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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애와 존경 (롬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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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와 존경 (롬 12:10)

결혼식을 할 때마다 주례자가 신부에게 어김없이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결혼서약에 따라 당신은 이 남자를 남편으로 삼고 함께 살아가겠습니까?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남편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존경하며 돌볼 뿐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사는 동안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남편에게만 충성을 다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신랑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위로하며 존경하고 돌보시겠습니까?”

이 결혼서약을 압축하면 오늘 본문 말씀이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며” 사람이 평생 이 약속, 이 말씀을 지키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가정은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가정들이 바로 이 문제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본문 말씀을 가정생활, 결혼생활에 적용해서 우리의 가정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비결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정의 두 기둥, 우애와 존경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우애’와 ‘존경’입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랑의 구체적 실천 방향이자 가정생활의 기초입니다. 또한 인격이라는 그릇은 우애와 사랑에 의해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애와 존경은 가정을 세우는 두 기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애하고’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이곳 한 곳에서만 쓰였습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가족관계에서 누리는 정으로 이해한 듯합니다. 그러니까 가정의 애정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역기능 가정의 첫 번째 특징은 언제나 애정에 공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애정결핍증 환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요들 때문에 뭉쳐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모래알과 같습니다. 친밀감도 없고, 인격적인 접촉도 없습니다. 모두들 경계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정의 규칙은 엄격하기까지 하고 심지어는 한 개인을 위해 모든 가족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런 데서 외도가 생겨나고 탈선이 일어납니다. 십대 청소년들이 집을 나가거나 자살, 마약, 환각, 임신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대부분이 이유가 그들이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한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경우 쉽게 그리고 깊숙이 사랑에 빠져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존경’(Honor)입니다. 성경에서 ‘존경’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낱말의 하나가 ‘영광’(Glory)인데 이 두 단어는 똑같이 무게(Weigh)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광이나 지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꺼이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사랑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남자들은 존경을 먹고 삽니다. 때문에 아내들은 남편을 존경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남편의 직분에 대해서는 존경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산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부부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존경’에 관한 것입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에 걸려 좌초하고 산산조각이 난 결혼생활을 보게 됩니다. 서로에게 관심이 식어집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무시하며 무관심합니다. 그러니까 다툼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뒤 아내들은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전(全) 과정 동안 사회적 지위나 건강보다는 애정, 성생활, 부부시간, 가사부담 등에 대한 부부간의 만족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남편들은 결혼 직후에는 아내와 비슷한 경향을 가지다가 자녀를 낳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부부간 만족도의 중요성이 낮아져 막내 자녀가 초중고생일 때에는 건강이나 사회적 지위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남편의 애정은 아내에게 있어서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애정이 있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합니다. 애정이 있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애정이 살아 있는 아내는 삶이 흥겹습니다. 그리고 얼굴 표정부터 달라집니다. 

그러나 애정이 사라지고 나면 살맛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애정은 아내를 아내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아내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일은 남편에게 존경할 만한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아내에게는 존경할 수 없는 남편의 지배를 받는 것이 가장 비참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존재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 그 아내는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로부터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질 때 세상 살 맛을 잃게 됩니다. 결국 자신을 흠모하고 존경하는 여자에게 마음이 쏠리게 됩니다. 그게 회사의 여비서일 수도 있고, 자주 찾아가는 음식점의 종업원일 수도 있고, 홀로 된 부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임상적으로 얻은 결론 가운데 하나는 남편들의 외도 뒤에는 남편을 무시하고 깔보았던 아내들의 경멸이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 마음의 진공은 존경으로 채워집니다

성 어거스틴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진공이 하나 있다. 그런데 그 진공이 무의미로 강탈당하지 않으려면 그 진공이 채워져야 한다.” 무엇으로 우리의 진공을 채울 수 있나요? 만약 그 진공이 채워지지 않으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 진공이 물질로 채워지면 맘몬이즘(Mammonism)에 빠져 듭니다.

진공이 명예로 채워지기 시작하면 일중독증에 빠져 듭니다. 우리에게는 진공을 채울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애정과 존경입니다. 애정과 존경으로 진공이 가득 차게 되면 생의 의미가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애정과 존경은 인간의 공허감을 채워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인간이 겪는 공허감은 사치스러운 식사나 마약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공허감이 커다란 저택이나 직업으로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체에다 물을 담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공허감은 애정과 존중감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중요한 것은 여전히 애정이고 존경입니다. 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명예도 소용없습니다. 모두 한순간일 뿐입니다.

우리는 존경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그 가치를 알아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은 다른 사람은 나를 다 알아주는데 우리 집사람, 내 아내만 나를 몰라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나 같은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존재는 많은 학식을 가져서, 명예를 지녀서, 재물을 소유하고 있어서, 높은 지위 때문이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남편이기 때문에 알아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미모의 얼굴을 가져서, 날씬한 몸매를 지녀서, 똑똑해서, 맞벌이를 잘 해주어서 그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이기에 존경받아야 합니다.

