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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마 21: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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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의 악한 농부들 (마태복음 21:33-46)

하나님 나라의 백성 이스라엘이 세상 나라를 대표하는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의 군왕들에게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로마는 본래 잡다한 신들을 섬기는  국가였기 때문에 식민지 국가의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다신교 정책을 쉽게 운영했습니다.   이런 정책 아래 예루살렘 성전제사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았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관리인들은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교적인 행사와 자치권 행사의 자유도 보장받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은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댓가로 자리를 보장 받는 정치적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런 허수아비 대제사장에게 협력하며 종교권력을 행사하였으니 은연 중에 로마제국의 지배구조를 인정하고 동조하는 권력집단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종교권력자들은 무늬만 유대인이지 배후에 로마제국의 세력을 업고 힘없는 백성의 고혈을 이중삼중으로 빨아먹던 정치적 종교인에 불과했습니다.  

로마 황제가 임명한 분봉왕의 통치를 받던 백성들은 로마 황제와 분봉왕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바쳐야 했고, 예루살렘 성전을 관장하는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에게는 성전세와 십일조와 헌물을 따로 바쳐야 했습니다.   분봉왕들은 세리들을 앞세워  악랄한 세금 착취를 하였고 빚을 진 농부들은 땅을 담보하여 빚을 갚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가중되는 경제적 압박과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고리 이자를 갚지 못한 농민들은 결국 땅을 빼앗겼습니다.   분봉왕 헤롯의 아들들과 그의 가족들, 로마제국의 꼭두각시 귀족들은 이런 식으로 백성들의 땅을 가로채 토지를 늘려갔고 대지주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땅을 잃은 가난한 농부들은 노예나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치며 근근히 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이 식민지 백성들이 겪는 이중삼중의 고통이었습니다.  가족 공동체 농촌사회였던 이스라엘은 경제적 압박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혈연간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깨어졌으며 이스라엘의 상호부조 정신은 붕괴되고 사회는 갈수록 거칠어져 갔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런 사회 환경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그 당시 외지에 거주하는 부유한 유대인이나 로마 사람들이 팔레스틴의 농지에 투자하여 지주 노릇을 했습니다.   이런 지주들은 과도한 세금에 지친 농민들의 반란이나 거친 행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먼 지방이나 외국으로 나갔고 농장은 세를 주고 소작료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주인은 그 시대에 흔하게 있었던 부재지주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 설정은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포도원을 완벽하게 가꾼 주인은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주인이 먼 나라로 떠났으니 당분간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실과를 거둘 때가 되었을 때 주인은 자기 몫을 받으려고 종들을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환대하지 않고 심히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습니다.  주인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농부들의 마음이 돌변했습니다.   주인이 직접 왔더라면 혹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인 대신 종들이 왔을 때 농부들은 마음을 바꿔 주인에게 돌려야 할 세를 바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가 평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먼 나라로 나간 주인이 죽었거나 당분간 돌아올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흔히 발생했습니다.   비유 속에 나오는 농부들도 이런 경우를 기대하고 이 기회에 우리 몫을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농부들의 반란소식을 들은 주인은 또 다른 종들을 더 많이 보냈지만 농부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직접 찾아가지 않고 이번에는 그 위험한 곳에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이 왔을 때 ‘저 사람은 상속자이니 그의 아들을 죽이고 우리가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하고 아들을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고 나가 거기서 죽였습니다.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 이 포도원의 농부들은 보통 강심장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은 속으로 부르르 떨며 이런 악한 농부들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하고 분노하는 중인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 그들은 거침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이 악한 사람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주어야 합니다’  유대사회의 고위층 인사들이었고 어쩌면 많은 소작농을 거느리며 넓은 포도원을 경영하고 있던 그들로서는 당연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런 나쁜 농부들은 가차없이 처벌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악덕 지주들과 권력자들에게 착취당하는 가난한 농부들에게 하셨을 때도 똑같은 대답이 나왔을까요?   물론 포도원의 주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지주들에게 착취당하던 팔레스틴의 가난한 농부들의 입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또 대토지를 소유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같은 부자들과는 다른 대답이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신 의도를 알지 못했던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입장에서 흥분하며 대답하였습니다.  비유 속에 나오는 악한 농부들이 설마 자기들을 빗대어 하신 말씀이라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그런데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이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십니다.   

