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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신경(13) : 성령님을 믿습니다 (마 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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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13) : 성령님을 믿습니다 (마 28:19)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으면 산 위로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산 위에 올라가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100% 성령을 소멸해서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절대 신앙의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어느 날 깊은 사색에 잠긴 채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길 한가운데에서 두 사람이 충돌을 했습니다.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이 벌컥 화를 내면서 “당신은 누구인데 앞도 보지 못하고 다니는 거요?”하고 야단을 쳤답니다. 그때 쇼펜하우어는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글쎄 올시다. 내가 누구냐고요? 나도 방금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하나님이 누구인신지 모른다면 그 사람은 신앙의 방황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인생의 방황, 신앙의 방황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현대에 알려진 병의 종류가 3만 5천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물론 모르는 병명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5천 종류는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아직도 3만 종류가 속수무책이라고 합니다. 고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병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모르는 병은 치료할 방법이 없으므로 죽을병입니다.
   
요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중에는 영적으로 병든 분들이 많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앙의 질병은 원인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죄 때문입니다. 감기 바이러스 때문에 감기가 걸리는 것처럼 죄 때문에 신앙의 질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성령을 소멸해서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바이러스가 자리 잡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면역력과 같습니다. 면역력이 강하면 바이러스가 자리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지만 면역력이 약해지면 바이러스가 자리를 잡아서 쉽게 병에 걸리는 것처럼 성령충만하면 건강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고 성령님을 소멸하면 신앙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사도신경 13번째입니다. 사도신경 중에서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고백을 통해서 성령님에 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성령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올바른 고백은 가장 먼저 성령님의 신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성령님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이거나 피조물 중에 하나가 아니라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제 영이 저인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역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경 마 2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지상명령을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온전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또한 아들 예수님께서도 온전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차원에서 성령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령님 역시 온전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행 5장을 보면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교회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현장에서 즉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하나님과 성령님을 동일시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3,4)
   
바울은 고전 2:10에서 성령님이 전지하신 속성을 지니고 계시다고 말하므로 성령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셨습니다. 피조물은 절대 전지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훤히 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2. 성령님이 전능하신 분인 것을 믿습니다. 
   
성령님의 전능성은 창조 사역을 통해서 증거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창 1:2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실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성령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자이십니다. 

시 104:30을 보면 성령님께서 바다 속에 있는 생물을 창조하셨음을 말합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또 욥 33:4에서는 성령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성령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 성령님이 나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이시며 전능자이신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성경 롬 8:26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행복한 신앙생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신앙생활은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광야 체험입니다. 우리 팀은 약 3시간 동안 유대광야를 걸었습니다. 저는 광야를 횡단하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을 묵상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팀은 광야를 약 3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겨우 3시간이었지만 몸이 불편한 분들은 광야 횡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겨우 3시간 이었지만 헛구역질을 하며 괴로워하는 분도 있었고,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은 한 사람도 쓰러지지 않았고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광야를 3시간 걷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을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건조하기 때문에 그늘만 있으면 시원합니다. 우리 팀은 광야를 횡단하던 중간에 그늘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늘에 들어가니 시원해서 기도할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덮어주셨기 때문에 40년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양식을 자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단 한 끼도 굶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하셔서 백성들이 양식으로 삼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광야에는 물이 없습니다. 양식이 없이 40일도 살 수 있지만 물이 없으면 일주일도 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물이 없는 광야에서 어떻게 40년을 살았을까요?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물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셨고, 쓴물을 만났을 때는 쓴물이 단물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광야를 횡단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을 만났을 때는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이스라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아말렉과 싸울 때는 기도하는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잡아주었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으니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이기고 결국은 아말렉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이스라엘에서 유대 광야를 통과할 때 베두인 2사람이 저희들과 동행했습니다. 그들은 2마리의 나귀를 가기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지치면 나귀에 태워서 돈을 받을 생각으로 저희들과 동행을 했습니다. 그들은 저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들어서 저희들이 나귀를 타게 하려고 그러는지 저희들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저희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좀 위험한 길이 나오면 손을 내밀어 저희들을 잡아주었고, 길에 돌이 있으면 저희들의 발에 돌이 걸리지 않게 치워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되는 길인데 손을 내밀고 붙들어주고 괜히 작은 돌도 치워주면서 과잉친절도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우리 팀에서는 단 한 사람도 나귀를 타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위험한 길을 저희들과 동행해 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팁으로 한 사람당 10$씩 주었습니다.
   
