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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마 6: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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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마 6:24-34)  

하나님은 에덴을 창조하였다.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의도대로 움직여서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므로써 에덴에는 질서와 조화가 비틀어지고 왜곡이 나타났다. 사람에게 있어서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 뿐이었다. 그런데 왜곡이 나타나자마자 영적 기능이 죽어버린 인간은 만물 앞에 경외감을 갖고 만물을 하나님 자리에 가져다 놓고 경배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간은 불안과 두려움, 빈 마음을 채울 길이 없어 눈에 보이는 것을 움켜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삶의 주인으로 모셨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해와 달과 별, 산과 들과 강, 큰 나무, 기암 괴석, 무서운 짐승 등을 주인으로 모셨다. 

이는 롬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고 하였다. 

오늘의 시대는 과학의 발달로 태양신, 별의 신, 달의 신 등의 숭배에서 벗어난 듯 하다. 그 대신 물질, 돈이 우리 인생에게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성도들에게도 돈이 위력을 발휘하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결국 이 시대에 많은 성도들이 두 주인을 모시고 있다. 하나님이라는 주인과 물질이라는 맘몬신이다. 맘몬은 고대 이방의 돈의 신이었다. 칼타고의 부요신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나를 구원하신 주님은 분명 두 주인을 섬기기는 불가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면 물질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의 증상은 이렇다.  

1. 의식주 문제에 집착한다. (마6:25)

마6:25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에 대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의 의식주 문제에 집착하여 삶의 우선 순위가 물질이 된 사람은 물질이 주인인 것이다. 

이 세상은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신(神)인 것처럼 떠든다. 매스컴의 광고는 온통 이것을 먹으라, 이것을 마시라, 이것을 입으라는 선전이다. 온통 먹고 마시고 입는 것으로도 선전이 부족해서 몸을 위해 이것을 발라라, 이것을 깎아라, 붙여라는 선전이다.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매스컴을 대면해도 의식주에 집착시키는 권고만이 가득하다. 

그것은 또 우리의 육신의 정욕과 우리의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건드리면서 광고한다. 여기에 미혹되고 속고 혼돈되어 의식주 문제에 더욱 집착하고 의식주도 더 좋은 명품으로, 더 유명한 브랜드 상품으로 집착하여 그것을 손에 넣어야 행복한 줄 아는 착각 속에 산다. 이런 의식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삶이 물질이 주인이 된 모습이다.  

2. 염려 속에 산다. (마6:25, 27, 28, 31)

의식주를 위해 사는 삶과 의식주 문제에 집착하는 삶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다. 예수님은 마6:25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의식주가 염려의 대상이 되면 물질이 삶의 주인이 된 것이다. 즉 물질이 주인이 된 사람의 삶이란 아무 쓸데없는 염려에 빠져 산다는 것이다. 헬라어로 ‘메림나’라 하는 염려는 죄악이다. 마운스(R.H. Mounce)는 염려에 대해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라 하였다.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고민하고 궁리를 해도 염려로 사는 것은 키를 한 자나 더 자라게 할 수 없다. 염려는 무능이다. 염려는 불가능이다. 염려는 눈 먼 것이다. 염려는 불신앙이다. 염려는 분열된 색종이다. 혼돈이다. 물질이 주인이 되면 염려만 자라게 하고 염려만 커져가게 한다. 

마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마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주님은 염려가 하나님을 주인을 삼지 않는데서 오는 결과물로 언급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염려’란 단어는 6번이나 되풀이 되어 나온다. 염려는 주인이 누구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바로 물질이 주인이면 염려는 당연히 따라오는 그림자다. 그것은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3. 미래를 어둡게 산다. (마6:34)

마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주님이 주인이 된 사람은 괴로움이라는 것을 극복한다. 그러나 물질이 주인이 된 사람은 내일 염려까지 끌어다 염려하기에 괴로움에 떨어진다. 그래서 내일을 어둡게 산다. 내일이 밝지 못한 사람에겐, 괴로움의 사람에겐 감사가 없고 평안이 없으며 행복이 없다. 삶이 불행하고 더욱 불행해진다. 물질이 주인인 인생, 그 맘몬신은 분명코 불행을 선물하고 불행을 불러들이되 불행을 몰아내지 못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의 증상은 무엇인가?

