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출 5:1-14)

첨부 1


믿음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출 5:1-14)

지난 주중에 웨슬리회심기념 연합집회가 있었습니다. 금번에 오신 강사 목사님은 저하고는 형님, 동생하며 지내는 분이기도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서로 연락도 잘 못하고 지냈는데, 이번 기회에 만나 뵙게 되어 기뻤고 옛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모(母)교회에서 사역을 했는데,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즈음에 교회 안에서 사역하면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 이제 내가 모교회를 떠날 때가 되었구나’하고 생각을 하고 사역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한 선배님이 소개해준 분이 당시 종교교회 부목사님이셨던 김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나를 만나서 흔쾌히 전도사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밑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에 참 재미있었습니다. 

직장인목요정오예배, 벧엘성경공부, 여선교회 여름수련회, 등 각종 집회에서 제가 키타를 치며 찬양을 인도하고, 김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면 참 은혜스러운 집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인상깊었던 것은 목사님이 병원에서 환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기도를 얼마나 잘 하시는지, 그 기도소리에 환자가 금방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하고, 마음이 여리고, 또 정이 많아서 한번 연을 맺으면 하나라도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고아라든지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는데, 집회 인도나 강의를 해서 강사비를 받으면 거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목사님 삶의 과정을 보면 참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셨습니다. 몸이 약해서 30대 초반부터 고혈압으로 고생하셨고, 부목사 시절에는 담임목사님의 인정을 못받아서 결국 유학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셔서 토플 점수를 잘 받아서 미국의 좋은 대학에 입학의 길이 열렸는데, 당시 비자문제로 좌절이 되었고, 그래서 결국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영국 유학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음. 가정적인 문제,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 영국에서 공부하는 과정, 그리고 돌아올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없었던 일들... , 국내에 돌아와서 정동제일교회 부목회자로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파주 광탄에서 어렵게 목회하던 나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시골교회 전도사를 정동교회 심야기도회 강사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간증할 때 앞에서 우시더라고요. 또 청장년들과 연결시켜 주어서 나를 돕게 하셨고, YMCA 직원예배 강사로 소개시켜 주셔서 그곳에 설교를 할 수 있게 하셨고(YMCA의 쟁쟁한 설교자 중에 전도사는 유일), 또 매월 선교비를 보내주셔서 지원도 해 주셨습니다. 

영등포중앙교회로 부임해 갔을 때, 나를 부목사로 쓰시면 내가 열심히 돕겠다고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부임해가서 얼마되지 않아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마음도 여린데, 교회의 중직들 중에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분들과의 관계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때 말씀하시기를 목회를 더 이상 하기 싫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평안을 찾았을 때 아직도 부족한 저를 그 큰 교회 부흥회 강사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집회 인도를 잘 한다고 격려도 해 주셨습니다. 금번에 오셔서 이제 몇 년만 목회하고 일찍 은퇴하시겠다고 하시면서 나 때문에 제천에 와보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사역자나 신앙인의 삶을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고난을 이기며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온 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여정에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애굽기의 말씀을 보면서 모세에 대해서 묵상을 합니다. 모세가 태어나서 자라나는 과정, 그가 광야에서 살게 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사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여정을 출발하는 내용들이 드라마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본문의 말씀을 통해 본 장면은 드디어 모세가 애굽에 도착한 내용이었습니다. 무척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았던 모세, 애굽에 가면서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박대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갔던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의 말을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환경과 분위기를 미리 조성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서 모세보다 앞서가신 하나님, 모세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모세보다 앞서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다같이 따라서 하십시다. “하나님은 앞서가시는 분이시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말씀을 봅니다. (1절)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이 장면을 가만히 보니까 모세가 자신 만만하게 바로 앞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애굽 땅으로 돌아올 때에 모세는 걱정을 하면서 왔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받아줄까? 괜히 왕따나 되지 않을까?’, 그런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도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중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었죠, 그리고 형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과 또 그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하니까 온 백성이 믿어주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선포하니까 받아들입니다. ‘아멘’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생각했습니다. “어, 되네?”,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세가 담대하게 애굽 왕 바로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래서 광야에서 절기를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은혜 충만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셨구나’ 생각하고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반응이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2절)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웃기고 자빠졌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는 거야!’, 이러는 것입니다. 바로가 상상 이상으로 강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가 어떻게 나올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오니까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기가 꺾여서 부탁조로 말합니다. 

(3절)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그러자 바로, 바로가 보인 반응이 뭡니까? 4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한 마디로 이것입니다. 바로가 보인 반응이, ‘아니, 이것들이 이제 지들 마음대로 쉴 생각을 해? 이제 좀 편한가보지? 이것들이 잘해 주니까 엉뚱한 요구를 해? 감독관들 오라고 해!’, 그리고 감독관들에게 말합니다. ‘노예놈들이 편해서 배부른 소리 하니까, 감독관들은 벽돌 만들 때 들어가는 짚을 주지 말고 지들이 그 짚을 주워서 하라고 해! 그리고 벽돌 만드는 일의 양은 절대로 줄이지 마라!’,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9절)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이 말 속에는 마귀의 전략이 들어있습니다. 바로는 마귀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하와를 꼬일 때 한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까봐 거짓말을 한 거야’, 여러분, 마귀의 전략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이 전보다 더 중하게 되었습니다. 벽돌의 재료,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구우라 합니다. 일이 배나 힘들어졌습니다. 모세가 요구한 것에 대해 바로는 이스라엘을 더욱 핍박하는 것으로 대답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에 더 큰 고난이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에 의해 받은 고난을 3가지로 생각할 수 있음.

