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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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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


교회력으로 오늘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전 세계 그리스도 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 성령이 강림하신 날을 기념하여 성령강림주일로 지킵니다. 

행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시자 성령 받은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변화되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구약의 옛 이스라엘의 시대가 가고, 신약의 새 이스라엘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강림하시자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그 사람이 유대인이냐 아니냐 라는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했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사람을 구분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령이 강림하신 뒤에 새로운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게 됐습니다.

고전 2:1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에 속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영어 성경 KJV에서는 ‘natural ma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영어 성경 NIV에서는 ‘The man without Spirit’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육에 속한 사람이란 한 마디로 성령 받지 못한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강림 이후 사람들을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습니다. 바로 성령 받은 사람과 성령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받지 않은 육에 속한 사람과 성령 받은 육에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령 받지 않은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일에 대해 눈이 멀어있고, 귀가 닫혀있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나아가 영이신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배드릴 수 없고,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영적 식물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은 영적인 일에 대해 눈이 열리기 시작하고 귀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고, 그 분을 예배 현장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한 마디로 영적 식물인간이 깨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이 아니시면 우리는 여전히 영적으로 식물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뒤에 우리의 영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성령 받은 사람을 또 구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성령 받았다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전 3: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신령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육신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받았지만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신령한 자’가 있고, ‘육신에 속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신령한 자'란 바로 ‘영에 속한 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 받아 내주하시는 성령이 그 사람의 삶의 주도권을 행사하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육신에 속한 자란 육신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아 성령이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지만 여전히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행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들도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는 성령을 받고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성령을 받았지만 자신의 육신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일차적으로 성령을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았다고 거기에 머물면 안 됩니다. 이제는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에게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지 말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강림 사건 후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모습이 여럿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행 8장을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놀라운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8:26을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라고 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사역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을 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빌립이 기도 중에 성령께서 그 마음에 주시는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빌립이 그 음성에 순종해서 광야 길로 내려갔습니다. 그 때 도중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됐습니다. 29를 보면,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에게 그 내시에게 가까이 가서 전도할 강한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빌립이 그 마음에 순종하여 내시에게 다가갔고, 성령이 마음속에 떠올려 주시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때 그 내시가 예수를 믿게 됐고, 세례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한 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합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앞 서 가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따라갔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멈추면 따라서 멈췄습니다. 바로 이것이 외적인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께서 영적으로 인도하십니다.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적인 인도하심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우리의 심령 안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 설교를 듣는 동안, 기도하는 동안,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 심령 속에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생각과 일으켜 주시는 선하고 거룩한 마음을 주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 생각과 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내 육신의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확인시켜주십니다. 우리 마음이 평안하고 또 그 일을 생각하면 기쁨이 가득합니다. 비록 장애물이 있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을 따라야 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이 때 성령께서 세밀하게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은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곧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안에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마음이 있지만 또한 우리의 육체의 소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육체의 소욕이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마음을 가로 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마음을 따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롬 7:21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바울이 성령 받고 난 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영적 싸움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육체가 뿜어내는 욕망의 유혹이 강력합니다. 내 힘으로 이것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고도 여전히 악을 행하고 죄를 저지릅니다. 

본문 19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육체의 욕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르는 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육체의 일들을 15가지를 나열해 놓았습니다. 

우선 성적인 죄들로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적인 죄들로 우상숭배와 주술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인관계의 죄들로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등이 있습니다. 또한 술 취함과 방탕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육체의 일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내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육체의 욕망을 제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야말로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예언하셨고 또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이 우리 각 사람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권능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는 권능은 함께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뉴질랜드에는 새는 새인데 날지 못하는 새가 있습니다. 바로 키위새입니다. 타조처럼 잘 달리지도 못합니다. 에뮤처럼 덩치가 큰 것도 아닙니다. 작은 새인데 날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멸종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원래 날던 새인데 천적도 없고 땅에 지천으로 먹을 것이 널려있어서 날지 않고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결국 날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키위새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그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 받을 때 권능을 분명히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권능을 사용하지 않아서 다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받을 때 함께 받은 그 능력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히 내 안에 거하시게 될 때, 그 능력이 회복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육체적 욕망을 제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육체의 일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 안에 성품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의 열매”라고 한 점입니다. 우리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성형이 대세인 시대입니다. 20대 여성 중에 한 두 가지 성형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랍니다. 심지어 여고생들도 방학을 지나고 나면 달라져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 사람들이 성형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들 수가 급증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강남이 아시아 성형의 메카가 되고 있답니다.

그런데 성형을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연예인 사진을 하나씩 들고 찾아온답니다. 이 연예인 얼굴처럼 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거의 얼굴 전체를 뜯어고쳐야 할 정도로까지 요구한답니다. 그래도 워낙 성형기술이 발달해서 상당한 만족감을 보인답니다.

성령께서도 성형외과 의사처럼 우리의 모습을 바꾸십니다. 성형외과 의사가 외모를 바꾼다면 성령은 우리의 속사람을 바꾸십니다. 성형외과 의사가 연예인의 얼굴을 모델로 삼는다면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모델로 삼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바꾸어 주십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의 열매를 단수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아홉 가지 열매를 성령의 열매들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하나의 열매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홉 가지 성품의 모습은 한 가지 성품의 여러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은 할 수 있는데 충성이 부족하다, 나는 오래 참는 것은 잘 하는데 절제가 잘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열매로 이루어진 성품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본연의 성품의 특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새롭게 빚으실 때 이 아홉 가지 성품의 모습이 하나같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오래 믿으면서도 우리 성품 때문에 아직도 고민이 된다면 아직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품 때문에 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공동체의 덕이 세워지지 않고 있다면 아직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온전히 성령께 맡기고 성령의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성품을 새롭게 빚어주시도록 다 맡겨야 하겠습니다.

오늘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심령 속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을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이 주시는 능력으로 육체의 일을 끊고, 그분께서 우리의 성품을 새롭게 빚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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