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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누가 성경적인 효자 효부인가? (창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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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성경적인 효자 효부인가? (창 47:1-12)

몇 년 전에 어느 생명보험회사에서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기업 광고를 냈던 적이 있습니다. 
스물하나-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적이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여섯- 당신은 시집온 지 오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시댁 어른들에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둘-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병원까지 밤길 이십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둘-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당신은 화장을 짙게 한 얼굴이 싫었으나 자식이 좋다고 하니까 당신도 좋다고 했습니다. 

예순-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다섯- 자식 내외가 바쁘다면서 명절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밤늦게 왔다가 새벽에 올라갔다고 당신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고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은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5월 8일 어버이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5월 5일 어린이날은 休日이고 5월 8일 어버이날은 平日이라는 것입니다. 속히 고쳐야 합니다. 어린이날은 평일이어야 하고 어버이날은 휴무일이 되어 부모의 사랑을 보답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가능성이 있을까요? 뜻있는 대통령이 나와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는 5월 둘째 주를 대다수 교회가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5월 8일이 어버이 날이기에 그러기도 하지만 어버이에 대한 공경이 그만큼 성경적인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한국기독교에는 부모 제사를 안 드리기에 부모에 대한 효도가 없다고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소립니다. 

성경말씀 많은 곳에서 효에 대하여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효도를 잘못하면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먼저 출애굽기20:12절을 보세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또 신명기27:16절을 보세요.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보다 더 무서운 경고가 있습니다. 잠언30:17절을 보세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객사한다는 말이고 죽어도 누구하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구절에서 하나님은 부모 공경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福을 약속하시면서 까지 孝를 명령하시는 것은 이 효도가 어렵긴 하지만 그만큼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고령화 현상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평균수명이 높아졌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작년 5월에 발표한 세계보건 통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평균 80세라고 합니다. 이것은 조사 대상 193개국 중 20위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남성의 평균 수명이 76세이고 여성은 83세라고 합니다. 이것이 2040년경에는 90세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60세에 은퇴하면 최소 20년은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30년이 노후라는 것입니다. 

30세에 취직해 30년 일하고 30년 놀아야 하는 것이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문제는 어르신들이 나이가 많아지고 있으나 자식들은 한명, 또는 두명이다 보니 부모를 모시기가 어려워집니다. 친부모 모셔야지 장인장모 모셔야지..... 

그러다 보니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어르신들의 복지문제입니다. 

제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서 노인복지에 관심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우리 부모님들이 노후를 행복하게 살까를 많이 연구해 보았습니다. 

흔히들 정부가 이 노인 복지를 해결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왜요? 세금은 걷어 하는 일인데 그 세금은 누가 내는 것이냐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부모를 받들어야 할까요? 

성경을 보세요. 성경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에 해답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효자 효부에게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효자 효부일까요?   

오늘 주신 말씀에 주인공은 요셉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인 동시에 효자 중에 효자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을 통해 어떤 효를 행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며 은혜받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성경적인 효자 효부입니까? 

1.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효자 효부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牧畜業이 그의 職業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12아들도 목축이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은 달랐습니다. 애굽에는 나일강 물이 항상 흐릅니다. 
아프리카 중부 정글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애굽을 거쳐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그러기에 이강은 사시사철 물이 흐릅니다. 

그러기에 애굽인들은 농업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농업을 주로 하는 문화권에서는 소나 양을 기르는 목축을 하는 사람들을 賤民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내용은 좀 다르지만 과거 우리나라도 소를 잡는 사람을 白丁이라 해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애굽도 목축업을 천시하였습니다.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애굽의 그런 문화를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애굽에 찾아온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고 공경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목축업을 하는 아버지, 나이 많아 볼품없던 아버지를 애굽 왕 앞으로 모셔갑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아버지를 바로 왕에게 소개합니다. 

7절을 보세요.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생각해 보세요. 요셉은 당시에 국무 총리였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출신이나 성장 배경이 드러나면 애굽 귀족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애굽의 시국이 어떤 때입니까? 풍년이 칠년 들었다가 흉년이 닥쳤습니다. 그것도 2년이 지나 백성들의 삶은 파탄 직전이었습니다. 그것을 대비해 7년 동안 악착같이 세금을 거두어 들였던 요셉입니다. 세상 누가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리고 흉년이 닥치자 백성들에게 곡식을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러니 당대 귀족들이나 지방 호족들이 요셉에 대해 얼마나 불평불만이 많았을까요? 

