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도신경(12) :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을 믿습니다③.(막 13:24-27)

첨부 1


사도신경(12) :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을 믿습니다③.(막 13:24-27)

오늘 설교는 사도신경 12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도 사도신경 중에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고백을 가지고,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예수님에 관한 고백 중에서 재림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재림에 관한 설교는 총 3시간에 걸쳐서 합니다. 첫 시간에는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지난주에는 재림과 재림 이후에 있게 될 중요한 주제 몇 가지를 다루었습니다. 재림과 천년왕국 그리고 백보좌 심판을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마 24장에서는 주님의 재림의 징조와 재림을 다루고 있으며 결론 부분에 가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그리고 25장에서는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3가지 비유를 통해서 제시합니다.
   
재림은 준비 되어야 합니다. 준비 된 사람들은 휴거 되어 공중에서 주를 보게 될 것이고, 준비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이 땅에 남아서 슬피 우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선정성 문제 때문에 마릴린 먼로 동상이 철거 되었습니다. 마를린 먼로는 육체적으로 보면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정말 특별한 여자입니다. 케네디 생일날 케네디가 마릴린 먼로를 초대했답니다. 그 여자가 오니 케네디가 흥분해서 “오늘 죽어도 좋다.”라고 했답니다. 그 정도의 여자인데, 그 여자가 서른여섯 살에 자살했습니다. 우울증과 약물 중독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서른여섯 살에 스스로 생명을 끊었습니다. 그가 자살할 때 쓴 두 줄의 메모는 이렇습니다. “내 인생은 한 손으로 손뼉 치는 것과 같았다. 나는 허공을 휘젓다가 간다.”
   
세계 최고의 인기, 세계 최고의 부귀를 누린 여자가 “내 인생은 한 손으로 손뼉 치는 것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허공을 휘젓다 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서 준비하지 못하면 이 땅에서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잘살았어도 그날 ‘내가 허공을 휘젓다가 왔구나’라고 후회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했어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산다면 주님 오시는 그날 ‘나는 정말 잘 살았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들이 되어 주인이 오신 후에 잘했다 칭찬 듣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깨어서 기도하라. 
   
마 24장에서 주님은 재림과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 결론을 내려주셨습다. 마 24:42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주님께서는 재림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 25:1 이하에 보면 열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거기서 열처녀는 신랑을 기다리는데 이는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중에 다섯은 슬기로운 자들이어서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고 나머지 다섯은 미련하여 등은 준비했으나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신랑이 오니 오니 기름을 준비한 다섯은 혼인잔치에 들어갔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다섯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마 25:13을 보면 그 비유의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결론은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깨어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11명의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3명의 제자들에게 깨어 있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말씀을 하신 후에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마치신 후에 다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0,41)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깨어 있다는 말은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들은 현실적으로 깨어서 기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제 목회 경험으로 볼 때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기도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일상을 바쁘게 만듭니다. 사람은 에너지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너무 바쁘면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마귀는 성도들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하여 우리의 몸을 공격합니다. 흔히 ‘체력이 영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몸이 아프면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건강해야 기도할 힘도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하여 사건과 사고를 발생시킵니다. 만약 우리가 사건과 사고로 인해서 기도를 쉬게 된다면 마귀는 계속해서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를 방해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건과 사고가 있음에도 계속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당한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이고 결국 마귀는 사건과 사고가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사건과 사고로 공격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하여 돈을 이용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하지만 돈은 우리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돈의 유혹을 통해서 기도생활을 방해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생활을 위하여 때로는 돈을 버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마귀는 육신의 편안함으로 기도생활을 방해합니다. 사람의 몸은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있으면 자고 싶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깨어 있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기도에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2. 사랑하라. 
   
