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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강물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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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강물 (겔 47:1-12)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의 영혼과 삶속에 생수의 강이 충만하게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당신이 창조한 세계에 친히 찾아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으로 영접하여 모시면, 그런 사람에게는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늘의 생수가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본문 에스겔 47:1-12절의 말씀은, 유다 백성이 야훼 하나님의 뜻에 전혀 불순종하고, 자기 좋은대로 산, 어리석은 삶의 값으로 자신의 기업인 가나안 땅에서 뿥잡혀서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서 유프라테스 강의지류 가운데 하나인 그발 강가에 있는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처럼 유대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에 성령께서 에스겔에게 보여 주셨던 환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환상의 멧세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메시아시대, 곧 예수님이 오신 후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에게서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구원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에스겔이 본 환상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동쪽으로 난 성전문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 흐르는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흐르면서 점점 많아집니다. 그래서 바다 곧 사해에 이를 때에는, 저 넓은 사해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물이 됩니다.  이 물은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아지는 신비한 물입니다.  그리고 이 물이 흐르는 곳마다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강 좌우편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그 나무들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이 환상을 보여준 존재가 에스겔에게, 성전문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 동편으로 흘러가면서, 큰 강물이 된 물이, 죽은 바다에 흘러 들어가서 일으킬 역사에 대하여 본문 8-12절에서 예언하기를,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 아라바로 내려갔다가,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그 때에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강가에 늘 늘어설 것이다. 어부들이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물을 칠 것이다. 물고기의 종류도 지중해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와 똑같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해의 진펄과 개펄은 깨끗하게 고쳐지지 않고, 계속 소금에 절어 있을 것이다. 그 강가에는 이쪽이나 저쪽 언덕에 똑같이 온갖 종류의 먹을 과일나무가 자라고, 그 모든 잎도 시들지 않고, 그 열매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무들은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인데, 그것은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사람들이 먹고, 그 잎은 약재로 쓸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성경의 배경은 고대 근동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말씀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고대근동지방 전체뿐만 아니라 야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내에 있는 모든 나라와 백성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지명과 강은 실제로 지금도 중동지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중동지역에는 약 6만 개 이상의 마을이 물이 없이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물의 소중함을 우리보다는 더 강하게 느끼고 살 것입니다. 생수에 대한 갈증은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이 땅에서 지금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으로 요즈음에는 생수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거룩한 삶에 대하여, 성령의 법을 따라서 사는 것에 대하여, 심각할 정도로 갈증을 느낍니다. 어떤 축구팀 감독이 자신은 아직도 ‘승리에 대하여 목이 마르다.’라고 한 것처럼, 저는 지금 이 좋은 나라에서 살면서, 참된 진리와 생명에 대하여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겔 47:1-12절의 말씀을 가지고, ‘은혜의 강물’이란 주제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축복, 다시 말해서 생명의 역사, 살리는 역사는, 성전을 통해서 흘러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의 역사, 살리는 역사는 야훼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에 보이도록 임재하고 계신, 성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에스겔은 증거하기를, ‘그가 나를 데리고 다시 성전 문으로 갔는데, 보니, 성전 정면이 동쪽을 향하여 있었는데,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오른쪽에서 밑으로 흘러 내려가서, 제단의 남쪽으로 지나갔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특별히 야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표현 할 때에 비와 관련된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이른 비와 늦은 비’란 표현과 ‘단비’란 표현 그리고 ‘소나기와 소낙비’란 표현 등의 사용이 그런 예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물이나 비’란 표현은, 야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넘치는 은혜와 자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 65:10절에서 노래하기를, ‘주께서 또 밭이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이랑 끝을 마무르시며, 밭을 단비로 적시며, 움 돋는 새싹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라고 했고, 예언자 예레미야는 렘 14:22절에서 예언하기를, ‘이방사람이 섬기는 허황된 우상들 가운데 비를 내리는 신들이 있습니까? 주 우리의 하나님처럼, 소나기를 내려줄 수가 있습니까? 그런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께만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은헤와 자비와 사랑을 강물에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 7:37-38절에서 증거하기를, ‘명절의 가장 소중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본문에 나오는 에스겔의 예언을 비교해보면,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진정한 복은 어디서부터 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은, 야훼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성전은 야훼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신 곳으로 거룩한 곳이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복은 야훼 하나님에게서만 흘러나옵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복이란 사람으로부터 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는 복은 얼마 가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주는 복이란, 주는 이가 기분이 좋을 때는 주었다가도 기분이 나쁘면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생명수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수가 있어야만,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 안에 거할 때에 참된 기쁨이 너희의 삶 속에 넘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생명을 줄뿐만 아니라 더욱더 풍성하게 하려 세상에 왔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부터는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체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면, 절대로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복음서를 보세요, 가버나움의 회당장 야이로가 자기의 체면도 무시한 채, 뱃터에까지 딸 아이의 중병을 고쳐달라고 예수에게 찾아가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예수에게 절을 하면서 간청을 해서, 예수를 모시고 집으로 가다가, 집에서 온 사람에게서 딸 아이가 방금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야이로로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대책이 전혀 없는 그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만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낙심하거나 시비하지않은 채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 믿고 의지했을 때에, 죽었던 딸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듯이, 달리다굼 하며 부르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님만 붙들고, 의지하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믿음생활을 감당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복은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본문 3-5절에서 표현하기를,  ‘그가 줄자를 가지고 동쪽으로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보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발목에까지 올라왔다. 그가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보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그가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보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허리까지 올라왔다. 그가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렀는데, 거기에서는 물이 내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쳐서나 건널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물은 아니었다.’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경험한 것을 보면, 에스겔은 처음에 천사가 동쪽으로 천자가 되는 곳은 물이 발목에 찼지만, 이천자가 되는 곳은 물이 무릎에 닿고, 삼천자가 되는 지점은 물이 허리에 닿고, 사천자가 되는 지점부터는 헤엄을 쳐서나 건널까, 걸어서는 건널 수 없는 물이었다고 증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처음준 대로, 그만이 아니라 복을 받은 사람은 날마다 올라가고, 발전하고, 전진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물이 얕은 곳에서는 수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천사는 에스겔을 세 번씩이나 더 갚은 곳으로 이끌고 가셨습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세 번이나 더 깊은 곳으로 이끌고 간 것은, 에스겔이 은혜의 바다에서 헤엄을 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 에스겔이 이끌려 간 곳은 물은 흐르지만, 물이 발목에까지만 찼습니다. 물이 발목에 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 자신이 발목에까지만 은혜의 물,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에 잠긴다는 것입니다. 발만 잠긴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인간적인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연결은 되어 있지만 실은 내 생각, 내 유익, 내 자랑을 앞세우고, 예수는 보이지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 형편을 말합니다. 신령상 형편이 그러니까 예수교인은 같은데, 세상 이야기들로 시끄럽기가 짝이 없고, 전혀 가리지 않고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술집, 도박장, 음란한 장소, 육체의 정욕을 자극하는 자리, 어디든지 거리낌이 없이 가고, 입으로는 예수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예수는 생각하지를 않고, 자신만 생각합니다. 그러니 믿는 모양은 있으나 생명이 없고, 참된 복이 없고, 성령의 법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발목까지만 잠긴 그리스도인입니다. 영적인 깊이가 없습니다. 

