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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삶의 길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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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떤 부자가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다. “아무 걱정근심 없이 정말로 행복하게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만 불을 주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내가 있어서, 남편이 있어서, 부모님 때문에, 자식 때문에, 직장 때문에, 건강하기 때문에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그리고 만족하게 산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이 부자에게서 만 불이라는 돈을 받아가지 못했다. 그 부자가 마지막에 던진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만족하면 산다면 왜 만 불이라는 돈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만약에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무엇 때문인가?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걱정과 근심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걱정,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 가정에 대한 걱정, 자녀에 대한 걱정 등이 끊이지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걱정근심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는 이 걱정과 근심의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부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삶에 필요한 것들을 내가 다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것을 즉시 채울 수 없기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있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걱정과 근심의 원인을 한 마디로 하면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불안인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내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고 내일에 대해서 불안하기 때문에 오늘 걱정하고 근심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불안하지 않을 것이고 불안하지 않다면 걱정하거나 근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미래에 대한 불안은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즉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죽음이 전부인지 또는 죽음 이후에 어떤 다른 세계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그 불안감 때문에 끊임없이 걱정하고 근심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걱정과 근심을 벗어나려고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기려고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한다. 그렇게 해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또는 일에 빠져서 근심과 불안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서 쾌락에 빠지기도 한다. 술이나 섹스나 마약 등에 빠지기도 하고 또는 오락이나 놀이에 빠져서 걱정과 근심을 벗어나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미래를 부정하기도 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는 것이라고, 인생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내세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노력들로 불안을 떨치고 근심과 걱정을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의 부족을 채우면, 많은 능력을 가지면 그리고 지식을 채우면 내일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것으로 죽음을 이길 수 있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다 누렸다고 하는 솔로몬 왕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 최고의 권력을 가졌었고 최고의 지혜와 지식을 가져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 부귀영화도 극에 달해서 안 가진 것이 없었고 안 해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아내도 천명이나 있었다. 아무튼 그는 눈에 든 것은 무엇이든 다 해 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이가 들어 남긴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이 모든 것들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다”고 했다. 부족한 것이 없고 힘이 넘치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불안을 떨치고 걱정과 근심을 벗어날 수 있을까? 불안에서 벗어나고 걱정근심에서 벗어나려면 확신을 가져야 한다. 즉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을 가져야 한다. 확실한 것이 있고 확실하게 믿는 것이 있으면 불안하지도 않고 걱정 근심할 필요도 없다. 이 확신이 없으면, 믿음이 없으면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불안하게 된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다. 그냥 근심하지 말라고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근심을 벗어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것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무엇이 가장 확실한 것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다. 왜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는가?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안과 걱정근심을 이기기 위해, 내 앞에 닥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보다 가진 것이 많고 나보다 힘이 강하고 나보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다가 실망하고 낙심하게 되는 것은 그 역시 나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고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시기에 그분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다. 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셨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수님은 우리의 불안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그리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2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더 강력하고 분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하신다. “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고 죽음 이후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천극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는 뜻이다.
왜 그런가?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먼저 “내가 곧 길이다”라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그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그리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이다. 모든 길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또 “내가 곧 진리다”라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이 참된 것이고 무엇이 진리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진리를 믿는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곧 생명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생명을 얻는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육체는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가리킨다. 이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하나로 묶어서 한 마디로 표현하면 “참 삶의 길, 참 생명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우리를 살게 하는 참된 길이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인생의 불안에서 벗어나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영원히 살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는 이란성 쌍둥이 이야기이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한 아이는 여자고 한 아이는 남자이다. 편의상 여자아이를 동생이라고 하고 남자아이를 오빠라고 하자. 어머니 자궁 속에서 하루는 동생이 오빠를 불렀다. “오빠, 난 말이야, 우리가 태어날 다른 세상이 지금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오빠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야, 무슨 소리야, 알지도 못하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해”하고 화를 냈다. 동생도 고집이 셌다. 또 오빠를 물고 늘어졌다. “오빠, 아무리 그래도 나는 분명히 무언가 있다고 느껴. 여기보다는 훨씬 더 넓고 환한 세상이 있다고 믿어져.” 오빠가 진짜로 화가 났다. “도대체 말 같지 않은 소리 왜 하니? 여기는 그런 데로 살기 좋은 곳이야. 좀 좁고 어둡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따뜻하지 않아. 그리고 탯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필요한 것 다 생겨. 우리가 만족하기만 하면 여기는 좋은 곳이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니?” 
동생은 하도 오빠가 화를 내니까 기가 죽어서 가만히 있다가 조금 지나서 또 오빠를 불렀다. “오빠 난 아무래도 엄마가 계시는 것 같아. 엄마가 틀림없이 계시는 것 같아.” 오빠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너 엄마 봤어? 나도 못 봤어. 보지도 못하고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 동생은 움찔하고 입을 다물었다. 한참 후에 또 오빠를 불렀다. “오빠 그런데 가끔 꽉 죄어오는 느낌이 있잖아. 어떤 때는 기분이 나쁘고 어떤 때는 아프기까지 해. 오빠는 안 그래? 그런데 꽉 죄어오고 가끔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엄마가 계시고 넓고 환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라는 신호같이 느껴져. 오빠는 안 그래?” 오빠는 “멍청이 같이 자꾸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하고 동생의 입을 막아버렸다. 

누구 말이 옳은가? 동생 말이 옳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 우리의 삶의 전부가 아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 새로운 세상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육신이 죽으면 또 다른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곳을 천국이라고 하고 그곳에서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한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곳에 어떻게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불안한 것이다. 죽음 이후에 그곳에 들어갈 자신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하늘나라, 천국 그곳이 우리의 고향이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고 하나님에 의해 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존재들이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지내면 자궁 밖으로 나와야 하듯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을 살면 이 세상을 떠나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떠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하늘나라를 우리 힘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왜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리고 천국도 역시 거룩하고 의로운 곳이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만이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죄이다.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은 사람은 모두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 중에 전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아무도 없다. 영국에서 한 청년이 장난삼아 런던의 유명인사 20명에게 전보를 보냈다. “긴급전문: 모든 것이 들통 났으니 속히 피신하기 바람.” 그랬더니 모두가 거의 같은 시각에 런던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는 스스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지은 죄 값을 대신 치러 주셨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이제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유일한 참 삶의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때에 내일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고 걱정근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예수를 믿을 때에 인생의 근본적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걱정과 근심을 이기게 되면 이 땅에서의 삶도 행복하게 평안하게 살 수 있고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예수를 믿으면 놀라운 변화가 마음에서부터 일어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가 돌아갈 고향이 있구나.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으로 가는구나”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고 또 내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 용서받았다 하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기쁨의 샘이 솟아나게 된다. 불안하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게 된다. 사람들을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된다. 내 앞에 있는 고통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보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자랑하던 것들, 그것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붙들고 있던 모든 것에서 내 마음이 자유하게 된다. 참 만족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노후에 기독교 신앙에 돌아왔는데 그러면서 그는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겼다. "나는 평소에, 특별히 젊었을 때 교회를 경멸했다. 교회를 무시했다. 그러나 내 조국 독일이 어두워 졌을 때, 그리고 나치의 핍박 아래 있었을 때 내가 경멸하고 무시했던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노후에 인생의 석양녘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교회로 다시 돌아온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걱정근심 없이 살고 있습니까? 내일에 대한 불안이 없습니까?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근심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저 영원한 하늘나라가 예수를 믿는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참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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