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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신경(14) : 성령님을 믿습니다 ② (행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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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⑭ - 성령님을 믿습니다 ②.(행 1:8) 
 

오늘 설교는 사도신경 중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고백을 통해서 성령님은 어떤 영이신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거리에서 팔고 있는 호두과자를 사서 먼저 두개를 먹었는데 그 호두과자 안에 호두가 하나도 없더랍니다. 화가 난 그 사람이 호두과자 장수에게 호두가 들어있지 않은 것을 파느냐고 화를 냈더니 이 장사꾼이 하는 말, “붕어빵 속에 붕어 들어 있는 것 봤어요?” 하더랍니다.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어도 붕어빵이라고 부르고, 호두과자 속에 호두가 없어도 호두과자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 속에 성령이 없으면 그 사람은 교인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은 어떤 영이십니까? 그분이 어떤 영신지를 알게 되면 그분이 하시는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그분이 어떤 영이신지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합니다. 
 
1. 진리의 영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믿는 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이 특성 때문에 우리는 나 자신에게 역사하는 영이 성령님이신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면 그 영은 성령님이십니다.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님은 나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어떤 영이든 그 영이 나를 진리와 멀어지게 만들고 비진리 가운데 거하게 한다면 그 영은 성령님이 아닙니다.
그럼 진리가 무엇이며 성령님께서 진리의 영으로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 예수님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십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은 수많은 길 중에 한 길이거나 수많은 진리 중에 한 진리이거나 수많은 생명 중에 한 생명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영의 인도함을 받은 후 능력이 나타나고 큰 축복을 받았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기게 된다면 그 영은 진리의 성령님이 아닙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오직 예수, 그분만이 참되고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슬람교도였던 한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깨닫게 되고 영접하게 되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이슬람 공동체 집회에 잡혀 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왜 마호메트를 배신하고 기독교로 개종했느냐?” 그렇게 물으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세상을 살면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 죽은 사람이 한 사람 누워 있고 그 옆에는 산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까?” 이에 무슬림들이 “우리를 놀리느냐, 당연히 산 사람에게 물어 보아야지.”라고 하자 그는 “제가 보니 마호메트는 죽어서 그 무덤이 메카에 있고 예수님은 무덤이 없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마호메트에게 길을 묻는 대신에 살아계신 예수님께 길을 물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지도자들이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으나 예수님만이 유일한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성령님은 유일한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에게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시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해주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들어가면 그 상황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 이유는 진리의 성령께서 말씀이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날 때 이상하게 자꾸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말씀을 벗어난 상황에 대해서 불안하고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진리의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3) 교회가 진리이기 때문에 성령님은 우리를 교회 안으로 인도하십니다. 
   
딤전 3:15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교회를 멀리하고 산이나 기도원만 찾아다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에 성령님은 성도들을 교회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신앙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회를 가까이 하며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김동호 목사님이 1991년 중국을 방문하였었습니다. 그때 심양 서탑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받았던 은혜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답니다. 서탑교회는 그때 출석교인이 약 700명 정도 되는 교회였는데 예배당 건축을 앞두고 교인들이 열심히 헌금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목사님이 그때 놀라고 은혜를 받았던 것은 700명 교인이 약 70만 위엔 정도를 헌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때 목사님 계산으로 700명 교인의 평균 일 년 봉급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헌신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수준이라면 최소한 10억은 넘는 돈입니다. 예배 시간에 헌금을 하고 재정부장을 맡으셨다는 여자 집사님의 헌금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더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그렇게 사랑한 이유는 진리의 성령께서 그분들에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셔서 그런 것입니다. 
 
2. 능력의 영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님은 권능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여기서 권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라는 말인데 ‘힘, 세력, 능력, 역량’등을 말합니다. 성경 사 11:2에서는 성령님을 ‘재능의 영’이라고 말했습니다.
삿 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성령님께서 삼손에게는 육체의 힘을 능력으로 주셨습니다. 그 결과 삼손은 손에 아무것도 없이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삼손에게 능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신 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성령님께서 모세의 안수기도를 통해서 여호수아에게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복종하고 그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능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님께서 무능한 교회 가운데 바람처럼 불처럼 역사하셨습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전도의 능력 치유의 능력 등이 강하게 나타나서 초대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이 되었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려면 성령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사업가도 직장인도 성령님의 능력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성령님의 능력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주님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남아서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으로 입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에 남아서 성령 받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그 결과 성령님께서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셔서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 당시 제자들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기도에 힘을 쓰다가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자신의 소명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기를 바랍니다.
지용수 목사님께서 인천의 한 장로님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그 장로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용수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목사님께서 수많은 장로님들을 만났지만, 그렇게 겸손한 장로님은 보지 못했답니다. 그 장로님이 해마다 4,5억씩 들여 개척교회를 하나씩 짓는답니다. 그리고 섬기시는 교회의 건축을 위해서도 50억을 바쳤답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겸손하신지 모릅니다. 그 장로님만 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장로님의 부인이신 권사님도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 권사님이 세상에! 부흥회를 시작하기 3시간 전에 교회에 와서 부흥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그렇게 축복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처음부터 그렇게 부자였던 것은 아니랍니다. 조그만 장사로 시작했다가 대기업이 된 것이랍니다. 저는 능력의 성령님께서 겸손한 우리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3. 증거의 영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 방향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성령 받은 사람들의 혀를 장악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혀가 장악된 그들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했던 일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일을 증거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큰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된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가끔 ‘전도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듭니까? 전도를 쉬고 있는 사람 마음에 ‘전도해야 하는데’라는 부담감이 생기는 이유는 그 사람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궁금해지고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를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겁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 역시 성령님께서 내 속에서 역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자신의 능력이나 직업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 역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잘하던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선교사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뛰어난 전문성이 있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그 직업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쉬지 않고 전합니다. 상대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쉼 없이 복음을 증거 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증거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전도와 선교에 힘을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증거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어린 아이도 전도합니다. 어느 교회의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식사 시간에 네 살 먹은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은 내가 식사 기도할게.”, “네가? 그래, 해 봐라.”, “하나님 아버지, 너무 슬퍼요. 우리 아빠 때문에 슬퍼요. 엄마랑 나는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 가는데, 아빠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지옥에 가요. 아빠는 바보예요. 예수님을 믿으라 해도 안 믿어요. 너무 너무 슬퍼요….” 네 살 먹은 외동아들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던 아빠의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울지 마라. 다음 주부터 교회에 따라가 줄게.” 그래서 그 아빠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를 주시면 네 살 먹은 아이라도 복음을 전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증거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4. 비전의 영 
   
