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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요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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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하나님 (요 3:1-17)


주님이 제자들에게 친히 말씀하신 성령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뜨겁게 임하셨습니다. 그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사람들은 히브리 노예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 주님은 다만 사람들과 함께하셨을 뿐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시고 또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오셨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이 삼위일체 교리가 걸림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실족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교리를 잘못 다루다가 사이비 이단으로 전락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이 교리는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 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교리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대상에 관한 것을 지식으로 다루려는 사람들로서는 불만이겠지만 ‘유한이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는 철학자들의 말처럼 우리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은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일 것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다만 오해가 없도록 돕기 위해서 참고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나 삼위로 계신다. 삼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 삼위는 서로 혼돈되거나 혼합할 수 없고, 완전히 분리할 수도 없다. 삼위는 그 신성과 능력과 존재와 서열과 영광에 있어서 완전히 동등하시다.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 사람은 성자를 통하지 않고는 성부에게 갈 수 없고, 성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성자에게 갈 수 없으며, 또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성자를 주라고 말할 수도 없다. 성삼위는 모든 사역에서 공동으로 사역하시나, 성부는 주로 계획하시고, 성자는 계획된 것을 실현시키시며, 성령은 모든 은총을 보존하고 더하신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는 좀 혼란스러웠던 같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라는 청년이 보여 준 놀라운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명한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 청년과 함께하시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물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 그러자 주님은 동문서답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주님은 그가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또 물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4)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하나님 나라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그렇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방법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만 불가능한 그 일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야 비로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도 니고데모는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또 다시 물었습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9) 그러자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그렇습니다! 지금 그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으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으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눈앞에서 마치 어두운 구름이 활짝 걷히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구원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독생자를 바로 알고 믿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령이 하나님의 독생자를 바로 알게 하시고 또한 바로 믿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바로 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앞에서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새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통해서 거듭나지 않았습니까? 구원은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분명히 체험할 수 있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어지는 18절 말씀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고 영접한 사람은 지금 여기서부터 참 평안과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운명은 성령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그 흉한 십자가 위에서 뜨거운 사랑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또한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놀랍게도 하나님을 향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감격한 채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 옛날 니고데모도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참 하나님을 체험한 후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크게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는 나름대로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7장 45절 이하의 기록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랫사람들을 시켜 예수님을 잡아오려고 할 때에 그가 나서서 변호하는 광경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다 달아난 그 십자가 형장에 그는 예수님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나름대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사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또한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일어나 구원의 복된 소식을 널리 전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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