1) 거절당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첫 번째 당한 것은 거절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 하셨으니 보내주십시오’, ‘뭐? 여호와가 누구야? 너희들은 누구냐? 난 안 보낼거야!’, 모세와 아론의 요구가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일사천리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동안은 잘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 앞에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거절을 당하면 상처가 됩니다. ‘내가 거절을 당했다?’, ‘버림받았다?’, 그런 생각이 들면 그러면 마음에 상처가 생깁니다. 

12년 전에, 한 집사님이 자기 남편이 간암으로 죽어가는데 목사님이 한 번 심방 와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을 갔는데, 목사를 안 만난다는 것입니다. 완강합니다. 너무나 완고하고 목사 얼굴을 보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부인이 간곡하게 부탁해서 갔는데, 거절 당했습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그 집사님 보고 그냥 목사가 잠깐, 5분도 안 걸린다고 아프시니까 기도만 하겠다고 하며 허락을 받으라고 하고 나는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허락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돌아누운 사람을 향해 말했습니다. ‘제가 새로 부임한 목삽니다 오늘 내가 강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 그리고 성경 이야기를 정말 한 3분 하고 기도해 주고 5분 만에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들려온 이야기, ‘그 젊은 목사 인상이 괜찮네, 그 목사처럼만 심방을 한다면 몇 번이고 괜찮겠어’...  그 말 듣고 또 가서 두 번째 심방 때는 쐐기를 박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시켰습니다. 한양대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 받고 다음 주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려니까 아들 놈이 기독교식으로는 안 된다고 거절당했습니다. 나이 30도 안된 아직 장가도 안 간 놈이 거절을... 설득해서 장례를 치렀는데 제가 중곡교회에서 치른 첫 장례였습니다. 얼마나 은혜스러운 장례식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지 거절을 당하면 상처를 입습니다. 모세는 먼저 거절을 당했습니다. 

2) 오해를 받은 것입니다. 

지금 살기 좋아서, 편해서 이런 요구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왕이 한 말이 뭡니까? ‘니네들이 살기 편하니까 이런 요구를 하는구나, 이것들이 잘해 주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바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것이 아닌데, 왕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해를 받는 것은 참 기분이 나쁩니다. 나는 아닌데 어떻다고 오해를 받으면 상당히 견디기가 힘듭니다. 

10여 년 전, 여름에 전교인 수련회를 처음으로 계획할 때인데, 수련회 답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 몇 분이 가는데, 담임목사인 저보고도 바람도 쐴 겸 다녀오자고들 하셔서 나섰습니다. 교회학교에 회계를 보시는 나이가 40대 후반의 한 집사님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홍천의 수양관으로 답사를 갔는데, 맑은 물을 보니 사람들이 좋아서 물고기도 잡자고 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도 보냈습니다. 잡은 물고기들을 그 집사님에게 주면서 가서 가족들하고 매운탕 해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 집사님 가정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 남편이 그 물고기를 보고, 교회에서 목사, 장로가 집사를 데리고 물가에 가서 물고기나 잡고 히히덕 거리며 놀았다고... 밤중에 전화가 오고... 다음 날 새벽에 새벽기도 인도를 하는데, 밖에서 ‘목사 나와~ ’, 큰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인도를 끝내고 나가보니 큰 가위를 하나 들고, 담배를 물고 목사 죽인다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릅니다. 목사를 찌르든지 죽이든지 일단 목사 사무실로 들어오기나 하라고 하며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밤새 잠도 안 자고 소주 몇 병을 깠대요(?). ... 그래도 내가 생기기는 괜찮은 목사 같은지, 이야기 하면서 마음이 풀어져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 몇 차례 보기도 했는데, 지금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집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 여러분, 사명자는 오해를 받아도 감수하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오해 받고, 조롱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칭찬을 위해 살지 말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해 받는 것도 개의치 마시기 바랍니다. 3)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요구로 상황이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힘든데 더 힘들어 집니다. 이제까지도 노예로 힘든 노동을 짊어지고 살아왔는데, 그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거절당하고, 오해 받는 것에 더해서 더 큰 고통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생각했습니다. “믿음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다”, 따라서 합시다. ....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전도자가 거절을 두려워하면 전도하지 못합니다. 전도하다가 거절을 당하면, 그것으로 상처받지 않고, ‘아니면 말고~ ’하면서 뒤돌아서면 됩니다. 거절을 두려워하면 어떻게 영혼을 구원하겠습니까? 오해를 두려워하면 어떻게 사명자의 길을 가겠습니까? 예수님도 거절과 오해와 고통을 참고 가셨는데, 나는 그분의 종인데도 그런 길을 절대로 안 간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참고 가야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오해받고 고통스러워도 그 길을 갑니다. 여러분, 믿음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막8:3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통을 지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칭찬해 주십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인상도 좋고, 유머도 있고, 말씀도 잘 전하시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소심합니다. 남이 나를 나쁘게 보면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비판과 비난을 들으면 스스로 위축이 되어 열등감에 빠지고, 밤에 잠을 못 잡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제 생각으로 사명자의 길에는, 늘 오해, 거절,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원래 이 길에는 그러한 고난이 있다고 인식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찬송 458장,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이 찬송은 1916년에 ‘아이나 오그돈’여사가 작사하고, ‘찰스 가브리엘’이 작곡하여 나온 찬송입니다. 오그돈 여사의 친정아버지가 1913년 사고로 불구의 몸이 되어 실망 가운데 살아갈 때, 아버지를 위해 지은 찬송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오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오해받는 것, 거절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 수 없습니다. 모세도 믿음으로 나갔는데, 그 길이 고난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주저함이 없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바로(세상)를 이기고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쪼록 변함없는 믿음의 길로 나아가셔서 바로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