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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탐욕의 종말 (수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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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종말 (수 7:1-5) 
 
 
당랑포선(螳螂捕蟬)이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유래는 춘추 전국시대 어느 시절의 이야기에서 부터 유래합니다. 당시 오나라 왕은 고집이 세고 싸움을 무척 좋아했답니다. 강력한 군대만 믿고 끊임없이 이웃나라들을 침략했습니다. 전쟁때문에 민생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이때 소유자라는 대신이 왕의 고집을 막을 방도를 궁리했습니다. 소유자는 매일 새총을 들고 왕궁 후원을 배회했습니다. 우연히 이를 발견한 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무슨 일로 매일 후원을 돌아다니는가?" 소유자가 대답했다. "참새를 잡기 위함입니다.매미가 울면 사마귀는 매미잡는데 정신이 팔려 뒤에 참새가 있음을 잊어버리지요.참새 또한 사마귀에만 신경을 쓰느라 사냥꾼이 제 몸을 노리는걸 방비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는 게지요.  
당랑포선(螳螂捕蟬)이란 고사성어는 여기서 나왔습니다. 긴 안목없이 눈앞의 이익이나 재미만을 좇는 경우를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은 한국교회가 연합으로 지키는 29번째 환경주일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6월 5일(화)은 세계환경의 날이기도 합니다. 
20세기말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환경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런 날들을 정하고 함께 노력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누적되고 쌓였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환경파괴, 기후변화, 식량문제, 생태계 교란, 핵 문제 등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제들과 더불어 지진이나 화산, 극 전환, 태양풍의 위험 등 지구-우주적 차원의 위험들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디 과학자들뿐이겠습니까? 약간의 민감성만 있어도 느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가이아 학설을 발표한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는 단지 무생물인 암석덩어리가 아니라 무생물-생물의 유기체적 자기 조절 시스템으로서 생물권을 포함하여 30억년 넘게 우리 행성을 생명에 알맞게 유지해온 역동적인 생리학 시스템"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지구 환경에 위협이 되어버린 인간에 대해 가이아의 조절 시스템이 작동되었고, 그것은 멸종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이아의 복수'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매일 온 몸으로 이런 변화들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계절이 사라져버린 날씨들, 폭우와 가뭄, 폭염과 강추위, 극심한 식량난, 1%와 99%의 양극화, 피조세계의 고통의 신음소리들, 극단을 오가는 이런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012년을 예언한 마야력이 화제가 되고 대 파멸에 대한 영화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관심은 이웃 생명권의 고통을 통해 위험을 예감하는 생명체의 본능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두려움을 그냥 심리적인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오늘의 문제가 너무 크고 복잡하게 뒤얽혀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증언하고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 문제의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진입한 이스라엘은 길갈에서 거룩을 다짐하며 할례를 행하고 거룩한 전쟁을 채비합니다. 그리고 정복의 역사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들 앞에 제일 먼저 만난 대적은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난공불락의 성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싸우시니까 그들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차례가 아이성입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주 쉬운 상대였습니다. 성 자체도 작고, 군사도 별로 없었습니다. 여리고 작전처럼만 하면 아이성 정복은 시간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본문 4,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고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륙 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  
한마디로 대패였습니다. 여리고를 무너트리고 승승장구 했던 이스라엘은 아이성의 패배로 그들의 마음이 물같이 녹아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아이성의 현장입니다. 아이성은 바로 실패의 현장이었습니다. 

왜 아이성이 실패의 현장이 된 것입니까? 무엇이 그렇게 되게 했습니까? 
숫자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어떤면에서든지 승리해야 마땅할 아이성 전투가 어이 없이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36인의 잔사자만 내고 도망쳐와야 했던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번째 문제는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인간의 전략만을 의지했습니다. 
  
여리고성을 향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전략에 의해서 움직였습니다. 그리하여 수 6: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한 아이성을 향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했습니다. 본문 2절에 정탐꾼을 보냅니다.그런데 3절에 보면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 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했습니다. 정탐꾼들은 아이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여호수아도 이 보고에 별 의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시행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여리고성 떄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묻거나 의지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두번째는 아간의 탐욕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7:1과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제외되었지만 7:20~21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 떄문에 전 이스라엘의 군대가 대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정밀하게 보십다. 한 사람이 잘못해서도 망할 수 있고 한 사람이 잘해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간의 죄는 바로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간의 행동은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지긋지긋한 광야생활에서 그들은 반듯한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 한번 제대로 먹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날산의 외투를 입고, 금덩어리 하나를 숨긴 것입니다.  
그러나 아간의 내면에 탐욕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탐욕은 다스려야 합니다.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제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이솝우화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가난한 농부가 자기가 기르는 거위가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알을 낳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너무 좋아서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거위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황금알을 낳아주었습니다. 농부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거위 우리로 달려가서 또 다른 황금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일과처럼 됐습니다. 농부는 놀라울 만큼 굉장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늘어가면서 농부는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성급해졌습니다. 농부는 매일 하나씩 낳는 황금알을 기다릴 수 없어서 거위를 죽여 한꺼번에 모든 황금알을 얻고자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위를 죽이고 배를 갈랐을 때 뱃속에는 황금알이 한 개도 없었습니다. 이제 농부는 더 이상 황금알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농부의 성급함과 탐욕은 결국 그에게 찾아온 복을 걷어차 버리는 결과가 됐습니다. 지나친 욕심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약간 적게, 그리고 약간 불편하게 
이것이 환경을 위하는 것이며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입속에는 말이 적어야 좋습니다. 마음속에는 일이 적어야 합니다. 몸에는 지방이 적어야 합니다. 밥통 속에는 밥이 적게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냉장고 속에는 음식물이 적게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능이 좋습니다. 살림살이에는 빚이 적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많은 것을 좋아합니다. 많이 갖고 많이 먹고 많이 얻기를 바랍니다. 많은 것이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많은 것이 오히려 재앙인 경우도 허다합니다. 늘 '너무 많다' 생각하고 덜어낼 줄도 알고 
비울 줄도 알아야 잡념에 시달리지 않고 병에도 잘 걸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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