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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이런 자녀를 키우라 (삼상 17: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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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녀를 키우라 (삼상 17:26-40)  

다윗은 이새의 집안의 막내였다. 다윗은 군영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먹거리를 들고 심부름을 나섰다. 엘라 골짜기에 가서 블레셋 군과 전열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형들에게 문안하였다. 거기서 다윗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보았다. 골리앗의 키는 6규빗 한 뼘이었다. 거의 3m에 가까운 거인이었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다.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600세겔이었다. 블레셋의 대장수 골리앗은 이스라엘에게 외쳐 이르되 싸워서 이긴 자에게 진 자는 항복하고 종이 되라고 하였다. 

다윗은 골리앗 장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전쟁의 경험이 있는 용사가 아니고 양을 치는 목자였다. 다윗은 얼굴빛이 붉고 눈이 빼어난 꽃미남이었다. 전투하는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심부름꾼이었고 무명의 시골뜨기였다. 그러나 여기 엘라 전투지에 나온 것이 다윗의 인생의 전환이 된다. 

여기서 대장군이 되고 여기를 토대로 임금의 사위가 되며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강력한 통치자가 된다. 다윗은 영토를 확장했고 무엇보다 예수가 출생하는 통로로 쓰여졌다. 심부름 나온 거기서 다윗을 통해 무엇이 보이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첫째,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는 사람을 키우자.

다윗은 백성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삼상17:24을 보면 골리앗의 외모, 신장 그리고 외치는 소리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수 사탄 앞에서 도망가는 뒷걸음과 두려움에 떠는 불신앙으로는 이길 수 없다. 이때 어린 다윗은 도전장을 낸다. 골리앗에게로 나아가 싸워 이기면 어떤 대우를 할 것인지 또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하고 일어선다. 

그렇다. 바로 이런 사람을 키워야 한다. 오늘의 이 시대는 원수를 보고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원수와 싸우기 위해 일어서는 사람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군대로서 교회가 강하고 승리하려면 원수를 향한 일어섬이 승리의 시작이다. 

원수의 창과 칼을 두려워하는 자는 한 순간이 아니라 한 평생을 실패한다.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일어서야 한다. 자신이 군인이냐, 아니냐를 보아서는 안된다. 교회는 교회 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목동이든, 심부름꾼이든, 먹을 가져다주는 자이든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는 사건과 부딪힌다면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을 위해 용기 백 배한 사람을 키워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사람을 키우자.

삼상17:28을 보면 큰형 엘리압은 다윗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 때 큰형은 노를 발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전쟁터에 서 있는 큰형의 언행은 다윗의 마음에 곧 상처가 되었다. 다윗을 업신여기는 큰형의 말은 다윗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전쟁은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려 상을 받겠다고 하니 큰형 엘리압이 가로막은 것이다. 세상에서 무슨 말을 듣든지 최고로 힘든 것은 가까운 사람의 말이다. 가장 깊은 상처와 고통을 남기는 것은 가족들의 말이다. 대개 가족 구성원이 ‘네’라고 하면 포기했다가고 다시 하게 되고 가족 구성원이 ‘아니오’라고 하면 손에 잡은 짐도 내려놓는다. 그만큼 가까운 사람의 말은 신념과 가치까지 흔들어댄다. 형이 다윗을 꾸짖고 있으니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그 다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가는 것을 불가능으로 본 사람이 사울 왕이다. 삼상17:33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불가능을 선포한다. 그러나 다윗은 흔들리지 않는다. 확신의 사람으로 확신의 이유를 말한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을 쳐서 죽이고 양을 지키고 보호하였다. 그것이 자신의 목자로서의 역할이지만 하나님이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다. 하나님은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다.” 다윗은 외친다. 능력의 확신, 승리의 확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이기게 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자를 반드시 키워야 한다. 상황에 의하여 흔들리는 갈대 인간을 키워서는 안된다. 환경에 의해 앞으로 나서고 뒤로 물러서는 약삭빠른 인간을 키워서는 안된다. 오직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의 세워짐을 위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라는 확신의 사람을 키워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허영과 치장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을 키우자.

