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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땅에 있는 하늘 (고전 1:1-3) -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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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있는 하늘 (고전 1:1-3)

: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6일, 현충일과 25일, 625가 시작된 날이 있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6월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이 땅에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달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6월 그것도 25일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날이 우리교회를 처음 시작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1972년 6월 25일, 이리시 창인동 1가 248번지에서 우리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창립 4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오늘의 우리교회가 여기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기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를 위하여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아낌없는 박수를 드립니다.  

이제, 창립기념주일의 앞두고 교회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 교회가 문제라는 말을 듣는 것은 교인들이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서 정작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교회라고 한다면서 정작 본인들은 왜 자신을 교회라고 하는지를 모른다면 여간 문제가 아닙니다. 이 6월에 교회를 생각합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부르심’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절 끝 부분에서는 성도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말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2절을 시작하는 단어인 ‘교회’라는 말에도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klhtov"/클레토스]이란 ‘초대된’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되고 지명 되어 초대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교회입니다.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초대를 받고 응답하여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실을 단 한 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 한 마디로 설명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중요한 내용을 생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일도 그 속으로 들어가면 무척 복잡할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말 속에도 여러 의미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I. 복합  

복합이라는 무엇입니까? 주상복합빌딩이라고 하면 주택과 상가가 함께 있는 건물입니다. 농사에 사용하는 복합비료는 요소비료나 질소비료처럼 한 가지 성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을 함께 가지고 있는 비료입니다. 이렇게 복합(複合)은 두 가지 이상이 하나로 합쳐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내용들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까?
2절 말씀입니다.

: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우선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라는 도시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기록하면서 이 편지를 받을 사람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이 간단한 말 속에는 하나님의 교회와 고린도에 있는 교회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교회요,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교회라는 뜻으로 다른 말로 ‘우주적 교회’라고 부릅니다. 우주적 교회란 어느 시대, 문화, 장소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전체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무형의 교회’라고도 부릅니다. 우주적 교회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어느 교단에 속해있든지 어느 지역에 있든지 상관없이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의 교인입니다. 

이런 우주적 교회는 어떤 조직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이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 어느 장소에 있든지 같은 교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일 뿐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어떤 지역에 있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2. 지역에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는 교회는 고린도라는 특별한 지역에 있었던 지역적 교회였습니다. 고린도는 현재 그리스의 남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고린도 운하로 유명합니다. 당시는 아가야 지방의 행정수도로 인구 60만 명의 상업 중심의 거대도시였습니다.

우리나라 보물 제1호는 동대문입니다. 그런데 보물 제904호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외국 물건입니다. 이것은 마라톤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손기정 투구’로 알려진 투구입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선수가 마라톤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당시 그리스 아테네 브라드니 신문사는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려고 청동투구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전달받지 못하고 50년이 지나서야 어렵게 전달받았습니다. 손기정 옹은 이를 국가에 기증했고 정부는 서구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904호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이 투구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투구는 기원전 7, 8세기의 것으로, 눈과 입을 제외한 머리의 전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제작된 바로 고린도 투구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바로 그 투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투구 하나를 통하여 조선 사람이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가슴 아픈 역사를 만납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리스에 있는 고린도라는 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린도 투구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의 생명이라면 보이는 지역의 교회는 교회의 실체입니다. 교회는 우주적 교회라는 보편성과 지역적 교회라는 특수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적 교회라는 것만을 강조하여 지역적 교회를 무시하면 ‘무교회주의’가 됩니다. 반대로 지역적 교회를 강조하고 우주적 교회를 무시하면 ‘교파주의자’가 됩니다. 

교회의 본질은 지역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땅에 있는 하늘입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이면서도 이 세상에 있는 지역 교회는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먼저 꼽아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II. 거룩  

일반적으로 교회의 속성으로 가장 먼저 꼽아야 하는 것은 거룩성입니다. 교회의 으뜸적인 속성으로 거룩성을 꼽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연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시 2절 말씀입니다.

