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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실한 좋은 일꾼이 됩시다 (엡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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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좋은 일꾼이 됩시다 (엡 6:21)


(엡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아버지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아서 늘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며 평안을 말씀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일찍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주시는 평안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물질이든지,권력이든지,건강이든지 항상 눈에 보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혹은 내 행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때문에 내 행동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고,실수하게 될 때 우리 마음은 어떻습니까? 불안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어떻습니까?
이러한 것과 전혀 무관하게 주시는 평안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된 것,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원수 된 모든 것을 부수고 주신 평안입니다.

세상의 변화,세상의 조건과는 전혀 무관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키시고,구원하시고,보호 하심으로써 주시는 평안입니다. 풍랑 속에 있는 제자들,내일 처형을 앞두고 깊은 잠을 자게 하신 베드로,실컷 매를 맞고도 찬송케 하신 바울과 실라,유라굴로 광풍 속의 바울에게 주신 평안입니다.
열심히 평안을 노래하다가도 혹시 지갑에서 돈이 떨어지면 불안하지 않습니까?
직장에서 자신의 위치가 약간만 흔들려도 얼굴색이 변하지는 않습니까?
누군가 심기를 약간만 건드려도 마음의 안정을 잃고 기우뚱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평안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점검하시고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마음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물론 이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받는 사랑이 아닌 베푸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가리켜 ‘믿음을 겸한 사랑’이라고 명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얻었음을 믿습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음을 인정합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사랑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가슴에 주께로부터 받아 가진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까?

원수라도 도저히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가슴 절절한 사랑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에게는 이 가슴 절절한 아가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못된 사람들을 멸하는 능력도 필요하고 천사의 방언도,못 고칠 병이 없는 신유의 은사도 필요하나 이러한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지 못했다면 우리는 무용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길에 내다버려 사람들의 발에나 밟혀야 하는 맛 잃은 소금에 불과합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합니까? 그것이 은사입니까? 세례 받은 사실입니까? 자기만의 확신입니까? 가슴 절절한 사랑인줄 믿으시가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마음으로 두기고를 보내면서 자신의 사정을 알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가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모든 교회 성도들을 위해 드리는 기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감옥 안의 모든 생활과 형편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들을 위한 목회자의 끊임없는 기도와 또 생활상의 여러 어려움들을 성도들이 몰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도 각각 사르밧 과부와 수넴 여인의 도움을 얻었고,우리 예수님께서도 나사로를 비롯한 많은 가정으로부터 도움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알려지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비롯한 모든 생활을 알려야 합니다. 물론 성도들 역시 목회자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이 목회자의 영적 보살핌을 받고 있는 이상 목회자의 생활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혹시 어려움 가운데 있지 않는가를 살피고 도울 수 있는 한 도와야 합니다. 또 자신을 위해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함에 늘 감사하고,거기에 부응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유 여하를 떠나서 목회자는 곧 성도를 위로하고 격려할 위치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목회자는 마치 어린 양을 돌보듯 성도들을 돌보고 날마다 기도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상처받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위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목회자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힘들고 외로운 지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 위로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끊임없는 돌봄을 베풀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좌절하거나 상처를 입어 실족하지 않도록 위로해야 합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으려는 듯 하는 목회자의 사랑과 돌봄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목회자의 위로와 사랑과 돌봄을 외면한 그 영혼이 안식을 누릴 곳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목회자의 극진한 사랑과 돌봄을 받고 그 영과 육이 함께 강건한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회자와 성도가 끊임없는 사랑의 교제를 이어갈 때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힘을 얻어 더 열심히 목회와 기도에 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는 성도대로 신앙생활은 물론 세상에서의 삶을 숭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복된 교회,복된 목회자,복된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두기고를 사랑 받는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소개를 통해서 두기고가 바울 자신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자임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밝히고 있습니다(Lincoln).
두기고는 아시아 지방의 대표자로서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으며(행 20:4) 바울에 의해서 에베소와 그레데에 파견되었던 자로서(딤후 4:12; 딛 3:12)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였음이 분명합니다(Foulkes).