행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자녀들이 예언을 합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전입니다. 젊은이들은 환상을 봅니다. 여기서 환상 역시 비전입니다. 노인들은 꿈을 꿉니다. 이 꿈 역시 미래에 대한 그림 즉 비전입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면 꿈을 갖게 됩니다. 장차 될 일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회적 신분과 상관없이 각자에게 비전이 부어집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비전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님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는 일에 대한 소원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 안에 임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신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비전의 영이신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품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 이스라엘에 가는 이유가 바로 비전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이스라엘이라는 소원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저는 성령님이 주신 그 소원을 따라 움직인 것이고 결국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신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 할 수 있는 기준이 히 11:1입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원 즉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살상이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만난 후 바라보는 것 즉 비전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에 대한 비전, 후손에 대한 비전, 메시야에 대한 비전, 열방의 구원에 대한 비전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비전이 성취되는 과정은 너무나 더딘 것처럼 보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은 그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비전대로 약속의 땅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받은 비전대로 자식을 낳을 수 없던 사라가 이삭을 낳게 되므로 후손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받은 비전대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찬하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비전을 주셨고 결국은 그 비전을 이루셨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진리는 믿음 생활이라는 것은 비전을 받고 그 비전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비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비전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가 받은 비전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 결국은 그 비전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 비전은 아브라함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비전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들어가자마자 가뭄이 들어서 그 땅에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의 비전을 받았지만 아내 사라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불임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까지 사라를 통해서 자식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비전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전이 성취되었습니다.
   
헬렌켈러에게 어떤 사람이 듣지 못하는 농인과 보지 못하는 맹인 중 누가 더 불쌍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육안을 가지고도 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임하게 되고 인생의 방향이 잡히게 될 것입니다.
건축업자가 건물을 지을 때는 그냥 짓는 것이 아니라 청사진과 설계도대로 짓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의 집도 그냥 되는대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의 설계자이신 주님의 청사진대로, 주님의 설계도대로 지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대로 살아갈 때 승리하는 인생,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5. 치유의 영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행하신 일 2가지를 기록했습니다. 첫째,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복음을 전파하신 것과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치유사역을 말합니다. 주님은 치유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모든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마 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 중에는 병을 고치려는 목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다’라는 말은 ‘모든’ 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병을 가지고 주님을 찾아온 사람들의 모든 병을 다 고치셨던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렸고 불치병인 나병환자도 고치셨습니다. 한번은 중풍을 맞아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친구들에 의해서 침상 째로 들려왔는데 주님은 그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지금 이 시대에도 병든 자들을 고치십니다. 주안 감리교회 국제성서 박물관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성경 1만여 권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구 관회 집사가 쓴 성경도 있었습니다. 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죽을 날을 기다리며 후손에게 마지막 유산 하나 남겨 주고 싶었습니다. 성경을 자기 손으로 쓴 것을 영원히 남기고 싶었습니다. 나머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성경을 쓰는 데 모든 시간을 바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성경을 쓰는 동안에 하나님의 불, 성령의 불이 임하였습니다. 치료의 영이신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완전히 고침 받았습니다. 성경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죽음을 앞두고 쓰기 시작을 하였는데 마칠 때에는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치유의 능력을 행하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신 고난 중에 채찍에 맞으신 고난이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채찍에 맞으신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나음을 위함입니다. 우리가 병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치유의 능력은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12년을 혈루증으로 하혈을 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니 병을 고치는 능력이 주님에게서부터 나가서 그 여인을 치료했습니다. 그녀의 믿음 때문에 주님의 치유의 능력이 그녀에게 임한 것입니다.
   
막 6:5,6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주님이 고향에 가셨는데 주님께서 그곳에서는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곳에서는 소수의 병인들에게만 안수하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던 이유는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치료의 영신 성령님은 믿음치유를 하시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치료를 허락지 않으시고 믿는 자만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읽고 은혜 받은 간증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94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돌아가신 할머니 간증입니다. 50살 때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예수님을 영혼 구원의 구세주로만 믿지 않고 병을 치료하시는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무병장수 하다가 94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너희들 지난 40년 동안 내가 아픈 것 보았느냐”, “나는 병 없이 본향에 가련다” 하시더니 94세에 소천 하셨습니다. 그런데 죽던 날 시계를 보시더니 “나는 오늘 10시에 집으로 간다” 하시더니 9시에 성경(요한계시록 20장, 21장)을 읽다가 10시가 되자 “예수님이 계신다. 나는 가야한다. Goodbye!” 하고 손을 흔들더니 의자에 앉은 채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질병으로 고통당하시는 분이 있다면 복음의 능력 안에 치유의 능력도 포함되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치유의 영신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성령께서 불같이 바람같이 임하시고 성령께서 여러분의 환부를 만지시면 여러분에게도 치유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님께서는 어떤 영이신지 살펴봤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며 능력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증거의 영이시며 비전의 영이요 치유의 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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