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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딤전 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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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딤전 3:14-15)

 
내 용 

오늘은 창립2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27년 전에 박조준 목사님과 그 당시 교우님들이 갈보리교회를 창립하여 박조준 목사님께서 17년 6개월 동안 목회를 하셨고 후임으로 제가 와서 10년째 목회를 하여 27년이 되었습니다. 갈보리교회 창립 신앙 고백은 매주일 주보에 있는 그대로입니다. 갈보리교회는 1985년 6월 첫 주일 박조준 목사님을 중심으로 초교파 독립교회로 시작한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제도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로 선교, 교육, 봉사로 하나님의 뜻을 펴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로 구성된 목양회와 평신도로 구성된 목양협력기구에서 목양회를 돕고 있으며, 청지기회가 예배를 돕고 있습니다. 그 밖에 선교와 봉사 단체가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립 정신에 의해서 27년 전에 갈보리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갈보리교회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그 헌법은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교회 수첩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제가 10년 전 갈보리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할 때 이 교회와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갈보리 교회 창립 이념과 교회 헌법을 그대로 준수할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갈보리교회 헌법도 보완 작업이 좀 필요합니다. 이유는 창립 당시와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도 폐지하는 헌법이 있고 수정하는 헌법이 있도록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저는 보완이 필요한 어느 헌법도 일부러 하나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보완을 잘못하면 큰 오해를 살 수가 있기 때문에 저는 처음에 약속한 대로 헌법의 수정 없이 그대로 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독립 교회이기 때문에 어느 교단에 계신 목사님도 이 교회 목사가 될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있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은퇴하고 후임목사가 와서 “나는 독립교회를 싫어합니다. 교단에 가입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목사는 자연히 자신이 과거에 몸담았던 교단으로 가입추진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순복음 교단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아마 과거 순복음 교회 교우들은 환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감리교나 장로교, 성결교 출신 교인들은 절대 반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끝없는 분쟁의 요소가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갈보리교회 오기 전까지는 주일학교 때부터 평생 장로교 출신입니다. 그러나 제가 갈보리 교회를 장로교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장로교의 제 친구들이 총회장, 사무총장을 모두 합니다. 나만 보면 “왜 이 목사는 장로교 출신이 갈보리교회를 장로교회에 가입하지 않느냐?” 날마다 저에게 요청합니다. 그럴 때마다 “김 목사가 이리로 와!” 항상 그러면서 반대했습니다. 

벌써 27년이니까 30년 가까이 이 갈보리 교회는 전통이 생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아무 말이 없습니다. 후임 목사님을 위해서 여러분이 지금부터 기도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갈보리교회 창립 정신의 첫째가 선교이고 둘째가 교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세계 선교에 그렇게 힘을 많이 써왔고, 본 교회 교육부 발전에 중점적 노력을 해온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십시오. “다음 목사도 이필재 목사 같은 목사가 오게 해주십시오.” 이런 생각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이든지 100퍼센트 만족이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항상 부정적 요소가 있고 긍정적 요소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맞추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목사 마음에도 맞추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가는 길을 같이 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반대파 때문에 끌려가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고 바울 사도 같은 사람도 극단적 반대파가 그렇게 많아서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각자의 차이의 관계성을 잘 지혜롭게 신앙과 겸손을 가지고 훌륭하게 해 나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의 형태와 역사를 이런 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1인 감독 제도입니다. 이 교회는 최고의 감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독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제도의 교회인데 정교회라든가 가톨릭교회가 다 그런 교회들입니다. 이런 교회들은 전 세계 교회가 하나의 구심점을 만들어놓습니다. 교황청이라고 하는 구심점을 만들어놓고 거기 교황이라고 하는 절대 권위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교회가 교황의 명령에 절대 순종합니다. 우리나라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 모두 교황이 임명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에 있는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투표해서 뽑은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금요일을 대단히 중요시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 날은 고기도 안 먹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고기를 먹을 수 없다.”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황이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고기를 안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가 다 지키는데 한국은 그 법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왜 제외되었느냐 하면 1950년대 6·25전쟁 이후 한국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습니다. “그런 굶주린 백성들이 어쩌다가 금요일에 잔칫집에 와서 그 귀중한 고기 한 점을 먹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못 먹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인은 먹어라.” 그렇게 교황이 특명을 내렸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 신자들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황의 말 한마디가 한 국가 전체 교인들의 생활을 결정지어 버리는 것입니다. 