: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거룩하여지고’라는 말입니다. ‘거룩하다[aJgiavzw/하기아조]’는 말이 수동태 현재완료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스스로 거룩하여진 것이 아니고 누군가 다른 분에 의하여 거룩하게 되었고, 또 거룩하여진 결과로 지금도 계속하여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거룩하게 되었습니까?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도록 깨끗하게 구별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거룩하신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거룩함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문제 중에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인구의 고령화입니다. 고령화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 직장에서 은퇴 또는 퇴직의 문제입니다. 견고해 보이던 직장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대체로 40대 들어서부터입니다. 경기불황 속에 혹은 젊은 세대에 밀려 조기 퇴직을 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직장을 떠나는 것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수입이 없어졌다는 경제적인 충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단절이라는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받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부장이었는데 회사를 떠나면 더 이상 부장이 아닙니다. 퇴직 후에도, 아는 사람들이 ‘부장님’이라고 불러주지만 그냥 불러주는 것일 뿐입니다. 소속을 떠나면 대부분의 모든 관계는 끝입니다. 그래서 어깨가 쳐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인생의 후반전’에 대한 이야기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은퇴가 곧 삶의 황혼 길은 아님을, 은퇴(retire)는 인생의 끝도 아니요, 절망의 시작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 2막을 통하여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일하기를 원하는 분들이 일자리를 찾고, 소속감을 잃은 분들이 소속감과 함께 자신의 존재감을 갖게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느 곳에 소속됨으로 존재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존재감이 있습니다. 더러운 마음이 있으면 더러운 사람이고, 아름다운 마음이 있으면 아름다운 사람이듯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거룩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는 무엇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2.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인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성도[a{gio"/하기오스]는 ‘신성한’, ‘순결한’, ‘거룩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성품의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러주십니다. 노력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사람이라고 불러주시니 거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결과를 바라보시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네가 무엇이다.’라고 가르치지 않고 ‘네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은 장차 무엇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칩니다. 베드로전서 1:14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13, 13에서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3:3에서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 고린도전서 6:9-12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결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10과 오늘 말씀은 ‘성도’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도라는 말은 우리가 불신자보다 낫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성도입니다. 거룩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거룩합니다. 이제 거룩한 사람이니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형편이나 조건 때문에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랑하거나 교만하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지금 누구에게 속하여 있느냐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라고 불러주시면 우리는 성도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성도로 살기 위하여 성령으로 충만을 간구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땅에 있는 하늘입니다. 교회의 속성은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III. 고백  

잠언 말씀에 재미있는 표현이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잠 17:28)는 말씀입니다. 미련한 자가 미련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입술입니다. 우리의 입으로 무엇이라고 말하느냐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인생입니다. 미련한 말을 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말을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생명의 말을 하는 사람은 생명의 사람이고, 죽음의 말을 하는 사람은 죽음의 사람입니다.

교회인 우리는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까?
마지막으로 다시, 2절 말씀입니다.

: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번에 주목하려는 말씀은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라는 말입니다. 이 중에서도 우선 ‘각처에서’와 ‘모든 자들에게’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고린도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그 주변 다른 도시에 있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 연합된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룩하여진 사람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동일한 공동체입니다. 요즘 지역과 교파에 따라 강조하는 것이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지만 동일한 DNA를 가진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감리교회입니다. 그래서 감리사와 감독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역예배라고 하지 않고 속회예배라고 합니다. 칼빈을 이야기하지 않고 웨슬리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모든 개신교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복음주의와 경건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복음주의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경건주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파에 따라서 또는 그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에 따라서 교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모든 교회는 예수님이라는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뚜렷한 DNA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고백의 공동체입니다. 어느 곳에 흩어져 있어도 우리의 주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인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2.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구호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하나님의 교회’라는 간판을 단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제7안식교의 신자였던 안상홍이 계시를 받았다며 분리해 창설한 이단입니다. 이들은 교주 안상홍을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온 하나님이며 성경에 예언된 재림주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기도할 때도 예수님이 아닌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소위 육신을 입고 온 하나님이라는 안상홍은 67세를 일기로 1985년 2월 25일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요즘은 그의 아내인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모시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명칭이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로 바뀌었습니다

이름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해서 하나님의 교회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주님의 종들로써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성도가 아니라고 저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으며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뜻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가를 스스로 점검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종들로써 살아가는 참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인 전도의 문은 막힐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한없이 탄식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생각이라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는 것이라면 헛된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주심으로 사탄의 목에 방울을 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인 교회는 사탄의 간계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딸랑거리는 사탄의 방울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깨어나야 합니다.

전자랜드 사거리에서 우리 교회 쪽으로 오다보면 육교가 있습니다. 그 육교에 이런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안전 운전, 법규준수. 구호가 아니라 실천입니다.”

현수막의 내용을 보면서 신앙도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라는 생각하였습니다. 신앙의 실천 그것이 보이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보이는 교회의 모습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교회가 먼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역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여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믿음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교회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소금 같고 빛 같은 교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 지역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거룩한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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