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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꼴찌를 선택한 갈렙 (수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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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를 선택한 갈렙 (수 14:6-15)
 
12월까지 프랑스도 미국도 한국도 차기 대통령 선거 때문에 분주한 여론 분위기 속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타난 것으로 보면 한국은 지금 대통령 출마할 분이 열 분도 넘는 것 같습니다. 모두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서 이 나라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겠습니다.” 이런 약속을 하고 출마를 합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출마자들의 말대로 된다면 이 나라는 정말 위대한 국가 건설이 이루어질 거 같습니다. 

저는 토인비 박사의 역사관이 정말 맞다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 행복해지고 파괴적 소수에 의해서 불행해진다.” 

국가 지도자 몇 사람이 잘하면 국민 전체가 행복해 집니다. 반대로 몇 사람이 잘못하면 모두 다 불행해 집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세상에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 온 세상에 독재성 지도자들이 퇴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바라크, 카다피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미얀마까지 자유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저는 미얀마에 갔을 때 수치 여사 집을 한번 찾아가자고 가본 일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그 집 앞에 차도 못 세우게 해서 한 바퀴 돌고 바라만 보고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수치 여사가 암살당하지만 않는다면 장래에 분명히 미얀마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을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다가 이제 그들이 목적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정부 수립을 해야 되는 시간에 말씀을 본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방랑의 집시 생활을 끝내고 정착된 마을에서 안정된 생활권을 누리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자기 집 자기 땅 등기 문서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새 정부 수립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 40년 방랑 생활보다도 어려운 일이 그들에게 닥쳤습니다. 그 정복한 땅을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여주는 작업이 가장 어렵습니다. “누가 더 좋은 땅을 차지하느냐?” 이 문제가 생겨진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작업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최고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계속하시고 계십니다. 최고 지도자가 마음이 흔들리거나 약하면 무정부 상태가 됩니다. 어찌되었든 통치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40년 그들을 인도한 절대적 구심점 지도자인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총체적 책임을 여호수아가 맡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굳게 하시려는데 온 힘을 기울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호수아 1장에서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 10가지가 됩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던 것 같이 너와 함께 하리라.” 
“네 발바닥으로 밟는 것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리라.”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네가 어디로 형통하리라.” 
“극히 담대히 하라.” 

10가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강하고 담대히 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잘 해석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무지와 고집, 무모한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겁이 없는 사람과 용기가 없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겁 없이 무지한 행동을 용기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용기라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의로운 일에 자기 몸을 바치는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용기 있는 사람을 찬양하는 것이지 겁이 없이 무지하게 날뛰는 사람을 박수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우리 사회에서는 무지하고 겁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제발 좀 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제가 목회하는 집사님 가운데 한 분이 그런 분이 계셨습니다. 먹기 대회에 출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잡수셨느냐고 여쭤보았더니 1인분 12그릇 먹고 13그릇 먹은 사람한테 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는 그런 것을 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 것 하다가 배가 터지면 어떡합니까? 

사람의 위나 장은 한계가 있는데 그런 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는 것은 용기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 좋은 일도 아니니까 다시는 나가지 말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날은 저와 1인분씩 밖에 드시지 않았습니다. 또, 제 친구 목사는 깡패 두목 시절에 술 먹기 대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자기가 1등을 했답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죠니워커’라고 하는 양주를 병마개 따고 입에 대고 한 번도 안 쉬고 다 마시는 대회인데 자기 혼자만 했다는 겁니다. 그 친구는 일찍 죽었습니다. 

그게 용기입니까? 용기가 아닙니다. 가끔 이 복잡한 거리에서 청소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폭주족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무슨 순교자처럼 날뛰고 돌아다니는데 그런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세계가 다 인정하는 국민성이 다 존재하는데 이권에 매우 민감합니다. 세계에서 제일입니다. 그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을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생활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좀 지독스럽다는 평가를 항상 받지 않습니까? 지금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해야 되는 이 사람들은 공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걸고 전쟁을 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여리고성을 함락시키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31족을 몰아내는데 생명을 다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을 만족하게 다 좋은 땅을 주어야겠는데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같으면 어디에 가나 땅이 마찬가지입니다. 경상도 땅, 전라도 땅이 차이가 있습니까? 다 기름지고 좋은 땅입니다. 김포평야, 황해도, 내포평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닙니다. 못 쓰는 땅이 더 많습니다. 더구나 그 중에서 이 산지라고 하는 땅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황무지입니다. 거저 주어도 아무쓸데 없는 산지입니다. 