절대 순종입니다.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제도에서는 이 목회를 하는 목사도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결정하거나 교인들의 마음대로 목사님을 결정하는 것이 없습니다. 위에서 결정지어주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필재 목사! 10년 동안 갈보리교회 목회하느라고 수고했다. 다음달 7월 1일에 소록도교회로 가라.”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무 소리 못하고 그대로 해야 합니다. 제가 “나는 거기 가기 싫습니다. 안가겠습니다.” 하거나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 다른 데로 가지 못합니다. 안 됩니다. 새로 오시는 분도 우리는 환영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합니다. 이게 1인 감독제도의 교회입니다. 이런 제도를 가진 교회들의 장점이 있습니다. 절대 싸우고 분열하지 않습니다. 분열해봤자 상부에서 “그곳은 교회가 아니다.” 이렇게 해버리면 그만입니다. 절대 순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떤 장로라는 분이 저에게 찾아오셔서 자기 딸 약혼 주례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셨습니다. “장로라는 분이면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이 계신데 왜 저에게 해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랬더니 “저는 지금 나가는 교회가 없습니다.” “아니, 장로가 나가는 교회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랬더니 “제가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목사님이 제 딸 좀 축복해주시고 약혼 주례 좀 해주십시오. 그리고 결혼 주례도 부탁드립니다.” 목사가 약혼 주례 축복해 달라고 하는데 끝까지 거절할 수 없어서 약혼 주례를 잘하고 나중에 원탁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목사님! 제가 본래는 장로교 장로입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교회 목사님과 싸움을 하고 나왔습니다.” “왜 싸웠습니까?” “나는 재정부장을 맡고 있는데 교회 헌금을 목사님을 마음대로 지출하는 거 같아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더니 자꾸 다툼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목사와 장로는 아주 성격이 분명합니다. 목사들은 교회 헌금 들어오면 빨리 선교비 보내고 구제비 보내서 묻어두지 않고 빨리 빨리 사용하려 합니다. 그런데 장로들은 제가 경험한 분들은 모두 움켜잡고 안 쓰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마찰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목사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장로님은 결재 권한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총회에서 다 결정했고 항목별로 다 결재 승인이 난 것인데 거기 지출하려고 하면 그냥 지출 관리만 하면 되지 왜 자꾸 결재를 하려 하십니까? 장로님은 결재 권한자가 아닙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그래서 목사와 자꾸 마찰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개신교 안 나가고 가톨릭교회를 나가겠다 개종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 나갔는데 거기서도 열심히 하니까 또 그런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책임을 맡고 보니까 신부는 목사보다 더한 겁니다. 왜 구제비를 움켜쥐고 안 보내느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안 되겠다 생각하고 신부 마음대로 재정을 지출하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교구청에 투서를 써서 시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답장이 곧바로 왔습니다. 하얀 백지에 타이프를 간단하게 찍어서 나에게 답장이 왔는데 ‘본당 신부의 권한이요. 당신은 누구요?’ 그런데 그게 소문이 나서 우리 교회 교인 가운데 신부님을 교구청에 고소한 마귀가 있다면서 막 찾는 바람에 제가 거기서도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가는 교회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대답했느냐 하면 “우리 교회 오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분은 가톨릭교회 제도를 모른 것입니다. 거기는 다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교황청의 명령에 전 세계가 다 똑같이 100퍼센트 순종합니다. 이게 1인 감독 제도의 교회입니다. 

