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버이주일] 약속의 계명 (잠 4:1-9)

첨부 1


약속의 계명 (잠 4:1-9)
 
지금은 한국도 미국도 대통령 선거 분위기로 모두 분주합니다. 미국 공화당의 선두주자인 미트 롬니 대선 후보의 흠집을 내려고 민주당에서 꼬집었습니다. “롬니는 부자라서 롬니의 부인 앤은 단 하루도 사회에 나가서 직장 일을 해본 일이 없다. 거의 모든 미국의 여성들이 직장 경험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그런 경험을 한 번도 안하고 돈만 써본 사람이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을 때 이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 그런 사람이 국민의 사정을 어떻게 알겠느냐?” 그랬더니 롬니의 부인이 맞받아쳤습니다. 

“무슨 소리냐? 나는 직장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나에게는 아들이 5명이 있다. 5명의 아들을 훌륭하게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일이 직장일보다 훨씬 더 어렵다. 결코 쉽지 않다. 전업주부가 직장일보다 못하다는 말이냐? 직장 다니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5명의 아들을 훌륭하게 양육시키고 교육시키느라고 고생한 사람이다.” 

그랬더니 여론은 앤의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에서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평가해도 한국의 엄마들은 좋아졌습니다. 어떤 선진국의 엄마들보다도 좋은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날이 생기던 초창기에서는 너무나도 우리 조선의 어머니들이 희생적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을 찾아온 초기 역사의 많은 선교사들이 글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초창기에 이 나라를 찾았던 게일 선교사는 “조선의 어머니”라는 글을 써서 유명해졌습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이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는 5천년이나 건재하게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가 조선의 어머니들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밝힌 것을 보면 “조선의 여인들의 특징”이라고 해서 다섯 가지를 써 놓은 것이 있는데 남편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외국에 가서 10년씩 돌아오지 않고 있어도 성공만 해서 돌아오면 참고 견디겠다는 것입니다. 선진국 여자들은 그렇게 10년을 절대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선교사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이상한 것입니다. 

“이게 조선의 여인들이다. 10년 동안 아무 불평 없이 꾹꾹 참고 기다린다. 그 다음에 남편의 자존심을 절대 지켜주는 조선의 여인들이다. 남편이 기분 나쁠 이야기를 절대 마음 상하지 않게 한다. 이게 보통 지혜가 아니다. 서양의 여자들은 기분 상할 말만 골라서 하는데 조선의 여인들은 아무리 기분이 상해도 남편의 자존심은 건드리지 아니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다음에 자녀들을 위하는 일에는 순교자들과 같이 한다. 엄마가 길거리에 나가서 무슨 콩나물 장사를 하던 떡볶이 장사를 하던 아들들은 다 대학을 보내고 딸들은 다 음악가를 만든다. 이게 조선의 어머니들이다. 그 다음에 배고픔을 참아내는 일과 일을 많이 하는 일은 초인간적이다. 엄마는 언제 잠을 잤는지 언제 먹었는지 모르게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일하는 사람과 같이 보인다. 그 다음에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고난을 운명적으로 해석한다. ‘팔자가 그런 걸 어떡하느냐?’ 이것으로 모든 고난을 이기는 것이 조선의 어머니이다.” 

맞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여인들보다 위대하고 훌륭하여 5천년 역사가 이렇게 건재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때를 생각해볼 수 있는 연령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세탁기도 없었습니다. 전기밥솥도 없던 시절입니다. 냉장고는 더욱 없습니다. 수돗물도 없고 우물에서 물을 길러다 밥을 했습니다. 대가족 제도라서 보통 3대가 한집에서 살아서 10명 정도의 식구는 거의 다 되었습니다. 밥상은 세 개 정도가 따로 따로 차려야 됩니다. 겨울 새벽에 그 추운 때에도 제일 일찍 일어나서 하는 일이 불을 떼어 물을 데워서 식구들 세수를 시켜야 일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 많은 식구들 식사 준비를 하고 치우고 나면 바로 점심을 또 시작해야 됩니다. 밭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여인들 몫이었습니다. 김매고 노동하는 것도 살림하면서도 다 참여했습니다. 