성령님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광야를 횡단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도우셨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는 성령께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별명 중에 하나가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곁에서 돕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럼 성령께서 무엇을 도와주시는 것일까요? 먼저 성령님은 우리가 믿음을 갖도록 도우십니다. 믿음은 신비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가 결정되고 기도가 응답 받느냐 응답 받지 못하느냐가 결정 됩니다. 식물에 물과 양분이 공급되어야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말씀이 공급 될 때 믿음은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시작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고 오직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성경 요 3:5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또 고전 12:3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히스기야 터널에 들어갔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군대의 공격에 대비해서 성 밖에 있는 기혼 샘에서부터 성 안에 있는 실로암까지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500m가 넘는 터널을 양쪽에서 파왔는데 중간에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히스기야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히스기야 터널은 어둡기 때문에 터널을 통과하려면 랜턴이 필요했습니다. 랜턴으로 신앙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랜턴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건전지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랜턴이라도 건전지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가격이 비싸도, 모양이 예뻐도 건전지 없이는 빛을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인물이 좋고, 가문이 좋아도, 아무리 학벌이 좋아도, 교회 생활을 오래했어도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면 인간적으로 못났어도, 학벌이 부족해도, 가문이 좋지 않아도 믿음을 자질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가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성령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능력을 갖도록 도우십니다. 행 1:8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그 사람은 권능을 받습니다. 여기서 권능은 헬라어로 ‘두나미스’라고 해서 ‘신체적, 지적, 영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났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삼손은 성령이 역사하실 때마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었습니다. 삿 14:6을 보면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삼손에게 강력한 육체적인 힘을 주셔서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번에 이스라엘에 함께 갔던 분 가운데 송경자 전도사님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분은 이스라엘에 가기 전에 무릎 연골이 찢어졌습니다.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서 교회에서 한 층도 내려가기 힘들어서 아래층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화를 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송전도사님이 그 아픈 무릎으로 이스라엘에 저희들과 함께 가서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 무릎으로 모든 코스를 다른 분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심지어 광야 횡단도 하고, 예루살렘 성벽 돌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몸이 힘들어서 모든 사역에 동참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분에게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육체에 힘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분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던 간증입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주역 중의 한분이셨던 류태영 박사님의 간증에 나온 얘기입니다. 1978년도에 조용기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순복음중앙교회에 가서 특강을 했답니다. 특강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대학교수직을 정년퇴임하신 67세가 되신 장로님이 오셔서 강의를 감명 깊게 들었다고 하시면서 “대학다운 대학을 세워 내가 운영하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돈을 얼마나 준비하셨습니까?” “2억 원 정도 준비했습니다.” “아니, 그 정도의 돈이라면 종로에 나가서 학원정도 차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학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내일 담판하러 갑니다.” “담판하러 문교부에 가십니까? 어딜 가십니까?” “오산리기도원의 뒷동산 토굴에 들어가서 기도로 하나님과 담판할 겁니다.”
   
2주 후에 류태영 박사께서 우연히 어느 자리에서 그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응답받으셨습니까?” “응답 받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연로하신 장로님이 대학을 세워 18년 동안 총장을 역임하고, 대학건물을 58동이나 지었답니다. 90살 되던 해에 아들에게 총장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손에서 일을 놓으니 너무 허전해서 93살에 코엑스 옆에 정보통신대학원을 세워 총장으로 취임했답니다.
   
저는 그 장로님의 능력은 성령의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성령께서 꿈을 주셨습니다. 그 장로님이 자신이 받은 비전을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하니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그 장로님에게 능력이 나타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이 나타나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비전이 임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큰 일 때가 많습니다. 불신앙의 눈으로 그 비전을 보면 허황된 꿈이지만 비전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성령의 도움을 받는다면 불가능할 것 같은 비전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번 이스라엘 기도여행 중에 함께 동행 했던 진흥 여행사 정수미 실장이 받은 감동입니다. 그분은 조용히 우리 뒤에서 우리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월급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 때문에 일하는 분 같습니다. 그분이 우리팀의 인솔자가 되어서 우리와 동행하며 함께 이스라엘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그분은 기도하던 중 우리교회가 갈릴리에 기도의 집을 세웠으면 좋겠다는 감동이 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기도의 집이 좀 있기는 한데 갈릴리에는 없답니다. 갈릴리는 주님의 주 사역 무대인데 그곳에 우리처럼 기도하는 교회가 기도의 집을 세워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참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주의 음성을 들은 것은 없습니다. 

만약 주님이 저에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갈릴리에 기도의 집을 세우고 싶습니다. 사실 그 일은 우리의 현재의 형편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이 원하시고 우리가 결단한다면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받았는데 능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주신 비전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이 도와주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슥 4:6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어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가능합니다. 

