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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미친 자 (고후 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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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미친 자 (고후 5:11-15)
 
어떤 정신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를 믿으라! 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외쳤습니다. 이층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어떤 사람이 “야! 이놈아 조용히 해라! 오래 살다보니 별 미친놈 다 보겠네, 나는 너 같은 아들을 둔 적이 없다. 내가 하나님이다!” 하고 호통을 치니 조용해졌습니다. 
  
모두들 미친 듯이 살아갑니다. 재물에 미치고 권력에 미쳤습니다. 어떤 남자는 술에 미치고 어떤 여자는 치장에 미쳤습니다. 미치려면 제대로 미쳐야 합니다. 미쳐야 할 것에 미치는 것입니다. 잡기에 미치면 안됩니다.  
  
학생은 공부에 미쳐야 합니다. 목회자는 목야에 미쳐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미쳐야 합니다. 

󰊱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11절)    

이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에도 우리가 환히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야(野)한 여자가 좋다”는 말은 선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연스러움, 순수함, 본성적인 의미입니다. 
  
“알리어지다” “드러나다”는 말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정체가 하나님 앞에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앞에서도 자기 정체가 드러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고대 희랍의 시인 핀다로스 Pindaros는 “본래의 너 자신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현각 스님은 미국인으로 정말 미남입니다. 그는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 예일대와 독일 프라이브르크 대학과 하버드 대학을 나온 명문대 출신입니다. 
  
그가 한국 불교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1992년 한국에 왔습니다. 그를 본 신도들이 “와 하버드 출신 미남스님 오셨네” 하며 사진을 찍자하면 화를 냈습니다. 
  
“이 못생긴 미국 상놈 봐서 뭐해요. 거울에 비친 ‘참 나’를 봐야지” 현각은 자기 명성과 외모 때문에 수행이 쇼가 됐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겉모습이 사람들에게 유혹이 되고 있으니 여기 있으면 안되겠다며 한국을 떠났습니다.
  
“나는 중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불자를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일 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에 미모가 뛰어난 여승이 있었는데 남자들이 보고 가슴앓이를 하게 되자 그 여승은 칼로 자신의 얼굴을 긁어 버렸답니다. 이것이 진짜 스님의 정체(正體), 본래의 모습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 이솝의 우화는 양을 잡아먹기 위해 양의 가죽을 쓰고 축사에 들어간 늑대가 주인이 잡아먹을 양을 찾았는데 양의 가죽을 쓴 늑대가 걸렸습니다. 
  
세례요한은 네가 누구냐?는 질문에 딱 잘라서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럼 누구냐?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외치는 소리이다”(요1:23)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으로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했다(고후11:22-25).
  
바울의 정체는 예수께 바친 사람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사람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만 존귀케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 하나님께 미친 자가 온전한 자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미치는 것이 정상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13절) 
  
바울은 재판정에서 미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베스도가 큰 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라고 하니 바울이 대답합니다. “베스도 총독님,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라고 하자 네가 적은 말로 나를 설복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가? 바울이 대답하기를 말이 짧거나 길거나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 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행26:24-29절). 
  
바울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미친 사람은 바울이 아닙니다.
  
“횃불을 던지고 독이 묻은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그저 장난삼아 했을 뿐이라”(잠26:18-19) 
  
무분별한 장난전화, 무분별한 고소고발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합니다. 애꿎게 소방차가 출동하고 경찰이 출동합니다. 
  
우리나라의 고소 고발은 심각합니다. 일본과 비교할 때 171배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닙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낭비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횃불을 던지는 방화 자들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라”(고전9:16)
  
복음 전하는 사람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 전도하지 못하는 것이 부족한 그리스도인 무능한 교회입니다. 교회가 제 정신이면 전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면서도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본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어떤 노인이 동네에 와서 무어라고 하면서 다닙니다. 보아하니 미친 사람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며 횡설수설합니다.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뒷조사를 했습니다. 그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그는 천주교 신부였습니다. 전에 그 동네에 성당이 있었고 그 성당의 주임 신부였는데 공산당이 들어와 교회를 불살라 버렸고 믿는 자는 모두 흩어졌었습니다.
  
종교탄압으로 전도 할 수 없게 되자 미친 사람으로 가장하여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신부님은 총살을 당했습니다. 복음이 뭐길래 그렇게까지 하면서 전도했을까?  그는 하나님께 미친자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빌2:17)
 
󰊳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 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은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강권하실 때 하나님께 미친 자가 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남산에 가면 독립 운동가 김구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동상 앞에 새겨진 그의 연설문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면 우리나라의 독립이요 할 것이다. 세 번째 소원을 또 묻는다면 나는 더욱 큰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 하고 대답 할 것이다.”
  
“동포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 과거 70평생 늘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이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  살 것입니다.”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내 나라 내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김구선생의 생애는 민족혼의 화신이요, 애국정신의 거울이요, 나라 사랑의 본보기입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는 예수의 12사도들의 순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 가서 전도했는데 ×자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칼로 목베어 순교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이집트 시리아에서 전도하다가 군중들로부터 곤봉과 방망이로 맞아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모진 박해를 당하다가 죽었습니다. 
빌립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당하다가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인도와 마르메니아에서 전도하다가 참수 당해 순교했습니다.  
도마는 고대 이란에서 그리고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참수를 당했습니다. 
시몬은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유다는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가 화살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가롯유다 대신 뽑힌 맛디아는 돌에 맞고 참수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의미 있는 말을 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의미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15절)

아프리카에는 이상한 미신을 믿는 종족이 있습니다. 열병에 걸리면 무조건 앞을 보고 전력을 다해 뛰는 것입니다. 열병이 따라 오지 못할 만한 속력으로 뜁니다. 열병을 떼어 내버리고 뛰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님은 “부동의 동자”라고 정의했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내가 움직여야 세상을 움직입니다. 삶은 저지르는 사람의 몫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다가 가는 것은 거절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받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갑니다. 인생은 모험입니다. 모험 없이 변화 없고, 모험 없이 성장 없습니다. 모험 없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중요한 것은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그 일에 나를 바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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