그 다음에는 집단 감독 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 감독입니다. 교인들도 감독이고 목사도 감독이고 교회, 노회, 대회, 총회가 있는데 총회가 교회를 감독하지만 교회가 또 총회도 감독합니다. 총회가 잘못하면 교회에서 막 가서 항의하고 뒤집어엎고 법을 만들어서 새로 발표하고 얼마든지 서로 감독을 합니다. 이러한 집단 감독 제도의 교회들이 세상의 개신교에는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들의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와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의견을 다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의견도 무시하지 않고 어느 조그만 교회 의견도 무시하지 않고 의견을 내면 총회에서 그것을 다 봅니다. 

그래서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장점이 있는가 하면 단점은 계속 싸웁니다. 누구든지 다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내 의견에 안 맞으면 계속 싸웁니다. 그래서 개신교회는 날마다 싸우고 분열하는 것을 계속합니다. 가톨릭교회가 갈라지고 분열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100년에 하나도 없습니다. 제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개신교회는 분열하고 나간 교회도 교회로 인정한단 말입니다. 어느 교단에 들어가든지 다 환영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집단 감독 안에서는 날마다 싸우고 분열합니다. 특별히 싸움을 좋아하는 한국 교회는 이것이 굉장한 장점과 단점을 가져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감독 제도입니다. 독립교회, 회중교회가 여기에 속합니다. 갈보리교회도 여기에 속합니다. 여기 갈보리교회 헌법 제4조에 보시면 “본 교회는 개혁교회와 회중교회 정치의 장점을 선택적으로 채택, 보완한 정치 제도를 취한다.”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대로 한 것입니다. 이런 교회들은 교회가 만든 헌법에 의해서 운영해 나갑니다. 헌법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문제도 교회가 마음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상부 기관이 없습니다. 

이 교회 자체가 모든 문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독립 교회들이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 이후 최고로 영향력 있는 목사가 조엘 오스틴 목사입니다.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만 해도 4만 명의 성도가 나오고 집회를 하면 빌리 그래함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그 목사는 독립교회 출신입니다. 신학교 가본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일반교단에서는 그런 사람을 절대 목사 안수 안줍니다. 

첫째 조건이 인정한 신학교를 졸업하고 M. Div 출신이어야 목사 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주니까 절대 목사가 못됩니다. 그러나 독립교회에서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목사 밑에서 가정의 훈련을 받은 것을 가지고 나와서 목회를 하는데 빌리 그래함 다음으로 지금 미국 내에서 영향력이 크고 사람이 많이 모입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장점이 더 많다고 자기 기준의 판단에 따라 제도 선택을 하면 됩니다. 어느 제도도 완벽한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최초의 기독교회를 설립하고 공동체 구성을 했습니다. 이 공동체는 천년 동안 온 세상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 전달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1054년에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교회가 제도적으로 둘로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정교회, 하나는 로마 가톨릭교회로 나누어졌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그 주변 국가들은 다 정교회이며, 유럽일대 중남미 모두 가톨릭국가입니다. 

그러다가 약 500년이 지난 후 1500년대에 와서 개신교회라고 하는 새로운 제도가 생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개신교회는 수백 가지 헌법을 자기들 신앙 고백에 따라서 만들어서 성장해 왔고 이름이 수백 가지입니다.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이게 다 개신교회의 이름입니다. 개신교회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개신교회가 아주 잘한 것 하나가 분명해졌습니다. 세계 선교에 개신교가 가장 열정적입니다. 개신교회가 제일 발달한 나라가 한국과 미국입니다. 선교 열정이 아주 좋습니다. 지금 세계 선교는 한국과 미국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 영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언더우드, 아펜젤러, 토마스 목사가 다 개신교 목사들입니다. 그들이 와서 복음을 전해서 대한민국에 이렇게 교회가 많아지고 선교가 잘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금 공식적으로는 미국 파송 선교사가 6만 명이고, 한국 파송 선교사가 2만4천명으로 두 나라에 의해서 지금 세계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두 나라가 하지 않으면 세계 선교는 이제 희망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 이렇게 2천년 동안 교회 제도가 여러 가지 바뀌면서 교회가 절대적으로 이 사회에 잘못한 내용들을 살펴봐야, 또 인정을 해야 앞으로 교회 갈 길이 훌륭하게 정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2011년 현재 교황인 베네딕트 16세는 세계 종교 지도자 대회에 참석해서 무릎을 꿇고 사과했습니다. 제목은 기독교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폭력에 대해서 사과했습니다. “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흘러온 역사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이 행해졌던 것이 사실임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큰 수치감을 갖고 모든 사건을 인정한다. 

