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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가진 담대함 (요일 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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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담대함 (요일 5:9-15)


고대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우주를 가리키는 낱말로서 사용됩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서 ‘세상’으로 번역하고 있는 이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유독 즐겨 사용하고 있는 복음서와 서신서가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서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1장 9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리고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 5장 4절, 5절에서도 세상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코스모스(세상)’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그 단어를 통해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뜻을 전해 주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스라엘’ 이란 좁은 지역에 한정하지 않고 코스모스 즉 우주 만물 전체에 오심을 확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을 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민족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와 우주 만물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김은 우주적인 대 승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서 전체를 통해 세상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은 우리가 사랑해야 하고 또한 이겨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또한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 33절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세상을 이겨야 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스모스(세상)’라는 단어의 뜻처럼 세상을 향한 사랑과 이김은 우리에게 너무 멀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우주적인 사랑과 우주적인 승리’라는 말 앞에 우리가 가진 사랑과 이김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작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세상을 향한 사랑과 이김에 대하여 요한일서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전해 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또한 요한일서 5장 4절, 5절을 통해 “세상을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면서 그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비록 광대한 ‘코스모스(세상)’를 향한 사랑이지만 그 시작은 작은 사랑 즉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거대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우리 안에 있는 작은 믿음으로부터 출발함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이 문장에서 나오는 ‘서로’ 또는 ‘우리’는 ‘코스모스(세상)’에 비하여 아주 작은 단위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현재 우리는 그 옛날 사도 요한이 바라보았던 ‘코스모스’보다 더 광대한 ‘코스모스’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실제로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발달된 천체 관측 장비들은 우리에게 우주에는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진 행성이 지구 말고도 수백억 개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영역은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보다 더욱 확대되어졌고 세상은 날로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살던 1세기에는 세계 인구가 2억~3억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인구가 70억을 돌파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는 사도 요한이 살던 세상보다 더 광대한 ‘코스모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은 ‘서로’라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사랑이 광대한 ‘코스모스(세상)'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거대한 세상의 힘에 눌려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이 세상의 힘을 능가하는 힘이 바로 우리들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 또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확고히 세우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구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 5장 14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담대함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담대함이란 두려움과 걱정, 근심, 불안, 염려와 같은 우리의 어두운 감정에 바탕을 둔 반대적인 감정입니다. 두려움이 있기에 담대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할 때 우리에게 두려움과 걱정, 근심, 불안, 염려 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 때문인가요? 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5장 14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죄 때문에 일어난 두려움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14절의 ‘그를 향하여’라는 문장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를 향한다’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은 요한일서에서 자세히 다루었던 ‘하나님의 사랑과 세상을 이기는 믿음’에 가까이 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 하는 것이며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하려고 할 때,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려고 할 때 우리는 두렵습니다. 걱정이 되고 근심이 되며 염려가 됩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서로 사랑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랑하지만 상대방이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야 하지만 환란이 닥치면 두려움에 떨며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약하기에 하나님께 담대히 구해야 합니다. 이 구함은 재물을 구하거나 명예를 구하거나 건강을 구하거나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함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구함이여야 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기 위한 구함이여야 합니다. 14절 말씀에서 ‘그의 뜻대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사랑과 믿음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 우리가 구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먼저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부부 사이에서, 형제 자매 사이에서, 친구 사이에 또한 교회 안에서 성도들 사이에 우리가 먼저 손 내밀고 사랑합시다. 또한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께 담대히 구해 봅시다. 사랑을 방해하는 것을 제거해 달라고 구해 봅시다. 자신의 감정, 특히 분노를 다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해 봅시다. 조금 더 너그러움을 가지게 해 달라고 구해 봅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구함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거대한 세상의 힘에 눌리지 맙시다. 우리는 세상의 흐름이나 원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어려움도 믿음으로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에게는 죽음마저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께 담대히 구해 봅시다. 믿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기도해 봅시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일 뿐이다."라는 신앙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해 달라고 구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구하는 모든 것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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