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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순절 성령강림 (행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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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 강림 (행 2:1-13)

사도행전 최대의 사건은 성령이 강림하신 일입니다.  성령의 강림은 구원의 역사에 최대의 전환점이며, 교회의 시작이며, 인류사의 전환점입니다.  성령 “방문절”이 아니라 “강림절”입니다.  

강림은 방문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성도 안에 거하시려고 내려오신 날입니다.  강림으로 성령님의 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居住란 말은 어떤 장소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산다는 뜻입니다.  잠깐 다니러 오신 게 아닙니다.  영원히 함께 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강림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구약 시대 성도들 속에는 간혹 성령이 임시로 오신 일은 있습니다.  사울 왕 속에, 브사렐과 오홀리압 속에, 혹은 선지자들 속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입니다.  성령은 그들에게서 할 일을 하신 후에는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거처로 삼으시고 영원히 거주하십니다.  바로 그 점이 다릅니다.  오늘 우리 마음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임마누엘입니다.  주님이 처음 오셨을 때에 사도 요한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주님은 성도들이게 임마누엘이 되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이 땅을 떠나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말씀대로 성령이 오셨습니다.  말씀대로 성령께서 성도들 속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이 성도들 속에 거하시게 된 것은 인류사에 의미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에게서 떠나셨던 성령께서 다시 인간 속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때에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6:3) 

이 말씀은 노아 시대에 성령이 사람들 속에 계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특별한 간섭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비록 타락한 인간들이지만 성령께서는 지금도 모든 인류의 삶을 간섭하고 계십니다.  역사를 움직이고,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고 심판하십니다.  다만 사람들 속에 거하시지 않고, 구원에 관여하지 않으실 뿐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하신 이후에는 성도들 속에 다시 영원히 거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는 우리 마음 속에는 성령이 임하여 계십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내 몸이 얼마나 거룩한 존재인지 아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성령이 강림하신 시기는 구약 절기로 오순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오순절은 유월절, 장막절과 더불어 구약 3대의 절기중 하나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장막절, 혹은 초막절은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면 오순절은 무슨 절기일까요?  오순절은 가나안 땅에서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오순절이란 명칭보다는 칠칠절, 맥추절, 혹은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이란 명칭으로 나타납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숫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23:15-21)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민28:26)  

“칠 주를 계속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신16:9-11)  

칠칠절이란 명칭은 곡식에 낫을 처음 댄 날로부터 일곱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즉 오십 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순절은 추수와 관련 되어 있습니다.  왜 추수의 절기에 성령이 강림하셨을까?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절기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그 부활하신 날로부터 오십일 째 되는 날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시작을 알리는 첫 열매입니다.(고전15:20)  

주님이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날 성령이 오심으로, 모든 성도들을 거두어들이는 영적인 큰 추수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 날은 구약의 안식일 다음날, 신약으로 하면 주일에 오셨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매주 기념하는 교회 최대의 절기입니다.  우리는 매주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또한 성령의 강림을 기념합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 모두가 부활의 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장소는 성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한 마디로 교회 공동체에 강림하셨습니다.  이 당시 성도들이 모였던 곳은 예루살렘의 다락방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강림하지 않으시고 다락방에 강림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다윗 왕국의 수도이며, 성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하늘 성소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이 곧 무너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 경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상징성은 매우 큽니다.  그 예루살렘에서, 이제는 옛날의 성전이 아닌, 성도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것은 세상 사람들을 위함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들 속에 임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령은 영원토록 교회 안에 함께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령 강림을 요약하면 성령님은 오순절에 성도들의 대량 추수를 위해서, 성도들이 모인 교회에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모습  

첫째로, 홀연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셨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2)  하늘로부터 강림하신 것은 성령의 강림하심이 지상적인 인간의 역사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성령 강림은 인간들의 이벤트가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에베소서 1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던 것처럼, 성령께서도 그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인간 세상에 강림하셨습니다.   
  
둘째로, 귀에 소리가 들렸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  성경에 성령을 상징하는 표식이 많습니다.  비둘기(눅3:22), 기름(눅4:18), 불(마3:11-12), 생수(요7:38-39), 인(엡1:13), 바람(요3:8) 등등.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큰 작용을 합니다.  

성령을 바람에 비유한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속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큰 위력을 상징합니다.   “성령”(pneu'ma a{gio")이란 말의 “영”(pneu'ma)이란 말 자체도 바람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바람이 분 것이 아니고 바람 소리(hco"), “noise”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암시하는 청각적인 기적입니다.  바람의 속성처럼 성령이 임하심으로 복음이 큰 바람처럼 삽시간에 아시아와 유럽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셋째로, 눈에 불이 보였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3)   청각과 함께 시각적인 기적입니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불은 구약에서 하나님 임재의 표식입니다.  

시내산에서, 광야에서의 불기둥, 모세를 부르실 때의 떨기나무에 붙은 불 등등.(출3:2,19:16-20)  또한 불은 심판의 상징입니다.(사48:10, 신4:24, 마3:12)  불은 성결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사물을 태워서 녹이며,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화시킵니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6:6-7)   
  
그런데 이런 불이 혀의 모양을 하고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혀는 말씀의 상징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장차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복음을 혀로 전파함으로써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넷째로,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3)  하나의 불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성령은 하나이시지만 각 사람 속에 개별적으로 임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 속에서 인격적으로 활동하십니다.   
    

