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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의 대화 (잠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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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의 대화 (잠 17:1)


5월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 행복한 가정 만들기의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생각해봅시다. 
가족들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3년 지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도 건강치 못하면 그 가정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게 사실입니다. 

또한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이 곧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식주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근심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이 실직하게 되면 그 가정에는 한 순간에 걱정이 몰려오겠지요. 
그런 현상들을 주변에서 보면서 안정된 직업 또한 행복한 가정만들기의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가정 만들기에는 대화가 중요합니다. 
요즈음 우리사회의 담론은 ‘소통’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소통에 실패했다.’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 소통의 문제는 가족 간에도 있습니다. 
부부간에 대화가 없기 때문에 가정에 냉기류가 흐르고,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없기 때문에 자식들은 대화의 활로를 찾아 바깥으로 방황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잠 17:1절을 다시 보십시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제육은 고기반찬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가정의 행복이란, ‘얼마나 부유하느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화목! 얼마나 가정에 정겨운 대화가 있는가?’에 있음을 단적으로 지적한 말씀입니다.

1. 대화가 막혔을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① 좋지 않은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부부사이에도 살다보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섭섭하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 감정의 찌꺼기들이 풀어져야 하는데 대화가 막혔으니 마음속에 켜켜이 쌓이기만 합니다. 
그러면 속에서는 화병이 나고 가정에는 불행의 씨앗이 싹트게 됩니다.
우리말에 ‘애간장이 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애간장이란 췌장을 말하는데, 속이 상하거나 걱정이 많거나 근심이 깊으면 췌장이 녹는다는 것입니다.
애간장이 타지 않으려면 대화를 해야 합니다. 

② 대화가 막히면, 잘못과 실수들이 해명되거나 용서되지 않습니다. 

부부사이라고 하더라도 살다보면 서로에게 실수를 할 때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홧김에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하고, 술김에 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망감을 주기도 하고, 다급한 김에 궁여지책으로 한 변명이 상대방에게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불신감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에 대하여 서로 대화를 하여 해명하고 용서함으로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데 대화가 막혀 그런 기회를 갖지 않으면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켜 결국은 건널 수 없는 틈새를 만들고 맙니다.

③ 대화가 막히면, 가정에 혼란과 무질서가 생깁니다. 

이상하게 대화가 막히면 사는 재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는 재미가 없으니까 삶이 허무해지고, 권태롭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됩니다. 
그래서 일어날 때에 일어나지 않고, 잘 때에 자지 않고, 일할 때에 일하지 않습니다. 
삶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집니다.
남자 분들에게 물어봅니다. 
부부싸움을 해서 아내와 대화가 막혔을 때 끼니를 제때에 얻어먹게 됩디까? 
어렵지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암 3:3절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대화가 없으면 가정이 혼란스러워집니다.

2. 그렇다면 대화를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①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부부사이의 관계도 단절시킵니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최초의 부부, 아담과 하와 커플이 죄를 범하는 순간부터 어떤 관계로 전락되고 말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죄를 범하기 전에 서로의 손을 잡고 에덴동산의 푸른 언덕을 거닐면서 고백했던 말은 ‘여보, 당신은 내 살 중의 살이에요’ ‘아니오, 당신이야말로 내 뼈 중의 뼈가 아니겠소!’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스럽고 정겨운 대화가 서로를 단단히 묶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는 순간부터 행복한 사랑의 보금자리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너 때문이라.’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서로를 탓하는 처참한 부부관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창 3:12절 보십시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들이 죄를 지은 다음의 결혼 생활은 가히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독과 중노동, 해산의 고통, 자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칼부림과 살인사건…….
아담과 하와는 한 번도 사랑 같은 사랑을, 행복 같은 행복을 맛보지 못한 채 그들의 인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여기에 성경만이 날카롭게 통찰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지으면 부부관계에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없으면 진정한 가정의 행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② 대화를 방해하는 것은 잘못된 오락입니다. 