이는 분명히 기독교 신앙의 남용이며 기독교의 진정한 성격이 명백히 위배되는 사건이었음을 인정한다.” 이렇게 말했고 다섯 가지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첫째가 바로 갈릴레오 재판입니다. 확실한 과학의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종교 재판에 회부해서 강제적으로 지동설을 부인하게 한 진리를 왜곡시킨 교회의 죄입니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까? 교회가 잘못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십자군 전쟁입니다. 1095년에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명령으로 결성이 되어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들과 200년이나 무고한 전쟁을 함으로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을 죽게 했습니다. 

결국은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기독교와 이슬람은 원수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마녀 사냥입니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나니까 교황청은 불행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원망하고 신앙에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12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약 400년 동안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공연히 마귀가 씌었다고 트집을 잡아서 죽였는데 수없이 죽였습니다. 가톨릭교회가 한 것입니다. 여자들이 더 많이 실행되었기 때문에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을 쓴 것인데 남자도 수없이 많이 죽었습니다. 

“저 사람 마귀가 들은 것 같아.” 그러면 괜히 잡아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게 마녀 사냥이었습니다. 멀쩡한 사람을 괜히 교회가 잡아다 죽였습니다. 그게 한두 명이 아니고 수천, 수만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제일 무서워했던 것이 마녀 사냥에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입니다. 여러분이 “미션”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남미 숲속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놓고 “이들은 영혼이 있는 인간이냐, 아니면 짐승이냐?” 교황청에서 그것을 토론하지 않습니까? 결국은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한 마을에 모든 인구가 처참하게 다 죽고 살아남은 벌거벗은 소년 하나가 나룻배를 지어서 자기 살 길을 찾아 길을 외로이 떠나는 것으로 그 영화가 끝나지 않습니까? 중남미 지금 30여 개국은 언어가 하나입니다. 스페인이 기독교 이름을 가지고 들어와서 모두 다 학살하고 여자들은 강간하고 종족 혼합을 시켰고 스페인어만 하게 해서 지금 그렇게 언어를 하나로 쓰는 것입니다. 그런 죄를 가톨릭교회가 지었습니다. 그것을 인정했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니까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잘못된 진리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개신교회라고 하는 것이 탄생되니까 1500년대에 개신교회가 또 마귀라고 죽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교회 교황청에 의해서 수백만이 죽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프라하에 갔을 때 거기 제일 유명한 니콜라스 성당을 구경했더니 십자가 위에 동상이 있는데 가톨릭 주교가 어떤 사람 한 명을 발로 밟고 창으로 목을 찌르는 동상입니다. “저게 뭐냐?” 거기에 깔려서 지금 목이 찔려 죽는 사람이 개신교 신자입니다. 마귀는 이렇게 죽여야 된다고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에 의해서 살해당했습니다.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내용들을 교황청이 이제 와서 인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교회가 진리에서 떠날 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사실을 증명하는 사건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교회가 무엇인가?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진리가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희망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진리가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십자가의 사건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지 않았습니까? 지나간 27년 동안 온 세계에 이 구원의 진리의 빛을 밝혀온 갈보리교회는 앞으로도 영원히 진리의 빛이 되어서 어둠의 영혼을 인도하는 하나님이 이 시대에 쓰시는 그런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27년 동안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서 노력한 갈보리교회가 오늘 27주년 주님 앞에 감사드리오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이 땅 위에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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