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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눅 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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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대통령 선거 때에 모 정당의 후보가 이런 구호로 선거운동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셨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만약에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무엇 때문인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이 부족하고, 돈이 부족하고, 지식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인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충분하게 채워지면 인생이 정말 행복할까?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인생이 행복해질까?

어느 목사님이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재벌회장을 만나게 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는 그에게 “회장님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행복이라구요?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늘 불안하고 초조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남부럽지 않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이분도 불안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으려고, 불안을 떨쳐보려고 애를 쓰지만 별 효과가 없다. 여기 저기 여행을 해보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마약에 빠지기도 하고 도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는 평안을 얻거나 행복을 얻을 수 없다. 부족한 것을 아무리 채워보아도 만족하기 못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계속 들어가기만 한다.

인생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술 취한 사람이 어두운 밤에 가로등 불빛 아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경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어디쯤에서 떨어뜨렸느냐?”고 했더니 “저쪽에서 택시에서 내릴 때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거기서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술 취한 사람은 “그래도 여기는 가로등이 있어서 밝으니까 찾기 쉽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행복을 찾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안경을 떨어뜨린 곳이 아닌 곳에서 안경을 찾듯이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안경을 떨어뜨린 곳으로 가야 안경을 찾을 수 있듯이, 행복을 잃어버린 원인을 찾아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밖에 놀러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린 아이에게는 아무리 좋은 장난감을 주고 맛있는 과자를 주어도 소용없다. 집으로 돌아가야 안심할 수 있다. 아빠엄마와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 나왔다가 아빠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에게는 다른 어떤 것도 만족이나 평안을 주지 못한다. 아빠엄마를 다시 찾고 만나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생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집을 떠났다가 갖은 고생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집에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가 죽으면 어차피 아버지의 재산 중에 일부가 자기 몫이 될 것인데 미리 나누어 달라는 것이었다. 작은 아들이 워낙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재산을 나누어주었고, 며칠 안 되어 이 아들은 받은 재산을 다 팔아서 돈을 만들어서 먼 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아들은 외국에서 그 재산을 가지고 사업을 하거나 장사를 한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노는데 쓰면서 얼마 안 가서 가지고 온 돈을 다 탕진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어서 졸지에 거지꼴이 되고 말았다. 겨우 어느 집에 돼지치기로 들어갔지만 워낙 흉년이라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에게 먹이로 주는 나무열매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야 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아들은 떠나온 고향집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아버지 집에 가면 일하는 하인들도 배불리 먹는데 나는 여기서 이렇게 굶다가 죽겠구나.”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이제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야겠다. 가서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으니 감히 아들이라고 할 수 없으니 나를 일군으로 받아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멀리서 먼저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서 끌어안고 집으로 맞아들인다. 비록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꼴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그저 살아서 돌아온 것만도 고마워서 아들을 끌어안고 환영한다. 그리고 아들을 씻기고 새 옷을 입히고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벌이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하신 이야기인데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은 하나님의 품이요 천국을 가리키고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왜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인가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다. 즉 사람이 이 작은 아들처럼 하나님의 품을 떠났기 때문에 행복과 평안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비유해서 말씀하셨는가? 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가? 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고 그리고 사람을 만드셨다. 그리고 사람에게 복을 주셨다. 모든 것이 풍족한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고,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관리하게 하셨다. 그러나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을 잃어버렸다.

사람은 마치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받아서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가버린 작은 아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작은 아들은 집을 떠나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면 아버지의 간섭도 없고 속박도 없어서 자유스럽게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결과는 정반대였다. 아버지가 없이 혼자 살아가는 삶은 불안하고 흔들렸고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것이다.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많이 하고 이런 것은 하지 말고 저런 것은 하라고 해서 자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치 이 작은 아들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더 불안한 삶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행복하려면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오늘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나눠받은 이아들은 먼 나라로 가서 모든 것을 순식간에 다 탕진하고 거지꼴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없었고 일자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돼지치기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를 빼앗아 먹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귀공자로 살던 아들이 졸지에 밑바닥에 떨어져서 거지꼴이 되고 돼지 같은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자유롭게 살아보려고 아버지의 품을 떠났지만 오히려 더 불편하고 더 힘들고 더 부자유스럽게 되고 말았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더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돼지우리에서 지내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집에 살 때가 더 좋았고 아버지의 품에 있을 때가 더 편안하고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드디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일어선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멀리서 그를 보고 달려 나왔다. 거지꼴로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불쌍히 여겼다고 했다. 아버지의 속을 썩이고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아들이었지만 그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달려가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우리의 과거는 전혀 묻지 않으시고 잘못도 전혀 따지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기쁘게 받아주신다.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는 감히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일군으로 여겨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목욕을 시키고 새 옷과 새 신발을 신겼다. 그리고 그 아들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는 아들의 권리가 회복되었다는 표시이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기 몫을 받아갔기 때문에 더 이상 아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나간 일은 전혀 묻지 않고 다시 아들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다. 

