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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성령 받은 좋은 일꾼이 됩시다 (겔 36:26-27)

첨부 1


성령 받은 좋은 일꾼이 됩시다 (겔 36:26-27)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어느 이발조합에서 대회를 열었습니다. 이용사가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는가 하는 것을 널리 홍보하기 위한 대회였습니다. 그들은 거리의 걸인을 데려다가 그 추한 모습을 사진 찍고 다음에는 목욕을 시키고 말끔히 이발을 시키고 새 옷을 입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모습을 사진 찍어 "새 사람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제목이 붙은 광고지를 만들어 전시를 했습니다. 

대회는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모델이 되었던 걸인을 다시 거리로 돌려보낼 수 없어서 호텔의 벨 보이로 취직을 시켜주고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걸인은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궁금하게 여기면서 수소문해 그 거지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걸인은 어느 뒷골목 쓰레기통 곁에서 술에 만취되어 자고 있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인사불성으로 냄새만 풍기며 코를 골면서 자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목욕을 시키고 이발을 시켜 새 옷을 입혔다 해서 사람은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교육수준이 높고 인격적 수양을 쌓았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고 영혼을 새롭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의 불행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토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케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영을 허락하시고 새 마음을 주어 굳은 마음을 제할 것이며 새 신을 베풀어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말씀이며 성령 받고 심령의 삶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말씀하신 것을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유한하고,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약속을 절대로 변개치 않으십니다. 약속을 지키신 가운데 가장 분명한 약속은 성령을 주시리라고 하신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16:7에는 “가면 내가 그를(보혜사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6에는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 이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령은 주님이 떠나심으로 어김없이 오셨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바람 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요즘 신앙생활에서 문제는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흘리고 다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청년은 교회에 올 때마다 항상 똑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그런데 사는 모습은 이성관계도 복잡하고 전혀 성령 충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매번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그 기도를 계속 듣던 한 자매가 너무 안타까워서 어느 날 그가 기도하는 옆자리에서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항상 하던 대로 "하나님! 저를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자 옆에서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령 받고 나서 바로 성령을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받은 증거는 무엇일까요? 성령 받은 여러 가지 증거가 있을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증거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를 오늘 말씀에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겔 36:26)겠다고 하십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우리 속에 두시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의 성품과 인격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새 영과 새 마음에 대칭되는 것은 낡은 영, 낡은 마음입니다.
에스겔서 2장 4절에 낡은 영, 낡은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겔 2:4)고 합니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라고 하는데 낡은영, 낡은 마음은 나 중심의 사고를 말합니다. 이기주의라고 합니다. 인간 중심의 사고를 말합니다.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세상 중심의 사고를 말합니다. 세속주의라고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반대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에스겔서 3장 7절에 낡은 영, 낡은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나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겔 3:7)고 합니다.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이 꿈속에서 천국을 갔는데 천사가 그의 앞에 큰 책을 가져다 놓기에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천사가 말하기를 “이 책은 당신이 세상에서 행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첫 장을 보니 작은 글씨로 가득 쓰여져 있는데 무슨 글인지 알 수 없어서 천사에게 물어보니 천사가 말하기를 “그 내용은 당신이 세상에서 살 동안 행동으로 지은 죄가 낱낱이 기록되어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세상에서 참 많은 죄를 지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둘째 장을 펴보니 그 속에는 첫 장보다 더 작은 글씨로 가득 쓰여져 있어서 또 천사에게 물으니 “그것은 당신이 말로 지은 죄를 다 기록해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로 죄를 많이 지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셋째 장을 펴보니 둘째 장보다 더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혀 있는데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당신이 마음으로 지은 죄를 다 기록해둔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한 장을 더 넘겨보니 그 장에는 글자는 없고 그냥 까만색으로만 보여서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 영 새 마음은 이웃 중심의 사고를 말합니다. 이타주의, 또는 박애주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본주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새 영과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은 우리의 눈이 변화되어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되고 따라서 그 쪽을 바라보고 나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세상 쪽을 가리키는 고장난 나침반을 가지고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 쪽을 가리키는 바른 나침반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삶을 살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약 100여 년 전에 한 농부가 자신의 농장을 팔고 제임스타운(Jamestown)에서 존스타운(Johnstown)으로 이사 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마차로 이틀 길이었습니다. 첫째 날 밤, 그 농부와 가족들은 한 동네의 우물가 옆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사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존스타운 사람들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그분이 되물었습니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어땠지요?"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친절하고, 어린아이를 사랑하고, 서로 돕기를 좋아하고, 교회와 목사님을 아주 사랑했지요. 그곳을 떠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것이죠." 

그러자 그 동네 사람이 말했습니다. "존스타운 사람도 똑같아요. 아주 친절하고, 서로 돕기를 좋아하고, 교회와 목사님을 아주 사랑하지요." 그 말을 듣고 그 농부 가정은 기대를 가지고 존스타운에 가서 아주 만족하며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 몇 달 후에, 한 기능공도 제임스타운에서 존스타운으로 이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동네 우물가에 여장을 풀고 농부와 만났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존스타운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똑같이 되물었습니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그 기능공이 대답했습니다. "말 마십시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천하고, 비열하고, 뒤끝이 나쁩니다. 목사님은 위선자이고, 선생님은 사랑이 없고, 여자들은 말이 많지요." 