보통 자녀는 한집에서 4명에서 10명 사이로 출산합니다. 어떻게 살았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다 살았지 않습니까?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고초당초 맵다더니 시집살이 더 맵구나 밭에 가면 바랭이 귀신 논에 가면 거머리 귀신 시아버지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라 남편 하나 미련새요 동서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이라.” 

그래서 생긴 날이 어머니날입니다. ‘어머니들의 이 끝없는 고난을 노래 한 곡조라도 선물해 드리자.’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어머니는 카네이션 한 송이와 그 한 소절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의 고난을 다 잊어버리는 순교자와 같은 모습을 가지셨습니다. 이게 조선의 어머니입니다. 일본과 한국에서의 복음 전파에 너무나 큰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일본이 한국보다 복음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복음이 들어왔는데 일본은 한국에 비해 30분의 1도 안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 제일 큰 비중이 뭐냐? 일본의 정신문화는 사무라이 철학에서 발전했습니다. 이 철학은 내가 잘못했으면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 죄에 대한 벌을 내가 받는 정신인데 왜 내 죄 때문에 예수께서 죽으셔야 하는가?’ 이게 정신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죽지!’ 또 하나는 일본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천황이라고 하는 것을 현인신, 살아있는 신이라고 생각해서 천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의 죄의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기독교 기본 진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일본의 복음화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충효 사상이 복음 전파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임금님에게 충성하고 부모님에게 효도한다는 이 절대 윤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유익한 정신문화였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임금님 섬기듯 하라. 부모님 섬기듯 하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이 아주 문화적으로 정신문화에서 큰 도움을 입은 것입니다. 

기독교 윤리에 있어서 이 부모 공경에 대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 십계명 중에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은 1계명에서 4계명까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 숭배하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5계명에서부터 10계명까지는 인간관계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3절에 보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서 네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렇게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줄 믿고 순종하십시오. 땅에서 잘되고자 하면 부모를 잘 공경하라고 했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그대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중 지금 1인 1가구가 25.3퍼센트입니다. 제일 많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 가구가 우리나라에서 1위입니다. 왜 이렇게 많아졌습니까? 제일 큰 원인은 독거노인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우리가 인정하지만 자녀들이 부모 모시기 싫어하는 시대적 문화 확산에서 이렇게 되었다고 보는데 그러면 하나님께 복 받을 것인가? 부모 모시기 싫어하면 이 나라 백성이 복을 받을 것인가? 

야곱은 그의 생애에 가장 불행했던 13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언제입니까? 가장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낳은 요셉을 제일 사랑했는데 그 요셉이 죽었다고 사라져버린 13년입니다. 얼마나 요셉을 좋아했는지 편애를 해서 다른 아이들의 불평을 샀습니다. 4명의 여인들을 데리고 살았지만 라헬을 지독히 사랑했고 그가 낳은 요셉만 사랑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요셉이었고 라헬이었습니다. 

17살이 된 요셉이 어느 날 멀쩡하게 “짐승에게 물려 잡혀먹었습니다.”라고 다른 자식들이 보고하는 바람에 슬퍼졌습니다. 짐승에게 뜯어 먹히는 장면이 악몽으로 날마다 고통스러워서 슬퍼서 13년 동안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었다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살아있다니 얼마나 꿈같은 현실을 만났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야곱 고통의 13년을 그대로 두셨는가? 야곱이 과거의 아버지를 속인 죄가 있습니다. 에서라고 거짓말을 해서 아버지 축복을 가로채는 바람이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 되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살리기 위해서 야곱을 도망가게 만들고 아버지는 그 일로 인해서 큰 아들 에서의 효도를 받지 못하고 날마다 자식에게 학대당하는 괴로운 생애를 13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속인 죄가 있기 때문에 그 죗값으로 자기도 13년 동안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심리학 교수들이 발표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가정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성장한 어린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풍부한 정신문화의 삶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참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가족 제도가 절대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에 부모에게 효도해야 될 이유 두 번째가 너무 오랜 시간 우리는 부모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동물들은 부모의 은혜 기간이 아주 짧습니다. 송아지를 보십시오. 태어나서 한 시간이면 뛰어 다닙니다. 사람은 몇 년 걸려야 합니다. 어떤 동물도 일 년 안에 자립합니다. 사람은 30년 걸립니다. 학교 보내고 졸업 시키고 그 다음에 장가보내서 살림 내니까 30세입니다. 30년 동안 부모 은혜를 누구나 거의 다 입게 됩니다. 그러면 30년 동안 보답해야 되는 것이 성서적입니다. 