이처럼 우리가 비록 지금까지 하나님을 떠나 살았더라도, 과거에 실수와 잘못과 허물이 많이 저질렀더라도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오기만 하면 기쁨으로 우리를 받아주신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주신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딸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신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가 주시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복된 삶을 살게 하셨던 그 축복이 다시 회복되게 해주시는 것이다.

오늘 읽은 집을 나간 아들 이야기 앞에 비슷한 두 가지 이야기가 먼저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잃은 양을 찾아오는 목자의 이야기이다. 백 마리 양을 기르는 목자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들판에 그대로 두고 그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갔다. 그리고 찾은 후에는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큰 잔치를 벌였다. 또 하나는 드라크마 동전을 잃어버린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 여인은 시집 올 때 지참금으로 가지고 온 아주 비싼 열 드라크마 동전 세트 중의 하나를 잃어버렸다. 당시 한 드라크마는 양 한 마리 값이었다고 한다. 이 여인도 집안을 다 뒤져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고는 친구와 가족들을 불러서 큰 잔치를 벌였다. 오늘 읽은 이야기에서도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전혀 야단을 치지 않고 오히려 소를 잡고 큰 잔치를 벌였다. 

생각해보라. 양 한 마리를 찾았다고 잔치를 벌이는 것이나 동전 하나를 찾았다고 잔치를 벌이는 것은 오히려 잃어버렸던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기쁨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사람들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뜻이다. 

집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도 아버지는 살진 소를 잡고 큰 잔치를 벌이고 말했다.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들을 다시 찾았는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고 아들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던졌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값비싼 대가를 치루셨다.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러주셨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우리를 다시 받아주실 것이다. 이제 우리 아버지의 품에서 평안을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주실 것이다. 

혹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왜 교회에서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느냐고 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맘대로 집을 나가버린 것처럼 큰 죄가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나 마음대로 산 것처럼 큰 죄가 어디 있겠는가? 이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마음대로 죄를 지으며 살지 않았던가? 그가 아버지의 집에서 계속 살고 있었더라면 그런 죄는 안 지었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난 것이 죄를 짓고 살게 된 원인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셔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게 해주셨기 때문에,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들딸이 되게 해주신다.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인도해 주신다.

오늘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품을 떠나 집을 나갔던 작은 아들의 삶이 언제부터 바뀌게 되었는가? 그가 아버지 집으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때부터이다. 결심한 대로 즉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간 때부터이다. 그때부터 그의 고통스런 인생은 달라졌다. 실패한 인생이 성공한 인생으로 바뀌었다. 불행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었다. 불안한 인생이 평안한 인생으로 바뀐 것이다.

얼마 전 스펀지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우는 아기들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중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었다. 우는 아이들은 가글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들었던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와 가글하는 소리의 주파수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본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면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행복하게 된다. 본래 하나님과 함께 살았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야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철학자 파스칼은 사람에게 절대 공허라는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에만 참된 평안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올 때에만 참된 행복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 시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디트로이트 시외에 살고 있는 유명한 정비사가 아침에 출근하는 도중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 차를 길옆에 세워 놓고 고장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차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원인은 발견할 수 없고 날씨는 점점 추워져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다. 그때 지나가던 승용차 하나가 멈춰 서더니 노신사 한 분이 차에서 내려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이 정비사는 속으로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유명한 정비사인 내가 못 고치는 차를 자기가 고치겠다니’라고 생각하며 노신사를 보았다. 노신사는 차의 몇 군데를 만지더니 시동을 켜 보라고 했다. 그 정비사는 별 기대감 없이 시동을 켰는데 너무나 쉽게 시동이 쉽게 걸렸다. 이 정비사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대체 저 노신사가 누구인가? 나도 고칠 수 없었던 차를 손쉽게 고치다니...’ 궁금해 하는 그에게 노신사는 명함 한 장 주고 떠났다. 그런데 그 명함에는 놀랍게도 ‘헨리 포드’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그가 그 자동차를 만든 자동차 왕 헨리 포드였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나를 만드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주와 역사와 주인이시고 주관자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람들이 못 고치는 인생이라도,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라도 하나님은 다 고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나의 삶을 새롭게 해주신다.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고 아버지의 품을 떠난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시고 기쁘게 맞아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복되게 해주신다. 

내가 할 일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른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몸을 돌려서 하나님께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라.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품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새로운 삶을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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