습관적으로 켜놓은 TV가 얼마나 가족 간의 대화를 방해하는지 모릅니다. 
식사시간에 가정드라마가 많이 방영됩니다. 
그 드라마만 나오면 숨소리도 크게 내면 안 돼요. 
모든 가족들의 시선은 TV화면에 고정되어 있어요. 
얼빠진 사람들처럼 수저는 밥그릇과 입 사이를 기계적으로 오고갑니다. 
가족들의 얼굴 한번 쳐다볼 여유가 없어요. 
TV가 무섭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를 송두리째 빼앗아가요!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전자제품 근처에도 갈 수 없답니다.
TV를 시청하는 것은 물론이고, 컴퓨터, 아이 패드, 휴대폰, 집에 있는 전화기조차 걸지도 받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서도 안 된답니다.
좀 심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좀 더 생각을 깊이 해봅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니 논문, 게임에서 해방될 터이고, 전화기에 손을 대지 않으니 인간관계의 사슬에서도 해방될 것입니다.

자동차를 타지 못하니 어디 갈 일도 없을 것이고, 아이패드 사용이 금지 되니 보는 눈과 마음의 눈이 한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남을까요?
가족 간의 대화이지요.
그래서 유대인 가정의 행복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③ 대화를 방해하는 것은 바쁘고 피곤한 사회생활, 직장생활입니다. 

‘직장에서는 당신의 에너지의 70%만 쓰라. 그리고 나머지 30%는 가정을 위해 쓰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무조건 쉬고 싶고 무조건 눕고 싶다면 대화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주비행사였던 니카엘 콜린스의 견해에 의하면 남자는 하루 25,000마디의 말을 할 수 있고, 여자는 하루 30,000마디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그 25,000마디의 말을 직장에서 다 해버리고 집에 돌아올 때에는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하루 종일 그 30,000마디의 말을 입에 담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저녁시간에 말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는 남편과 말 좀 하고 싶어 안달하는 아내와의 부조화 속에서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에너지의 100%를 쏟아부어야할 정도로 바쁘고 피곤한 직장생활은 삶을 위하여 심각하게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이게 사는 것인가?”라고.
임종 시에, ‘좀 더 열심히 직장생활 할 걸’, ‘좀 더 열심히 사업 할 걸’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어도 좀 더 가족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낼 걸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 할 수 있습니까? 

대화의 원리 3가지를 설명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 대화의 제1원리, 서로 마음을 열고 솔직해져라. 

상담자들에 의하면 가정이 파경에 이르렀을 때 그런 부부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 답니다. 
“나는 정말로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내가 무심코 한 얘기가 당신을 그렇게 속상하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나는 내가 하는 일들이- 남자라면 다 하는 일이기에- 당신을 그렇게 화나게 하는 줄 몰랐어.” 
“이런 일들이 당신에게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어.” 
이런 모든 경우들은 다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기독교 상담학자인 J. E. 아담스에게 어떤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그 부부는 서로 눈길을 피하며 상대방에 대하여 몹시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담스가 부인에게 말을 걸자 부인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노트 한권을 꺼냈습니다. 
결혼생활 13년 동안에 남편의 잘못한 일을 조목조목 적어놓은 제법 두꺼운 노트였습니다. 그 노트 마지막 부분에는 남편의 잘못을 찾아보기 쉽도록 색인표도 만들어 두었더랍니다. 이유 없이 귀가시간이 늦음 p1, p12, p20.........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남편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고 혹시라도 잊어버릴까봐 노트에 꼼꼼히 적으면서 이를 갈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 가정이 온전하겠습니까!

엡 4:26-27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 말씀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분노의 원인이 되는 것들을 마음에 품고 밤을 넘기지 말고 즉시 솔직하게 얘기하여 해결해야 함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할 때에 참고해야 할 점들은, 

① ‘그 말은 실제로 사실인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잠언 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사연을 들어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지 않고 느낌만 가지고 소문만 가지고 얘기하면 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②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말이 이로운가? 아니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것인가, 파괴적인가?’ 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오직 덕을 세우는데 필요한 선한 말,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③ ‘이것을 말해야 할 적절한 시기인가? 차라리 기다리는 편이 나을까!’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잠 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상대방의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때에 말을 하면 타는 불에 석유를 붓는 꼴입니다. 
그때에는 기다려야 하지요!