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자기도 행복하고 상대도 행복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자녀는 부모를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어느 부부가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두 시간 운전을 하고 갔는데 아내가 다리미를 안 뽑아 놓고 왔다고 해서 차를 돌려 가보았습니다. 가보니 뽑아져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시장에 갔는데 다리미 안 뽑아 놓고 왔다고 해서 가보니 역시 뽑혀져 있었다. 남편이 얼마나 열불이 나겠습니까? 어느 날은 5시간을 운전해서 여행지에 왔는데 아내가 “여보, 어떻게 하지 다리미 안 뽑고 왔다”하더랍니다. 그러자 남편이 “걱정마” 하더니 자동차 트렁크 열고는 다리미를 꺼내면서 “다리미 여기 있다”하더랍니다.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사랑하면 모든 것이 극복되고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들이 무엇보다 힘써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마 24:12에서 말씀합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딤후 3:1-4을 보면 말세의 특징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잘못된 사랑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입니다. 또 말세에는 돈을 사랑합니다. 모든 것의 기준이 돈입니다. 우선순위가 돈에 있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도 버리고 돈 때문에 주님도 버리는 일이 흔합니다. 또 말세에는 쾌락을 사랑합니다. 쾌락과 희락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쾌락은 오직 육신의 즐거움입니다. 정신은 피폐해가고 영혼은 죽어도 육체가 즐거우면 되는 것이 쾌락입니다. 희락은 영적인 즐거움입니다. 우리는 비록 육체는 좀 피곤하더라도 영적인 즐거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말세에는 영적 즐거움에는 별관심이 없고 육적인 즐거움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영성의 최고봉은 사랑입니다. 고전 13:13에서 말씀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우리에게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신비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제자 됨의 증거 역시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3:34,35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교리를 믿느냐 어떤 고백을 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진짜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랑은 감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적인 경향이 더 강합니다. 내가 무엇을 느끼느냐보다 내가 무엇을 행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 롬 5:5을 보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우리들에게는 사랑이 부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부어진 사랑을 행해야 합니다. 느끼는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행해야 합니다. 느끼지 못해도 행하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내 감정은 그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가 밉고 그가 원망스럽지 절대 그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 성령으로 인하여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내 영 가운데서 내가 행해야 할 사랑을 가르쳐줄 것입니다. ‘네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라.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어라.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라’ 등 내 안에 성령으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내 감정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지시를 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감정대로 해 버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그를 향한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성령으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행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들이 왜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까?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요일 4:20,21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3. 모이기를 힘쓰라. 
   
성경 히 10:25은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서 ‘그날’이 언제입니까? 그날은 세상 종말이며 동시에 주님의 재림의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임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는 모이기를 힘쓰는 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라이프스타일이었고 현대교회는 초대교회를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행 2:46을 보면 초대교회는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기를 힘쓰는 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마 18:20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모임 가운데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모임이 아니라 혼자 있으면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혼자 있어도 주님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왜 모임 가운데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모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모임을 강조하실 정도로 우리의 모임이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임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는 모임을 통해서 영적인 힘을 공급 받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은 마치 자동차가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늘 공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만 어느 조사에 의하면 7주만 공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잘하면 결국은 잘 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제시 페니 백화점이 많다고 합니다. 그 백화점의 이름인 제시의 J는 Jesus, C는 Christ의 첫 글자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백화점이라는 뜻입니다. 이름만으로도 은혜가 됩니다.
   
그 창업자가 젊은 시절 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는데,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몸이 점점 나빠져 거의 다 죽게 되었답니다. 어느 날 그가 의식을 잃어가면서 ‘아, 나는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깨어났답니다. 그 순간 어디에선가 찬송 소리가 들려오는데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찬송가 432장)
   
그는 찬송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결핵 요양소 안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 요양소를 떠나 작은 구멍가게를 차렸는데 그것이 번성하고 번성해서 세계적인 백화점이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찾아서 영적인 복, 건강의 복 그리고 재정적인 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회를 가까이 하다가 영적인 복, 건강의 복, 재정적인 복을 넘치게 받기를 축원합니다.
   
원래 신앙은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스스로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교수님은 이것을 신앙의 자가발전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문제는 신앙의 자가발전이 되어야 정상이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이 자가발전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 모임을 통해서 자동차가 주유를 하는 것처럼 영적인 에너지를 얻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라. 
   