두기고는 바울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형제였고 주 안에서 복음과 사역을 잘 감당하며 바울을 도와 주의 일을 하는 진실한 일꾼이라고 합니다.
'일군’(디아코노스)은 ‘사역자,집사’등의 직분 자들에게 사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명칭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두기고의 진실성은 그가 바울 사도에 의해 얼마나 신임 받는 인물이었는가를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진실한 일꾼이라고 합니다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이였으나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
(행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교회의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환경 여건 속에서 전도해야 합니다.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우는 썬다씽이 밀림지대에서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의 일이라 합니다. 그 군대의 연대장이 썬다씽의 활동보고를 듣고 그를 잡아들여 때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핍박을 했지만 순종하지를 않자 나중에는 돼지우리 같은 지저분한 곳에 옷을 다 벗긴 썬다싱을 가두고 그곳에서 지내도록 했다합니다. 그 대장은 밤새 지독한 모기들에게 뜯겨서 썬다싱이  죽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기와 온갖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돼지우리에 갇힌 그는 밤새도록 찬송을 기쁜 소리로 불렀다합니다. 연대장이 이것을 보고는 감동하여 예수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 같은 고통 중에도 찬송을 부르게 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예수를 믿어 보겠다하여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이후 초대교회에 제일 많이 믿는 부류는 노예들이었습니다. 당시 전 로마 영토에 노예가 6천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전 로마 시민의 3분의 1이었습니다. 이 노예들이 기독교를 바로 믿어서 로마를 복음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고 물건 취급을 했습니다. 마음대로 사고팔고 심심해서 죽이기까지 했답니다. 완전 짐승 취급을 했습니다. 막 때리고 쇠사슬로 묶고 … 이렇게 모진 학대 속에서도 그들은 외양간 같은 데에 모여서 찬송하고 저녁마다 주인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고관이 밤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잠이 오지를 않아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노예들이 외양간 같은 데에 모였는데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인 자신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주인의 일이 잘되게 해주시고, 주인에게 건강을 주시고, 주인 가정에 평화를 주시고, … 이렇게 기도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그 자리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나도 예수 믿겠다고 하고 그는 쇠사들을 다 풀어주고 그들과 함께 울면서, 그동안 사람대접 하지 안 했던 것 잘못했다며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인들도 예수를 믿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소문이 좍 퍼지자  이런 노예들을 통해서 점점 많은 삶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노예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전도함에 유익이 되고 있는지 전도를 가로 막고 있는지 살피며 전도하는  진실한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교회 일에 앞장 서는 진실한 일꾼이라고 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연보한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방문한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행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행 20: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행 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교회 일을 앞장서서 협력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브란스가의 100년 기부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1900년 봄 뉴욕 카네기홀에서 기독교 해외 선교대회가 열렸다합니다. 캐나다 의사 출신으로 조선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올리버 에비슨이 단상에 올랐다합니다. 에비슨은 조선 최초의 근대 병원 제중원(濟衆院·광혜원 후신)의 운영을 책임지던, 고종의 시의(侍醫)였다합니다. “환자 40명을 수용할 수 있게 시설을 늘리려 합니다. 도와주실 독지가가 없으신지….” 그때 뒤쪽 두 번째 발코니에서 강연을 듣던 루이스 세브란스가 나서서 “마침 선교지 어딘가에 병원을 지으려 했다”며 1만 달러를 쾌척했다합니다. 

세브란스는 존 D 록펠러와 함께 클리블랜드의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을 운영하던 대주주였다합니다. 세브란스의 기부로 서울역 맞은편 복사골에 병원을 완공한 것이 1904년 11월이라 합니다. 기증자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불렀다합니다. 서울에서는 43번째 양옥이었다고 합니다. 세브란스는 1907년 직접 조선을 찾아와 병원을 보고는 다시 거액을 기부했다합니다. 세브란스는 자기 주치의도 보내 세브란스에서 봉사하게 했다합니다. 세브란스병원의 여러 방 중 하나는 닭장처럼 쓰였다합니다. 

돈 없는 환자에겐 치료비를 받지 않았지만 공짜로 진료받은 사람들은 고맙다며 닭 한 마리씩을 들고 왔다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도 많아 따로 닭장 방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무료진료로 병원 운영이 어려워질 때마다 도와준 게 루이스 세브란스의 아들 존이었다합니다. 클리블랜드의 세브란스 홀은 세계적 교향악단인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본거지라 합니다. 이 공연장도 1928년 존 세브란스가 지어 기증한 것이라 합니다. 