그 말을 듣고 동네 주인이 말했습니다. "존스타운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그들도 천하고, 비열하고, 뒤끝이 나쁩니다." 그러자 기능공은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곳에도 문제가 많은 사람들만 모였군요. 세상이 왜 이렇게 비뚤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찌푸린 얼굴로 존스타운에 들어가 살다가 그곳에서 1년도 살지 못하고 다시 오하이오로 이사 갔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기능공처럼 자기 시야와 생각과 태도가 비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항상 세상만 비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희망은 안 보이고, 불행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항상 "어디에서 희망을 찾나?"하고 살다가 인생을 낭비합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농부처럼 어디에 가든지 좋은 면을 보려고 애쓰고, 항상 자기가 처한 곳에서 희망을 만들며 인생을 보람 있게 보냅니다. 이러한 모습이 성령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26절)라고 합니다.
'굳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완고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한번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면죄부(Indulgence)를 팔러 갔던 테젤(Tezel)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면죄부를 팔면서 지난 죄를 다 사함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지을 죄도 사함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를 더 사면 앞으로 지을 죄도 사함 받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테젤이 면죄부를 팔고 로마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 돈을 다 털렸습니다. 면죄부를 판돈을 훔쳐 가면 지옥의 밑창에 떨어질거요 하고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그 강도는 면죄부를 보이며 앞으로 지을 죄도 면죄 받는다고 그러지 않았소 하고 소리 치고는 도망가 버렸습니다. 

면죄부가 죄를 용서하고 새 사람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역사하심으로 되어 집니다.

선민들은 오랫동안의 연단 기간을 거친 후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자신들의 '생명 양식'임을 깨닫고 옥토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느 8:1-12).

그런데 마음은 밭과 같습니다. 밭은 흙이 부드러워야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마음도 부드러워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단단한 마음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돌짝 밭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서 무슨 열매를 기대하겠습니까?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드러운 마음이 회복될 수 있습니까?
새 영을 가져야 합니다. 새 영을 가진다는 말은 영이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영이 거듭난다는 말은 성령이 임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진리를 사모하고 또 잘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그 마음의 특성으로 나타납니다.

(마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고오찌 요시다로오는 17세 때 주인의 돈을 훔쳤고, 18세 때에는 주인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후 그녀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밤에 꿈을 꾸는데 환한 빛이 비취더니 천사가 그에게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 지금 내가 네게 보여주는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행하여라.”하면서 천사가 그에게 커다란 성경을 펼쳐 보여주고는 곧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그는 똑같은 꿈을 또 꾸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성경을 구해서 밤낮으로 읽었습니다. 혼자 읽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읽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 교도소 안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고오찌 요시다로오의 변화는 물론, 그와 동일하게 무서운 죄를 지은 죄인들이 하나 둘 변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은 모든 죄수들의 공동 소유물로서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안을 변화시킨 장본인이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오찌 요시다로오는 가출옥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삶은 변화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고 합니다.
성령은 우리 몸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될 때 마귀의 도구였던 우리의 죽을 몸이 하나님의 의로운 병기로 변합니다. 

(롬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행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철저한 율법 준수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 역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성도들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롬 8:1-4; 13:9, 10).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인생은 그 원래적인 창조된 인격자로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276명이 탄 알렉산드리아호라는 배가 로마로 가기위해 지중해를 향해 출항했습니다. 그배에는 선장이 있었고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기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수들의 호송을 책임 맡은 율리오라는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사도바울이 탔습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전도한 바울은 죄인이라고 유대인들이 법정에 고소를 했는데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 이므로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했습니다. 

그런데 항해도중 하나님께서 바울의 마음속에 이배가 그레데라는 항구에서 머물렀다가 간다면 큰 광풍을 만나게 될것이라는 성령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선주와 선장 그리고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계속 항해를 하게되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후송 책임자인 백부장이 바울을 미친 사람 취급하며 바울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계속 항해를 명하였습니다. 

그 후 얼마 못되어 유라굴로 라는 광풍이 대작하였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와 부딪혔습니다. 바닷물이 배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배는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배의 기구들을 저희 손으로 내어버렸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14일 동안 하늘의 햇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살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을 업신여긴 결과를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에 바울이 밤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바울에게 하는 말이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로마의 황제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이 너와 함께 행하실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를 외쳤습니다.

“여러분! 이제 안심하십시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배는 한 섬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게된다는 말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바다의 경험 많은 선장과 선주대신 사도바울이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배는 한 섬에 걸리게 되고 깨어졌으나 바울이 시킨 데로 헤엄할 수 있는 좋은 곳으로 가 사람들은 모두 다 살게 되었습니다.(행27장)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구약의 "새 마음과 새 영"은  구약 역사에서 실현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인간 개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성령으로 변화되어 받게 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의 가슴 속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언어 음성을 들으면서 뜨거워졌습니다.

(눅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설교에서 영광의 그리스도를 십자가 에 못박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무리들은 "마음에 찔림을 얻어" 곧 양심의 가책을 얻어(행 2:37)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행 2:38)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행 2:41)였으며 '사도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서로'(42절) 교제하고 애찬의 친교를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였다고 했습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형제애'의 분위기가 충만한 교회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한 성령으로 즉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 세례 받은 기독교회만의 특징입니다. 초대 교회는 성도의 인격만을 귀히 여긴 것이 아니라, 성도 된 삶도 공동체적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그것은 곧 '물질의 공유 생활'(44, 45절)입니다. 초대 교회의 물질과 마음의 유무상통의 생활 모습은 바로 교회가 미래의 영생 천국의 예표 사회임을 보여 준 것입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은 십자가와 함께 회개를 통한 자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새 마음과 새 영을 확보하는 일 곧 성령으로 인격의 변화를 이루어나가는 일로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으로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며 성령 받은 증거를 나타내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하는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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