그런데도 요셉은 그런 염려나 걱정 때문에 자기의 출신과 자기 아비를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자녀가 효자효녀일까요? 
자기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식이 효자요 효부입니다. 자기 부모를 창피하게 여기는 자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어떤 시대를 사셨나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격변의 시대를 사셨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해방, 6.25전쟁 그리고 경제 개발 시대를 몸소 겪어 오셨습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고난과 역경을 견디신 분들입니다. 어떤 분은 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되어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지 못한 분들이 태반인 시기였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식들 중에는 부모가 글을 모른다고 창피하게 여기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글을 모르시니 자식들을 가르쳐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도 오지 말라 합니다. 

언젠가 드라마를 보니 자식을 유학까지 보내느라 재산 다 팔고 안 해본 고생이 없는 어머니가 자식이 좋은 집 얻어 집들이한다고 왔습니다. 그날따라 자식이 다니는 회사에서 직원들이 집들이로 들어 닥쳤습니다. 자식이 먼저 퇴근하여 보니 불청객 어머니가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자 얼른 애들 방으로 들여보내면서 “절대 나오지 마세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들어 기침을 하자 그 소리가 밖에 들릴까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속에서 집들이가 그칠 때가지 울면서 견디는 이야기였습니다.   

내 체면 때문에 부모를 창피스럽게 여기는 자 혹시 이곳에 계십니까? 
부모의 초라할 몰골, 부모의 초라한 직업, 그것이 부끄럽다면 과연 그런 우리는 누구입니까? 
누구 때문에 그 초라한 모습을 면할 수 있었을까요? 
누구 때문에 그 초라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지금까지의 삶이 누구의 은혜로 된 것일까요? 

부모를 창피하게 여기는 자는 자신을 창피스럽게 여기는 자요, 더 나아가 그 부모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창피하게 여기는 자입니다. 그런 자식을 어찌 하나님이 복 주시겠습니까? 

요셉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애굽의 총리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형통케 하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형통케 하셨다”는 말이 창세기 요셉의 생애에 여러 번 등장하잖습니까? 왜 그에게 그런 엄청난 복을 주셨나요? 

성경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향해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6:2절을 보세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셨습니다. 네가 잘된다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뒤집어 보세요. “부모를 공경치 않으면 네가 하는 일마다 안 되고, (망하고) 일찍 죽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보기에 부모가 부족한 것이 많고 배운 것 없고 볼 품 없어도 하나님이 맺어주신 부모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신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부끄러워 마시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게 효도입니다. 그것이 공경하는 것입니다. 
  

2.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효자 효부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의 형들은 과거에 요셉에게 정말 못된 짓을 했습니다. 아버지 심부름을 간 동생을 죽이려하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 고통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지 13년, 풍년7년, 흉년2년 도합 22년을 감쪽같이 아버지를 속였던 형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모습을 보세요, 요셉은 그들을 용서합니다. 

창세기45:5절을 보세요. 요셉이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그들의 죄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세요.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요셉이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줍니다. 애굽의 좋은 땅을 소유로 삼게 합니다. 

한마디로 요셉은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를 근거로 용서도 하고 그들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효도입니다. 형제간에 화목 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여러분!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부모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식들이 서로 싸우며 원수지간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효 중에 불효가 형제간에 반목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우애하는 것이 효도 중에 효도입니다. 

요셉은 과거를 근거로 얼마든지 형들을 심판 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럴만한 힘과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사람도 처벌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형제간에 불편한 사람은 없습니까? 
유산문제로, 물질문제로, 또는 예의문제로 서로 불화관계에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모습을 보고 계시는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셨습니까? 

설사 부모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간에 불화는 엄청난 불효입니다. 예수를 믿고 천국을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이기에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형제는 세상에 올 때 어머니 모태를 같이 사용했습니다. 
세상에서 그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용서 못합니까? 
그런데도 상대를 안 합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부모 앞에서 최고의 효도는 형제 사랑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 앞에 모든 죄를 고하시고 형제 우애를 새롭게 결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효자 효부입니다.