요즘 슬픈 농담이 돌아다닙니다. 딸은 도둑년이고 아들은 강도이고 손자들은 떼강도라고 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돈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구박 대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 복 받지 못할 소리들입니다. 30년 은혜 입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30년 도와드려야 합니다. 

조선 시대 황희 정승이라고 하는 매우 어질고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자식 교육 일화가 있습니다.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국가의 최고 관직에 있으니까 살기가 좋았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방탕하는 겁니다. 

어느 날 아들이 방탕스러운 모습으로 집 대문에 들어서니까 황희 정승이 정승차림으로 대문에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을 보고 정중하게 절을 하면서 “어서 오십시오, 어른!” 인사하며 아들을 맞이했습니다. 아들이 깜짝 놀라서 “아버님, 접니다. 아들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황희 정승이 “애비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는 아들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손님으로 정중히 모시겠나이다. 여봐라! 이 어른 잘 모셔라. 진짓상 잘 차려드리고 잠자리 편안히 해드려라.” 하인들이 “예!” 그렇게 하고 쩔쩔 매니까 이 아들이 몸 둘 바를 모를 거 아닙니까?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승의 정장을 하고 가서 구부려 절을 하면서 “밤새 편히 쉬셨나이까? 이제 일어나셔서 세안을 하시고 아침상을 드소서.” 날마다 이러니까 아들이 항복하고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그래서 황희 정승의 아들이 아버지같이 훌륭하게 되었다는 교육 일화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시리라.” 

제가 한 집사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목사님! 이런 것을 설교 예화 쓰셔도 괜찮을까요?” 하면서 들려주셨습니다. 자기 친구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좀 촌스럽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을 위해서는 아주 헌신적인 아버지가 계셨는데 노동을 해가면서 농사를 지어가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서 자녀들을 다 대학 졸업시키고 그 다음에 ‘우리 아들 나같이 고생하지 말고 편안히 살 수 있도록 기초를 내가 마련해 주어야 되겠다.’ 

그동안 평생 모아둔 자금을 가지고 10층 빌딩을 하나 잘 설계해서 ‘이것만 가지고 아들, 손자까지 대대로 나쁜 짓만 안하면 살아가는 데는 염려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아들, 며느리에게 그것을 주려고 빌딩을 건축하셨는데, 빌딩이 설계한 대로 잘 올라갔습니다. 뼈대 기초가 끝나고 그 다음에 내부 시설을 하는데 이 아버지는 너무나도 좋아서 “내가 고생해서 우리 아들, 딸, 손자는 고생 안하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 그 현장에 나가서 작업복 입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노래를 부르며 일을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어느 날 자기 대학 동창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자기에게 빌딩이 생기는 것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 친구들을 다 데리고 “이거 우리 빌딩 짓는 거다.” 하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동기들이 부러워하고 “어떻게 이런 빌딩을 짓느냐?” 하며 이야기하는데 거기 시아버지가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열심히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동기들이 “저 할아버지 누구야?” 물었단 말입니다. 그때 며느리가 “아! 여기 우리 아버님이시다. 너희들 인사드려라. 이거 우리 아버님이 이렇게 고생하시며 지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우리 아버님 때문에 이게 생기는 거야. 아버님! 제 친구들입니다.”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슬며시 하는 말이 “공사장에 나오신 일꾼이야.” 

그런데 할아버지가 귀가 밝아서 그걸 들었습니다. 그날로 결별을 선언하셨습니다. “끝났다. 나는 공사장 잡부로 먹고 살 테니 공부 많이 하신 어른들 잘 사십시오. 절대로 나한테 오지 말고 나도 너희들 평생 죽을 때까지 안 보겠다!” 