요즘 한국도 보십시오. 좋은 개발 사업을 놓고 언제나 투쟁적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많이 보게 되지 않습니까? 이것을 한다고 하면 이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뭔가를 항상 손익을 계산해서 찬성하고 반대하고 조금만 손해도 보기 싫어 절대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수막을 걸고 “절대 이 사업은 못한다.”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주 힘든 사회가 되었지 않습니까? 

분당에 어느 교회가 고층으로 교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층으로 지으니까 그 옆의 아파트가 조금 가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파트 주민들이 현수막을 걸었는데 뭐라고 썼는지 아십니까? “주님이 주시는 햇볕을 왜 교회가 막느냐?” 말이 되는 소리란 말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권리와 이익에 아주 민감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에는 매우 용기 있는 사람이 나타남으로 이 문제가 해결이 되는데 갈렙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나와서 최대 과제가 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문제인데 땅을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일이 큰일이지 않습니까? 갈렙은 그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공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두 정탐꾼 중의 한 사람입니다. 갔다가 죽을 확률이 많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나서서 내가 갔다 오겠다고 했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는 용기를 내는 사람이 이 사회에 필요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옳은 일을 위해서 끝마치게 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가? 내가 이 일을 위해서 나서겠다.’ 그래서 40세에 나섰습니다. 사실 용기가 있는 자만이 그런 일을 위해서 몸을 바칠 수 있는 것이지 누구든지 자기 생명이 귀한 줄 알고 자기 이권에 밝잖아요? 

그런데 이 갈렙의 용기는 어떻게 생겨졌는가? 성경에 이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내 양심에 조금도 가책 받을 일이 없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내려오면 비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용기를 가지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인류 구원이 그 십자가에서 완성된 거 아닙니까?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왔기 때문에 갈렙은 자기 양심의 후원을 얻으면서 아주 의로운 용기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그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다. 나를 보내 달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담대합니다.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변함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사람의 영적 담력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을 순교자라고 합니다. 모두 다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는데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옳은 일을 위해서 피를 흘린다는 것이 하나님의 영적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순교 현장에 나가는 거 아닙니까? 갈렙은 이처럼 용기가 있던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이 갈렙은 항상 긍정적 희망의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열두 정탐꾼들 가운데 우리가 성경에 보는 대로 열 명은 비관적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열 명의 비관적 보고가 현실적으로는 맞습니다. “그 사람들은 신체적으로는 우수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사실 광야 생활에서 영양 공급을 못하지 않았습니까? 만나만 매일 먹고 살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왜소합니다. 넉넉히 영양 공급을 받아서 신체가 우수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근래에 와서 보십시오. 이제는 초등학생들이 어른 키 만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양 공급을 잘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국민의 신장키가 커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막에서 40년 동안 영양실조에, 우리는 신체적으로 키도 자라지 아니하는데 그들은 가서 보니까 장대 같은 우수한 군인들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이 신체적인 우수성을 우리가 어떻게 당해낼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옛날 전쟁은 다 힘으로 했던 전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리적 곤란이 있습니다.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으며 여리고성은 견고하게 서있으며 우리는 그곳 지리에 능숙한 지식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현실적인 비교가 있습니다. “우리는 피난민이요 그들은 정비된 군사력을 가지고 여리고성을 지키고 있나이다. 더군다나 현실적인 약점에 있어서 우리는 쳐들어가야 되는 부담이 있고 그쪽은 방어만 하면 되니까 이것은 아무리 계산해도 우리가 집니다.” 

이렇게 열 명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민주주의 다수가결에 의해서 그 전쟁은 하지 말고 가나안 땅은 포기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이큐가 모자라나 무슨 배짱을 가지고 “무슨 소리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와 갈렙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두 사람은 “만약 여기서 이것을 중단하고 포기하고 만다면 하나님의 역사성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지나간 40년 우리를 광야에서 지켜주시고 홍해를 갈라주시고 지금까지 만났던 그 수난의 수많은 고비고비를 다 우리가 넘겨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저앉고 만다면 하나님의 최종 목표인 가나안 땅 정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란 말이냐?” 

