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들이 나를 버렸다! (삼상 8:4-9)

첨부 1


그들이 나를 버렸다! (삼상 8:4-9)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사무엘은 전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백성들과 나눈 이야기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삼상 12:3) 백성들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 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삼상 12:4) 과연 그는 선한 지도자요 또한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도 가는 세월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늙으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사가 되었습니다. 아마 주위 사람들이 강력하게 추천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스스로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삼자고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사가 주로 하는 일이 옳고 그름을 가려 주는 재판인데 그들은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다고 성경이 고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자녀 교육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진실한 삶의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도 목회자의 자녀들이나 교육자 집안의 자녀들이 의외로 문제가 더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단단히 작정하고 사무엘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 8:5)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사무엘이 너무 늙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들이 바르게 다스리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아주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모든 나라와 같이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고 하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나라와 같이...”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나 사무엘의 아들들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삼상 8:7~9) 백성들이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 주라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서 생활할 때에도 걸핏하면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늘 가나안 사람의 생활을 부러워하고 또 그들을 따라하지 않았습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어찌 보면 올 것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워 달라고 하는 요구를 허락하되 다만 그에 따른 어려움도 백성들에게 분명히 경고할 것을 사무엘에게 지시하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 이어지는 사무엘상 8장 11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은 그들이 요구하는 왕의 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왕의 제도는 많은 희생을 요구할 것입니다. 우선 아들들은 군사로 징집을 당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을 위하여 밭을 갈고 또 추수도 해야 합니다. 무기와 병거와 장비는 또 누가 만듭니까? 아들들뿐 아니고 딸들도 많은 희생을 강요당할 것입니다. 물론 왕이 앞장서서 전쟁을 치르겠지만 전쟁에 따른 피해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왕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삼상 8:17하반절) 결국 백성들은 왕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사무엘이 전하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다 듣고서도 그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삼상 8:19~20) 사람은 마음이 한 번 강퍅해지면 어떤 경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의 욕구를 충족시키면 장차 그로 말미암아 파멸이 온다고 해도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하여간 그들의 요청은 수락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이룬 것 같지만 사실은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 곁을 떠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경험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의 유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또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달콤한 유혹에 빠지는 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할 것 같으면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무서운 파멸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집요하게 왕을 요구했습니까? 그들이 왕을 요구한 까닭은 한 마디로 주위의 다른 나라들처럼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다른 민족들과의 전쟁에 있어서 백성들보다 앞장서서 싸워 줄 용맹스러운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사사 시대를 통해서 그들은 좋은 지도자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왕의 제도에 그토록 집착했던 까닭 가운데 하나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지 모릅니다. 그로 말미암아 후에 치러야 할 대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 오늘 우리도 경쟁적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던 때가 그 후 왕들이 다스리던 때보다 훨씬 더 좋지 않았습니까? 훨씬 더 평화로웠습니다. 훨씬 더 안전했습니다. 그 동안 그들이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고 학대를 당한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 곁을 떠난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셨기 때문에 그들이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유난히 감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더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그들이 왕을 요구한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것을 원하는 보편적인 인간 심리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일용할 양식을 약속하신 하나님보다는 은행을 더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그 옛날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통치 대신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장담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벌써부터 연말 대선 때문에 정치판은 시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도 이번에는 반드시 잘 뽑아야 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은 다만 국민을 섬기는 일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시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온전히 다스리실 수 있도록 믿고 맡겨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과연 나의 삶의 주인이시고 우리 가정의 주인이십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교회의 주인이십니까? 그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왕으로 다스리십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다른 왕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비롯해서 그 누구도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심으로써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의 평화를 마음껏 받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