그렇게 완전 결별하고 재산도 하나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건 내 노동으로 다 번거야. 너희들 여기 공헌 1퍼센트도 없어. 알았지?” 다 뺏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너희들 평생 보기 싫어.” 말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끄러워하리라.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하리라.” 부모를 거역하면서 내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 그런 생각은 절대 이율배반적 발상입니다. 시대가 변했다는 말을 하는데 성경은 안 변하니까 그런 줄 아십시오. 

세 번째 부모 공경 이유는 가정이 건강해야 국가가 삽니다. 그래야 인류가 삽니다. 역사에 그렇게 강성하던 문명과 문화, 그리고 국가와 민족들이 왜 멸망했는가? 첫째가 가족이 무너지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이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서지 못하리라.” 가정은 모든 기반의 기초석이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바람직하지 아니한 일들이 현실적으로 생겨지고 있습니다. 바로 결혼 기피현상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 숫자가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인 1가구가 제일 많아지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집사님은 저와 걱정스런 상담을 하셨습니다. 그 아들은 미국에서 3위 안에 들어가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간 수재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어떡하죠? 얘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사상이 이상해졌습니다.” 
“뭔데요?” 
“결혼을 안 하겠대요.” 
“왜 결혼을 안 하다고 합니까?” 
“그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때 결혼을 한다고 하면 그곳에서는 아주 웃음거리, 왕따가 된다고 합니다. 너는 머리가 그렇게 좋은데 그렇게 계산이 안 되냐? 왜 결혼을 하려고 하느냐? 그래서 결혼을 한다고 하면 바보라는 사상이 박혔으니 어떻게 하죠?” 

그런 상담을 저와 한 적이 있습니다. 공부는 잘하고 세계적인 대학을 나왔는데 사상은 이상해 졌습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사실 고상하고 거룩한 목적이 있어서 결혼을 안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신부님들이라든가 수녀님들이라든가 수도사들, 특수한 교육자, 또는 신체적 이유로 결혼을 안 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그 다음에는 불행하게도 이혼율은 높아갑니다. 앞으로 한국도 선진국 이혼율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갑니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개인적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무조건 안 된다는 말은 율법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 젊은이들은 작은 고난도 극복하기 싫어합니다. 기분에 따라서 최선의 노력을 통해서 건강 가정 지키기 아주 싫어합니다. 이게 위험한 사상이라 아주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결혼은 했어도 자녀 출산 기피 현상도 생깁니다. 

어쩌다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불명예스러운 두 가지 기록을 갖게 되었는지 전 세계 200개 나라 중에서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입니다. 

여러분! 극복해야 합니다. 왜 선진국들이 이민 정책을 실시하겠습니까? 그렇게 어려운 역사 속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선진국을 이루어놓고 아무 공로가 없는 외국 사람들을 불러다놓고 “너희들 여기서 살아라.” 혜택을 주기 위해서입니까? 그래야 자기들도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없으면 다 같이 고생하기 때문입니다. 제발 우리나라에 와서 살아달라고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민의 나라들이 다 성공했지 않습니까? 

자녀출산 기피현상은 우리나라에 수치스러운 데이터가 되니까 우리가 이것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저는 자녀 출산 많이 하는 가정에 특혜를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은 인류 창조 이후에 제일 먼저 내리신 축복이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그 말씀대로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나라가 잘됩니다. 믿음의 조상부터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는 절대 효성이 아주 많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너희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번제는 죽여서 불태워 버리는 겁니다. 양 잡아서 해야 하는데 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하니까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들을 데리고 그 일을 순종하기 위해서 갈 때 이삭은 청년 시기입니다. 무엇으로 하느냐? 번제를 드리려면 장작더미가 필요합니다. 많이 필요합니다. 사람 다 태울 때까지 불을 피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장작더미를 아들 이삭이 등에 지고 갔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청년입니다. 청년이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연대 계산을 할 때 27세였다고 계산합니다.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다 큰 청년을 120살이 넘은 아버지가 아무도 없는 모리아산 꼭대기에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데 그 아들의 힘을 제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만약 이삭이 반항을 했다면 오히려 이삭이 아브라함을 제사지내고 내려왔을 것입니다. “이 영감이 미쳤나?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다니! 이 할아버지는 거의 다 살았으니 당신을 제물을 섬기자!” 그런데 이삭이 순종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절대 순종이라고 합니다. 그 순종의 결과는 이삭이 죽었습니까? 180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버지가 하는 일에 절대 순종하기!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오미는 룻의 시어머니요, 룻은 모압 며느리입니다. 모압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멸시 대상입니다. 옛날 출애굽 시절 모압 여인들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서 23,000명 죽었다고 성경에 숫자까지 나와 있습니다. 모압 족속은 조상이 소돔과 고모라 때 아버지의 롯에게서 딸들이 술을 퍼 먹이고 딸과 동침해서 자손이 퍼진 족속입니다. 큰 딸과 동침해서 자손 번성이 이루어진 것이 모압 족속이요 작은 딸과 동침해서 번성한 것이 암몬 족속입니다. 

