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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승천 (행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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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승천 (행 1:9-11)

퀴즈를 몇 개 풀면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푸는 퀴즈는 전교인수련회에서 하던 난센스퀴즈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된 몇 가지를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베들레헴

헤롯이 죽이려할 때 어디로 피신하셨습니까? 애굽

애굽에서 돌아와 어디에 정착하였습니까? 나사렛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할 때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습니까? 세례자 요한

예수님은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셨습니까? 열둘

예수께서 주로 사역하신 지방은? 갈릴리

그 중에서도 주로 사역하신 동네? 가버나움

예수께서 돌아가신 장소? 골고다. Calvary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며칠 만에 다시 사셨습니까? 3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실 때까지 며칠 동안 이 땅에 계셨습니까? 40일


사도행전 1장 11절까지 예수님의 삶에 관한 중요한 내용이 모두 언급됩니다.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때부터”(2절) - 공생애 시작

“고난을 받으신 뒤로”(3절) - 십자가

“자기가 살아 계심을”(3절) - 부활 

“예수께서 올라가실 때에”(10절) - 승천

“다시 오실 것이다”(11절) - 재림


예수님은 승천하시기전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복음서와 고린도전서 등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께서 적어도 9번 이상 유대와 갈릴리에 나타나심으로 자신의 부활을 증거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고, 500여 형제에게 나타나시고 (고전 15:6), 

동생인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몇몇 제자들이 모여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 나라라 함은 지역이나 영토적인 개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재림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만 현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아직 육신이 이 세상에 있다 할지라도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소유한 것입니다. 

현재는 고난 속에 있지만 여전히 주님을 의지하며 소망 중에 주님의 위로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소유한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그 큰사랑을 생각하며 찬송을 부를 때 감격이 오고 주님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올 때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소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의 승천과 그에 밀접하게 연결된 재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누가는 9:51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라고 함으로써 예루살렘에서 당할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의 사건들을 모두 ‘승천’이란 사건 속에 포함시킵니다. 변화산 사건 기술에서도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별세(exodus)'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눅 9:31). 이런 표현들을 통해 누가는 예수님의 승천을 예수님의 구속 사건을 종결하고 완성하는 사건으로 봅니다. 

주님의 승천에 대해 가장 자세히 기록한 본문이 사도행전 1:9-11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교제하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가 인종과 영토를 초월하여 더욱 확장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예수 믿는 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순종의 사역으로 펼쳐지기를 소원합니다. 승천의 의미를 잘 깨닫고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잘 감당하면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영광을 더 높이 드러내기 위한 하늘로의 오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기고, 예수님의 승천은 그저 부활의 후속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부활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시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승천을 하늘나라에로의 돌아감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신다고 하셨으며(요 6:62), 이 세상으로 보내신 이인 하나님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습니다(요 20:17). 그는 또한 승천을 ‘성도들의 있을 곳을 예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처소를 예비하는 것은 문자적으로 처소를 예비하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어 친히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한 구속 사역의 효과가 직접 미치도록 일을 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초대교회도 예수님의 승천을 ‘높이심’의 사건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사도 바울 역시 승천을 예수님의 높아지심으로 이해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 2:9-10). 

사도행전에는 ‘보다’라는 단어가 특히 많이 나옵니다. 우리 말 번역에는 다 ‘보다’로 번역되어 있으나 헬라어 원문은 의미가 다소 다른 단어들이 사용됩니다. 9절의 ‘보다’는 ‘주의 깊게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이 하늘로 올려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0절에서 ‘보다’는 ‘자세히 쳐다보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구름에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자 어디에 계신지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11절에 두 번째 나오는 ‘보다’는 특별한 것을 목격할 때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제자들이 목격한 승천은 특별한 것이며 하늘로 가신 특별한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늘로 올려져 가신 예수님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자 어디 계신지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흰 옷 입은 천사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절)고 말하였습니다. 

천사들의 이 책망은 자신들의 사명을 잊고 이적 현상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제자들에 대한 경계요 깨우침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예수님의 승천을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과 관련시켜 묘사합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모든 구속 사역의 성취의 증거로서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의 옳음을 인정받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그의 부활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승천은 부활 영광이 더욱 높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2. 하늘로의 오름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비밀리에 이루어지지 않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승천’에 해당되는 동사로 ‘올려져 갔다’가 사용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위로 취하여졌다’이며 문법적으로는 부정과거 수동태 동사입니다. 부정과거라 함은 과거 일회적인 현상을 가리키며 수동태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힘에 의하여 위로 끌어올려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을 올리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끌어올리셔서 위로 올리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위로’ 계속 올라가셔서 우주의 어느 한 공간으로 가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셨습니까? ‘하늘’ 하늘이 어디에 있습니까? 태양계? 은하계? 몇 백 광년을 가야하는 갤럭시의 어느 특정한 장소? 그곳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곳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 ‘하늘’로 가신 것이며, 피조세계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상의 공간으로 이동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처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광중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 오르시는 것이기에 더욱 영광스럽습니다. 


3. 성령을 보내기 위함입니다

본문은 “이 말씀을 마치시고”(행 1:9)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1:4-8절에 나온 대화입니다. 즉 성령의 임하심을 기다리고 그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말씀을 마치신 후에 올려져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천사건은 성령의 임하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유는 성령을 보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늘로 올라가셔야 성령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은 성령을 보내실 수 있는 자리로 올라가심입니다. 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를 보면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2:33). 하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오른손으로 높이신다는 것은 그를 왕으로 삼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왕이 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막 16:19)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통치권을 받아 행사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만물 위에 뛰어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 즉 왕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셔서 왕이 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받은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이 땅에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이 들려지는 것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승천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승천은 성령강림의 전제조건이며 없어서는 안 될 필수과정입니다. 