성령 강림의 결과

성령 강림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성령 강림하시기 이전과 어떤 역사적 변화가 있을까요?  또한 각 사람 속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첫째로, 복음 전파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찍이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주님이 보내실 성령을 받으면, 너희가 나를 증거할 것이다!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말씀대로 성령이 오셨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 받은 성도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한 내용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에 가장 큰 표적은 방언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4)   신약 성경에는 두 종류의 방언이 나옵니다.  

첫째는 고린도 교회에 임하였던 신령한 언어입니다.  이 방언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통역의 은사가 없으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둘째는 본문에 나타난 외국어입니다.  사도들은 외국어 대학에 다닌 일이 없습니다.  외국어 학원에 다닌 적도 없고, 누구에게 특별히 공부를 한 일도 없습니다.  더구나 갈릴리 촌사람들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듣기 거북한 사투리를 사용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외국어를 유창하게 했습니다.  자신들은 외국어를 하는지 뭔지 몰랐어요.  

그런데 듣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5-11)  중앙아시아 지역, 소아시아 지역, 아프리카 북부 지역, 지중해에 있는 크레타 섬, 로마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가 다 자기나라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오순절 방언 역시 인류사에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인간의 언어가 혼잡해 진 것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 이후의 일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척하고 자기끼리 살자고 하다가 하나님께 언어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어소통은 매우 불완전합니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부부 사이에도 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서로 이혼하는 거예요.  하물며 종족이 다르고, 국가가 다른 사람끼리 의사가 통할 리 없습니다.  그런 언어의 심판이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은 인간의 언어를 통일하고,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이 통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까?  성령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 신령한 말로 하나 되시기 바랍니다.  
  
오순절 방언은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인간의 언어가 가장 소중하게 쓰이는 것은 바로 영혼 구원을 위해 쓰는 일입니다.  복음 전파 한 마디로 지옥에 갈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한다면 얼마나 소중한 말입니까?  오늘 우리는 언어를 쓸 데 없는 데 사용합니다.  남을 흉보는 데 사용합니다.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격동시키고, 낙심케 하는 데 사용합니다.  후회할 말을 하느니 차라리 벙어리가 되는 게 낫습니다.  

여러분, 성령 받으시고 신령한 언어의 사용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 한 마디로 낙심한 사람을 위로하고, 말 한 마디로 귀신을 쫓아내고, 말 한 마디로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세요!  한 마디 말로 영혼을 감화시키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기 바랍니다.  사도들처럼 기적적인 외국어는 사용하지 못한다 해도, 유창한 한국말을 영혼 구원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구원의 완성입니다.  성령 충만으로 능력을 받고 인격이 변화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본문에 보면 “저희가 충만함을 받고” 했습니다.  “충만”이란 말 “ejplhvsqhsan”은 가득 채워졌다는 뜻입니다.  “they were filled” 마치 그릇에 물이 차서 넘치듯이 우리 마음속에 성령님의 갖가지 선물이 차고 넘치는 상태를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우선 능력이 나타납니다.  
  
본문에 보면 성령 받은 성도들을 보고 유대인들이 조롱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13)  

유대인들은 경건한 절기에 술을 먹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침부터 술을 먹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성도들을 새 술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너무나 신기한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술에 취하면 혀가 꼬부라집니다.  이상한 말이 나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방언을 했습니다.  술에 취하면 행동이 이상해집니다.  걸음걸이가 이상해집니다.  갑자기 용감해집니다.  길에 누워 자고, 아무에게나 겁 없이 대듭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은 겁 없이 높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에게 굉장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평생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습니다.  심지어는 사도들의 손수건만 갖다 놔도 병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사도들이나, 성도들은 성령 충만하여 갖가지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12:7-11)
  
성령 충만의 결과로 인격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시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이 되게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격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서 점점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주님은 성령이 오실 때에 이런 역사가 나타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7-8,13-14)  

죄를 깨닫게 됩니다.  회개하게 됩니다.  구원 진리를 깊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행동을 바꿀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이 바뀝니다.  가치관과 사상이 바뀝니다.  언행이 바뀝니다.  대인관계가 변화되고, 가정생활이 변화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  성령이 임하시면 명실상부하게 거듭난 인간이 됩니다.  이런 변화가 우리 속에 날마다 나타나게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이 날에 성령이 오셔서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 영원히 사시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성령이 함께 살고 계십니다.  잠깐 머무시는 게 아닙니다.  영원히 함께 거하십니다.  
  
성령이 거하심으로 우리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음 전파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도답게 성령 충만한 능력을 받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격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오늘 성령님을 환영하세요.  내 마음에 계심을 기뻐하세요.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세요.  성령 충만은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길입니다.  성령 충만 해야 제대로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 해야 인격이 변화 됩니다.  성령 충만 해야 시험과 환난을 이깁니다.  성령 충만 해야 기쁨과 평안을 유지합니다.  성령 충만은 성도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지금 내 안에 계십니다.  날마다 성령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구하고,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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