하나님의 영적 뜻 가운데서 영적인 비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이 정확한 거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론에서 보면 열 명의 말이 틀린 것이고 두 사람의 말이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렙이 주장을 했습니다. 긍정적, 영적 비전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도 항상 그렇습니다. 다 다수가 안 된다고 해도 됩니다. 그게 사도적 관찰이고 영적 비전입니다. 

신앙세계는 확실히 현실을 초월하는 어떤 하나님의 영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그 사건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우리가 늘 이 사람들 이름을 외우는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밖에는 이름을 기억을 못합니다. 

여러분! 열두 사람 이름을 다 기억하십니까? 저도 두 사람 밖에 모릅니다. 왜 기억하지 않으십니까? 그 열 명의 이름을 기억해서 뭐합니까? 그 사람들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려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40년 역사는 이 자리에서 물거품이 되게 하라는 말이냐? 그러면 우리가 여태까지 믿어오던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이래서 긍정적 방향 제시를 갈렙이 줄기차게 했기 때문에 그 일이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그의 용기는 순전한 헌신에서 비롯된 용기라서 힘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말대로 가나안 땅 정복을 다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그들이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습니다. 즉, 자기 몫을 넉넉히 챙겨야할 시간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됩니까? 여호수아는 대통령이 되고 갈렙은 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넉넉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는 또 추한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아! 지금까지 당신들이 그렇게 강하고 담대하고 나를 따르라고 했던 것은 당신들이 이렇게 대통령, 부통령이 되시려고 했구먼!” 

이렇게 평가를 받게 됩니다. 지금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요청하느냐? 마지막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열두지파가 다 땅을 배분을 받는데 저마다 좋은 땅을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가나안 땅이 아닌 모압 동편 땅이 너무 좋아서 전쟁의 선두에 서는 조건으로 그 땅을 분배받아서 두 지파 반이 동편에서 살고 나머지는 가나안 땅을 분배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제일 나쁜 땅, 꼴찌를 선택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그 땅에는 가나안 족속 중에서 가장 힘이 강한 아낙 자손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그 땅을 들어가려고 하면 또 다시 전쟁을 하고 피를 흘려야 하는 승리가 희박한 곳이며 버려지는 황무지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내가 거기를 가겠습니다. 나와 내 지파에게 그 땅을 주시면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말합니다. 갈렙이 꼴찌를 선택하는 바람에 다른 지파들의 땅 분배에 대한 말소리가 조용해집니다. “오! 갈렙이 저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아니, 제일 나쁜 땅을?” 

여러분! 필라델피아 대학은 미국에서 좋은 대학입니다. 거기 학기 때마다 문제가 기숙사가 모자랍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좋은 방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온 학생 한명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우선 선택의 권리를 포기하고 학기 때마다 “화장실 옆의 방은 아무도 가지 않으니까 그 방을 저에게 주십시오.” 말했습니다. 

학생처장이 “야! 거기는 화장실 냄새 때문에 아무도 안가고 늘 비워두는 장소다.” “아무도 안가기 때문에 제가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방을 쓰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좋은 방을 다른 학생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학생처장이 ‘야! 우리학교에 저런 학생도 들어오는구나!’ 여러분! 그 학생이 그 학교 총장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걱정했을 것입니다. “갈렙 동지여! 그대는 우리 중에 가장 큰 공로자요. 이제 그대 나이가 85세가 되었는데 지난 45년 동안 이 민족을 이끌고 얼마나 고생 많이 했소? 어찌 그 험악한 산골짜기의 아낙 자손과 또 싸운단 말이요? 당신은 이제 공로자라 편히 쉬시기 바라오.”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오늘날 내가 85세로되 오히려 강건하니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하나님의 일은 죽기 살기로 하는 겁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만이 용기 있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구질구질하게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하는 일은 열매가 없습니다. 85세 고령에도 마지막 남아있는 믿음의 소원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는 이 위험한 일은 내가 하다가 죽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했기 때문에 그가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지 않습니까? 