이제 룻은 모압 여자이기 때문에 유대 땅으로 돌아가면 모든 사람의 멸시의 대상이 됩니다. 학대를 받습니다. 이미 남편들이 다 죽어서 소망이 없는 상태에서 늙은 홀시어머니를 홀며느리가 다른 나라에 가서 모시는 일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서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나를 떠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나도 내 고향 땅으로 돌아가리라.” 

그런데 룻이 뭐라고 답변합니까?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노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모압여자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지 않습니까? 절대 순종이 절대 축복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세상 풍조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따라가지 마시고 부모님을 주님처럼 받들어 섬기십시오.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조금 괴로움이 있어도 부모님을 주님같이 여겨야 합니다. 

제가 이민교회를 27년 했지 않습니까? 교회 나오는 이가 수천 명 되었는데 조사한 것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이민생활을 싫어합니다. 여자들은 90퍼센트 이상 좋아합니다. 왜 싫어하고 왜 좋아하는가 제가 다 밝혔습니다. 

여자들이 이민 생활 좋아하는 첫째 이유는 시댁, 친정 아무 신경 안써도 되기 때문입니다. “어휴! 한국에 가서 살면 시댁의 무슨 일, 사돈의 팔촌까지 다 챙겨야 되고 양쪽 모두 신경 써야 돼서 골치 아픈데 이곳에서는 우리 가족만 챙기면 되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요.” 

교회에서 제가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하면 복을 못 받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절대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르쳐 드렸습니다. 

집안 이야기해서 좀 쑥스럽지만 저도 갈보리교회 다녔던 처녀가 며느리 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집에 아들이 없습니다. 딸만 둘인데 큰 딸입니다. 제가 어느 날 며느리 앉혀놓고 심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너희 집 아들 없다. 네가 큰 딸이다. 네가 너희 집안에 대를 이어야 하고 부모님은 네 책임이다. 그런데 너도 아들, 딸을 낳았다. 내가 판단할 때 너의 아버지, 어머니는 사회적 활동 끝난 나이시다. 그러므로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신경 쓸 거 없다. 내가 알아서 잘 할 테니 너의 아버지, 어머니는 네가 책임지는데 구체적으로 하거라. 미국에 이민 수속해서 모셔다가 여기서 네가 모셔다 살아라. 여기 모셔다가 캘리포니아에 골프장 많지 않느냐? 네 아버지 골프 좋아하시더라. 그러니 골프 회원권 사드리고 잘 모셔라. 그래야 복 받는다. 그래야 네 아들, 딸도 복 받는다. 대신 나는 한국에서 끝까지 살겠다. 조건이다.” 

벌써 동생은 몇 년 전에 데리고 갔고 지금 이민 수속하는데 금년 안에 아마 부모님 다 정리하고 들어가실 겁니다. “그래야 복 받는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영적 부모도 섬기십시오. 성경에 그렇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성경대로 살면 됩니다. 잔머리 굴리지 마십시오. 오늘 이 의미가 있는 날에 여러분이 부모가 되시고 또 자식을 낳으시고 또 내 자식도 있고 부모도 있고 이런 관계에 우리가 다 있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이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 아버지, 어머니를 높이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여러분 가정이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의미 있는 날을 저희들이 맞이했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했는데 이런 날 교회가 왜 이런 설교를 하고 이렇게 지켜야 되는가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잠언이 주는 말씀, 에베소서 6장이 주는 말씀 저희들이 잘 기억해서 말씀대로 순종해서 말씀대로 복 받는 모든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