④ ‘내가 지금 쓰는 말이 가장 부드러운 말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 하느니라.” 
흥분해서 하는 말, 격정에 사로잡혀서 하는 말, 성질나는 대로 하는 말, 거친 말,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는 말, 이런 말은 그 말이 아무리 사실이고, 이롭고, 적절한 시기에 했을지라도, 노만 격동하게 됩니다.

⑤ ‘나는 이 일에 대하여 기도해왔는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시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2) 대화의 제2원리, 자아조절(self-control)이 있어야 한다.

앞에서도 간단히 말씀드렸지만 흥분된 상태, 격정에 사로잡힌 상태에서는 대화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특별히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감정에 사로잡혀 얘기할 때에 듣는 사람은 얘기의 내용에는 하나도 관심을 갖지 않고 그 감정만 읽게 됩니다. 
그래서 감정에 사로잡혀 얘기할 때-즉 화가 나서 얘기하거나, 짜증스럽게 얘기하거나, 원망 투로 얘기하거나, 흥분해서 얘기하거나, 불안해서 얘기하거나, 자기비애에 사로잡혀 신세타령조로 얘기할 때에는 기분만 언짢을 뿐 얘기 내용은 하나도 머리에 남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나는 화를 잘 내지만 뒤가 없어.” 
그러나 본인에게는 뒤가 없을지 모르지만 이미 그 말은 칼이 되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고 말았습니다. 

성경에서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렇게 비유합니다. 
.찌르는 칼-잠 12: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맹렬히 타오르는 불-잠 16:27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 
또한 어떤 사람은 속에 화가 났는데 겉으로 발산하지 않으면 화병이 되니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자신을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화는 한두 번 내기 시작하면 습관이 됩니다. 
화는 참아서 내지 말아야지 화가 입 밖으로 나오면 그 순간부터 사탄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 영향과 반응을 걷잡을 수 없어요!

자아 조절된 상태에서 대화를 하기 위하여 몇 가지 실제적인 제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감정 상하는 말은 서로 피해야 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해.’ ‘그것도 일이라고 했어! 당신은 참 무능한가봐.’

② 한 번에 한 문제씩만 다루십시오. 
‘당신!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것도 못마땅하고, 저것도…….’ 
그러면 싸움의 씨앗이 됩니다.

③ 현재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 과거를 들추지 마십시오. 
‘이 얘기는 안하려고 했는데…….당신 그때 말이야.’ 
이렇게 되면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3) 대화의 제3원리, 경청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없다. 

혹시 여러분들이 이런 경험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말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사방을 두리번거리거나, 하품을 하거나, 시계를 자주 보거나, 아무런 반응 없이 멍청하게 앉아 있으면 어떻게 되든가요? 
더 이상 말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고 빨리 말을 마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설교를 하는 목사로서 저는 이런 경험을 비교적으로 많이 합니다. 
설교 때 열심히 들어주고 ‘아멘’으로 반응을 보이면 준비한 것 +a로 설교하게 됩니다. 

설교 때 반응이 없고 시계만 자주 쳐다보면 준비한 것의 1/2로 설교하게 됩니다.
경청이 대화를 위해 이렇게 중요합니다. 
남편이 얘기할 때, 아내가 얘기할 때, 고개를 끄떡이면서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시선을 고정시키면 대화가 잘 진행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얘기 시작하기도 전에 “됐어! 당신이 무슨 얘기하는지 다 알아” 라든가, “ 일절만 하라.”든가, 얘기 중에 신문 가지고 오라든가, TV를 켠다거나 하면 대화는 어렵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된 가정은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①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② 자아 조절합니다. 
③ 경청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만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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