이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중요한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적 유적지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거기서 살았습니다. 거기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그의 아내들 사라와 리브가, 레아가 묻혀있는 곳입니다. 

“우리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가? 우리가 지금 이 땅을 찾아온 것도 아브라함 때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신 이 약속의 땅을 우리가 온 것이 아니냐? 그가 묻힌 곳을 내가 가겠노라.” 모두다 하나님의 역사성과 영적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마치려는 용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문제가 다 해결이 됩니다. 

지도자의 생각과 처신은 국민 전체에 절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합니다. 여러분! 공산권이라서 신문에 나지 않았습니다. 1930년대 소련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농지 개혁 국유화! 이것은 다 국가 땅이다.” 개인 소유를 몰수하려는 작업 하다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토질이 세계에서 제일 좋습니다. 그래서 히틀러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했을 때 수천대의 자동차를 동원해서 우크라이나의 흙을 싣고 독일에 가져다 토질 개혁을 시키라고 해서 갖다 붇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스탈린도 국유화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국민들이 다 반대하고 일어나니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의 모든 식량을 군대를 동원해서 다 빼앗아 가고 심을 만한 파종의 씨앗마저도 다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1천만 명이 굶어죽었습니다. 공산권이라 발표가 안 되었을 뿐입니다. 저는 우크라이나를 여러 번 갔다 왔습니다. 한 사람의 정의롭지 못한 잘못된 생각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다. 1990년대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대를 지냈습니다. 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은 자기들이 한 말입니다. 300만이 기아로 굶어죽었습니다. 

얼마 전 1년 식량 값어치의 로켓 발사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식량 보급 중단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또 많은 사람이 굶주림의 희생자가 나오겠습니까? 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이 국민의 행복이 좌우됩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갈렙은 히브리 민족 앞에 영원히 잊지 못할 창조적 소수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85세 된 영감님이 민족의 행복과 앞날을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바라볼 때 이 아낙 자손을 물리치고 헤브론 산지에서 사는 일은 내가 하다가 죽어야 되겠다고 불가능한 노인의 육신을 일으켜서 “나는 아직 건강합니다. 그 험악한 마지막 사명은 제게 주십시오.” 

가능성 있는 신앙을 가지고 남이 가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 말미암아 전쟁보다 더 힘든 땅 분배의 작업은 평온하게 끝이 나고 오늘 성경 말씀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고 나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험악한 이 산지는 마지막 내 사명으로 내가 비록 85세가 되었지만 이것을 위해서 젊은이들이 또 다시 피를 흘리고 죽는 일보다 오랫동안 살아온 내가 마지막 사명으로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것이 민족을 위해서 좋은 일일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적어도 국민을 이 정도로는 사랑해야 최고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국가가 어려워진들 대통령이 마지막에 굶어 죽겠습니까? 가장 많은 혜택이 있는 공무원이 40세의 정탐꾼으로 모세에게 선택된 이후 45년을 한결같이 가능성 있는 신앙의 마음으로 살아온 갈렙은 자기 생애의 마지막을 이권과 평안보다는 험악한 사명으로 끝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자기 집을 가지고 등기를 내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입니다.

갈렙 같은 마음을 가진 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 한해에 있어야 할 이 커다란 민족의 운명이 달린 최고의 통치자를 뽑는 일을 이렇게 훌륭한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나와 주기를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하나님의 역사성에서 훌륭한 국민 행복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배울 것은 어떠한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갈렙 같은 신앙입니다. “여기서 우리 희망이 좌절된다면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다수가결을 무시하고 “무슨 소리냐?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래서 두 사람의 의견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그렇게 가능성을 열어놓고 내다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그런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에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갈렙 같은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같은 역사 안에서 믿음 있는 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을 도와주시고 마침내 그들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 갈렙이라고 하는 훌륭한 지도자 한 사람의 사명감 있는 발언을 통해서 그 민족의 가장 큰 어려움이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대한민국도 그런 지도자를 허락해주시고 또, 저 북한에도 주님께서 이제는 더 이상 오래 끌지 마시고 그런 훌륭한 지도자 선택이 되어져서 자유와 행복이 물결칠 수 있는 행복의 땅으로 주님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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