4. 재림을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구름이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자 제자들은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 곁에 등장합니다. 개역개정에는 번역되지 않은 표현이 있는데 ‘갑자기’라는 단어입니다. 두 사람은 갑자기 그들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과정에서 또한 성령이 오시기 전인 상황에서 과도기적으로 나타나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왜 두 천사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말했습니까? 제자들이 하늘을 그렇게 쳐다보아도 승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땅 끝까지 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제 하늘이 아니라 땅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천사들은“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해줍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나라를 깨뜨리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모든 원수를 완전히 물리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승천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이 보는 데서 올려져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도 제자들이 보는 데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계시록 1:7절을 보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영광중에 우리의 주님이자 신랑으로 재림하십니다. 구름은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자연적이고 공개적이며 범세계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아마 그때까지 CNN방송이 있다면 긴급뉴스로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는 장면을 실황 중계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성도들의 눈에만 나타나지 않고 그분을 찌른 자들과 이 땅의 모든 족속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배반한 자들과 불신앙한 모든 족속은 슬퍼할 것입니다.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큰 구원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멸망을 주목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깨닫고, 그분을 거절했던 것을 후회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회는 참된 회개가 아니라 공포의 눈물일 뿐입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이 목격은 그저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구원의 문이 닫힌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날에 있을 일들을 바라보며 “그러하리라” ‘아멘’을 차례로 열거하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다면 재림하실 주님의 모습은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초림하신 주님을 개인적이고 소수의 사람이 목격했다면 재림하실 주님의 모습은 공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초림의 주님을 사람들이 찌르고 거절했다면, 재림하실 주님은 그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초림의 주님의 패배를 즐거워했다면 재림하실 주님의 승리로 애곡하게 될 것입니다. 

정리해본다면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초로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죄와 사망의 세력이 무너졌고 이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능력이요 영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성령이 이 땅에 임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성령을 보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시어 높이 들려지며 주 되심의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님 나라를 실제로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한 것이며, 부활로 나타난 예수님의 영광을 더 크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은 그분의 영광이 가장 크고 가장 절정으로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사탄의 나라의 완전한 종말이요 모든 고통과 슬픔이 끝나게 됩니다. 또한 이 일을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이 완성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또한 모든 악의 세력과 불순종의 사람들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심판주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모든 능력과 영광과 존귀가 만방에 드러날 것이며 온 우주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시작된 일,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완성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멸시하며 이 땅에서 썩어질 것을 추구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심판을 보고 두려워 떨며 후회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오직 예수님의 승천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승천이 시작이고 재림이 완성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알게 된 우리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1)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 이상의 예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는 승천은 우리의 영광의 미래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고 모든 것을 그분과 함께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저를 믿는 자들마다 부활에 참여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승천은 곧 우리의 승천입니다. 그분처럼 우리도 영광의 승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했기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셔서 다스리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에 참여하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말씀은 바로 이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입으시는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예배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경배와 찬양은 그 은혜로 베풀어 주신 십자가 구원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 되심의 영광을 보여준 예수님의 승천은 이 땅의 모든 신자들의 예배에 영원한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성령 충만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전도 전략을 세워야 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성령의 역사가 왕, 제사장, 선지자와 같은 특수한 사람들에게 임하기는 하였으나 일시적이요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성령의 역사는 보편적이요 영구적이 되는데 그러한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선물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믿는 사람들과 함께 계신 보혜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떠나시면 성령님이 대신 오셔서 믿는 자들 안에 함께 계시면서 주님을 전하게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증인의 삶을 살려면 예수님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때와 기한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으로서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까?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후원하며 중보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과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명령, 그리고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남기고 승천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과 ‘땅 끝을 향해 떠나가라’는 말씀은 얼핏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의미이며, 이는 성령 충만이 땅 끝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는 선언입니다. 증인의 사역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부활 증인으로 살기 원한다면, 약속하신 성령과 그의 권능을 덧입기까지 하나님 앞에 머물러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오는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할 때, 나 개인의 울타리와 한계들을 뛰어넘어 열방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선 우리 또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승천으로 높이 올려지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는 하늘의 권능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이미 들어간 성도의 삶은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천은 소망과 기쁨과 평강 가운데 살아가는 신자의 능력 있는 삶의 원천이요 근거가 됩니다.


3) 재림의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재림을 위한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의 천국 소망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는 이유 중 하나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3). 예수님은 처소를 예비하신 후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 처소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소망을 갖는 승천은 우리 신자들에게 큰 소망을 제공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은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모이기에 힘쓰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소망을 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자기 일도 감당하지 못하며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힘입었을 때 땅 끝까지 다니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담대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증인의 삶을 살지 않으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교의 각오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재림의 소망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맡은 하나님의 선교하는 백성들입니다. 선교하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선교하는 성도들이 모인 목장은 친교만 나누는 장소가 아니라 아직 믿지 않거나 교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웃에게 주님을 소개하는 좋은 전도의 장소가 됩니다. 

21세기에도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넓히기 원하십니다. 우리 각자가 성령 충만 받고, 능력을 받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영혼구원이라는 소중한 사명을 깨닫고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사명을 깨닫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 헌신하시며 많은 전도의 열매, 주님이 기억하시고 감격하시는 열매를 거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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