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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돈을 잘 사용하는 방법 (마 19: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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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잘 사용하는 방법 (마 19:16-22) 
 

오늘 설교는 지난 번 성경적 경제부흥 10계명과 마찬가지로 김광선 목사님이 쓰신 [성경적 경제부흥]에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키소, 코소, 카아소’입니다.
   
첫째 기준은 ‘키소’입니다. ‘그의 주머니’라는 뜻입니다. 돈 주머니, 곧 그의 전대를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돈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강철왕 카네기는 죽으면서 “돈을 남기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의 전 재산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 다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도 돈을 벌든지 쓰든지 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기준은 ‘코소’입니다. ‘그의 잔’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인물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술, 이성, 노름, 오락 등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셋째, 기준은 ‘카아소’입니다. ‘그의 노여움’이란 뜻입니다. 그 사람의 감정 조절 능력과 인내력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 세 가지 중에 가장 먼저 말하고 있는 것이 ‘키소’입니다. 그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입니다.
   
돈은 인생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돈은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주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성경 눅 16:11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여기서 불의한 재물은 세상의 재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재물 즉 돈을 바로 사용할 때 주님은 그 사람을 신뢰하고 참된 것 즉 영적이고 영원한 것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돈 때문에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영원한 세계를 위해서 돈을 쓸 줄 아는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라는 수단으로 우리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돈은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롭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 37:16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돈을 쓰기 위한 것입니다. 돈을 벌기만 하고 쓸 줄 모르면 안 됩니다. 루마니아 속담에 “가장 나쁜 돈은 쓰이지 않는 돈이다”라고 했습니다. 건 데하트는 “돈이란 거름과 같다. 돈을 쌓아 두면 악취가 난다. 그러나 그것을 넓게 뿌리면 사물들을 잘 자라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돈은 사람을 만듭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돈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되느냐 돈이 사람의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의 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어떤 순서로 돈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우리 속담에 “냉수 한 그릇도 위아래가 있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녀도 순서대로 다녀야 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순서가 분명한 것입니다. 옷을 입을 때 단추도 순서를 따라 끼워야 합니다. 단추 구멍이 있다고 아무 곳이나 단추를 갖다 끼우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사용하는 것도 순서가 있습니다. 그 순서를 따라 돈을 사용하게 되면 돈을 잘 쓰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돈을 써야 합니다. 
   
잠 3:9,10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처음 익은 열매 즉 첫 열매를 드리라는 말은 돈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월급을 받으면 먼저 주님에게 드릴 돈을 구별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을 도둑질했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것을 내가 쓰는데 도적질 했다합니까?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을 도적질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헌금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든 헌금에 동참할 수도 있고 몇 가지만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색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되고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돈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마 6:21에 보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헌금은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생각해 봅시다. 가인의 농부였기 때문에 곡식으로 드렸고 아벨은 목축업을 했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두 사람의 제물을 차별하셨을까요? 답은 히 11장에 나옵니다. 히 11:4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믿음의 차이입니다. 가인은 믿음 없이 드렸고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저는 헌금만은 다른 사람의 힘으로 하지 말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힘이 있으면 힘이 있는 대로 내 힘으로 헌금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는 것입니다.
   
오래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부자 장로님이 담임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 우리 교회 여 집사님 한 분이 혼자 살면서 어린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무척 어렵게 삽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날이 되면 꼭꼭 5센트의 헌금을 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겠지만, 그 여 집사님한테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장로님은 2불씩을 헌금하고 있었는데 5센트의 4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장로님의 말인즉 그 여 집사님의 몫까지 자기가 대신 할 테니 그 집사님께 헌금을 하지 말라고 얘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권면을 받아들여서 여 집사님을 불러서 말씀을 드리자 그 집사님은 앉은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 집사님은 “제가 비록 남의 집 빨래를 해가며 고생스럽게 살지만, 하나님께 5센트씩 드릴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기쁜데, 그 기쁨을 왜 빼앗으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로님도, 목사님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사는 것이 어려워서 비록 큰돈은 헌금을 못해도 헌금은 내 힘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자신에게 복입니다. 잠 3:9,10에서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 창고가 가득히 차고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물질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갈 6:7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2.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중요한 순서가 부모님입니다. 노인분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돈입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세종대왕이 공자를 이겼다”고 말하더랍니다. 아마도 유교사상에 젖어서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던 부모님에게 많은 용돈을 드리니 교회에 나오게 되셔서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부모님께 십일조만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고 부모님께 십일조 드리십시오. 용돈은 매달 정기적으로 드리십시오. 저희는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드리고 있습니다. 특별한 날은 성의가 담긴 선물을 드리십시오. 인터넷에서 보니 어버이날 가장 싫은 선물 1위가 카네이션이랍니다. 꼭 카네이션만 받아야 하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2위는 전자기기랍니다. 조작법이 어려워서랍니다. 3위가 현금입니다. 성의가 없어서랍니다. 그런데 어느 며느리는 카네이션에 핸드폰에 현금을 드렸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효도하는 일에 돈을 써야 하는 이유를 엡 6:1-3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첫째,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엡 6:1에서 말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은 지극히 옳은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계에 기본 원리를 세우신 것처럼 인간 세계에 기본 원리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희생하는 것이 기본원리인 것처럼 자식이 부모님에게 효도 하는 것 역시 기본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부모공경의 기본 원리를 사람들의 머리속에 넣어두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철학과 윤리에서도 효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엡 6:2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인간관계를 위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인 5계명에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엡 6:3절입니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은 효도하는 사람을 잘되게 하시고 장수하게 해주십니다. 형통과 장수의 복입니다.
효도도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자식들에게 받고 싶은 대로 당신의 부모에게 하시오.” 우리는 자식에게는 효도 받고 싶어 하면서도 부모에게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순입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온 효자이면 자식은 반 효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식에게 효도 받고 싶으면 두 배는 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받고 싶은 만큼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3. 나라에 정당한 세금을 내는 일에 써야 합니다. 
   
