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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하는 그리스도인 (마 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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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그리스도인 (마 7:7-12)


뉴욕 브루클린에 [윌리엄 리바인]이라는 사람이 정육점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무려 네 차례나 강도를 당했습니다. 그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방탄조끼를 구해 입고 일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방탄조끼를 구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씩 방탄조끼를 구입해 주면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 사람은 정육점을 그만두고 방탄복 제조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40여개 도시에 대형점포를 가진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일 후로 그는 사업성공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강도를 네 차례 만난 것” 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고난과 실패를 통해서도 그 교훈을 얻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반면에 실패한 사람들은 치명적인 몇 가지의 실수를 저지른다고 합니다. ①자신이 바꿀 수도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 ②실수를 알면서도 반복하는 것, ③사소한 일을 끝까지 고집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④남을 나와 똑같이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것, ⑤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 ⑥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중간에서 포기하는 것이 실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그 비결이 있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들이 더 좋아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성공할 수밖에 없는 습관이 있다고 분석해서 그 연구 자료를 책으로 써서 유명해진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과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이라는 책이 그것이지요. 그야말로 성공한 사람이지요. 

객관적으로 볼 때 세상에는 이렇게 저렇게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문제는 정말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고 또 뛰어다닙니다. 그렇게도 애쓰고 그렇게도 바라는데 정작 성공을 했느냐는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여러분은 성공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몇 명이나 만족하며 답할 것 같습니까? 

실제로 통계자료에 의하면 약 10% 의 사람들이 자신을 인생의 실패자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고, 약 80%의 사람들은 대중 속에 묻혀서 희망과 비전도 없이 죽어가고 있으며, 나머지 10%의 사람만이 그나마 스스로 인생의 성공 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세상은 온통 실패한 사람들뿐이란 말입니까? 또한 세상이 이렇게 되어서야 옳겠습니까?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왜 성공에 대한 이런 통계가 나옵니까? 성공했음에도 왜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절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공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선은 성공을 잘못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공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성공을 성공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공이란 어떤 것입니까? 

통상적으로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라면 적어도 몇 가지에 답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 첫 번째는 무엇이 성공이냐 하는 것에 대한 답입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느냐? 내 생의 목적을 결정해 주는 내 확실한 목표는 무엇이냐?” 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무작정 뛴다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마냥 달리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아, 잘못 왔구나, 잘못 생각했구나,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구나’ 하고 탄식해봐야 늦은 것입니다. 무엇이 성공이냐 라는 목적과 목표가 가 결정 되지 않은 사람에게 성공이 있을 리가 없지요. 인생은 그 목적과 목표에 의미가 있고 또 반드시 그 의미에 따르는 결론이 있는 것입니다. 그 결론이 성공입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은 출발 하실 때부터 십자가가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대해 예고하셨고, 십자가에 대해 가르치셨고, 십자가를 지셨고, 돌아가실 때에는 마침내 “다 이루었다.” 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3년을 함께 지낸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해 말씀 하실 때마다 근심했고, 주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는 다 흩어지고 절망했습니다. 갈릴리로 돌아가자며 실패의 낙향을 하게 됩니다. 

왜 똑 같은 사건에서 한 쪽은 성공하여 “다 이루었다.” 며 영광을 누리는데 한쪽은 실패를 맛봐야 했느냐는 말입니다. 근본적으로 목적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입니다. 목표가 무엇이었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두 번째는 성공의 방법이 옳으냐에 대한 답입니다. 목표는 동쪽에 두고 가기는 서쪽으로 간다면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동쪽에 있으면 몸도 동쪽으로 향해 가야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목적이 있으면 그 목적에 합당한 길을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합당한 방법 없이 다른 것으로 성공하겠노라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투자와 노력과 성실 없이 일확천금을 꿈꾼다면 이것은 성공의 방법이 잘 못 된 것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에 대한 답입니다. 생각도 있고, 뜻도 있지만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헛것입니다. 게으름 피울 것 다 피우고, 남보다 몇 배나 잠자고도 무엇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어딘가 잘못 되었을 것입니다. 온전히 성공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두고 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공에 대해 물을 때에 1등을 했느냐를 물을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느냐를 물을 것입니다. 바로 성공을 위해 반드시 물어 보아야 할 질문이 최선을 다했느냐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문제는 성공을 성공으로 시인하느냐에 대한 답입니다. 돈 천 만원을 가지는 게 소원이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니까 천만 원을 가졌습니다.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1억 원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천만 원에 대한 성공을 인정하고 목표수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1억 원이라야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10억 원을 바라겠지요. 이러다가는 한 번도 성공했다는 만족감을 가져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자기 욕심에 따라 수시로 성공의 이정표를 옮겨가는 사람에게 진정한 성공이란 없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성공을 성공으로 인정할 줄 알 때 또 다른 성공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어서 오늘도 실패했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자, 여러분도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그래서 성공을 위하여 노력도 하고 수고도 하십니까? 목적도 좋고, 방법도 다 좋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신앙에 대한 성공의 여부는 어떻게 판가름할 것입니까? 

신앙적인 성공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중요한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인이라면 자신에 대하여 무슨 일이든지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수고로만 되지 않는 별 도리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합니다. 모든 수고와 노력위에 하나님의 복이 임해야 한다는 마음, 곧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먼저 생각해야할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한 충분한 신앙과 소양과 인격적인 품성을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 믿음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그 위에 하나님의 복이 있고 성공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에 온통 자기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복이 들어 올 자리가 없다면 마땅히 성공은 바라볼 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님의 복을 채울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들이 본문에서 눈여겨 봐야할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의 비결이 있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 입니다. 이것은 성공의 정의도, 방법도, 목적도 다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그것도 가장 좋은 것들로 주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약4:2, 3절에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달리표현하자면 “너희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기도를 해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네 욕심을 채우고자 기도했기 때문이다.”는 말씀이 됩니다. 

오늘 여러분이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깨끗이 비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보시기 바랍니다. 못 받는 우리도 답답하지만 주시지 못하는 하나님은 더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먼저 알고 게십니다. 그런데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고 삽니다. 그리고 줘봤자 전부 자기 것인 줄 알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열 개 중에 한 개는 바치라, 그것은 너의 변함없는 신앙을 보고자 하는 내 마음이다.” 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모른척하고 눈 딱 감고 제 배만 불리며 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나는 나대로 쿨 하게 삽시다.” 그런 모습의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받을 거 안 받고, 드릴 거 안 드리고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편합니까? 그게 소위 깨끗하게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낸시 스피겔베르그]라는 사람이 이런 시를 적었습니다. 
주님, 저는 저의 빈 잔을 가지고 / 사막을 가로질러 / 당신께로 천천히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저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 줄 / 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 제가 주님을 제대로 / 알았더라면 /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 뛰어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알면 알수록 보다 더 그분을 신뢰할 수 있고 더욱 더 의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결코 하나님과 내가 따로 모른 척하고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미 약속된 성공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성공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믿음 있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실패의 원인에 매달려 있거나 실패의 자리에 계속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 자세가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오늘 여러분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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