삼상17:37下을 보면 사울은 다윗에게 골리앗과 싸우러 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삼상17:38에서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혔다. 얼굴이 붉은 소년, 소년이 용사와 싸우러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울 왕이기에 군인처럼, 장수처럼 만들어주려고 옷과 투구, 갑옷을 동원했다. 

그때 다윗은 그 옷과 갑옷을 입고 시험적으로 걸어보다가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다고 벗어버린다. 어찌 보면 임금님의 군복이다. 임금님의 투구다. 왕의 것을 입는다는 것은 임금님의 신임이 그 만큼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맞지 않는 임금님의 옷에 집착할 수 없다. 익숙하지 못한 옷으로 매사를 그르칠 수 없다. 내 몸에 익숙한 것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끈다. 다윗은 허영과 치장을 원치 않는다. 

허영에 살고 치장하기 위해 사는 허수아비, 빈 껍데기 인생도 많다. 외모는 대통령 부인 같고, 장관 부인 같아도 집안에는 쌀 한톨도 없는 속 빈 집안이 많다. 아이들은 다 가출하고 문제아로 사는 빈 집구석도 많다. 이런 것을 집작하지 않고 있는대로, 없는대로 사는 사람을 키우라. 허영보다 실리를, 치장보다 내실을 닦고 가꾸는 사람을 키우라. 화려한 결혼기념일을 지키기보다 사랑하고 구제하는 일을 하고 회갑, 칠순을 지키기보다 기념 교회를 세우고 선교지를 돌보고 허영과 치장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내공을 잘 닦는 실력있는 사람을 키우자.   

넷째, 장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키우자.

삼상17:40을 보면 다윗은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갔다.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서 간다.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간다. 외모로 볼 때 장군이나 용사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양치는 소년으로서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의 손과 그의 주머니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일찍부터 연마하고 훈련으로 기량을 닦은 물매를 가지고 간다. 물매와 물매돌 던지기! 이는 다윗의 장기다. 칼을 들고 가지는 않았지만 물매돌은 칼보다 무서운 그의 특기다. 삼상17:50을 보면 다윗은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겼다. 물매돌이 날아가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졌다. 다윗은 장점을 가지고 역사했다. 

다윗은 양을 칠 때 들짐승과 싸웠다. 곰과 사자와 싸울 때 물매돌을 사용했고 시간이 한가하고 때론 지루할 때 양을 돌보기 위해 물매 던지기 연습을 하였다. 틈을 내고 시간을 내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배양하였다.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장점을 기르고 장점을 내세워 일하는 사람으로 키워내자.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 약점이 많다고 주눅들지 말자. 골리앗에 비하면 다윗의 약점은 키가 작았다. 힘이 없었다. 갑옷도 없었다. 

창도 없었다. 내어놓을 것이 없었다. 전투의 경험도 없고 용사도 못 되며 대장이라고 따르는 자도 없었다. 만 가지가 약점이지만 자신이 잘하는 장기를 가지고 장점으로 싸울 때 소년은 그때부터 승전군이 되고 대장군이 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져 그를 통해 예수가 오셨다. 이스라엘을 강성하게 세운 다윗을 통해 천국 족보가 완성되었다. 예언과 성취가 이루어졌다.   

이 시대 우리는 다윗 같은 자녀를 키워야 한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들이 허다하고 하나님의 군대를 업신여기는 세상의 거인들이 큰소리를 치는 판이라 할지라도 그때 두려움 없이 서는 사람,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을 키워야 한다. 내 평생의 기도는 ‘쓰임 받게 하옵소서’ 이다. 위기의 때, 굴욕의 때, 무너짐의 때라 할지라도 다윗처럼 하나님께 쓰여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런 자녀를 키우는 것이다.

우리 교회 성도 모두가 이런 자녀를 키워 낸 이새가 되자. 교회가 다윗을 키워내는 다윗 학교가 되자. 나의 자녀를 통해 예수의 나라가, 복음의 나라가 왕성해지고 강하여지도록 양육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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