슥 4:7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 당시 스룹바벨 앞에는 큰 산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성전을 재건하는 문제인데 스룹바벨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면 큰 산 같은 문제가 평지가 되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대로 스룹바벨은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은 확실하지만 우리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산 같은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능력을 주실 것이며 큰 산 같은 문제가 평지가 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불가능한 일을 해 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A.D 70년에는 로마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로마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만 아니라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로마는 황제 숭배를 했던 나라입니다. 황제 숭배에 반대하는 기독교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드렸고 결국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주님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 본디오에게 십자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 때 주님의 12제자 중에 하나는 주님을 은 30냥에 팔아먹었고 나머지 11명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오합지졸 같던 11명의 주님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그들이 능력의 사람들이 되어서 로마를 복음화 시켰고 온 세상에 복음이 편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그들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신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18세기 영국은 방탕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여섯 집 마다 한 집씩 술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1센트만 가지면 취하도록 마시고, 2센트만 있으면 죽도록 마신다”는 말을 할 정도로 방탕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영국에 성령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웨슬리였습니다. 요한 웨슬레 한 사람이 성령께 사로잡히니 그를 통해서 전 영국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요한웨슬레에게 능력을 주셨고 그를 통해서 한 나라를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능력을 갖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다고 할 때 세 가지를 닮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을 받고 위대한 사역을 해도 예수님의 인격을 닮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예수님의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받지 않고도 능력이 나타나기도 하고 큰 사역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인격을 담는 것은 반드시 주님의 생명을 받아야 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 롬 8:26-30을 보면 성령께서 연약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지 말씀합니다. 세 가지를 말씀하는데 첫째,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둘째, 우리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도우십니다. 셋째,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는 인격적인 변화입니다. 성령님은 육신 중심의 우리들을 변화시키셔서 영중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우리를 통해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갈 5:22,23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생명적인 역사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인격의 변화입니다.
   
이번에 이스라엘 사역에 함께 동참 했던 목사님 중에 한 분이 우리교인들 칭찬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1일 동안 30여명이 함께 움직이려면 인간적인 갈등이 많을 텐데 그 갈등을 표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이 우리 가운데 인간적인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떻게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11일 동안 함께 움직이는데 갈등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모두가 지혜롭게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성령께서 우리팀원들 각자에게 역사를 하셔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인격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사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랜턴의 예를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랜턴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랜턴이 빛을 내려면 건전지에서 전기를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만약 건전지 안에 있는 전기가 다 방전 된다면 랜턴은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랜턴이 계속해서 빛을 발하려면 건전지에서 계속해서 전기를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빛 된 삶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빛 된 삶을 살려면 성령께서 전기처럼 생명을 공급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의 생명의 공급이 끊어진다면 우리의 인격은 과거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계속해서 생명의 공급을 해주신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된 삶을 살게 되고 계속해서 빛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빛이었다가 어둠이 되었다가 빛과 어둠을 자주 왕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늘 빛으로 살고 싶지만 자기도 모르게 어둠에 빠지고 맙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가 곧 소멸하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는 빛입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어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를 가보니 앞집에 유행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유행가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이사를 간 집사님이 유행가가 듣기 싫고 머리도 아프더랍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자기도 모르게 앞집 사람이 부르는 유행가를 따라 부르고 있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주 나오고, 하나님 앞에 늘 엎드려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늘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리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고 늘 세상에 있으면 세상의 영을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
   
인도의 격언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에는 두 종류의 개가 있다고 하면서 비유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흰 개와 검은 개가 있어서 늘 서로 싸우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 흰 개와 검은 개의 싸움에서, 검은 개가 이기면 육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고, 흰 개가 이기면 영혼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성령님과 나의 육체의 싸움입니다. 육체가 이기면 육체의 열매를 맺습니다. 육체의 열매는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인격을 닮아가게 만듭니다. 반대로 성령님이 이기시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검은 개에게만 먹을 것을 충분히 주고 흰 개에게는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검은 개는 점점 힘을 얻고 흰 개는 점점 힘이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흰 개는 죽게 되고 검은 개만 살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육체의 필요만 채운다면 성령님은 점점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성령님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마귀가 원하는 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의 필요를 채워드리고 성령을 인정하며 살면 마귀의 역사는 점점 소멸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마귀는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님을 인정하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시며 우리는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나를 도우셔서 믿음을 갖게 하시고 능력을 부어주시고 예수님을 닮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성령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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