간혹 세금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를 양반입니다. 과거 오스만 터키는 이스라엘을 땅을 통치하면서 나무세도 내게 했습니다. 정선 예화를 보니 옛날 안남이라는 나라에서는 해만 쳐다봐도 세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교통순경에게 월급을 전혀 주지 않는 나라도 있다고 합니다. 나가서 재주껏 벌어먹으라는 겁니다. 저는 이것도 사실인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그런 나라에 비하면 우리는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성경 롬 13:7입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주님은 로마의 황제였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시므로 세금을 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세금을 내셨습니다. 마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성전 세를 받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낚시로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물고기의 입을 열어보니 한 세겔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전 세는 반 세겔이었는데 베드로는 그 한 세겔로 주님의 성전 세와 자기의 성전 세를 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이 땅에서는 나라의 국민이므로 나라에 내는 세금을 떼어먹지 말아야 합니다. 탈세는 부끄러운 일이고 양심이 바르지 않는 일입니다. 이상하게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자들일수록 탈세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4. 정당한 품삯을 주는 일에 써야 합니다. 
   
성경 약 5:1-6에서는 불의한 부자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 중 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불의한 부자들이 품꾼들에게 주지 않은 삯이 소리를 지르고 품삯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한이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됩니다.
   
말 3:5을 보면 하나님께서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한 자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품꾼의 삯에 대한 말씀이 신 24:15에 나옵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여기서는 일당 일을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일당으로 계산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월급제가 많습니다. 경영자는 직원들의 월급을 반드시 지급해줘야 합니다. 물론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좀 지연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돈이 있으면서도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업주가 돈을 벌었으면 노동자의 품삯을 정당하게 주어야 합니다. 정당한 품삯을 주지 않는 것은 노동자의 몫을 자기가 챙기는 것입니다. 임금을 착취하는 악한 일입니다. 10만 원어치의 일을 시키고 7만 원만 준다면 3만 원의 남의 몫을 내가 챙기는 것이고 그것은 정직한 일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정당한 품삯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천 기업가는 기업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기업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업가는 자기의 재산 중에 가난한 노동자의 몫이 들어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업하기는 정말 힘든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가장 문제는 접대문화입니다. 함께 술을 마셔야 하고 2차 3차까지 가야 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수금 문제입니다. 일을 시켜놓고 돈을 주지 않는 업체가 많습니다. 자기는 돈을 받아놓고 하청업체에게는 돈을 주지 않는 비양심적인 기업가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도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과 건전한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업하기에는 너무 힘든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품삯은 주어야 합니다. 
 
5. 빚을 갚는 일에 써야 합니다. 
   
성경 롬 13:8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피치 못하게 빚을 진 것이 있다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부채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시 37:21에 보면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꾸고 갚지 않는 사람이 악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빚은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의 몫입니다. 만약 빚을 갚지 않고 내가 갖고 있으면 남의 몫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자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의도적으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빚도 갚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남의 몫을 가로챈 사람입니다. 빚이 있으면 갚아야 합니다.
   