성경박사들이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고 있었겠습니까?  시편 118편22절에 나오는 이 구절을 전에도 여러번 읽고 들었지만 그 말씀이 자신들에게 이런 식으로 적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입에서 나온 그 다음 말씀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의 분노를 하늘까지 치솟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향한 책망인 줄 그제서야 깨닫고 부르르 떨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에게 허가를 내주었소?’ 하며 예수님을 무허가 집회 선동자나 사이비 종교인으로 몰아 내쫓으려던 성전 지도자들이 거꾸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자기들 맘대로 호령하는 권력의 중심지 성전에서 도리어 책망과 경고를 받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분노하여 예수님을 즉시 체포하려 했지만 거기 둘러 있던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 감히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유월절을 지내러 성전 모인 순례객들이 모두 예수를 선지자로 알고 따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농부들은 주인에게 돌려야 할 소작료를 가로채고 주인이 보낸 종들은 물론 그의 상속자인 아들까지 죽인 못된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자기 입으로 인정한 것처럼 그 농부들은 진멸당해 마땅한 사람들이며 그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들은 주인의 입장에서 분노하고 그 악한 농부들을 성토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농부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악한 농부들처럼 하나님의 종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내어 쫓았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 나라를 완성하시려 오셨는데 그의 왕권을 거절하고 죽음에 넘길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책망을 받은 후에야 뒤늦게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지만 끝내 회개하지 못하고 분노하며 이를 갈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어내어 이방인의 손에 넘겨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자신들의 입으로 말한 것처럼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맡겼던 복음의 열매 맺는 사역을 그들의 손으로부터 박탈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성령의 열매를 맺는 백성에게 복음 전하는 특권과 사명을 대신 맡기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일하던 악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빼앗겼으며,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취급받았던 예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새로운 이스라엘을 한 몸으로  연결시키셨습니다.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이어받아 하나님 나라의 포도원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농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지난 시간 세 번에 걸쳐 소개한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포도원과 연관되었습니다.  포도원의 무화과나무, 포도원으로 보냄 받은 두 아들, 그리고 오늘 읽은 포도원의 농부들입니다.   포도원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며,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는 특별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는 신앙인을 상징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께 불순종하였다가 뉘우치고 돌아온 아들은 유대인 사회에서 죄인으로 버림 받은 세리와 창기들을 의미하는 동시에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나라 밖의 이방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 등장하는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기들을 빗대어 하신 말씀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던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과 같은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가 오늘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질문해야 하고 거기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 포도원으로 부르십니다.  거기 들어올 자격이 없는 우리를 불러 그 밭에 심어주셨고 오래 참음으로 열매를 기다리십니다.   겉으로만 순종하는 척하고 실제로는 불순종을 일삼는 아들보다는 처음에는 무례하고 괘씸하게 행동했지만 나중에 깨닫고 돌아와 순종한 아들처럼 뒤늦게라도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그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십니다.   처음부터 그 나라의 일군으로 선택받지 못하였지만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고 대항하던 악한 농부들을 대신하여 뜻밖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거절한 유대인들을 대신하여 그 포도원의 일군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우리가 예수님의 비유 속에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뜻밖의 특혜를 얻은 우리는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들을 때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며 또 대답도 잘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니 표리가 부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지적을 받고 발끈하여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려 했던 행동은 그들이 얼마나 모순된 삶을 살고 있는지 말해줍니다.  그들의 영안은 그만큼 어두웠고 그들이 손에 거머쥔 세상의 권력과 명예는 눈앞에 와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끝내 배척하고 거절할 만큼 매혹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 생활을 하지만 사람이 변하고 삶이 변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환경과 조건이 변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신앙이 쉽게 변질되고 삶에 선한 열매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람 그 자체가 변화합니다.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변하며 인생관에 극적인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때 비로소 성령의 열매가 그의 삶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하나님 나라 시민의 모습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렸던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도래와 함께 이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그 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한 본질적인 신분 변화 보다는 삶의 질이나 안전, 풍요로움과 강력한 국가 권력에 시선을 집중하였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일반 백성들이나 종교 지도자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보다 경제적으로 좀 더 부유하고 율법적으로 조금 더 고상한 위치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기대했을 뿐입니다.   이땅에서 가진 지위와 재력과 땅과 권력 등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죄를 회개하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일은 전혀 관심이 없었던 세속적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주님이 오셨고 가장 먼저 선포하신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였지 그들이 기다리던 정치적 해방이나 경제적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원하며 꿈꾸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주인이며 왕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영광스런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에 오셨을 때 이미 그 나라는 시작이 되었고 주님은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만국의 백성들을 그 나라로 부르셨으며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심으시고 자라게 하시며 열매를 거두고 계시는 주님은 지금도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기를 소원하고 회개하며 돌아오는 자녀들을 시민으로 받으십니다.   

우리를 그 나라로 부르신 포도원의 주인은 주님의 삶을 본 받는 사랑과 자기 희생적인 섬김과 겸손의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나를 포도원의 일군으로 부르신 주인의 은혜에 감사하며 내가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고 있다면 그것이 곧 그 포도원의 열매를 주인에게 돌려드림이 됩니다.   나에게 주신 그 무엇이든지 건강이나 물질이나 재능이나 사회적 지위나 시간이 주의 나라를 위하여 선한 목적으로 기쁘게 드려짐이 되었을 때 거기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선하신 주인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 사명을 거절하거나 주인에게 돌려야 할 열매를 내것으로 가로채는 어리석음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를 맡아 일하며 주인이 주시는 분깃을 감사함으로 나누는 선한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주인은 꼭 다시 오십니다.선한 일에 충성을 다한 농부에게는 그 수고의 열매를 상급으로 나누시기 위해 오시고, 주인의 포도원을 탐내며 스스로 주인 노릇하고 주인을 거역한 악한 농부들에게는 심판을 위해 오십니다.   세상에는 교회도 많고 교인도 많으며 일군도 많습니다.  주인이 오셔서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겸손하고 충실한 일군을 찾으실 때 나는 어떤 자리에 서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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