승한 가문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하시던 가업을 자랑스럽게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 5대가 목사가 되어 목회의 가업을 이어온 가정이 있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전 학장이신 박창환목사님의 손자가 목사가 되어 5대가 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대대로 신앙의 가업을 이어오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육적인 가업을 잘 계승하면서 영적인 가업 계승하기를 소홀하게 생각하고,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육적인 가업의 계승보다 영적인 가업의 계승이 더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5:6에는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라고 합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명령을 육적으로, 영적으로 잘 따르고 부모를 잘 계승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옷을 잘 받아 입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한국전쟁이 한참인 어느 추운 겨울 날, 만삭인 어머니가 아기를 낳으러 집으로 가다가 길에서 진통이 시작되어 아기 낳을 곳을 찾다가 다리 밑에 자리를 펴고 혼자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기가 추울까봐 어머니는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 아기에게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산후 고통과 추위에 죽었습니다. 어느 미군 장교가 다리 위를 지나다가 자동차의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부대에 연락한 후 주위를 서성대고 있는데 어디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미군은 다리 밑을 내려가 보니 어머니는 죽었고 아기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뜻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미군은 아기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였습니다. 아기가 자라 자기의 뿌리가 궁금하였습니다. 미군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마음에 품고 한국에 와서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아들은 자기 옷을 벗어 어머니 무덤에 덮어주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옷을 벗어 무덤에 덮어주었다는 것은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옷을 벗어주는 것은 극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옷을 벗어 아들에게 주고, 아들이 아버지의 옷을 입는 것은 사랑 이상의 소명을 의미합니다. 옷을 벗어 준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옷을 받아 입는다는 것은 사랑으로 아버지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존경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며, 존경이며, 계승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27:16에는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멘"으로 이 말씀을 받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부모의 가업을 기쁨을 계승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옷을 받아 육적으로 가정을 계승하고, 영적으로 제사장의 직을 계승한 엘르아셀을 본받는 우리 모든 자녀,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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