어떤 교회의 안수집사님이 사업을 하다가 일이 잘못되어 할 수 없이 부도를 내서 경제사범이 되어 감옥에 가서 죄 값을 치르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을 제기 했고 다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돈을 벌게 되면서 그 집사님은 자기 집과 자동차를 먼저 산 것이 아니라 부도냈을 때 졌던 빚을 차례차례 갚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이미 감옥에 갔다 온 것이니까 다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집사님은 자기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들은 여전히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빚을 갚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집사님의 행동은 세상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칭찬 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참 다르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답니다.
   
그분이 차를 먼저 사고 집을 먼저 샀다고 생각해봅시다. 전에 부도를 내서 손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지고 있는 마음의 빚이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빚을 갚으면서 누리는 당당함을 맛볼 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요? 그분이 자기 교회 목사님에게 하는 말이 “목사님, 빚 갚는 거 참 재미있어요. 저는 요즘 빚 갚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라고 하더랍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교인 아닙니까?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6. 가족을 돌보는 일에 써야 합니다. 
   
딤전 5:8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되, 특별히 가족을 돌보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긴 사람이랍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가족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사람이랍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돈도 잘 쓰고 힘을 다해서 도움을 주면서 가족들에는 인색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선순위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가족은 끝가지 책임져야 합니다. 부하고 건강할 때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들 때에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옛날 어느 가정에 남편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게 되자 부인이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쌀밥 한 그릇 해놓고 도망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데 도마뱀 한 마리가 들락거리면서 떨어진 쌀알을 물어다가 도랑을 덮은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다리를 놓을 때 수놈의 꼬리가 나무에 끼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암놈이 수놈을 먹여 살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부인이 자기가 도마뱀 보다 못한 인간임을 자책하고 도망갈 것을 포기하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잘 간호했더니 후에 남편이 건강해지고 열심히 살아서 큰 벼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정생활에서 중요한 가치는 사랑과 책임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월급은 자기만을 위해서 쓴다고 합니다. 자기 옷 사고, 취미생활하고, 좋은 자동차 타고 등등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돈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가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죽어도 가족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잭 캘리라는 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러 갔다가 겪은 체험담입니다. 그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 그 마을 사람들이 다 굶어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길목에서 살아 있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영양실조로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고 피부는 백 살 노인처럼 쭈글쭈글했으며 거의 죽은 듯이 서 있었습니다. 마침 사과 하나가 있어서 소년에게 주니 얼마나 힘이 없던지 그것을 들지도 못했습니다. 반으로 잘라서 주니 그것을 받아 들고는 마을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소년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소년이 도착한 집에는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한 입 베어서 씹더니 그것을 눈도 뜨지 못하는 동생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동생은 그것을 씹지도 못했습니다. 소년은 동생의 턱을 잡고는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고 그 소년의 동생은 살아남았습니다. 얼마나 눈물겨운 일입니까? 만일 그 어린아이가 자기 동생이 아니었다면 그 소년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에게 먹이지 않고 자기가 먹었을 것입니다. 형제의 사랑도 이렇게 위대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돈을 가족을 돌보는 일에 써야 합니다. 
 
7. 궁핍한 자를 위해 구제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 내 것이 없어지니 내가 궁핍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점점 더 풍족해지는 것이고 늘 남의 도움만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잠 11:24,25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풍족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잠 19:17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구제는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제를 하는 사람에게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대구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찬양을 인도하는 전도사님과 식사를 하는데 눈에 하얀 막이 끼어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안경 도수가 맞지 않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안경을 바꾸질 못하고 도수가 맞지 않는 걸 계속해서 끼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께서 저에게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네가 이 전도사 안경을 해줘라” 여러분! 성령의 음성이 들릴 때는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제가 제 지갑을 열어 봤더니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드를 주면서 안경을 맞추게 했습니다. 그 전도사님이 그날 안경점에 가서 30만 원 정도 되는 안경을 맞췄습니다. 제가 집회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어느 분이 봉투 하나를 주셨습니다. 그 안에는 전도사님의 안경 값의 몇 배가 되는 돈이 있었습니다. 구제하면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8. 장차 천국 가서 주님께 상급 받는 일에 돈을 써야 합니다. 
   
성경 딤전 6:17,19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물질을 잘 사용하는 것은 장차 들어가게 될 천국에 좋은 터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물질을 바로 잘 사용하면 천국에서 상이 되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천국에서 상이 될 일이 있다면 놓치지 말고 헌신하십시오.
   
성도들은 거룩한 욕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상을 남에게 빼앗기면 안 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남 보다 더 풍성한 상을 받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돈은 물이나 불과 같습니다. 물이나 불은 잘만 사용하면 대단히 유익합니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게 되면 큰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사용하면 큰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엄청난 재앙이 되고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돈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순서에 따라 살펴봤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설교에서 배운 대로 돈을 잘 사용하셔서 돈이 복이 되고 돈이 상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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