애정을 보여 주고 계십니까?

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정은 곧 관심입니다. 특히 아내들은 남편의 이런 관심을 무척이나 바랍니다.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그리워합니다. 조그만 애정하나에도 감격합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몸이 약해 고통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 때 남편의 정성스런 보살핌에 감동을 받은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요새 참으로 천사가 된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애정을 보여 주고 계십니까? 가장 손쉬운 애정은 식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식탁 앞에서 그것을 감사해 보십시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밥숟가락을 입으로 넣기도 전에 “야, 맛있다. 당신 솜씨 대단하네”라는 이 한마디에 아내의 마음이 녹아 버립니다. “이게 반찬이냐? 왜 이렇게 싱겁냐?” 라는 소리에 아내의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아내의 생일을 잘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내들은 감격합니다. 장미꽃 한 송이에 눈물 흘리는 아내들을 보면 쉽게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애정은 기도입니다. 제가 아이 학교 입학 문제로 아내와 실랑이를 벌인 일이 있습니다. 아내가 고집을 부리며 교회에서 집까지 가는 한 시간 내내 의견을 꺾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내는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차를 세워 놓고 내리려고 하는 아내의 손목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기도하자.” 그리고 제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내와 제가 의견이 다릅니다. 

아내가 생각하는 뜻과 제가 생각하는 뜻이 다릅니다. 누구의 뜻이 아니라 저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때 아내도 저도 주의 뜻에만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시간 마음이 많이 상해 있는 아내를 위로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그리고 제가 평소 같지 않게 “아~멘”하고 아멘을 길게 뽑아 올렸습니다. 아내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내를 한참 쳐다보고 있는데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아내가 고개를 들고 한 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여보. 당신 뜻대로 하세요.” 

아내들이 원하는 것은 그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답을 주는데 급합니다. 그러니까 애정이 없어 보입니다. 애정과 존경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애정을 보여 주는 사람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를 존경하게 됩니다. 참 이상한 이치입니다. 동시에 자신을 존경하는 사람에게 더욱 애정을 쏟게 됩니다. 그러니까 애정은 존경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애정이 존경을 만들고 존경이 사랑을 키워 줍니다.

애정과 존경을 내가 먼저!!

그렇다면 누가 이 일을 시작해야 합니까? 남편입니까? 아내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먼저 하며”그러나 정작 이 말씀은 “내가 먼저 하며”로 읽어야 합니다. 자꾸 ‘서로’, ‘서로’라고 미루는데 비극이 있습니다. 당신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먼저’입니다.

애정과 존경은 자존감을 키워 줍니다. 애정과 존경이 사라지고 나면 자아가 짓밟히고 비참해집니다. 그래서 애정과 존경은 항상 긍정적 느낌을 심어 줍니다. 우리의 존엄성을 고양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품위 있게 만들고 나 자신을 의미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러니까 자아가 건강합니다. 모든 일에 자신이 서고 용기가 생깁니다.

애정과 존경이야말로 인격 발달의 촉매제와 같습니다. R. C. 스프라울이 쓴 “사람이 무엇이관데”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충성된 봉사 때문에 받은 금시계라든지 약혼녀에게서 사랑을 약속하는 다이아몬드 같은 반지란 모두 의미를 형상화한 기념품인데, 이러한 물건을 부여받은 사람은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보장되며, 얼굴 없는 군중 가운데 초상화를 가지게 되어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애정과 존경이라는 훈장을 그 가슴에 달아 주면 자신을 가치있게 여기게 됩니다. 스스로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그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이 행복해지는 비결은 다른 게 아닙니다. 애정의 월계관을 씌워 주십시오. 존경이라는 훈장을 가슴에 달아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내 아내와 남편을 품위 있는 존재로 만드십시오. 우리가 서로 애정과 존경을 보여야 할 이유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윈돌은 이 대목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최고의 예의를 보여주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남편은 아내를 가치있는 존재, 보배로운 보물,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귀히 여기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피의 가치를 언급한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보배로운’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참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배우자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배우자가 그렇게 보배로운 존재여야 합니다. 가정은 애정으로 가꾸어져야 합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세워 주십시오.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으며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서약하지 않았습니다. ‘애정과 존경’ 그 약속 하나만 지켜 갈 수 있어도 결혼은 결코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어긋난 데서 문제가 있습니다. 애정과 존경으로 세워진 가정은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같습니다. 어떤 비바람이 몰아치고 북풍한설이 가정을 뒤흔든다 할지라도 우리의 가정은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정과 존경이 사라진 가정은 모래 위에 쌓아 올린 성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의 가정을 애정과 존경 위에 세움으로써 견고한 가정, 튼튼한 가정,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송길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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