성령을 잃어버린 신앙생활은 전혀 행복하지 못합니다. 자식을 잃어버리고 행복한 사람이 없듯이 성령을 잃어버리고 행복한 성도가 없습니다. 제가 필리핀에 갔을 때 둘째 아들 하은이를 그린 힐이라는 시장에서 잠시지만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눈이 뒤집히더군요. “하은아, 하은아”라고 소리치며 시장을 뛰어다녔습니다. 그 때 만약 하은이를 잃어버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그때 만약 하은이를 잃어버렸으면 아마 저는 지금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날마다 하은이 생각을 하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낼지도 모릅니다. 성령을 소멸한 신앙생활이 그런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고는 절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마 25:1-13에는 열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은 미련한 자들이고 다섯은 슬기로운 자들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였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공히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등은 준비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미련한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가르쳐주는 가장 요긴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성령의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름준비 된 사람만이 휴거 되어 공중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행 10:38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성령의 역사는 절대적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주님을 믿을 수 있고, 주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 있으며,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만 신령한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열 처녀의 비유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휴거 될 수도 없고 공중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들만이 들림 받아서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사용하려면 그 순간에 연료 탱크에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기름이 가득했어도 지금 기름이 없다면 그 자동차는 지금 쓸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성령의 충만을 경험했어도 주님 재림하실 때 성령을 소멸했다면 들림 받을 수 없고 공중혼인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성령으로 충만해서 가자가지 은사와 능력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주님 재림하시는 순간에 성령이 소멸 되었다면 과거의 체험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오기 전에 등에 기름이 있어서 등불을 밝혔습니다. 문제는 신랑이 올 때 그들의 등은 꺼져갔고 여유분의 기름이 없어서 신랑을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5. 주님에게 보일 믿음을 준비하라. 
   
성경 눅 18:8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재림하시는 주님은 천사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공중으로 모으실 때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강원도에 부흥회를 가셨습니다. 첫날 안수집사님이 강사 목사님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안수집사님이 식사 중에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지난 몇 달 동안 교회를 나오지 않다가 오늘에야 교회에 나왔습니다.” “아니 왜요?” “예, 제가 시험이 들었습니다. 시험이 들고 나니 목사님도 보기 싫고 장로님들도 보기 싫고 성도들도 보기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를 나오지 않는 동안 하나님은 저를 깨닫게 하시려고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무슨 사건이 났는데요.” “예, 제가 돼지를 키우는데 도둑이 트럭을 대고 돼지를 싹 훔쳐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삼 농사를 짓는데 또 도둑이 들어서 트럭을 대고 인삼을 싹 뽑아 가버렸습니다. 저는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교회에 오시게 되었습니까?” “제가 오늘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보니 온 천지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은 교회로 와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는 그 음성을 듣고 교회로 달려왔는데 교회에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비롯해서 성도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금줄 하나가 내려오는데 보니 명찰이 붙어있고 그 명찰에 목사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 명찰을 잡으니 하늘로 주루룩 하고는 올라가시더라구요. 잠시 후에 장로님 이름이 쓰인 금줄이 내려오고 이번에 장로님이 그 줄을 잡고 주루룩 올라갔습니다. 계속 금줄이 내려와서 결국은 예배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저만 남았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해서 하나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금줄을 내려주세요. 제발 저에게도 금줄을 내려주세요’라고 외치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꿈을 꾸었지만 주님이 재림하실 때 실제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늘에서 금줄이 내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어떤 사람은 데리고 가실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지상에 남게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절대 믿음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성경 살후 2:3에 보면 주님 재림 직전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러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고 주님을 떠날 것입니다. 마치 대풍에 설익은 과일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세상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실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의심은 내 바지 안에 들어온 개미 같다.”고 하시더군요. 시골에서 놀다 보면 개미가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서 얼마나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의심은 마치 우리를 괴롭히는 개미 같다는 것입니다. 바지 안에 들어온 개미는 잡아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의심은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심을 밀어내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풍년에 흉년을 위하여 준비했던 것처럼, 노아는 홍수 전에 홍수를 대비했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환난의 바람이 불 때 주님께 붙어있을 수 있고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6. 불타지 않을 공적을 준비하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 가서 살 것을 생각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소매치기도 소매치기를 잘 하려고 굉장히 노력한다고 합니다. 가방을 이리 찢을까? 저리 찢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 몸은 건드리지 않고 옷만 벨까? 가방만 벨까? 하고 연구를 한답니다. 