첫째, 생명을 중요시 여긴다. (마6:25)

마6:25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주인인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다가 목숨과 몸둥아리가 병들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인데 생명을 내신 하나님 앞에 생명이 아닌 것을 가지려고 애쓰다가 잘못 되어서는 안됨을 안다. 이자를 챙기고 저금을 하며 성실하게 돈을 모으는 것이 잘못이 아니다. 살아가는 생명은 빵과, 옷, 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그 필요한 먹거리와 옷들을 위해 목숨과 몸을 파괴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지 물질을 위한 생명을 팔거나 파괴하거나 노략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인인 사람은 헌금 생활을 한다. 선교 헌금을 한다. 생명을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고 구원을 위해 쓰는 것이다.   

둘째, 자존감이 높아진다. (마6:26)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들을 다 길러주신다. 공중 나는 새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두신다. 하나님께서 살도록 하시고 기르시고 계신다. 이렇게 날짐승도 먹이고 입히시는데 인생은 어떤 존재인가? 귀한 존재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인생이 하나님께 가장 귀하다. 

시8:5의 말씀대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신 인생을 어찌 방치하겠는가? 내가 귀한 존재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자존감이 살아난다. 나를 이렇게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만드신 하나님이기에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들의 백합화 한 송이도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여도 자라나고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한송이만도 못하다. 그렇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가장 귀한 나를 어찌 벌거벗은 채로 방치하겠는가? 무명 꽃도 기르시는 하나님이 아들로 삼은 나를 어찌 무관심하게 다루시겠는가? 그래서 자존감이 생긴다. 염려는 다가왔다가 동거하지 못하고 떠나간다. 내가 귀한 존재이기에 기쁨으로 세상을 산다.
 

셋째, 믿음으로 산다. (마6:30)

마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은 믿음에 선다. 무슨 믿음인가? 하나님이 입히시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믿음이다. 마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은 염려가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 마6:32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나를 다 아시고 계시는 하나님이 공급자가 되어주시는 것을 믿으면 평안하다. 행복하다. 염려, 집착, 어둠이 들어오지 못한다. 삶의 기쁨과 감사, 자유로움과 밝음이 삶의 내면에 깃들여진다. 믿음이 있기에 요동하지 않는다. 가난한 날에도, 실패한 날에도 요동하지 않는다.
  

넷째,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한다. (마6:33)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물질이 주인인 사람의 우선은 돈이다. 돈이 지시하고 돈이 요구하는대로 모든 인생의 계획표를 작성한다. 돈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도 포기하고 친구도 포기하고 교회도 포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인이 사람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이 우선이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가 우선이다. 그래서 돈이 있으냐, 없느냐가 우선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의가 먼저다. 거기서 희생, 헌신, 사랑, 구제, 나눔, 섬김이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앞세우는 그 사람에게 마6:33에서 의식주도 책임져 주신다. 모든 것을 더하기 해 주신다. 

우리는 이제 결단해야 한다. 취직도 하나님 먼저, 공부도 하나님 먼저, 가수가 노래할 때도 하나님 먼저, 하나님 먼저가 결단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듯 하다. 돈은 눈에 보이는 것이어서 모든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하나님이 먼저여야 한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면 삶도 거룩해지고 물질도 거룩하게 사용된다. 물질이 악하게 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에 사용된다. 그러나 물질이 삶의 주인이 되면 하나님도 잃고 물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물질 때문에 생명을 잃는 불행을 초래한다. 

우리는 이제 뒤집어야 한다. 하나님 아래 인간, 인간 아래 물질로 되어있는 질서가 깨지고 뒤집어진 삶의 현실을 오늘 다시 뒤집어야 한다. 뒤집는 것이 신앙이다. 뒤집기로 거듭나서 살면 마술 같이 물질은 선이 된다. 하나님이냐, 물질이냐, 그 선택의 답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주인되고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면 물질은 거룩해진다.

선도 악도 아닌 물질이 선이 된다. 생명이 된다. 허나 물질이 주인되면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아도 염려가 달라붙고 모든 것을 잃고 죄와 고통의 음부에 떨어지게 된다. 오직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섬기는 삶은 염려가 떠나가고 염려가 파괴되어 버리고 염려가 다가오다가도 도망가고 자족하며 살게 된다. 기쁨과 자유함으로 족하여 살게 된다.  

당신의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삶의 빛과 어두움,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그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유사 그리스도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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