다음에는 은혜의 물이 무릎에까지 잠겼습니다. 무릎에까지 은혜의 물이 잠겼다는 것은 이제는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기도하고 행동하는 믿음의 단계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합니까? 가정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의 심령의 부흥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합니까? 얼마나 깊은데 있습니까?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 빌면, 그 땅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도의 능력을 행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요나의 외침이 니느웨성을 구원했고,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은혜를 간구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이 민족이 살고, 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은혜의 물이 허리까지 찼습니다. 이제는 능히 걸어서는 건너지 못할 큰 강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에스겔이 경험한 것처럼 더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더 깊은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얼마나 깊은지 에스겔은 헤엄을 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했습니다. 헤엄을 치는 사람을 한 번 가만히 보세요, 헤엄을 치는 사람은 머리만 보입니다. 그러면 누가 여러분의 머리입니까?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머리, 믿는 사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심령과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사업에 하나님에게서부터 흘러나온 은혜의 강물이 충만하게 흘러넘치기를 바라시고, 여러분이 그런 복을 누리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생수의 강이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흘러넘치기를 원하십니다. 야훼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의 여정에 이런 참되고 진정한 복이 충만하기를 원하시고, 그런 복을 여러분에게 이미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무리를 향하여 외치시기를, ‘내가 주는 물은 너희 가운데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한다.’라고 하셨습니다.(믿으시면 아멘)