어느 여자분이 아들과 함께 고속버스 터미널에 갔답니다. 차를 타려고 가는데 남자 세 명이 다가와 사방으로 에워싸길래 “왜 이러세요?”라고 하니 “아이구! 미안합니다.”라고 하면서 지나갔답니다. 그런데 차에 타고 보니 가방 밑이 찢어져 있고 축의금이 없어졌더랍니다. 소매치기도 열심히 노력해서 남의 지갑을 뺏어 가는데 천국에 상급을 쌓는다는 우리들이 어영부영 신앙생활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때 부끄러운 구원을 받지 않도록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고전 3장을 보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모든 사람들의 공적이 시험을 받게 됩니다. 불로서 시험을 받는데 공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상급이 주어지고 공적이 불타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믿음만 가지고 천국에서 상급과 면류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천국에서 상을 받으려면 공적을 쌓아야 합니다.
   
하늘에 가서 상을 받는 몇 가지 공적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늘에서 상이 있는 첫 번째 공적은 구제입니다(마 6:1-4). 우리가 올바른 중심으로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이 땅에서 갚아주시는 것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상을 받게 하십니다.
   
하늘에서 상이 있는 두 번째 공적은 기도입니다(마 6:5-15). 우리가 올바른 기도를 하면 이 땅에서 응답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상이 있는 세 번째 공적은 금식입니다(마 6:16-18). 우리가 올바른 금식을 하면 이 땅에서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바른 금식은 하늘에서도 상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상이 있는 네 번째 공적은 전도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하늘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단 12:3)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전도 상이 큰 것입니다.
   
하늘에서 상이 있는 다섯 번째 공적은 충성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10).
   
하늘에서 상이 있는 여섯 번째 공적은 헌금입니다. 심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심는 자들에게 의의 열매를 주십니다(고후 9:10). 의의 열매는 이 땅에서 인정받고 하늘에서도 인정받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상이 있는 일곱 번째 공적은 옳은 행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옳은 행실을 하는 것은 하늘에서 입을 빛나고 깨끗한 옷을 준비하는 것입니다(계 19:8).
   
하늘에서 상이 있는 여덟 번째 공적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또 목숨을 걸고 666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계 20:4).
   
하늘에서 상이 있는 아홉 번째 공적은 순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계 20:4).
   
공적을 준비하는 것은 아파트를 짓고 내장공사를 하고 내부에 들어갈 집기들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파트 입주를 했지만 살림살이가 하나도 없이 입주한다면 얼마나 썰렁하겠습니까? 천국은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받을 상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은 믿음과 행위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배를 띄어놓고 노를 젓지 않는다면 그 배는 항구에 접안 되어 있든지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배를 띄웠으면 노를 저어야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믿음과 행위가 함께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설교를 들으면서 주님의 재림은 ‘아직 멀었는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제가 볼 때는 주님의 재림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생각대로 주님의 재림이 멀었다고 봅시다. 그래도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언제 주님 앞에 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혹시 주님의 재림이 멀다 하더라도 우리의 죽음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제가 어릴 때 동네에서 함께 놀던 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40년 만에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제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고맙더군요. 인터넷에 검색해서 저희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있는 제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한 것입니다. 제가 전화를 받고 생각해보니 40년 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은 빠르게 가더라는 것입니다. 지나간 40년도 순간 같은데 앞으로 40년은 더 빠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죽음이 멀지 않은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한 부인은 자동차를 주차하려고 후진하다가 네 살 된 자기 딸을 치어 죽게 했습니다. 먼저 내린 딸이 자동차 뒤에 있는 줄 모르고 후진하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 “건강해야지. 건강관리를 잘 해야지.”라고 하더니 두 달 뒤에 그 친구가 먼저 죽었답니다. 죽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곧 재림하시든 아니면 오랜 세월 뒤에 재림하시든 우리는 주님 만날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