세브란스가(家)의 자선은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계속 이어져 왔다합니다. 병원에는 지난 50년 동안 ‘미국 북장로교회’ 명의로 매년 후원금이 입금됐다합니다. 병원 직원들은 그냥 “미국 교회가 좋은 일 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합니다. 그런데 개원 120년을 맞는 병원측이 추적해보니 돈의 출처는 아들 세브란스가 만든 기금이었다고 합니다. 올리버 에비슨이 루이스 세브란스에게 병원 지을 돈을 줘서 고맙다고 하자 세브란스가 말했다합니다. “받는 당신보다 주는 나의 기쁨이 더 큽니다.” 세브란스와 록펠러가(家)야말로 베풀 수 있을 때 베풀 줄 알았던 행복한 부자들입니다.(만물상 2005.04.14. )

소망교회에 정문술 집사님은 전 미래산업 회장이신데 이 분이 300억이라고 하는 재산을 카이스트에 연구비로  기증을 해서 장안에 화제가 됐다 합니다. 300억을 과학기술원에 바쳤다. '도대체 어떤 이유일까?' 했더니 이야기는 간단하다합니다. 그가 그 사업이 부진하고 연구발전이 안 되어가지고 고민하고 있을 때, 회사가 아주 어려울 때,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찾아가서 얘기한 것도 아닌데, 본인이 직접 찾아와서 첨단기술을 전수해 줌으로써 회사가 살아났습니다. 

"그 고마움, 한평생 내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찾아와서 그 첨단기술을 전수해 주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나는 이 은혜를 갚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00억을 드렸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냐? 이광형이라고 하는 카이스트의 교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또 묻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그 회사에 찾아가서 그 좋은, 훌륭한 기술을 전수해 주었습니까?" 그분은 대답합니다. "국가가 저를 선진국 유학까지 시켜서 그래서 나로 하여금 과학기술인을 만들게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봉사하고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정문술 회장님과 이광형 교수님의 만남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또 은혜로 생각하고 은혜를 아는 그런 사람들의 만남의 관계로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내가 찾아가서 만나는 것을 탐구적 만남이라고 하겠지만 타인이 나를 찾아와서 만나 주실 때, 이것은 은총적인 것입니다.
죄로 영 죽어 마땅한 우리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만나 주시고 은혜 가운데 구원해 주시고 섭리의 은총으로 역사하십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몸 된 교회의 진실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을 돕는 일에 진실한 일꾼이라고 합니다
또한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골로새 교회와 에베소 교회에 각각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였습니다.
(골 4:7-8)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바울이 그레데에서 목회하고 있던 디도를 보고자 하였을 때 바울의 사신으로 갔던 인물이었습니다.
(딛 3: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진실이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산제일교회고훈 목사님은 처음 예수 믿을 때, 교회 공동 작업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합니다. 몸이 약해 직장생활을 못했기에 시간이 있었고, 교사나 성가대로 봉사하기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합니다. 다른 교인들이 힘든 노동 작업을 할 때, 화장실 청소를 도맡았다합니다. 작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수제비를 끓여 나눠먹었다합니다. 그러나 밀가루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만큼 위 상태가 좋지 못했다고 합니다. 

젊은 여 집사님이 수제비 한 그릇을 들고 왕복 10분 거리의 자기 집에 가서 남편이 들 쌀밥과 바꿔왔다고 합니다. “고 선생은 몸이 약해 수제비 못 먹으니 당신이 수제비를 드세요. 당신 밥은 고 선생 드립시다.”여 집사님의 청을 받아들인 그 남편의 쌀밥 한 그릇은 밥이 아니었고 예수님의 성찬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으로 후에 목사가 됐다고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그 밥보다 더 큰 사랑의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맛을 느낀 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교인들이 힘쓰고 있는 무료급식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그때 밥 한 그릇 진 빚을 갚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왕으로 즉위하자 다윗 왕의 세력이 크게 확장될 것을 두려워한 블레셋 족속이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다윗의 군대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서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은 그 후로 왕이 될 때까지 고향 베들레헴을 방문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군대가 고향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다는 소식에 군사를 이끌고 싸우러 갔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 한 번 마셔보았으면 좋겠다. 

누가 우물물 한 그릇만 떠온다면 시원하게 마실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말을 다윗 옆에 있던 세 명의 장수들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왕인 다윗이 마시고 싶어한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블레셋 군대를 뚫고 나가서 우물물을 퍼왔습니다. 그 우물물을 손에 든 다윗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수들이 적군을 돌진해서 우물물을 퍼오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내 걸고 갔다온 장수들이 너무너무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우물물은 부하 장수들의 생명과도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우물물이 아니라 부하 장수들의 피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장수들이 생명을 걸고 퍼온 그 우물물을, 그렇게도 마시고 싶었던 그 우물물을 하나님께 부어드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섬기고 있는 분을 위해서 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헌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 그것이 진실입니다. 그런 진실이라는 말이 두기고에게 쓰여 지고 있습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교회로 좋은 일꾼 되되 진실한 일꾼 되는 달입니다. 진실하게 사명 감당하는 좋은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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