에스겔이 본 은혜의 강물은 물이 넘쳐납니다. 야훼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렇게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물은 바다처럼 충만합니다. 물이 마르지를 않고 줄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흘러넘칩니다. 여러분이 온전히 그리스도 예수를 매일매일 의지하고, 믿고 따라가면, 주님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매일 여러분에게 복을 주십니다. 은혜의 강물이 이 마포중앙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말할 수 없이 큰 강물이 되어 흘러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보리 산 위에서 나사렛 예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전혀 죄가 없으면서도  죄인으로 억울하게 정죄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신 것을 바라보고,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이 바로 나의 죄를 대속하고, 나의 질병을 고쳐주시기 위함이란 점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맏고, 의지하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영원하고 참되며 신령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분에게 은혜의 강물이 넘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세요, 족장 아브라함은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말을 따라서 아내의 몸종인 이집트여인 하갈의 몸을 통해서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록 외형적으로는 아들을 얻은 것이나,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을 족장 아브라함의 아들로 여기지를 않았고, 야훼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성위라고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여종을 통해서 얻은 아들과 약속을 통해서 얻은 아들이 다투게 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 보냅니다. 

광야로 나간 이스마엘과 하갈은 광야를 헤메다가 결국 물과 가진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대책이 없는 하갈은 아들이 죽게 된 것을 보고 통곡을 합니다. 하갈은 부르짖기를,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먹을것도 없습니다. 마실 물도 없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하갈의 눈 앞에서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게 하시니까, 바로 눈 앞에서 샘물이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갈과 이스마엘은 족장 아브라함이 주는 물보다 넘치는 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주는 것은 이처럼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가 주는 것은 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다윗처럼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전능하시고 은헤로우신 야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실망하거나 시비하거나 원망하게 되지만, 지혜로우시고 자비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부유하게하는 삶을 삽니다. 족장 야곱의아들 요셉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여호수아가 그랬으며, 다윗이 그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사람을 사셨습니다. 여러분도 이제부터는 그런 삶을 살기위하여 마음과 정성을 다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 은혜의 강물이 흐르는 곳에는 항상 풍성한 생명의 열매가 열립니다.

그렇습니다, 은혜의 강물이 흐르는 곳에는 항상 풍성한 생명의 열매가 열리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본문 9-12절에서 에스겔은 기록하기를,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그 때에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강가에 늘 늘어설 것이다. 어부들이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물을 칠 것이다. 물고기의 종류도 지중해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와 똑같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 그 강가에는 이쪽이나 저쪽 언덕에 똑같이 온갖 종류의 먹을 과일 나무가 자라고, 그 모든 잎도 시들지 않고, 그 열매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무들은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인데, 그것은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사람들이 먹고, 그 잎은 약재로 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의 예언처럼 은혜의 강물, 생수의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열리고, 물에는 각종 고기들이 풍성하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죽었던 바다가 살아나고, 많은 고기들이 생겨나고 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병든 육신도 고침을 받게되는 약재들이 생겨나서,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도 치료를 받게 됩니다. 

