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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가? (히 13: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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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가? (히 13:7-8,17)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옛날에 어린이들이 읽었던 小學에 보면 “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왕과 스승과 부모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부모와 스승을 왕같이 받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만큼 선생님이 존경받는 나라도 드뭅니다. 물론 최근에는 학교 교육이 아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학부모가 학교에 와서 학생들 보는 앞에서 선생님을 폭행하고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가 위기 중에 가장 무섭고 심각한 위기는 교육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 유대인이라 합니다. 노벨 수상자의 22%(480명중 93명)가 유대인입니다. 세계 200대 재벌의 15%, 미국 변호사의 30%, 미국 법대 교수의 50%, 의대교수의 50%, 정치, 언론, 예술, 과학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민족이 유대 민족입니다. 

어떻게 소수민족인 유대인들이 이처럼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교육입니다. 유대인은 부모님의 인격교육, 선생님의 전문가 교육, 랍비의 신앙 교육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교육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부모, 선생님, 랍비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자녀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세계 최고의 인재로 키워지는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신앙교육 선생님인 랍비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랍비"라는 말은 "나의 크신 분" "내 주" 라는 뜻입니다. 그 랍비들의 가르침을 묶어놓은 책이 ‘탈무드’ 입니다. 이 탈무드는 자녀를 가르치는 교과서이고 인생 상담서입니다. 이 책이 유대인들을 세계 최고가 되게 했습니다.   

이 탈무드에는 나오는 이야깁니다. 아버지와 랍비(선생)가 노예시장에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찾아와 두 분 가운데 오직 한 분 만을 살 수 있는 돈밖에 없을 때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런데 탈무드에서는 놀랍게도 랍비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부모는 아들의 생명을 이 땅에 가져온 자들이지만 랍비는 인간을 영원한 세계인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 ‘師弟’관계를 다른 용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멘토링"Mentoring이란 것입니다. ‘멘토링’이란 말은 ‘멘토’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나온 것입니다. 멘토(MENTOR)라는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왕의 친구였습니다. 

왕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그의 아들을 가장 믿을 만한 친구 멘토에 맡기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전쟁터에서 10년 동안 전쟁을 하고 승리하고 돌아와 보니 아들이 아주 훌륭하게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알아보니 친구 <멘토>의 역할이 컸다는 것입니다. 그 멘토는 왕자에게 친구요, 선생이요, 상담자로, 그리고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의 역할로 왕자는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멘토’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스승’의 동의어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멘토, 어떤 스승을 두고 살아갑니까? 스승하면 학교 선생님으로 연상됩니다. 그러나 비단 학교 선생님만 스승이 아닙니다. 제일 큰 스승은 부모님이고 두 번째는 친구가 스승일수 있고 직장의 선후배, 인생의 선배도 스승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빼 놓을 수 없는 스승은 영적 스승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牧會者를 말합니다. 이 목회자와 여러분과의 관계는 일생동안 계속되는 관계입니다.   

성경에는 여기저기서 스승과 제자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사람 몇 사람을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 관계입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스승 모세가 가르쳐 준 말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또 사무엘과 다윗의 관계,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입니다. 

공통점은 스승은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고 온전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에 철저히 순종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대한 인물로 들어 쓰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도 보세요. 

17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스승의 주일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영적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가? 
어떻게 영적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참다운 제자의 자세인가? 

이런 문제를 살피면서 함께 은혜를 누리길 축원합니다.   
왜 우리는 영적 지도자를 따라야 하나요? 

1.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따라야 합니다. 

왜 우리가 지도자를 따라야 하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왕도 부모님도 세우시고 스승님도 세우신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여호수아를 세우신 하나님,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 오늘 여러분의 스승을 통해 여러분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스승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는 온전하지 못하고 스스로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스스로 자라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배우고 성장합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성패는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은 제자의 생각을 바뀌게 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을 변화시키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니 좋은 영적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중요한 것은 내 스승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그의 권위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인 것입니다. 

17절 상반 절을 보세요.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왜죠? 그들에게 하나님이 부여한 권위가 있고 지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권위를 무시하고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이 버림받았나요?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 사무엘의 가르침을 거역합니다. 그를 무시합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그를 버리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 하셨나요? 그의 스승의 말을 순종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시기질투로 자기를 죽이려 해도 절대로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었기에 복수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복수하지 않고 도망을 칩니다. 그러니 결국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시고 그를 왕의로 삼으십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지도자의 말과 행위가 이해 안 되어도 순종하세요. 

순종과 복종을 함께 쓰신 이유가 뭘까요? 어떤 분이 제 설교카페에 질문을 올려 놓았어요. 순종과 복종의 차이가 뭔가요? 그래서 제가 답을 해주었습니다. 

자원하여 하는 것이 순종이고 하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복종이라 정의했습니다. 군대에서 순종하라 하지 않습니다. 복종하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순종과 복종을 동시에 명령할까요?