신약에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면서 모친 마리아를 요한에게 봉양을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육신의 모친이신 마리아에게 효도를 다합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요셉은 이루 말로 표현키 어려운 고난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삼았습니다. 야곱과 형들에게는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이 야곱의 노후를 봉양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들과 가족들의 필요를 채워줍니다. 

12절을 보세요.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여기 “봉양(奉養)”이란 단어는 옛 성경에서는 “供饋(공궤)”란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다른 번역 성경에서는 “扶養(부양)”이란 단어로 썼습니다. 

이 부분을 영어 성경에서는 Nourish 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공급하다” “양육하다” “채우다” 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봉양했다는 것은 그들의 생활을 필요한 것을 책임졌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돈을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다 됩니다. 

현금으로 직접 드리지 말고 통장에 자동입금이 되도록 하시면 알아서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서로 부담 없이 평안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느 신앙 잡지에서 부모공경 비결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면 부모님듷의 바램이 담겨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 공경이냐?   

1)사소한 일까지도 상의하라는 것입니다. 

노인상담소 문을 두드리는 노인들 말을 들어보면 정신적인 소외감을 제일 큰 고통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사소한 것도 알려드리고 대화를 하셔야 합니다. “몰라도 돼요” 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직장에서 자식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손자는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집안의 대소사를 알려드리고 의논하셔야 합니다. 그게 사람대접입니다. 그리고 그게 효도입니다. 

부모님과 사소한 일도 상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노후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문제입니다. 연세가 많으시면 돈이 더 많이 필요하십니다. 돈이 있어야 마음이 든든합니다. 어깨도 펴지고 큰소리도 치는 것입니다. 노인정에서도 돈 많은 분들이 큰소리 친답니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병원도 제대로 못갑니다. 자장면 한 그릇도 맘 놓고 사 잡수시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용돈을 적절하게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그 용돈은 얼마나 드려야 하나? 적어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정도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도 합당한 것입니다. 

제게 주례를 요청하는 신랑신부에게 제가 꼭 다짐을 받아 둡니다. 

“결혼 후 부모님에게 십일조만큼 용돈을 드려라 그래야 주례를 해 주겠다. 약속하냐?” 그때 아멘하고 약속해야 주례를 섭니다. 아멘?   

3) 부모님의 건강에 신경 쓰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각종 질병을 호소합니다. 연세가 많아지면서 체력이 약합니다. 그러기에 작은 질병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젊은이의 기준에서 보지 말고 즉각 병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자식은 콧물만 흘려도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어르신들은 아프다 해도 신경을 안 쓰는 것이 문제입니다. 병원 가시자면 가기 싫다고 하는 것은 자식들 돈쓸까 걱정하여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부모가 아프다면 “늘 그러겠거니” 합니다.

4) 문안 인사에 소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안 인사를 자주 드리라는 것입니다. 비록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를 통하여 수시로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저도 이것을 잘 못합니다. 용서하세요.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5) 우리도 곧 노년을 맞게 됨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멀지 않아 노년을 맞게 될 것임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년만년 이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현재 부모님을 모시고 공경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심은 대로 우리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30, 40대 젊은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부모님의 나이 차이는 몇 살입니까? 

그 차이만큼 지나면 우리도 지금의 부모님처럼 됩니다. 그때 여러분이 지금 부모님에게 하는 모습 그대로 여러분 자식에게 대접을 받아도 좋습니까? 그러면 그냥 계속하세요. 그러나 “내 자식은 절대 그러지 않을거야” 착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다 한 가지 제일 중요한 것을 추가합니다.


6) 부모님에게 복음을 통해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게 하면 그것은 큰 효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무리 효도한들 믿지 않아 지옥가면 어찌 그것이 효도이겠습니까? 

눈물로 호소하고 복음을 전하세요. 그리고 교회에 나가실 수 있도록 적극 도와 드리셔야 합니다. 입으로만 교회가라고 하지 말고 교회 갈수 있도록 부모님 집을 찾아가셔서 함께 모시고 교회에 나가 등록을 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부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옛날 속담에 효자는 하늘에서 난다 했습니다. 

이 말은 효자 되기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만이 참 효를 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로서 보냄 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효자 효녀입니까?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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