병원은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지만 교회는 영혼을 치료하는 곳입니다. 가정에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육의 진정한 치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강물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생명의 역사와 치유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말입니다. 은혜의 강물을 통하여 여러분의 병든 육체와 영혼이 완전한 치료를 받습니다. 나병환자가 중풍병자가 앉은뱅이가 소경이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치료받고 새로운 사람을 살게된 것처럼 은혜의 강물에서 헤엄을 치는 사람 또한 그렇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진정 은혜의 강물에서 헤엄을 치면, 많은 사람이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깊히 생각하고 바라보는 사람은 성령의 은혜 안에서 변화가 됩니다. 여러분이 나사렛 예수만을 믿고 기도할 때에, 기도한 대로 은혜의 강물이 온 세상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은혜의 강물이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흘러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은혜의 강물은 동방을 향하여 흐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에서 보면, 성전의 동방은 메마른 광야지대입니다. 그리고 그 광야지대의 끝에는 사해바다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는 메마른 광야를 지나서, 죽음의 바다를 향하여 흐릅니다. 하나님에게서 발원한 은혜의 강물은 비옥한 대지로 흐르지를 않고, 메마른 땅과 죽음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 거기에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믿음의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에게서, 메마른 광야와 같은 삶의 자리에 놀라운 은혜의 강물이 넘쳐흐름으로 인하여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감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학자이자 바리새인이고,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강팍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당을 핍박하는 일에 괴수였던 사울에게, 사울이 대제사장의 공한을 가지고 다마스커스로 피신한 예수당을 잡아오기 위하여 다마스커스로 갈 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울을 밝은 빛 가운데서 찾아갑니다. 그렇게 예수를 만났던 사울이 변하여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됩니다. 예수를 만나는 경험이 예수당에 대한 핍박자 사울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면서,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변화하게 했습니다. 

덕적도 출신의 사회주의자 엘리트였던 청년 김광우가 이용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받아들이고, 삶의 목표를 바꾸자 감리교 역사에 한획을 그은 목사 김광우로 변화합니다. 

황해도 재령 땅의 문제인물, 인간의 방법으로는 전혀 어찌할 수 없을만큼 불량하고 천성이 사악했던 인물인 김익두가, 재령교인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자, 불량한 인물 김익두가 당시 조선에서 가장 신유의 은사를 많이 보여주면서, 그리스도 예수에게 영광을 돌린 목사가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아무리 메마른 광야와 죽음의 바다라고 할지라도 변하여 강물 좌우로 강뚝에는 각 달마다 각기 다른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는 모든 병을 고치는 약재가 되는 생명나무들이 자라서 모든 병들고 아픈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그들의 병을 치료해주며, 흐르는 은혜의 강물은 흘러서 죽음의 바다에 들어가서 죽은 바다를 살리고, 죽은 바다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서 각종 물고기가 잡히고 어부들이 일하는 생명 있는 바다로 변화시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제단에서부터 솟아난 은혜의 샘물이 이미 솟아나기 시작한 지 100년 되어집니다. 이 생명의 샘물이 이제는 모여서 은혜의 강물을 이루었고, 그 생수의 강물이 지금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강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하여 많은 이웃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은혜의 강물에서 헤엄을 치며, 옛사람의 모습을 온전하게 버리고 새 사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메마르고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놀라운 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는 예루살렘 성전의 동방 같고, 사해바다 같이 메마르고 답답한, 죽음의 그림자에 뒤집어 쓰고 있으면서, 힘겨운 삶을 살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들에게 은혜의 강물과 생명 샘물을 공급해 주셔서, 참으로 풍성하고 시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금년에는 은혜의 강물이 흐르고, 강뚝에는 생명나무가 자라는 곳임을 이웃에게 보여주고 그런 소문의 진원지가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구제하고, 경건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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