<존 비비어>라는 분이 쓴 “순종”이라는 책을 보면 순종과 복종은 같은 말 같으나 의미가 다르다 했습니다. 순종이 무엇이냐? 順從은 “權威에 반응하는 行動의 문제”이고 服從은 “權威에 대한 態度의 문제”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마음에 숨은 태도를 함께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종하되 즐거이 복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순종하되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것은 엄밀히 온전한 순종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복종해야 하는데 그것을 즐겁게 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행동으로 순종하였으며 즐거이 복종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순종으로 방주를 예비하였으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좋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즐거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히11: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순종하되 즐거이 복종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즐거이 하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도자를 따라야 하나요? 


2. 말씀을 통해 따라야 합니다. 

히13장 7절을 보세요.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누가 영적인 지도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는 사람이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영적인 지도자를 따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지도자는 엄밀히 말하면 영적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지도자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먼저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때 그 말씀에 의한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말로만 하지 않고 하나님이 명령한대로 하고 사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말씀과 행실이 일치하지 않으면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책망하는 외식하는 자들이고 그들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는 지도자를 가까이 하고 그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면을 보지 마세요. 겉으로 박사학위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고 경력이 아무리 화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명령과 반응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가를 보셔야합니다. 

주님이 맡겨준 사명에 목숨 걸고 그 일을 위해 충성하고 사는가? 

그 행위의 결말에 어떤 열매가 있는가를 보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의 권위는 형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지도자의 권위는 외모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 지도자의 권위는 말씀에서 나오고 말씀으로 말미암고 말씀으로 성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를 따르고 그를 순종하면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는 “보고 들은 것을 따라 가는 자”입니다. 
영어로 제자란 “disciple” “follower”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뭘 따릅니까? 스승이 하는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스승의 행동, 스승의 언행,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그대로 따르는 제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를 따르지 말라 나는 자격이 없으니 저 사람을 따르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고전4:16절에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그렇게 말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말, 여러분의 행동 하나가 제자를 만들기도 하고 마귀의 자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따라야 할까요?


3. 즐겁게 일하도록 따라야 합니다. 

17절 하반 절을 보세요.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누군가 누군가를 지도하고 이끌어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영적 지도자는 영혼의 문제를 책임져야 할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처럼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했습니다. 영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이기에 영적인 책임이 무겁습니다. 그러기에 그 무거운 짐을 질 때 즐거움으로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영적인 지도자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즐겁게 그 일을 감당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일이 근심으로 하게 하는 일인가?
또 어떻게 하는 일이 즐거움으로 하게 하는 것인가요?
믿음입니다. 믿음이 어떻게 되어야 하나요?   

1)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근심케 됩니다. 

신앙은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래야만 영적인 분별력이 생기고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월이 흐르는데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성도가 많습니다. 도대체 성장이 없습니다. 그러니 삶이 변화되지도 않고 복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그러기에 주님도 안타깝고 목사도 안타깝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자식이 10살이 넘었는데 아직도 소대변을 가리지 못하고 기저귀를 찬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아직도 분별력이 없어 손에 잡히는 것마다 입으로 가져가고 아직도 말을 못한다면 그 부모는 얼마나 큰 근심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 이야깁니다. 
예수님을 믿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주일이 뭔 날인지도 분별이 안 됩니다. 

그뿐 아니라 중직을 맡은 사람이 하나님 것 내 것을 분별하지도 못하여 하나님을 상대로 도적질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복을 누리겠습니까? 

그러니 근심하진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목회자만 근심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2) 내가 성장하여 제자를 만들면 스승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 스승은 스승으로서의 삶 자체에 보람과 만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스승은 고차원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께 영광입니다. 내 돈벌이, 내 보람, 내 만족이 목표라면 그것은 포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스승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 그리고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성장하려면 열심히 성경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낳아서 가르치고 양육해야합니다. 그것을 통해 영적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였습니다. 마28:19~20절을 보세요.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제자 삼는 첫 걸음은 전도요, 선교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안하고 남이 전도해 놓은 성도를 제자 삼는 것은 애도 안 낳아보고 애를 기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전도하여 그 사람을 구원하여 복음으로 낳아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아버지도 되고 스승도 되는 것입니다. 영적 스승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으로 낳았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스승입니다. 
그러나 또한 디모데도 많은 성도를 영적으로 낳았습니다. 그래서 스승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스승은 과거 누군가의 제자입니다. 그들이 온전한 제자로 스승을 좇았기에 지금 누군가에 스승이 되었던 것입니다. 

쉬운 예로, 여기 서있는 최목사도 예전에 많은 스승의 제자였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였더니 이제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적 스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제자로 머물러 있지 말고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먼저 스승을 따르고 순종하셔야 합니다. 순종하고 복종하되 근심으로 하게 말고 즐거움으로 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스승일지라도 불완전하고 흠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원한 스승, 그리고 흠 없는 완전한 스승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주이시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분은 여러분에게도 변함없으신 완전한 스승이 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믿고 따르시길 축원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스승들을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부족한 종도 연약한 부분이 많으나 여러분 앞에서 영적인 스승이 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좋은 제자 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스승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멋있는 제자, 멋있는 스승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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